하예진은 노동명과 우빈이가 함께 자는 모습이 마치 부자처럼 느껴졌다.하예진은 두 사람을 바로 깨우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직원들이 퇴근하기 전에 이미 가게 안의 모든 것을 깨끗이 치워놓았기에 가게는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다.오늘은 오픈 첫날이라 그녀의 친척과 친구들 외 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식사했다. 오늘 하예진은 가게로 들어와서 식사하는 손님마다 할인해주었고 자그마한 선물도 준비해 주었다.조금 전 하예진이 오늘의 장부를 계산해 보았는데 그 수입이 하루 토스트 가게보다 훨씬 많았다.가게 오픈 첫날에 많은 귀빈이 참석했고 그 귀빈들 때문에 이곳에 와서 식사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미래의 경영 상황을 잘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하예진은 자신의 하루 레스토랑이 하루 토스트 가게를 능가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다.눈앞의 목표를 달성한 후 하예진은 또 다음 목표를 연이어 진행하려고 계획했다.하예진은 의자 하나를 살며시 잡아당겨 자리에 앉았고 깊이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았다.하예정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퇴근했다. 하예정은 임신하고 있었기에 하예진은 친동생을 가게에서 늦게까지 있게 하지 않았고 점심 식사가 끝난 뒤 바로 제부에게 부탁해 동생을 집으로 데겨가게 했다.다른 지인들도 오후 늦게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밤늦게까지 하예진의 곁을 지킨 사람은 사랑하는 아들과 그녀를 1년 가까이 연모한 노동명이였다.노동명은 입원 기간 살이 많이 빠졌다. 퇴원 후로 마음을 추스르고 정신이 많이 좋아졌고 빠졌던 살들도 천천히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노동명은 만약 그가 매일 재활을 꾸준히 하지 않고 계속 살이 찌기 시작한다면 뚱보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그리고 하예진에게 만약 그가 뚱뚱보로 된다면 그를 좋아하게 될 수 있겠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하예진은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답했다.“노 대표는 뚱뚱해도 많은 여자가 좋아하실 거에요.”하예진은 자신이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말은 내뱉지 않았다.노동명은 입을 삐쭉 내밀며 말을 이었다.“그 사람들이 좋
노동명은 본능적으로 먼저 품에 안긴 녀석을 꼭 끌어안고 뒤이어 눈을 번쩍 떴다.눈앞의 사람이 하예진인 것을 확인한 노동명은 그제야 활짝 웃으며 하예진에게 물었다.“일 끝났어? 집에 가도 돼? 우빈이가 졸린다고 하길래 안고 재우려고 했는데 나까지 깜빡 잠들었어.”하예진은 아들의 작은 얼굴을 만지던 손을 거두어들였다.노동명이 눈치채더니 무척 후회했다. 반응이 왜 이렇게 느린지, 하예진이 손을 내려놓을 때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얼굴을 만지게 해야 했었는데.누가 들어가도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잠을 깊이 자야 했었는데.어쩌면 하예진이 그가 잠들었을 때 몰래 뽀뽀했을 수도 있다.지금 자는 척해도 늦지 않을지...“끝났어요. 동명 씨, 수고하셨어요. 늦은 시간까지 우빈이를 돌봐주시고.”노동명이 한마디 했다.“너와 나 사이에 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 우빈이도 날 잘 따라주니 너무 기쁘기만 한 걸.”예전에 노동명이 우빈이를 안고 싶어 했지만 우빈이는 자신을 다치게도 하지 못했다. 노동명의 얼굴에 칼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노동명은 지금까지도 얼굴의 칼자국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지 않았다.하예진도 그의 얼굴에 난 칼자국에 대한 사연을 알고 있었기에 그 자국을 남기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해 주었다.처음 노동명을 만났을 때 하예진도 그의 얼굴에 남은 자국을 무척 무서워했다.하지만 그 칼자국이 익숙해진 하예진은 무섭기는커녕 자꾸 마음이 아프기만 했다.당시 그 칼이 얼굴에 베었을 때 얼마나 아팠을까.“동명 씨 경호원은 아직도 밖에 있어요?”하예진이 살며시 물어보았다.노동명이 대답했다.“응. 우리 사람들은 날 떠나지 않을 거야.”밤이 아무리 깊어도 노동명이 아직 식당에 있는 한 경호원은 그를 기다려서 집에 데려다주어야 했다.하예진이 노동명을 배웅할 수 있지만 밤이 깊어졌기에 노동명은 허락하지 않았다. 노동명은 하예진이 그를 집으로 바래다준 다음 다시 그녀의 집으로 돌아간다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걱정할 것이 매우 뻔했다.하예진은
“예진이 넌 요리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비싸지 않고 맛있는 요리를 맛보게 하고 싶어 하잖아. 내 생각엔 체인점을 많이 발전시키는 게 더 좋을 것 같아.”“관리방식에서도 좀 더 엄하고 자신만의 체계적인 방식으로 다스려야 해.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거든. 중심이 무너져버리면 모든 것이 마치 모래처럼 금방 흩어질 테니까.”“난 네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어. 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면 돼. 단숨에 하늘을 오를 순 없으니까. 그러다 보면 경험도 쌓을 수 있어서 좋을 거야.”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동명 씨 말에도 일리가 있어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해 볼게요. 불구덩이에 빠지지 않게끔 노력해야죠. 밑천까지 잃으면 안 되니까.”하예진은 아직 젊으니 앞으로 8년, 10년을 더 분투해서 그녀만의 특급호텔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노동명을 밀고 가게 나선 하예진은 멈춰 서서 대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운 뒤 셔터를 내릴 준비 했다.“예진 씨, 제가 할게요.”노씨 가문의 경호원이 셔터를 내리려는 하예진의 모습을 보더니 재빨리 다가와 하예진을 도와 내려주었다.“고마워요.”“별말씀을요.”경호원은 셔터를 내린 후 노동명을 바라보았고 그의 품에 안긴 우빈을 한 번 보았다. 그러더니 노동명을 계속 하예진과 함께 있게 내버려 두어야 하는지, 집으로 모셔야 하는지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동명 씨, 늦었어요. 오늘 너무 피곤하셨을 텐데 먼저 들어가서 쉬세요. 제가 우빈이 데리고 집으로 가면 돼요.”하예진은 다가가서 허리를 굽혀 노동명의 품에 안겨 깊이 잠든 아들을 안아 들었다.깊은 잠에 빠진 우빈은 엄마에게 안겨도 깨지 않았고 여전히 엄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꿈나라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내가 너무 걱정돼서 그래. 내가 먼저 데려다줄게.”노동명은 여전히 시름이 안 놓였다.사람들이 하예진 모자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하예진 배후에 있는 큰 가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노동명은 겁도 없이 덤벼드
오늘 나머지 경호원이 일이 생겨서 휴가를 냈기에 경호원 한 명만 노동명을 따라다녔고 하예진은 경호원 한 분이 노동명을 부축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경호원은 거절하지 않았다.경호원과 하예진은 함께 노동명을 부축해 차에 오르게 했고 노동명이 차에 오르자 하예진이 안전벨트를 부드럽게 매주었다. 그리고 경호원은 바로 휠체어를 트렁크에 실었다.노동명은 하예진이 그에게 안전벨트를 매주면서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더니 하마터면 자신의 양손을 공제하지 못할 뻔했다. 그는 두 손으로 그녀를 안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제하고 있었다.요즘 들어 하예진이 점점 가족처럼 느껴졌기에 일시적인 충동으로 인해 여태까지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사실 배웅해 줄 필요 없어요. 멀지 않은걸요.”노동명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너와 우빈이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직접 보지 못하면 마음이 안 놓여서 그래.”아무리 거리가 가깝다고 한들 여전히 걱정되었다.하예진은 노동명과 잠시 눈을 마주친 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했고 노동명은 말이 내뱉어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서더니 노동명의 차 문을 닫아 주었다.노동명은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하예진에게 자신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전씨 할머니가 노동명에게 제안한 것처럼 그가 견지하기만 한다면 하예진은 분명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하예진이 노동명에 대한 태도는 예전과 완전히 달랐다.노동명이 하예진에게 고백한 뒤로 그녀는 노동명과 단독으로 지내는 공간을 될수록 피했다.하지만 지금, 하예진은 피하지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노동명과 함께 지냈고 남들이 뒤에서 뭐라고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예진은 정말로 변했다.전씨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듯 하예진이 실패한 결혼을 경험했기에 재혼에 관한 일은 더더욱 조심할 것이고 상대방이 아무리 좋은 남자라고 해도, 노동명이 특별히 일편단심인 남자라고 해도 너무 조급하게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하예진
하예진은 전태윤 부부가 그녀에게 선물한 별장을 완곡하게 거절했기에 그 별장은 지금까지 소유권의 명의를 변경하지 않았고 하예진도 그 별장에 들어가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하예진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예진이 아무 말이 없자 경호원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경호원은 하예진을 그녀의 집으로 데려다주었고 하예진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말을 건넸다.“예진 씨, 문을 잘 잠그고 주무세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네, 고마워요. 운전 조심하세요.”하예진은 경호원에게 안전에 주의하라고 당부했다.경호원은 자리를 떠났다. 하예진은 먼저 아들을 소파 위에 눕힌 후 서둘러 걸어 나와 문을 잠갔고 그제야 아들을 안아 들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아기 돼지처럼 깊이 자네. 아직 샤워도 안 했는데.”하예진은 아들의 작은 얼굴을 살짝 꼬집었고 깊이 자도록 깨우지 않았다.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따뜻한 물로 샤워시키려고 했다.“우빈아.”하예진은 허리를 숙여 아들의 작은 얼굴에 뽀뽀를 해주었다.“미안해. 엄마 따라 매일 늦게 집으로 돌아오게 해서.”우빈은 깊이 잠들었기에 엄마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고 따라서 대답도 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서둘러 일어나서 목욕하러 갔다.샤워하고 나오노 하예진은 핸드폰에 노동명이 보낸 많은 메시지를 보았다.노동명은 메시지로 하예진에게 하늘 리조트로 들어가 살라고 설득했다. 그곳은 보안 시스템 수준이 훨씬 높았고 노동명도 그곳에 별장이 하나 있었다. 소정남도 그곳에 별장 하나가 있다.전태윤이 가장 먼저 하늘 리조트에서 별장 하나를 샀다. 그 뒤로 노동명과 소정남도 그 리조트로 가서 각각 별장 한 채를 샀다. 세 사람은 특별히 친한 사이라 같은 리조트에서 살면서 편히 연락하면서 지내려고 했다.한밤중에 친구 집에 술 마시러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전태윤이 방금 하예정과 혼인신고를 했을 때 부부 사이가 틀어질 때마다 그들은 한밤중에 두 친구를 불러 나가서 술을 마시곤 했고 술에 취하면 강일구가 그들을 집으로 데
하씨 집안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하예정은 겨우 열 살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하예진이 친동생을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예진 자매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어 하예진은 하예정의 엄마이자 언니였다.하예정이 전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된 후 큰일이 생기지 않은 이상 하예진은 친동생 부부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했다.전태윤 부부도 그런 하예진을 보며 어쩔 수 없었다.누가 하예진을 설득해도 안 되는 일이었다.이경혜마저 그녀를 타이르기도 했다.“우리가 이곳에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 항상 아무 일도 없이 안전했어요. 오늘 밤에만 취객을 만났을 뿐이에요. 앞으로도 이렇게 늦게 집에 가지 않을 거예요. 오늘은 특수한 상황이니까.”“동생의 후원자가 되지 못할망정 어찌 동생의 발목을 잡을 수 있겠어요. 하늘 리조트에서 별장 한 채만 해도 100억 원 넘어요. 게다가 제부가 구매한 그 별장은 가장 큰 별장으로 아마도 200억 가까이 될걸요.”“이렇게 후한 선물을 받을 수 없어요.”하예진은 집 한 채에 2억 원 남짓 하는 집이라면 아들의 안전을 생각해서라도 뻔뻔하게 받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전태윤은 재력이 막강한 탓인지 그의 명의로 된 빌딩 중에서 가장 싼 집이 바로 발렌시아 아파트였다.전태윤은 발렌시아 아파트 중 한 채만 샀지만 나머지는 빌딩 하나를 통째로 사지 않는가 하면 별장 구역 전체를 모두 구매해 버리는 사람이다.하여 전태윤은 처형에게 하늘 리조트 중 가장 큰 별장으로 선물하려 했다.하지만 하예진의 성격으로는 그렇게 비싼 집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노동명은 계속해서 설득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마. 태윤의 집이 엄청나게 많거든. 또 예정 씨를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친누나처럼 생각하고 있을 거야. 태윤이는 단지 예정 씨와 함께 너에게 효도하고 싶은 마음뿐이야. 받아도 돼. 생각 많이 할 필요 없어.”“그리고 앞으로 너의 사업이 점점 커지면서 중요한 일들도 더 많아질 테니 밤늦게 집으로 갈 일도 많을 거 아니야. 예진 씨가 우빈이를 돌보아준다 해도 너
“동명 씨, 너무 늦었어요. 일찍 쉬세요.”“그래, 너도 얼른 쉬어. 난 할 일도 없어 좀 늦게 잘 거야. 늦게 일어나도 상관없으니까.”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고 통화를 끊었다.노동명은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경호원은 먼저 휠체어를 땅에 내려놓은 후 노동명을 천천히 부축하여 차에서 내리게 했다.노동명이 휠체어에 앉은 뒤에야 경호원은 다시 그를 밀어 집으로 들어갔다.이 시간에 노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잠들었다.노동명이 금방 집으로 들어올 때 경호원이 아직 불을 켜지 않았는데도 방 안의 불이 켜져 있었다. 윤미라가 켜놓은 것이다.윤미라가 위층에서 내려왔다.“사모님.”경호원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엄마,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도 안 주무셨어요?”윤미라는 걸어오면서 경호원에게 퇴근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고 아들이 앉은 휠체어를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네가 계속 돌아오지 않아서 안심할 수 없었어. 잠도 안 오고. 밖에 인기척을 주의하고 있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어. 그래서 베란다에서 내다보니 네 차가 들어오길래 얼른 내려와서 마중 나왔지.”“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어?”하예진의 새 가게가 오픈하자 윤미라도 다른 며느리를 데리고 가서 축하해 주었다.노씨 가족은 하예진을 예비 며느리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같은 가족의 일원이 가게를 오픈하면 마땅히 축하해 주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들은 식사를 마치고 잠시 머무르다가 이내 가게를 나섰다. 막 오픈한 날이라 해도 장사를 정상적으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하예진은 바삐 돌아쳤다.그들과 같은 귀부인들은 하예진의 일을 도울 수 없었기 때문에 하예진의 장사를 방해하지 않으려면 가게를 떠나는 방법밖에 없었다.“예진이가 가게 일을 마치고 예진의 집에 데려다주고 오느라 늦었어요.”노동명은 솔직히 대답했다.윤미라가 말을 이었다.“예진한테 너무 악착같이 장사하지 말고 밤 9시면 퇴근하라고 해. 사장님은 가게에서 문 닫는 순간까지 지킬 필요는 없어.”하예진도 점장님을 청해 직원들을 관리하게 했
하예진은 사장님으로 되였기에 옷차림도 많이 우아해 졌다.하예진은 매우 예쁜 여자였다. 예전에는 너무 뚱뚱하여 예쁜 얼굴이 가려졌던 것이다. 그 뒤로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덮여졌던 예쁜 얼굴도 드러나게 되었고 딴 사람으로 태어난 듯했다.얼굴도 환해져서 어디로 가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예쁜 여자가 워낙 시선을 끌기 쉬운 데다 하예진은 또 아들을 데리고 홀로 살고 있어 그녀가 이혼녀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 따라서 많은 남자도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악의 없는 사람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제가 예진이 보고 태윤이가 선물한 하늘 리조트의 별장으로 이사하라고 설득했어요. 저도 그 리조트에 별장이 있기에 예진이가 이사하기만 하면 저도 저의 별장으로 들어가 생활하려고요.”“앞으로 서로 보살피기도 편하고. 평소에 저도 예진이 곁에 있거나 경호원을 예진이뒤에 따라다니게 하려고요.”“예진의 고집을 꺾을 사람이 없을 거야.”예전에 윤미라가 하예진을 찾아 그녀를 관성에서 떠나게 하려고 했지만 하예진의 반박에 윤미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하예진은 원칙성이 매우 강한 여자였다.그녀는 실제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했다.“맞아요.”노동명도 한마디 보탰다.그런데 노동명은 하필이면 그 고집 센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윤미라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꺼냈다.“예진이 성격이 예진이 이모와 너무 비슷해. 예진이 이모가 그런 분이시거든. 그래서 하예진도 열다섯 살 되는 친동생을 데리고 X떡같은 고향을 떠나 홀로 예진이를 잘 키웠잖아. 동생이 얼마나 훌륭해.”하예정의 훌륭함은 하예정 자신의 노력도 있지만 친언니의 교육과도 관계를 뗄 수 없었다.하예진은 돈이 없어 자신이 무술, 피아노 등을 배우지 못했지만 친동생을 배우게 했다. 그녀들은 그녀들의 부모님 사망 보상금으로 겨우 대학을 졸업했다.하예정이 배우고 싶어 하는 수업도 아마 하예진이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배우게 했을 것이다.하예진은 교육을 매우 중시했다.그 당시 하예진도 아직 미성년자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도아영은 요즘도 이런 식으로 자식들의 혼사를 정하는 어르신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요즘은 연애와 결혼이 자유로운 시대인데 아직도 자식들의 혼사를 결정해 주는 집안이 있다고?’도아영은 곧바로 자기 집 안 어르신들을 떠올리더니 다시 묵묵히 조금 전의 의문을 거두어들였다.재벌 가문에서는 많은 혼사가 부모님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대부분 어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곤 한다.그들에게는 결혼의 자유가 많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익뿐이었다. 두 가문 사이에서 이루어진 혼인으로 인해 두 회사에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주느냐가 가장 관건이었다.“그럼 전이혁 씨 할머니께서 왜 저를 선택하셨어요? 저는 할머니를 본 적도 없는데.”도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녀는 전씨 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아마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도아영을 유심히 관찰하고 알아본 뒤에야 전이혁의 미래 아내로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전이혁에게 건네주며 도아영에게 구애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께서는 나이가 많으시지만 아직도 자주 돌아다니시니까. 우리가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말이죠. 다행히 할머니의 건강은 좋으시고 관리도 잘 되어서 겉으로 보기엔 예순 정도로 보이세요.“전이혁도 할머니가 어떻게 도아영을 선택하셨는지 모른다.도아영만 궁금한 게 아니라 고현과 여운초도 전씨 할머니께서 언제 그녀들을 눈여겨보셨는지 궁금해했었다.“그래서 저를 알게 되었고 저를 쫓아다녔던 거예요? 전이혁 씨가 저에게 한 행동이 애정 공세가 아니라고 하면 당신 스스로도 믿지 못하겠죠?”전이혁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인정해요. 제가 당신에게 구애했다는 것을.”전이혁은 도아영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든 면에서 그와 잘 어울렸으니까.하지만...“그런데 왜 한동안 사라지고 저를 무시했어요? 일부러 관심을 끌려는 작전이었던 거예요?”전이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전이혁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도망가려고 해도 너무 늦었다.그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자리에 앉아서 몸만 돌려 옆에 앉은 도아영을 돌아보았다. 전이혁의 깊고 검은 눈빛은 도아영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게 했다.이때 도아영은 몸을 굽혀 천천히 전이혁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전이혁은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도아영이 어떤 향수를 뿌리는지는 몰랐지만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너무 좋았다.“전이혁 씨.”도아영은 그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말해봐요, 듣고 있어요.”그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대답했다.“제가 한 가지만 물을게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저를 대하는 거예요? 저에게 잘해주는 게 저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예요? 저에게 애정 공세를 하면서 왜 또 저를 무시하는 거죠?”전이혁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한 가지 물음보다 더 많이 물어본 것 같은데.”잠시 침묵이 흐른 뒤로 전이혁이 말을 이었다.“저도 제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면 도아영 씨는 저를 나쁜 놈이라고 욕할 거죠?”그는 그녀에게 구애하고 싶었다.전이혁은 도아영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할머니의 눈썰미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없었다면 전이혁은 도아영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도아영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당당함, 대담무쌍함, 의협심, 기발한 성격, 고요할 때의 차분함과 활발할 때의 성격은 전이혁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던 것이다.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바로 그 ‘여우 같은 여자' 말이다. 도아영 같은 재벌가 따님이 아니라.도아영의 아름다운 눈이 반짝이며 전이혁이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할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전이혁을 내려다보았다.전이혁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순간 도아영의 동작과 표정이 마
“예정 언니, 벌써 다 드셨어요?”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우리가 좀 빨리 먹는 편이긴 하지. 평일엔 일이 바빠서 먹는 시간도 쪼개 써야 하다 보니 빨리 먹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도아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예정은 우빈의 손을 잡고 남편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로얄 스위트룸을 빠져나왔고 거기에 문을 닫아주는 센스까지 보였다.전태윤은 경호원들에게도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다.전이혁과 도아영은 이 모든 것이 하예정이 그들에게 특별히 남겨준 기회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제 로얄 스위트룸 안에는 전이혁과 도아영만 남았다.도아영은 와인잔을 들어 우아하게 음미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전이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역시 피할 수 없었군.'전이혁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도아영 씨,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도아영은 대답 대신 잔을 기울이며 그를 바라만 보았다.‘정말 잘생겼어...'그녀는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실제로 본 전태윤도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지만 지나치게 차가운 인상에, 인사할 때 잠깐 마주친 뒤로는 도아영을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오직 하예정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아내 바보'라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전태윤의 차가운 카리스마와 달리 전이혁은 훨씬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전태윤 앞에서 전이혁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단둘이 있을 때면 전이혁의 우수함이 빛을 발했다. 그는 도아영이 만난 남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였다.전이혁이 잘해줄 때면 도아영은 그에게 정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그녀를 소홀히 대할 때면 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그를 한 대 패주고 싶을 지경이다.‘내가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애완견이야?'마음 내키면 그녀와 잠시 놀아주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리는 그의 태도에 도아영은 서서히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전이혁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전이혁 씨, 왜 자리
하예정은 두 사람 사이의 암투를 모른 척하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좋은 술 두 병 시킵니다. 저는 임신 중이라 못 마셔요. 우리 배 속의 아기 건강 생각해서라도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하거든요. 태윤 씨도 술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에 이혁 도련님이 도아영 씨랑 같이 마실 수밖에 없네요. 도련님, 아영 씨를 잘 모셔야 해요. 저와 태윤 씨가 있으니 도련님이 취해도 괜찮아요. 저희가 책임질게요.”하예정은 도아영에게 윙크했다. 도아영은 슬쩍 OK라는 사인을 보내며 자신 있다는 듯 웃었다.하예정은 그제야 도아영의 주량이 꽤 괜찮음을 눈치채고 안심했다. 하예정은 도아영이 전이혁에게 꼬치꼬치 캐묻다가 술에 취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도아영이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니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술과 여러ㅓ 요리가 나오자 도아영은 직접 전이혁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자! 전이혁 씨, 건배하죠.”전이혁은 잔을 받지 않고 오히려 도아영의 잔을 가져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도아영 씨, 공복에는 술에 취하기 쉬워요. 이 술은 독해서 마실 땐 괜찮다가도 나중에 훅 가버릴 수 있어요. 먼저 요리들을 좀 드시고 또 국물도 한 그릇 드세요.”그 말과 함께 전이혁은 도아영에게 국물을 떠주었다.“국물부터 드셔보세요.”도아영은 평소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전이혁이 떠준 거라 예의상 한 수저 떠먹었다.“하 대표님, 이 국물이 정말 맛있네요. 저 원래 국물을 잘 안 마시는데 이 국물은 진짜 맛있어요.”“그럼 많이 드세요. 우리 집은 항상 식사 때 국물을 준비하는 게 습관이에요.”하예정은 우빈에게도 국물을 떠주며 물었다. 식습관은 바꾸게 하기 어려운 법이다.도아영은 관성의 사람이 아니라서 관성의 식습관과 달랐다.국물을 마시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국물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니 그 국물이 정말로 맛있었던 모양이다.“몇 살이에요? 동갑인 것 같은데.”“하 대표님이랑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 제 생일은 연말이라 하 대표님보다 몇 개월 어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