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잠시 침묵한 후 말했다.“난 서두르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예정이가 마음이 급해서... 평소에는 바쁜 일에 매달려 아이 생각을 잊으려고 해요.”그는 하예정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힘들어하는 것도 안타까웠다.때때로 전태윤은 자신이 하예정을 이 부담 속으로 끌어들인 것 같아 자책하기도 했다.그와 그의 가족들은 아이를 재촉하지 않았지만 전씨 가문의 사모님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하예정은 압박감에 짓눌려 있었다.예준성은 전태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원하실지 모르겠지만... 신의 할아버지께서 오시면 두 분 같이 진맥을 한번 받아보는 건 어때요?”전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부부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하지만 할아버지께 진맥을 받게 되면 오히려 하예정에게 또 다른 부담감을 줄까 봐 두려웠다.하예정은 최근에 자꾸 졸음을 느꼈다. 이는 너무 큰 부담감으로 인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태윤은 생각했다.예준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아니면 조금 더 기다렸다가 나중에 할아버지께 한번 보여드리고 싶을 때 연락해요.”다른 사람들에게는 신의를 만나기 어려운 일이지만 예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왜냐하면 예씨 가문의 사모님 중 한 명이 신의의 유일한 제자이기 때문이다.신의는 정겨울의 스승이자 양부로 그녀를 어릴 때 길에서 데려와 키운 분이다.전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말을 들었다.그러고 나서 그들은 사업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예지호와 예지연은 아직 아기였지만 유명한 부모님을 둔 덕에 아주 성대한 백일잔치를 치렀다.많은 손님들이 참석했으며 그들은 대부분 예진 그룹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었다.그래서 전태윤 부부처럼 많은 사람들이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몇 일 일찍 도착했다. 그 결과, 예진 리조트는 며칠 동안 굉장히 활기찬 분위기가 감돌았다.마침내 두 아이의 백일잔치 날이 되었다.하지만 잔치 당일, 하예정에게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하예정은 멍하니 서 있다가 말했다.“설마요? 음... 그러고 보니 연정 씨, 나... 이번 달에 생리가 아직 안 왔어요.”‘나 정말 임신한 건가?’“요즘 생리가 조금 불규칙해졌어요. 가끔 며칠씩 늦을 때도 있긴 한데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어요. 평소에는 조금 늦더라도 결국엔 오니까요.”“분명 임신한 거예요.”모연정은 웃으며 말했다.“어떤 사람들은 임신 초기부터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거든요.”“예정 씨, 정말 축하해요!”하예정도 웃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아직 임신인지 아니면 그냥 뭔가 잘못 먹은 건지 모르잖아요. 너무 빨리 축하해주지 마요.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내 경험상, 그리고 직감상 확신하는데 예정 씨는 분명 임신한 거예요. 겨울 씨가 의사니까 겨울 씨한테 진맥을 받아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겁니다.”곧 모연정은 하예정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그러면서 도우미에게 정겨울을 찾아오라고 지시했다.하예정은 모연정의 손에 이끌려 소파에 앉았고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괜찮은지 물었다.모연정은 웃으며 말했다.“예정 씨 임신한 것 같아요. 생리가 안 왔는데도 그동안 별생각이 없었대요. 참 대단한 거죠.”“정말요? 예정 씨, 축하해요!”아이 방에 모여 있던 다른 여성들도 이 소식을 듣고 하예정에게 축하를 전했다.하예정은 수줍게 대답했다.“아직 임신이 확실한 건 아니에요.”은서윤은 말했다.“아까 화장실로 달려간 거 토하러 간 거 맞죠? 생리가 안 왔다면서요. 게다가 토까지 했다면... 이건 임신 초기 증상일 가능성이 높아요.”“겨울 씨 불렀으니까 맥 짚어보면 곧 결과를 알 수 있을 거예요.”하예정은 웃었지만 속으로는 긴장하고 있었다.정말로 임신했는지 알 수 없었고 혹시나 기대만 하고 실망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그도 그럴 것이 하예정은 오랫동안 아이를 바라왔으니 말이다.시댁 식구들은 하예정에게 아이를 재촉한 적이 없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큰이
하예정은 말했다.“아직 확실한 건 아니에요. 아까 지연이를 안고 있을 때 지연이의 젖 냄새를 맡고 나서 속이 메스꺼워졌고 그래서 토했어요.”“근데 연정 씨랑 다른 분들이 말하길 이런 경우 대부분은 임신 초기 증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지금 겨울 씨가 와서 진맥을 봐주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겨울 씨가 오기도 전에 당신이 먼저 왔네요. 걱정하지 마요. 다른 이상은 없으니까.”비록 아직 임신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전태윤은 이미 얼굴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하예정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이분들은 모두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야. 이분들이 임신이라고 하면 임신이 맞을 거야.”“겨울 씨는 어디 있어요? 정겨울 씨 왔나요?”전태윤은 일어서서 물었다.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정겨울을 데려오고 싶었다.아니, 정확히는 모셔오고 싶었다. 꼭 신을 모시듯이 정겨울을 모셔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정겨울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모연정은 웃으며 말했다.“전 대표님께서 너무 빨리 뛰어오셔서 겨울 씨가 따라잡지 못했어요.”은서윤 장난스럽게 말했다.“예정 씨가 토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표님께서 화살처럼 달려오셨잖아요. 겨울 씨는 그걸 보고 놀라서 아마 조금 늦었을 겁니다.”얼굴이 붉어진 채로 하예정은 지금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정말로 임신한 걸까? 그럼 마음의 짐이 좀 덜어지긴 할 텐데...’임신하게 되면 그동안 하예정에게 무거운 부담감을 주었던 것들을 이제는 털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왔어요. 무슨 일인가요?”정겨울이 방에 들어오면서 물었다.그녀의 남편 예준일도 아들을 안고 뒤따라 들어왔다.그 작은 울보는 지금 자고 있었지만 예준일은 아들을 내려놓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아마도 초보 아빠라서 그런지 아들이 품에서 잠들 때마다 침대에 내려놓으려 해도 번번이 실패했다.아이가 침대에 닿기만 하면 금세 깨어나서 다시 울어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정겨울도 가끔 아들을 잘 내려놓을 때가 있었지만 남편인 예준일처럼 실
전태윤은 급한 마음에 말했다.“사모님, 얼른 겨울 씨한테 우리 예정이 진맥 좀 봐달라고 하세요. 저 지금 정말 너무 걱정돼요.”주변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지만 전태윤은 그만큼 진지하고 긴장된 상황이었다.모연정은 웃으며 정겨울에게 말했다.“겨울 씨, 예정 씨 진맥 좀 봐줘요. 아까 토한 게 너무 심했는데 아마도 입덧인 것 같아요.”하예정은 전태윤의 그 절박한 모습 때문에 얼굴이 붉어졌다.지금 이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명망 있는 집안의 며느리들이었다.정겨울이 하예정의 맥을 짚는 동안 방안은 조용해졌다.전태윤은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하예정도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무척 긴장된 상태였다.만약 이번이 단순한 착각이라면, 그녀는 크게 상처받을 것 같았다.잠시 후, 정겨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신 맞아요. 혹시 제 진맥이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되시면 병원에 가서 한번 확인해보세요.”이 말을 듣고 하예정은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집에 가면 병원에서 다시 한번 확인해볼게요.”전태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는 100% 겨울 씨를 믿어요. 예정이는 분명 임신한 걸 겁니다! 하하, 내가 아빠가 되는구나!”전태윤은 기쁨에 찬 웃음을 터뜨리며 다음 순간 하예정을 꼭 껴안았다.“예정아, 우리 이제 부모가 되는 거야!”그녀가 드디어 임신했다는 사실에 전태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지난 1년 동안 하예정은 엄청난 압박을 견뎌왔고 전태윤은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전태윤이 아내를 위로하려고 애썼지만 하예정은 내면 깊숙이 여전히 무거운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다른 문제는 전태윤이 도와줄 수 있었지만, 임신에 관해서는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더 안타까웠다.다행히도 이제 하예정이 임신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전태윤은 무척 기뻤다.하예정은 그의 품에 안긴 채 웃고 있었지만 웃음 속에서 눈물이 흘렀다.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그녀는 그동안 엄청난 압박감을 느껴왔다.그녀는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조용히 밖으로 나가 부부에게 공간을 내어주었다.전태윤은 품 안에 있는 하예정을 꼭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나도 정말 기쁘고 너무 설레.”“태윤 씨...”“응.”“나...”하예정은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올렸고 전태윤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그녀의 눈이 붉어진 것을 본 전태윤은 마음이 아파서 하예정의 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달래듯이 말했다.“울지 마. 네가 눈물을 흘리면 나도 마음이 아파. 무엇보다 임신 중이니까 감정을 너무 격하게 하지 마.”“알았어요. 그냥 너무 감격스러워서 그래요. 이 지난 1년 동 안, 나 정말 큰 부담감을 느꼈거든요. 특히 효진이가 결혼하고 나서 바로 임신했을 때... 난 더 초조해졌어요.”전태윤은 그녀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만 말해도 돼. 나도 다 알아. 미안해. 네가 이렇게 큰 부담감을 느낀 건 내 잘못이야.”결혼 후 반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배를 주목하기 시작했다.하예정이 임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태윤은 사람들에게 그들은 아직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그녀를 비난했다.사람들은 하예정이 부잣집에 시집갔어도 아이를 낳지 못하면 결국 전씨 가문에서 쫓겨날 거라고 수군댔다.전태윤은 이런 험담이 하예정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고를 했다.하지만 하예정은 이미 그런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사실 그녀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예정아, 이제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엄마가 되면 돼.”하예정은 전태윤의 말을 듣고 눈을 맞추며 잠시 바라보다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다음 다시 그의 품에 기대어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혔다.전태윤은 하예정은 꼭 끌어안고 있었고 부부는 서로를 의지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그때, 침대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지연이가 깼나 봐요.”하예정은 전태윤을 살짝 밀치고 자리에
예지연은 정말로 사랑스럽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이였다.모연정이 예지호를 안은 후, 하예정은 예훈을 품에 안았다.그때 정겨울과 예준일도 방에 들어왔다.정겨울은 하예정의 품에서 자기 아들을 받아들고는 바로 예준일에게 건네며 말했다.“어서 당신 아들 좀 달래봐요. 울음소리가 엄청 크고 또 너무 자주 울어서... 울기 시작하면 집 전체가 흔들릴 것 같아요.”예훈은 아마 엄마의 말에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내가 울음소리가 그렇게 강력한가?’곧 예준일은 자기 아들을 안고 달래기 시작했다.하지만 예훈은 배가 고팠다. 아무리 아빠가 달래도 소용이 없어서 결국 예훈은 엄마인 정겨울의 품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의 임신 소식은 집안 사람들에게만 알려졌고 외부에는 전해지지 않았다.전태윤은 그녀가 사람 많은 잔치에서 이리저리 부딪힐까 봐 걱정이 되어 마음이 급해졌다.그래서 하예정을 곧바로 관성으로 데려가기로 결심했다.하예정은 원래는 관성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전태윤의 설득에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전태윤은 예준성과 모연정에게 미안해하며 말했다.“준성 씨, 예정이 아직 임신 초기라 쉬어야 해서 먼저 관성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다시 만나죠. 관성에 오시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예준성은 사정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죠.”하예정은 아쉬워하며 말했다.“연정 씨, 시간 되면 아이들이랑 함께 관성으로 놀러 와요.”“꼭 갈게요. 대표님이랑 예정 씨 결혼식 날짜도 곧 오죠? 그때 우리 부부도 꼭 가서 축하해줄게요.”전태윤과 하예정의 결혼식 날짜는 곧 다가오고 있었지만 하예정의 임신으로 인해 결혼식을 앞당겨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웨딩드레스는 이미 주문해 놓았지만 그때는 하예정이 임신했을 때가 아니었으니 나중에 가면 드레스의 치수가 작을 수 있었다.그래서 전태윤은 서둘러 하예정을 관성으로 데려가 그녀가 충분히 쉴 수 있도록 하고 가족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자 했다.그러고 나서 이경혜와 하예진을
장소민이 듣다못해 한마디 쏘아붙였다.“당신 눈에는 아들 단점밖에 안 보이나 봐요.”전태윤은 전씨 집안 맏아들의 적손이며 시부모 밑에서 자랐다.그 당시 장소민도 처음으로 엄마 신분으로 되었기에 아기를 잘 돌볼 줄 몰랐다. 그때 시부모가 손자를 대신 돌봐주겠다고 했고 장소민도 흔쾌히 승낙했다.남편도 전씨 그룹을 막 이어받은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매우 바삐 돌아쳤고 장소민도 자주 남편 따라 식사 자리에 참석해야 했다.시부모가 장남을 직접 키우는 것도 장남을 전씨 가문의 후계자로 키우기 위함이었다.시부모 밑에서 자란 장남은 시부모님과 감정이 깊어졌기에 시부모님 말씀을 제일 잘 들었다.그 뒤로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장남을 돌볼 사람은 시어머니뿐이었다.하여 장남도 엄마인 장소민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다행히 시부모님은 매우 훌륭한 어른들이신지라 전태윤뿐만 아니라 다른 손자들도 잘 키우고 있었다.그 말인즉 장소민과 그녀의 동서들도 모두 자식을 시부모께 맡기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딸보다 귀엽지는 않은 건 사실이잖아.”장소민이 남편에게 원망했다.“딸을 낳아보셨어요? 딸이 귀여운 건 어떻게 알았대요? 당신 가문에서 수십 년 동안 아들밖에 낳지 못했잖아요. 제가 여기로 시집와서 아이를 세 명이나 낳으면서까지도 딸을 낳지 못했는걸요.”“얼마나 딸을 낳고 싶던지. 예쁜 치마도 그렇게 많이 샀는데 결국 다 남에게 선물 주고 말았잖아요.”전현림이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넷째를 낳으면 딸을 낳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걸.”“또 아들이면요?”전현림은 결국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전씨 집안은 이미 몇 대째 딸을 낳아본 적 없었다.“손녀를 바라는 수밖에.”장소민은 한숨을 쉬며 사진첩을 닫아버렸다.“언제 손자 손녀를 안아볼지 희망이 안 보이네요. 예정이가 집에 있다면 제가 이런 말이나 할 수 있겠어요? 하도 집에 없으니까 망정이지.”“태윤이가 결혼 적령기에 이르렀을 때 저는 태윤이가 결혼하기를 바랐는데
전현림 부부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전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예진 리조트에서 지낼 때 예정이가 토했거든요. 정 의사가 맥을 짚어주셨는데 임신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재빨리 예정이를 데리고 와서 쉬게 하려고요.”“정말? 잘됐어! 너무 잘됐어!”장소민은 너무 기쁜 나머지 남편을 부둥켜안고 웃으며 말했다.“여보, 저 할머니로 되었는걸요.”전현림도 무척 즐거웠다.그리고 장소민은 바로 남편을 밀치고 하예정을 부축해 내리려던 전태윤을 옆으로 밀더니 조심스럽게 하예정을 부축했다.하예정은 너무 쑥스러웠다.“어머니, 저 진짜 괜찮아요. 안 피곤해요. 하나도 안 피곤해요.”하예정은 단지 비행기에서부터 졸려서 자고 싶었을 뿐이었다.전태윤이 하예정이 피곤해한다고 기어코 하예정을 안고 비행기에서 내린 것이다.그 행동을 본 사람들이 하예정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놀랐다.지금 시어머니는 전태윤보다 더 조심스럽게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금방 임신했기에 태아가 불안정할 거야. 게다가 몇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먼 곳에서 왔으니 피곤할 거야. 어머니가 부축해줄게. 아니, 태윤아! 네가 안고 들어가.”장소민은 기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하예정을 부축하고 싶었지만 아들이 며느리를 안고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그러더니 곁으로 밀려났던 아들을 다시 잡아당기면서 아들에게 말했다.“태윤아, 네가 예정이를 안고 들어가.”전태윤은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몰랐다.어머니에게 밀려 멍하니 서 있던 전태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몰랐다.그러다가 반응도 채 하지 못한 채 다시 어머니에 의해 끌려왔다.가장 기뻐할 사람은 바로 전태윤일 것이다.하지만 장소민이 더 기뻐하는 표정이었다.10분 후.“예정아, 물 좀 마셔.”“예정아, 과일 먹어.”“예정아, 국물 좀 마셔.”“예정아...”궁지로 몰려 소파에 기대게 된 하예정은 시댁 어르신에게 둘러싸여 물 먹으라, 과일과 과자를 먹으라, 국물을 먹으라 하는 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잔소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도아영은 요즘도 이런 식으로 자식들의 혼사를 정하는 어르신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요즘은 연애와 결혼이 자유로운 시대인데 아직도 자식들의 혼사를 결정해 주는 집안이 있다고?’도아영은 곧바로 자기 집 안 어르신들을 떠올리더니 다시 묵묵히 조금 전의 의문을 거두어들였다.재벌 가문에서는 많은 혼사가 부모님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대부분 어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곤 한다.그들에게는 결혼의 자유가 많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익뿐이었다. 두 가문 사이에서 이루어진 혼인으로 인해 두 회사에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주느냐가 가장 관건이었다.“그럼 전이혁 씨 할머니께서 왜 저를 선택하셨어요? 저는 할머니를 본 적도 없는데.”도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녀는 전씨 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아마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도아영을 유심히 관찰하고 알아본 뒤에야 전이혁의 미래 아내로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전이혁에게 건네주며 도아영에게 구애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께서는 나이가 많으시지만 아직도 자주 돌아다니시니까. 우리가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말이죠. 다행히 할머니의 건강은 좋으시고 관리도 잘 되어서 겉으로 보기엔 예순 정도로 보이세요.“전이혁도 할머니가 어떻게 도아영을 선택하셨는지 모른다.도아영만 궁금한 게 아니라 고현과 여운초도 전씨 할머니께서 언제 그녀들을 눈여겨보셨는지 궁금해했었다.“그래서 저를 알게 되었고 저를 쫓아다녔던 거예요? 전이혁 씨가 저에게 한 행동이 애정 공세가 아니라고 하면 당신 스스로도 믿지 못하겠죠?”전이혁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인정해요. 제가 당신에게 구애했다는 것을.”전이혁은 도아영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든 면에서 그와 잘 어울렸으니까.하지만...“그런데 왜 한동안 사라지고 저를 무시했어요? 일부러 관심을 끌려는 작전이었던 거예요?”전이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전이혁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도망가려고 해도 너무 늦었다.그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자리에 앉아서 몸만 돌려 옆에 앉은 도아영을 돌아보았다. 전이혁의 깊고 검은 눈빛은 도아영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게 했다.이때 도아영은 몸을 굽혀 천천히 전이혁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전이혁은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도아영이 어떤 향수를 뿌리는지는 몰랐지만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너무 좋았다.“전이혁 씨.”도아영은 그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말해봐요, 듣고 있어요.”그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대답했다.“제가 한 가지만 물을게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저를 대하는 거예요? 저에게 잘해주는 게 저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예요? 저에게 애정 공세를 하면서 왜 또 저를 무시하는 거죠?”전이혁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한 가지 물음보다 더 많이 물어본 것 같은데.”잠시 침묵이 흐른 뒤로 전이혁이 말을 이었다.“저도 제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면 도아영 씨는 저를 나쁜 놈이라고 욕할 거죠?”그는 그녀에게 구애하고 싶었다.전이혁은 도아영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할머니의 눈썰미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없었다면 전이혁은 도아영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도아영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당당함, 대담무쌍함, 의협심, 기발한 성격, 고요할 때의 차분함과 활발할 때의 성격은 전이혁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던 것이다.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바로 그 ‘여우 같은 여자' 말이다. 도아영 같은 재벌가 따님이 아니라.도아영의 아름다운 눈이 반짝이며 전이혁이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할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전이혁을 내려다보았다.전이혁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순간 도아영의 동작과 표정이 마
“예정 언니, 벌써 다 드셨어요?”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우리가 좀 빨리 먹는 편이긴 하지. 평일엔 일이 바빠서 먹는 시간도 쪼개 써야 하다 보니 빨리 먹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도아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예정은 우빈의 손을 잡고 남편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로얄 스위트룸을 빠져나왔고 거기에 문을 닫아주는 센스까지 보였다.전태윤은 경호원들에게도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다.전이혁과 도아영은 이 모든 것이 하예정이 그들에게 특별히 남겨준 기회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제 로얄 스위트룸 안에는 전이혁과 도아영만 남았다.도아영은 와인잔을 들어 우아하게 음미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전이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역시 피할 수 없었군.'전이혁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도아영 씨,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도아영은 대답 대신 잔을 기울이며 그를 바라만 보았다.‘정말 잘생겼어...'그녀는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실제로 본 전태윤도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지만 지나치게 차가운 인상에, 인사할 때 잠깐 마주친 뒤로는 도아영을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오직 하예정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아내 바보'라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전태윤의 차가운 카리스마와 달리 전이혁은 훨씬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전태윤 앞에서 전이혁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단둘이 있을 때면 전이혁의 우수함이 빛을 발했다. 그는 도아영이 만난 남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였다.전이혁이 잘해줄 때면 도아영은 그에게 정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그녀를 소홀히 대할 때면 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그를 한 대 패주고 싶을 지경이다.‘내가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애완견이야?'마음 내키면 그녀와 잠시 놀아주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리는 그의 태도에 도아영은 서서히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전이혁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전이혁 씨, 왜 자리
하예정은 두 사람 사이의 암투를 모른 척하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좋은 술 두 병 시킵니다. 저는 임신 중이라 못 마셔요. 우리 배 속의 아기 건강 생각해서라도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하거든요. 태윤 씨도 술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에 이혁 도련님이 도아영 씨랑 같이 마실 수밖에 없네요. 도련님, 아영 씨를 잘 모셔야 해요. 저와 태윤 씨가 있으니 도련님이 취해도 괜찮아요. 저희가 책임질게요.”하예정은 도아영에게 윙크했다. 도아영은 슬쩍 OK라는 사인을 보내며 자신 있다는 듯 웃었다.하예정은 그제야 도아영의 주량이 꽤 괜찮음을 눈치채고 안심했다. 하예정은 도아영이 전이혁에게 꼬치꼬치 캐묻다가 술에 취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도아영이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니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술과 여러ㅓ 요리가 나오자 도아영은 직접 전이혁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자! 전이혁 씨, 건배하죠.”전이혁은 잔을 받지 않고 오히려 도아영의 잔을 가져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도아영 씨, 공복에는 술에 취하기 쉬워요. 이 술은 독해서 마실 땐 괜찮다가도 나중에 훅 가버릴 수 있어요. 먼저 요리들을 좀 드시고 또 국물도 한 그릇 드세요.”그 말과 함께 전이혁은 도아영에게 국물을 떠주었다.“국물부터 드셔보세요.”도아영은 평소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전이혁이 떠준 거라 예의상 한 수저 떠먹었다.“하 대표님, 이 국물이 정말 맛있네요. 저 원래 국물을 잘 안 마시는데 이 국물은 진짜 맛있어요.”“그럼 많이 드세요. 우리 집은 항상 식사 때 국물을 준비하는 게 습관이에요.”하예정은 우빈에게도 국물을 떠주며 물었다. 식습관은 바꾸게 하기 어려운 법이다.도아영은 관성의 사람이 아니라서 관성의 식습관과 달랐다.국물을 마시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국물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니 그 국물이 정말로 맛있었던 모양이다.“몇 살이에요? 동갑인 것 같은데.”“하 대표님이랑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 제 생일은 연말이라 하 대표님보다 몇 개월 어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