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언니를 차에 태워 당부했다.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언니가 너한테 당부해야 할 것 같은데? 너는 운전을 너무 빨리해서 전태윤의 말대로 운전기사를 쓰는 게 좋을 것 같아.”하예진은 여동생보다 나이가 몇 살 많아서 성숙하고 신중하게 운전하지만 하예정은 가끔 속도를 즐긴다. 그녀는 질주하는 쾌감을 좋아한다.“핸들이 내 손에 있는 게 좋아서 그래.”하예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두 자매는 유치원에서 헤어진 후 각자의 가게로 돌아갔다.서점 문은 이미 열려 있었고, 심효진은 먼지털이를 들고 책장을 청소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이미 학교로 돌아갔기 때문에 가게는 조용했다.심효진이 소씨 가문의 경호원을 돌려보냈다. 하루 종일 가게에 있기 때문에 또 학생들이 놀라까 봐 두 명의 경호원이 문 앞에 있는 게 필요 없었다.하예정은 주차하고 차 열쇠를 들고 효진의 이름을 부르며 서점으로 들어갔다.또 효진이 좋아하는 과일 몇 가지를 사서 큰 가방 몇 개를 들고 서점에 들어갔다.심효진이 나와서 예정이가 과일 몇 봉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 두 봉지를 받으려고 하자, 하예정은 급히 막으며 말했다.“들지 마, 꽤 무거워. 내가 힘이 더 세니까 내가 들게.”하예정은 권투와 발차기 기술을 익혀서 힘이 훨씬 세다.“그저 과일 두 봉지일 뿐인데 나도 들 수 있어. 배도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다들 나를 유리 인형처럼 여기니까, 내가 뭘 하면 금방 깨질 것처럼 말이야.”심효진이 말했다.하예정은 그래도 심효진에게 과일을 들지 못하게 하고 직접 부엌으로 가져갔다. 과일을 몇가지 조금씩 꺼내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었다.과일을 씻으면서 하예정은 효진에게 말했다.“날씨가 더우니 과일은 냉장고에 넣고, 먹고 싶으면 나한테 말해. 임산부는 차가운 음식을 적게 먹어야 하니까 냉장고에서 미리 꺼내서 덜 차가워졌을 때 먹어야 해.”“예정아, 너 지금 나의 집사가 된 것 같아.”심효진은 포도 두 알을 먹으며 말했다.“집에서는 소정남이 돌보고 가게에서는 네
심효진은 화가 나서 말했다.“예정아,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쓸 필요 없어. 전태윤과 그의 가족들이 너를 재촉하지 않는 한 괜찮아. 게다가 아직 임신도 안 했는데 다 네 탓으로 돌릴 수는 없어. 전태윤의 문제일 수도 있잖아?”“전에 네가 검사받겠다고 했을 때 전태윤이 거절했잖아.”심효진은 친구 부부가 모두 건강하다고 믿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친구를 알을 못 낳는 암탉이라고 자꾸 말하니까 화가 났다.왜 전태윤의 문제일 가능성은 말하지 않을까?너무 불공평했다.부부가 오랫동안 임신하지 않으면 모두 여자 탓으로 돌리는데 왜 그럴까?“전에는 신경 썼지만, 지금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아마도 많이 들어서 무감각해진 것 같아.”하예정은 정말로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친구가 대신 억울해하는 말을 하다 보니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효진아, 전태윤이 정말 건강해서 이런 말 들으면 안 돼. 그의 문제라고 말하면 내가 곤란해져.”심효진이 말했다.“너 앞에서만 하는 말이야. 전태윤이 너를 탓하지 않는 한 나는 절대 그 앞에서 말하지 않을게.”자기의 친구를 의심하지 않는 한, 심효진은 전태윤에게 관대할 것이다.“너 예진 리조트에 며칠 머물면서 모연정의 행운을 좀 받았으니까, 곧 임신할지도 몰라. 아무튼 걱정하지 마. 네가 문제없을 거야.”“와서 과일 먹어. 그렇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행복하게 태교하는 거야. 나는 네 아이의 의모로 충분해.”하예정은 씻은 과일을 들고나와서 계산대에 올려놓고 친구를 불렀다.“전씨 할머니 아직 안 돌아오셨어?”심효진은 과일을 먹으면서 말했다.“예지연을 두고 올 수 없어서 좀 더 머무르고 싶어하시지.”심효진은 웃으며 말했다.“그럴 줄 알았어. 전씨 할머니는 젊었을 때 딸을 원했고 할머니가 되어서는 손녀를 원했어. 지금은 증손녀를 바라니까 모연정의 딸을 보면서 데려와 키우고 싶어 하셨을 거야.”“할머니는 예지연을 정말 좋아해. 예지연도 아주 착해서 잘 울지도 않아. 반면 오빠 예지호
“다른 사람들이 그러더라. 도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배달을 한 번 했더니 그 남자를 스폰하여 값비싼 정장과 넥타이를 사주고, 보디가드 몇 명을 붙여주며 고급차도 제공했대.”“아마도 그 남자를 두 번째 전태윤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 전태윤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정말 노골적이야.”사람들은 도차연이 스폰하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다들 전태윤이라고 생각할 거야.하예정은 잠시 침묵한 후 말했다.“얼굴이 전태윤과 닮았다고 해도 전태윤은 아니야. 전태윤이 아니라면 그녀가 누구를 스폰하든 그녀의 자유야.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사람들은 그녀의 SNS에 자주 올라오는 커플 사진이 전태윤과 찍은 것으로 의심할 거야. 매번 올리는 사진에서 그 남자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 것은 분명히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거야.”“그녀가 전태윤과 함께 있는 것처럼 보여서 너와 전태윤의 감정을 깨뜨리고 의심을 새기려는 거야.”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나는 내 남편을 믿어. 도차연은 전태윤을 전혀 몰라.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인데 전태윤의 외모에 홀딱 반한 거야. 그런 식으로 우리 부부의 감정을 깨뜨리려고 하다니, 너무 순진해.”“내가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지 않는 한, 전태윤을 믿을 거야. 물론 전태윤이 정말로 나를 배신한다면 나는 그와 그의 새 애인을 성사할 거야.”심효진이 말했다.“맞아. 나도 전태윤을 믿어. 전태윤이 너를 사랑하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잖아. 그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아. 만약 미녀를 보고 마음이 흔들린다면 너와 결혼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는 이미 수많은 여자를 만났을 거야.”하예정은 과일을 먹으며 친구에게 말했다.“효진아, 내가 전태윤과 싸우는 척해서 도차연의 음모를 만족시켜 줘야 할까? 그녀가 우리 관계를 깨뜨리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게 해서 그녀의 다음 행동을 지켜볼까?”심효진은 웃으며 말했다.“나는 너를 응원하고 싶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니 그렇게 할 수 없어. 그건 불장난이야. 전태윤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야. 전태윤을
심효진이 낮게 웃었다.친구가 전태윤의 마음을 꽉 잡은 동시에 전태윤도 예정을 꽉 잡고 있었다.이것은 부부 사이의 깊은 감정 때문이다. 감정이 없다면 서로의 마음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하예정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서 전태윤의 전화를 받았다.“여보.”하예정은 일부러 애교 섞인 목소리로 전태윤을 불렀다.전화 저편의 전태윤은 손이 떨려 휴대폰이 거의 떨어질 뻔했다.그는 자신이 전화를 잘못 건 줄 알고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내어 아내에게 전화를 건 것이 맞는지 확인한 후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대고 웃으며 하예정에게 물었다.“무슨 양심에 찔리는 일이라도 했어? 내가 알까 봐 두려워? 아니면 내 뒷담화라도 했어?”“아니. 그냥 당신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왜? 내가 그렇게 부르면 당신은 뼈가 녹아내리지 않아? 부드럽지 않아? 듣기 싫어?”전태윤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전화를 잘못 건 줄 알고 깜짝 놀랐어. 분명히 내 뒷담화를 하다가 내 전화에 걸린 거야. 그래서 양심에 찔려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나를 부른 거지? 아니면 너는 나를 전태윤이라고 부르는 게 습관이잖아. 성까지 붙여서 말이야.”“아니야, 진짜 아니야. 여보.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했어?”양심에 찔린 하예정은 서둘러 화제를 돌리며 전태윤의 전화 목적을 물었다.“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안 돼? 너 지금 서점에 있지?”“응. 방금 도착했어.”전태윤은 다시 심효진이 가게에 있는지 물었고 답을 들은 후 본론으로 들어가 하예정에게 말했다.“방금 호영이가 전화로 나한테 알려준 것이 있어. 원래 너에게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너를 피해 갈 수 없어서 결국 말하게 되었어. 하지만 넌 관여할 필요 없어. 큰이모에게 맡기면 돼.”“큰이모가 처리해야 할 일이라니?”하예정은 궁금해서 물었다.전태윤은 이씨 가문 일을 하예정에게 말했다.하예정은 듣고 나서 오랫동안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잠시 후에 큰이모를 찾아가서 이 일을 얘기할게. 큰이모는 그때 나이가 있었으니 어느 정도 기억할 거
심효진은 하예정이 큰이모를 잘못 찾았다고 착각했다.“우리 엄마와 큰이모는 친자매야. 지금 호영이가 강성에서 딸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큰 가문을 알게 됐어. 그 가문의 전임 가주가 여동생에게 해를 입어 시댁 식구들까지도 비명횡사했는데, 겉으로는 사고사로 알려져 있어.”“그 가주에게 두 딸이 있었어. 그런데 두 딸이 수십 년 전 실종되었고 생사는 불명확해. 그 가문은 이씨 성을 가졌고 우리 엄마의 원래 성씨도 이씨였어. 그래서 전태윤은 우리 엄마가 그 가문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어.”심효진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서 말했다.“대박. 정말 복잡한 일이었구나.”친구의 엄마는 참 불쌍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만약 정말로 이씨 가문의 사람이라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뜻이지만, 그 호화로운 삶을 누릴 운이 없어 어린 나이에 온 가족을 잃었다는 것이다.친자매와 함께 고아원에 들어가서 나중에 입양되었으나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하고, 여러 양부모에게 수차례 전전하다가 7~8살에 홍씨 가문에 의해 거두어 자랐다.이후 하씨 가문에 시집가서 두 딸을 낳았지만 편애하는 시부모를 만나게 되었다. 다행히 남편이 그녀에게 매우 잘해줬고 딸들도 효도해주었다. 이런 작은 행복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도 일종의 행복이었다.그런데 다시 불운이 닥쳐 부부가 교통사고로 모두 사망하고, 배상금도 시댁의 양모 가족에게 대부분 빼앗기고 말았다.친구 엄마의 불운은 두 딸까지 고생시키며 십여 년을 이어졌다.하예정 역시 엄마의 운명이 이렇게나 복잡할 줄은 몰랐다.하예정은 핸드폰을 집어들고 친구에게 말했다.“효진아, 가게 좀 봐줘. 나 지금 큰이모 집에 가야 돼.”“그래. 천천히 운전해. 사실이든 아니든 천천히 알아보고 조사하면 돼. 전태윤도 소정남한테 도움을 청할 거야.”“사실이라 해도 전태윤의 말대로 이 일은 큰이모에게 맡기는 게 좋아. 큰이모가 본인이 겪은 일을 잘 해결할 수 있을 거야.”성씨 가문 사모님의 젊었을 적 이야기는 심효진도 여러 번 들었다.만약 성씨 가문
하예정은 이해심 있게 웃으며 말했다. “효진이도 그렇게 말했어요.”“소현 언니, 큰이모 집에 계세요?”하예정은 선물을 들고 성소현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우리 엄마 집에 있어.”성소현이 대답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엄마가 요즘 좀 조용해지셨어. 그래도 내가 준하랑 사귀는 걸 아직 잘 받아들이지 않으셔. 예정아, 기회가 있을 때 우리 엄마 앞에서 준하에 대해 좋은 말 좀 많이 해줘.”“우리가 아무리 말해봤자 우리 엄마는 듣지 않을 거야. 너랑 예진 언니가 말하는 건 엄마가 좀 들어주실 거야.”하예정은 흔쾌히 응답하고 이어서 물었다.“큰이모가 조용해지셨다고요? 내가 모르는 일이 생긴 거예요?”“이따가 얘기해줄게. 너한테만 말할게. 비밀 지켜줘야 해. 효진한테도 말하지 마. 걔가 알면 난리 날 거야.”선효진은 지금 소지훈의 동서인데 만약 소지훈이 요즘 계속 몰래 소현에게 선물을 보내는 걸 알면 선효진은 틀림없이 소정남에게 말할 거고, 소정남은 그의 큰아버지에게 말할 것이다. 그러면 소씨 가문 전체가 알게 될 것이다.소씨 가문의 가주는 지금 아들을 구할 수 있는 여자를 찾는 데 가장 열광인데 만약 소지훈의 행동을 알게 되면, 어쩌면 바로 혼담을 꺼내러 올지도 모른다.성씨 가문 사모님은 딸을 광성 본지 남자와 결혼시키고 싶어 하지만 소지훈 같은 가문은 시집보내고 싶어하지 않는다.주로 소지훈이 성소현을 볼때 조금의 애정도 없고 아주 평온하다.소지훈이 그렇게 하는 것은 틀림없이 숨겨진 목적이 있다.소지훈과 비교되면서 성씨 가문 사모님은 준하의 장점을 보게 되었고 그래서 요즘 조용해졌으며 준하가 방문했을 때 태도가 조금 좋아졌다.성소현의 말을 들은 하예정은 자신이 여행 중일 때 두 친구가 싸웠을까 봐 걱정되어 물었다.“효진이 알면 안 돼요? 둘이 싸웠어요?”“아니, 안 싸웠어. 결혼 문제야. 들어가서 말할게. 엄마가 들을까 봐.”성소현은 주제를 바꾸었다.하예정의 호기심은 성소현에 의해 자극되었지만, 성소현이 말하고 싶어 하지
우빈은 하예진을 닮았고 하예진은 그녀의 친엄마를 닮았다. 성씨 가문 사모님은 큰조카딸과 그녀의 아들을 보면서 항상 여동생을 보는 것 같았다.“기뻐서 눈물도 없이 일찍 일어나서 유치원 복장을 갈아입고, 스스로 작은 책가방을 들고 즐겁게 유치원에 갔어요. 오히려 저와 제 언니가 익숙하지 않았어요.”아이들이 첫날 유치원에 가면 아이들이 더 빨리 적응하고 부모가 오히려 익숙하지 않아 유치원에 있는 아이들을 자꾸 생각하고 하교 시간이 빨리 오기를 바랐다.성씨 가문 사모님이 웃으며 말했다.“첫날 유치원은 신기해서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루 종일 유치원에 있어야 한다는 걸 몰라. 많은 아이들이 이틀, 사흘 후에야 울고불고하며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해.”성씨 가문 사모님은 자신의 딸을 보며 딸이 어렸을 때의 창피한 일을 이야기했다.“소현이 어렸을 때 유치원에 갔을 때도 그랬어. 첫날, 이튿날은 즐겁게 갔는데 셋째 날부터는 일어나지 않으려고 했어. 일어나라고 하면 자고 싶다고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했어.”“일주일 후에는 울고불고하는 소현을 차에 태워 유치원에 보내야 했어. 유치원에 도착해서도 몇 명의 선생님이 울고 있는 소현을 붙잡아 교실로 데려갔지.”성소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엄마, 정말 나 맞아? 기억이 잘 안 나. 내 기억으로는 나는 정말 착한 아이였는데.”유치원에 가려면 부모가 자신을 차에 태우고 내렸다고 상상하니 성소현은 믿을 수가 없었다.절대 자신일 리가 없었다!둘째 오빠겠지. 둘째 오빠가 가능하지. 이렇게 귀여운 여자아이가 그런 창피한 일을 했을 리가 없다.“엄마의 기억력 좋거든. 바로 너야. 너희 아버지와 오빠들이 너를 너무 귀여워해서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하면 바로 퇴학시킬 생각을 했었어. 엄마가 아니었으면 너는 아마 유치원 생활을 경험하지 못했을 거야.”“엄마가 너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고 고집하자 너희 아버지와 오빠들이 할 수 없이 매일 아침 억지로 너를 차에 태웠지. 아버지가 너를 안고 오빠 둘이 너의 다리를 각각 한 쪽씩 잡아서
“강성의 이씨 가문?”성씨 가문 사모님은 멍하니 말했다.“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 가문과는 교류가 없어. 왜?”“큰이모,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아요. 강성의 이씨 가문은 다른 가문과 달라요. 그 가문은 딸을 존중하고, 가주는 항상 딸에게 물려줘요.”성씨 가문 사모님은 하예정을 바라보며 물었다.“예정아, 네가 보기엔 이모가 이씨 가문과 관련이 있고 이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건가?"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전태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이 일을 저에게 말해줬어요. 그래서 제가 이모에게 물어보러 온 거예요.”“큰이모, 집이 어디였는지 기억하세요?”성씨 가문 사모님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회상에 잠겼다.겨우 8살이였을 때 여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보내졌다. 비록 어느 정도 철이 있긴 했지만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많은 일을 알지 못했다.부모님과 가족이 모두 사라진 후, 자신과 여동생이 고아가 되었다는 것만 알았다. 한 가정부가 그들을 집에서 데리고 나와 여러 곳을 돌아다닌 후, 마침내 관성에 있는 고아원에 들어갔다.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기억력이 좋았어도 자신의 집이 어디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어릴 때 집이 잘 살았고 사람들이 그녀를 아가씨라고 불렀다는 것만 기억했다.엄마는 매우 바빴고 주로 아빠가 곁에 있었다.부모님은 그들을 매우 사랑해 주셨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그들이 여자아이들이라는 이유로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아이들이라서 더 좋다고 생각하셨다.어느 날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님,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과 작은고모 등 가족이 외출하고 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어른들이 그들에게 부모님과 가족이 모두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알려주었다.그 이후로는 성씨 가문 사모님과 여동생만 남게 되었다.여동생은 나이가 너무 어려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도 사실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부모님과 가족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만 알았다.그 후, 그들은 그 집을 떠나 계속 차를 타고 걷고, 차
지훈은 그저 그들에게 손주를 안겨주는 도구로 몰락할지도 모른다.“고구마가 이렇게나 많아요? 그럼 군고구마 만들어 먹어요. 밖에서 사면 한 개에 삼천 원 정도 하잖아요, 너무 비싸요.”윤하는 역시나 고구마를 보고 기뻐했다.윤하는 차 문이 열려있는 쪽으로 걸어가서 안을 들여다보고는 혀를 내둘렀다.”이게 전부 다 고구마예요?”고구마인지 곤약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도 물건들을 나르기 시작했다.곧 혁진이 도와주러 나왔다.그렇게 세 젊은이는 몇 번을 왕복해서 겨우 차 안에 가득했던 농산품들을 거실로 옮겨갔다. 값비싼 삼과 제비집도 그중 어느 안에 들어있었다.지훈은 부모님이 정말로 농산품만 갖고 온 줄 알았다.소씨 집안에서 가지고 온 선물들을 윤하 어머니께서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방문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었다.지훈이 부모님이 방문한 탓에 윤하와 혁진은 도장으로 가지 않고 집에서 접대를 도왔다. 소씨 가주 내외가 아침을 못 드신 걸 알고 윤하 어머니는 윤하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가 아침 준비를 했다.윤하는 그 틈을 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아버지랑 큰오빠는 이렇게 일찍 도장으로 나갔어요? 두 사람한테 전화했었는데 둘 다 안 받던데요.”윤하 어머니는 밖을 한번 힐끗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아버지랑 혁주가 관성에 갔어. 지훈이 집안에 대해 좀 알아보려고. 근데 지훈이 부모님이 여기로 오실 줄 누가 알았겠니?”“저 아직도 고민 중인데 둘이서 벌써 관성에 갔다고요?”“그러니까 네가 고민이 끝나기 전에 미리 알아보는거지. 네가 시집살이 안 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시름 놓고 너희 둘을 미뤄줄 거 아니야.”윤하 어머니는 계속해서 말했다. “지훈이 부모님을 보니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 두 분이 너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소씨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처음 집에 인사 온다고 농산품들을 가지고 온 것 봐. 다 우리를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 우리한테 맞춰주려고 한다는 것은 그만큼 너를 중요시한다는 거야. 그
사실 지훈도 부모님 몰래 일을 꾸몄으나 두 분이 보통 눈치가 빠른 사람이 아니라서 지훈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을 했다.집 문 앞에서 지켜보던 윤하 어머니는 딸과 함께 들어오는 두 사람의 얼굴이 지훈이랑 아주 비슷한 걸 보고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그러고는 얼른 문을 활짝 열었다.지훈 어머니는 윤하 어머니를 보자마자 하마터면 사돈이라고 부를뻔했지만 너무 이른 감이 있어 당황하실까 봐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되려 삼켰다.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부모님이 오실 줄은 생각 못 했다.아들과 남편이 방금전에 관성으로 출발했는데 두 분이 집에 찾아오시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관성에서 두 사람에 대해 알아볼 때 마주치거나 들킬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정씨 집안 식구들은 지훈이 마음에 들었다. 지훈이 집안 사람들까지 인품이 좋으신 분이라면 멀기는 멀어도 윤하를 소씨 집안으로 시집 보낼 의향이 있었다.다만 걸리는 점이 있다면 바로 지훈의 질병이었다. 어젯밤, 두 형제는 지훈에게 이게 관해 물어보지 않았고 윤하도 가족들한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윤하가 지훈을 대하는 태도에서 아마 큰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윤하 어머니는 짐작했다.전에 질병이 있었다가 이제는 다 완치됐을 가능성도 있었다.두 집안 어르신이 만나고 나서 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부모님 두 분 다 성격이 좋으시고 친근하신 걸 느꼈다.사돈 될 분들한테 부담이 될까 봐 일부러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왔다. 행여나 너무 부유해 보여 정씨 집안에서 윤하를 시집 안 보내겠다고 하면 아들이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지훈의 부모님은 정씨 집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두 가문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엄밀히 말하면 오히려 정씨 집안이 손해 보는 셈이었다. 지훈은 이제 중년이 다 된 아저씨이고 윤하는 아직 꽃다운 어린 아가씨이기 때문이다.지훈의 부모님은 소씨 집안 가주라는 기세 없이 자세를 낮추어 얘기했다.윤하 어머니와 혁진은 두 분을 대접하고 있고 윤하는 지훈을 도와 짐 나르러 갔
지훈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윤하 씨는 언제든지 예뻐요. 긴장하지 말아요, 저희 부모님 그렇게 어려운 분들 아니세요.”“긴장 안 했거든요. 처음 뵈는 자리니까 잘 꾸미지 않더라도 예의는 갖춰야 하니까요. 제가 문 열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하는 지훈보다 먼저 뛰어가 문을 열었다.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문 앞에 서 있었다.윤하가 문을 열자 차에 앉아 계시던 분이 창문을 내리고 바로 차에서 내렸다.중년 여성분이셨는데 지훈과 많이 닮아서 누가 봐도 소지훈 어머니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윤하는 내심 지훈의 어머니의 미모에 감탄하고 있었다. 관리를 아주 잘하셔서 겉보기에는 어머니가 아니라 누나같이 보일 정도였다.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으면 전혀 모자같이 보이지 않았다.지훈 어머니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걸어오며 물었다. “아가씨가 윤하 씨구나. 사진 본 적이 있어요. 나는 소지훈 엄마 되는 사람이에요.”“어머님, 안녕하세요.”윤하는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지훈도 윤하를 따라 인사 한마디 건넸다.지훈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윤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훑어보고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고 아들이랑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훈 어머니는 첫눈에 바로 윤하가 마음에 들었다.자기 아들을 구해준 유일한 여자애라고 생각해서 사진을 볼 때부터 이미 마음에 들었고 흡족해하셨다.지훈이 아버지도 차에서 내렸다.“윤하 씨, 안녕하세요, 저는 지훈이 애비되는 사람입니다.”지훈이 아버지는 평소에는 근엄하고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말하시지만 그 순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윤하는 아버님께도 인사를 건네고 두 분을 집안으로 모셨다. “아버님, 어머님, 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요, 밖이 추워요.”“좋아요.”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지훈의 아버지는 차 키를 아들에게 던져주고는 말했다.” 차 안에 있는 물건들 집으로 옮겨와.”“두 분 편히 오시면 돼요, 뭘 들고 오시지 마
지훈의 아버지는 시계를 보시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일찍 오긴 한 것 같아. 여름이면 이쯤 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일어났을 텐데. 차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노크하러 갈까?”지훈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먼저 아들한테 전화를 걸어 일어나라고 해야겠어요.”그는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윤하와 입술이 닿는 그 순간, 고막을 찌르는 전화벨 소리가 울려 지훈은 단꿈에서 깨어났다. 지훈은 키스의 여운에 입술을 문지르다 정신이 번쩍 들어 그제야 자신이 꿈꾸었음을 알았다. 윤하는 지훈의 고백을 외면하지 않았지만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눈치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달콤한 꿈이 산산조각 나자 지훈은 순간 화가 났다.핸드폰을 집어 든 지훈은 발신인을 확인하지 않고 쌀쌀한 목소리로 물었다.“누구세요? 왜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거세요? 큰 일이 아니라면……”“아니면 어쩔 건데? 내가 누구냐고? 네 엄마야, 나 지금 윤하네 집 앞이야. 빨리 나와 문 열어. 아니면 내가 들어가서 혼쭐을 내줄 거니까.”지훈도 한 성깔 하는데 지훈의 어머니는 그보다도 한 수 위였다. 말 몇 마디로 바로 지훈을 수그러들게 했다.지훈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놀라서 물었다. “뭐라고요? 지금 집 앞이라고요? 아버지도 같이 있어요?”두 분이 오신다고는 했지만 진짜로 오실 줄 몰랐고 또 이렇게 일찍 올지도 몰랐다.“아버지도 옆에 계셔. 대문이 아직 안 열려있는 것을 보아하니 다들 아직 일어나지 않았나 보지? 아들, 우리가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야?”지훈은 침대에서 굴러 내려오며 대답했다. “당연한 말씀을, 이 추운 날씨에 이렇게 일찍 오신 거예요? 아버지가 오신다고 하시더니 진짜로 오실 줄은 몰랐어요. 아직 이르다고 말했잖아요, 윤하 씨가 엄마아빠를 만나면 부담스러워할 거예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제가 내려가서 문 열어줄게요.”입으로는 툴툴거렸지만 정작 부모님들이 밖에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지훈은 엄마에게 당부 몇 마디 하고
그러고는 윤하한테로 눈길을 돌렸다. 그대로인 동생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는 두 사람은 아무리 봐도 커플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지훈은 도대체 무슨 질병이 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윤하 어머니는 과일을 꺼내오다 두 사람을 발견했다.“마침 돌아왔네. 얼른 와서 과일 먹어.”“윤하 씨가 저한테 옷을 사줬어요.”지훈은 싱글벌글하며 두 형님 옆으로 가 앉더니 윤하가 선물해 준 옷을 자랑했다.윤하는 그런 지훈을 보고 얼굴이 빨개져 자리에 앉지 않고 꽃다발을 손에 든 채 곧장 위층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엄마, 오빠들, 나 먼저 올라가 쉴게.”혁주와 혁진은 옷자랑에 바쁜 지훈에게 맞장구를 쳐줬다. 윤하가 안목이 좋다, 옷이 멋지다, 두께감이 있어 따뜻하겠다 등등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그러면서 또 이십몇 년간 같이 살면서 오빠들은 옷 잘 사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하여튼, 지훈은 옷 몇 벌에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고 연애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주위 친구들이 늘 자랑하던 얼마 안 되는 선물이라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받으면 엄청 행복하다던 그 감정도 알게 되었다.윤하의 두 오빠는 결국 지훈이 무슨 질병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혁주는 내일 관성으로 가는 티켓을 이미 끊어놓았다. 아버지랑 같이 관성으로 가서 소씨 집안 사람들의 인성을 조심히 알아보려는 계획이었다. 더불어 지훈의 질병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그들은 지훈에게 직접 물어도 솔직히 대답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직접 알아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혁주는 아버지와 함께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그들이 출발할 때 윤하는 아직 꿈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던 지훈마저도 윤하에게 키스하는 달콤한 꿈을 꾸느라 잠에서 깨지 않았다. 그도 역시 큰 형님과 윤하 아버지가 일찍이 길을 나선 것을 몰랐다.두 사람이 출발해서 얼마 되지 않아 소씨 가주 내외가 도착했다.두 분은 사돈 될 분들이 놀랄까 봐 경호원들 없이 둘이서 제
지훈이 윤하를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스러움이 가득했다.“윤하 씨가 좋아하면 매일 선물해 줄게요. 아니면 지금 도장에 꽃 가지러 같이 갈까요?”“같이 가요. 매일 선물 안 해줘도 돼요. 어쩌다 한 번씩 서프라이즈를 주는 게 더 좋아요. 매일 받으면 또 감흥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잖아요.”지훈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윤하 씨 말 들을게요.”지훈의 꽃 선물에 윤하는 꽃 떡을 떠올렸다.지훈도 자신이 매일 꽃 선물을 하면 윤하가 꽃 떡을 떠올리며 자신의 마음을 몰라줄까 걱정이 됐다.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아마도 돈이 아닐까?지훈은 돈으로 된 꽃다발을 선물해서 윤하가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게 해줄 수도 있었다.“먼저 옷 쇼핑가요, 제가 옷 선물을 해줄게요.”윤하는 꽃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옷 선물을 해주려 했다.“옷을 선물해 준다고요?”지훈은 아주 기뻤다.“지훈 씨가 추울 것 같아서 두꺼운 아우터를 선물해 주려고요. 근데 저는 지훈 씨처럼 명품은 못 사요. 삼십만 원 정도는 해줄 수 있어요. 혹시 마음에 안 들면 버리지 말고 저한테 줘요. 저희 큰오빠가 지훈 씨랑 키가 비슷하니까 큰오빠 주면 돼요.”지훈은 재빨리 대답했다. “마음에 안 들 리가요, 윤하 씨야말로 줬다 뺏기 없어요. 큰형님 옷도 많으시고 두꺼운 옷도 많으시잖아요. 저는 두꺼운 옷 별로 없어요. 저 사실 추위 많이 탄다고요. 집밖에 잘 안 나가고 매일 사무실, 도장, 윤하 씨 집, 난방이 있는 이 세 곳에만 있잖아요.”바로 전까지만 해도 추위를 안 탄다고 하던 지훈은 혹여나 윤하가 사준 옷을 큰형님한테 줄까 봐 추위를 많이 탄다고 엄살을 부렸다.“그럴 줄 알았어요. 남방 사람들은 연성에 오면 다들 춥다고 그래요. 아무리 지훈 씨가 이곳저곳 많이 다닌다고 하지만 그래도 관성에서 보낸 시간이 제일 오라잖아요. 연성이 안 춥다면 거짓말이죠.”지금의 관성은 날씨가 아주 좋아 윤하도 부러울 정도였다.지훈은 웃으며 말했다. “관성은 난방이 없어서 추울 땐 진짜로 추
윤하의 어머니는 잠깐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너희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래도 지훈이 돌아오면 너희가 한번 잘 물어봐. 안 그러면 나 계속 걱정돼서 잠 못 자니까. 그리고 지훈이 우리 윤하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걔는 부잣집 도련님이고 두 집안이 차이가 있잖아. 지훈이 부모님이 우리 윤하를 못 받아들일 수도 있고. 너희 아빠가 돌아오시면 내가 얘기 한번 해봐야겠어. 혁주를 데리고 관성에 가서 지훈이 부모님에 대해 좀 알아보라고 해야겠어.”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혼자 가도 돼요. 오늘 저녁에 바로 티켓 끊어서 내일 아침에 출발할게요.”“아버지랑 같이 가. 네가 아직 어려서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해. 아버지는 나이도 많고 사회생활도 수십 년 해왔으니 사람 보는 눈이 괜찮아. 딸을 시집보내는데 아버지가 돼서 시댁이 어떤지는 알아봐야지.”윤하 어머니는 지훈이 의심하지만 않는다면 자신도 함께 관성에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혁진이 말했다. “소 대표의 부모님이 우리 윤하를 싫어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소 대표 나이가 몇인데, 곧 사십이잖아요. 우리 윤하는 이제 스물넷인데 나무랄 게 뭐 있어요. 나무란다고 해도 우리가 소 대표를 나무라야 맞죠.”“소 대표 부모님께서 마음이 조급하시지 않을까요? 드디어 좋아하는 아가씨를 만났는데 그분들이 왜 나무라겠어요? 오히려 서둘러 결혼시키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그 집안이 부자면 또 어때요? 우리 집안은 뭐 가난한가? 몇백억은 아니더라도 자산이 적지는 않잖아요. 어머니아버지가 윤하한테 집도 마련해 줬고 상가 부동산도 남들보다 훨씬 많은걸요.”“당연하지, 소씨 집안에서 우리 윤하를 마음에 안 들어 하기만 해 봐요.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잠깐, 우리 윤하가 아직 지훈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잖아요. 나중에 두 사람이 거리를 둔다고 해도 우리 윤하는 전혀 손해 볼 게 없어요.”“아쉬워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지훈이 아닌가.”“그래도 관성에 한번 가서 알아보는 게 좋아.” 혁주는 이미 휴대폰을 꺼내 티켓을 알아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윤하는 지훈과 함께 산책하러 나갔다.두 사람이 집 문을 나서자 혁진이 형에게 물었다.“형, 윤하 오늘 좀 이상하지 않아요? 얼굴도 자꾸 빨개지고 지훈이랑 눈도 못 마주치고 아주 부자연스러운 것이 평소랑은 많이 달라요. 이십몇 년 동안 오빠와 동생으로 지내면서 오늘 처음 수줍어하는 모습을 본 것 같아요. 쟤도 수줍어할 줄 아는 애였어요. 평소에는 그냥 남자애처럼 덜렁대고 뻔뻔하게 굴더니 수줍어하니 꽤 여자 같은데…”혁주는 말없이 차를 따랐다.윤하 어머니는 주방에서 설거지하다가 혁진의 말을 듣고 주방에서 뛰어나와 두 아들에게 말했다.“너희 둘 이리 와봐, 지훈이 없을 때 할 말이 있어.”“무슨 일이에요? 표정이 심각해 보이는데 안 좋은 일이에요?”혁진은 궁금증을 못 참고 주방으로 들어가다가 엄마의 표정을 보고 사뭇 진지해졌다.차를 따르던 혁주도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뛰어 들어오며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 소 대표가 무슨 말 하던가요? 소 대표가 우리 동생한테 고백했어. 근데 윤하가 아무런 준비 없던 상황에서 고백받아서 놀라서 도장을 뛰쳐나갔어. 내가 소 대표 보고 따라가지 말고 윤하한테 진정할 시간을 좀 주라고 했거든. 지금 보니 뭔가 잘될 것 같은 느낌인데?”혁진은 혁주를 돌아보며 물었다. “형, 지훈이가 윤하한테 고백했다고요?”윤하 어머니는 입을 뗐다. “지훈이 질병이 있대. 걔가 윤하한테 솔직하게 털어놨는데 내가 엿듣다 보니 제대로 듣지 못했어. 병명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진짜로 병이 있나 봐. 그래서 여태까지 솔로였대.”“뭐라고요?”두 아들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두 사람은 안색이 급격히 변하더니 혁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설마 남자구실을 못 하는 건 아니겠죠?”“그렇게 티가 나는 질병이 아닌 것 같았어. 똑똑히 듣고 싶었는데 방문이 열려있어서 더 가까이 가지 못하겠더라. 영문을 모르니 더 속이 타네. 너희 둘은 남자애니까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까 해서. 조금 있다가 지훈이 돌아오면 너희 둘이
지훈이 대답하기도 전에 윤하의 목소리가 위층으로부터 들려왔다.“얘들아, 밥 먹어.”윤하 어머니가 주방에서 불렀다.식구들은 주방으로 들어가 일손을 도와 식자재를 날랐다. 그리고 둘러앉아 따뜻한 샤부샤부를 먹기 시작했다.정혁주는 아버지가 소장한 술과 잔을 네 개 가져오며 물었다.“엄마, 저희 오늘 한잔하고 싶은데 괜찮죠?”“외출을 안 하면 한 잔씩은 허락할게. 더는 안돼.”많이 마시다가 취하면 내일 출근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정혁주는 동의하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한 잔씩만 하기로.”한잔이라도 아예 못 마시는 것보다는 나았다.“윤하는 많이 마시지 마.”혁주는 동생에서 반 잔만 부어주었다.윤하는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내가 여자는 맞지만 주량은 오빠들 못지않거든요, 한잔 마신다고 취하지 않아요.”“너 계속 그러면 한입밖에 못 마시게 할거야. 그 잔 소 대표님 줘.”혁주는 큰오빠답게 여동생의 음주를 제한했다.혁주는 술을 붓고는 윤하에게 귀속말했다. “적게 마시고 정신 붙들고 있어. 있다가 소 대표님 취하면 너한테 진심인지 아닌지 확인해 봐. 술 취하면 진실을 토하게 되잖아. 그때 물어보면 진심을 알 수 있을 거야.”윤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 하며 낮은 목소리로 큰오빠에게 말했다. “지훈씨 주량 엄청 세요, 그 한 병 다 마셔도 멀쩡할걸요.”술 한잔으로 지훈이 취하기를 기대하는 일은 망상에 불과했다.“난 지훈 씨가 한 말이 모두 진심이라고 믿어.”윤하는 지훈에게 반찬을 짚어주며 웃으며 말했다. “지훈 씨도 적게 마셔요, 식사가 끝나면 같이 산책해요.”“좋아요.”“밖에 엄청 추워.”윤하의 어머니가 말했다.“지훈이는 관성에서 왔잖아, 더 추워할걸. 난 시집온 지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겨울에는 외출 잘 안 하잖아. 연성의 겨울 추위는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안 돼.”시집온 지 얼마 안 되였을 때 윤하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가서 겨울을 보냈다.시간이 지나 아기들도 점점 커서 어린이집, 학교에 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