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차연은 내 라이벌이니 내가 상대하면 돼. 그리고 그 일이 있고 난 뒤 프로젝트는 다른 사람에게 팔로우하라고 태윤 씨가 시켰어. 태윤 씨는 더 이상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고 도 대표에게도 그날 일을 알렸어.”“...”“그 후 오랫동안 도차연을 보지 못했고, 태윤 씨도 나에게 도 대표가 딸 단속을 잘할 거라고 약속했다고 말했어. 도 대표도 도차연이 여전히 날 연락할 줄은 전혀 예상 못 했을 거야. 얼마 안 돼 도차연은 관성을 떠났고 약속대로 날 찾아오지도 않았어.”친구의 말을 들은 심효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말 들으니 안심이 돼. 사진 속 그 남자는 분명 태윤 씨가 아닐 거야. 너랑 태윤 씨가 얼마나 어렵게 걸어왔는데. 태윤 씨가 널 그토록 사랑하고 총애하는데... 그 사랑과 총애가 모두 거짓이라면 난 더 이상 사랑이란 걸 믿을 수가 없을 거야.”전태윤의 성격으로는 절대 나가서 다른 여자를 만날 리가 없다.그런 사람이 아니니까.“이게 도차연이 꾸민 음모거나 그냥 의외일 수도 있어. 태윤 씨랑 비슷한 몸매를 가진 사람을 찾은 걸 수도 있잖아.”하예정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효진아, 난 태윤 씨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걱정이야. 매일 다른 여자들이 넘보잖아. 태윤 씨는 맨날 작은 일로 질투하는데, 내가 태윤 씨 같은 성격이었으면 아주 오래전에 질투로 우울증에 걸렸을걸.”심효진은 전태윤을 대신하여 좋은 말을 했다.“네 남편이라면야 여자들이 달라붙는 게 이상하지도 않아. 태윤 씨 먼저 다른 여자를 건드리는 성격은 아니잖아. 여자들을 막기 위해 그 많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라이벌이 많을수록 네가 더 행복하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아? 그 많은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랑 결혼하여 사랑 듬뿍 받고 있잖아. 네가 가장 운이 좋고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에게 끌리는 법이니까.”“나랑 진우도 그저 이런 경우가 아니야, 태윤 씨 괜히 질투해서는. 지난번 연회
“우유 이젠 마셔도 돼.”소정남은 아내 곁에 다가앉아 먼저 우유를 마시라고 했다.심효진이 우유가 든 잔을 들고 말했다.“예정이는 태윤 씨를 믿어. 사진 속의 여자가 도씨 그룹의 딸 도차연이래. 그 여자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태윤 씨와 예정이 이제 한 달 뒤면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혼인신고를 한 지도 1년이나 됐겠다, 관성의 사람은 물론이고, 당신 회사와 거래하는 사람 중에 태윤 씨가 이미 결혼을 한 데다가 와이프를 엄청나게 아끼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 어떻게 감히 예정이를 찾아가 이야기 나눌 생각을 할 수 있어? 예정이에게 태윤 씨와 어울리지 않으니 곁에서 떠나라고 할 게 분명해. 무슨 용기로 예정이에게 감히 이런 말을 하려는 지 모르겠어.”“당신 말 맞아.”“예정이가 어디를 봐서 태윤 씨와 어울리지 않아? 집안 조건은 전씨 일가보다 못하다지만 전씨 일가에서 예정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완전히 받아들였는걸.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건 다 질투가 나서 막말하는 거란 말이야.”소정남은 부드럽게 타일렀다.“당신이 알면 되는 거야. 화내지 마. 예정 씨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니까 태윤이를 믿을 거야. 사진 속 그 남자, 나도 태윤이가 아니라고 생각해. 태윤이는 요즘 연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동명이를 위로하러 가느라 관성을 떠난 적이 없는걸. 아참, 며칠 전에 떠났긴 했지만 그것도 지 와이프를 찾으러 A시에 간 거야. 자, 여보. 우유 마셔. 우유 다 마시고 쉬어.”소정남은 참지 못하고 다시 심효진의 배에 손을 대며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아가야, 아빠랑 인사할래?”심효진은 우유를 몇 모금 마시고 웃으며 말했다.“아직 이르니 좀 더 기다려봐, 만지기만 하면 발로 찰걸.”“너무 기대돼. 태동은 어떤 거야? 우리 아기 언제 아빠랑 인사할 수 있어?”심효진이 되물었다,“임신에 관한 책을 그렇게 많이 사놓고 한 눈도 안 본 거야?”“...보긴 봤는데, 보기만 하면 눈이 감겨서 말이야. 잠 요정은 너무한다니
심효진은 하마터면 우유를 뿜을 뻔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그만해, 우유를 다 마신 후에 계속하든 해. 당신 몸에 뿜을라. 난 뚱보가 되고 싶지 않아. 임신해도 가장 아름다운 임산부가 될 거야.”아이를 낳은 후 그녀는 날씬한 몸매를 회복하기 위해 서둘러 운동을 할 생각이었다.남편이 뚱뚱해져도 싫어하지 않을 거라는 말은 믿지 않는 것이 좋다.사람이라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그녀가 정말 뚱뚱해지면 처음에는 싫어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싫증 날 것이다. 그다음에는 다른 여자가 그녀보다 훨씬 낫다고 느껴져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 결국 다른 사람의 남자가 될 것이다.예전에 주형인도 하예진에게 같은 말을 했었다.결과는 뻔했다.뚱뚱하고 못생겨진 하예진을 싫어하게 되었다.심효진은 자신을 두 번째 하예진으로 되게 놔둘 리가 없다.“그럼 내가 뚱보로 되면 되지. 뚱뚱해지면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고 라이벌도 없을 거야.”심효진은 일부러 놀림 조로 말했다.“라이벌도 없이 당신을 쉽게 손에 넣어서 전혀 성취감이 없는걸.”“나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나에겐 여보밖에 없어. 여보, 나를 원해줘서 고마워. 평생 당신에게 잘해 줄 것을 약속해. 당신만을 사랑할 거야.”똑똑한 소정남은 와이프가 판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함정에 빠졌다간 오늘 밤 한 침대에서 잘 생각도 하지 말아야 했다. 서재로 쫓겨날지도 모른다.소정남은 아내 곁에서 함께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 지금은 아내를 안고 잘 수 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서재에서 자게 되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심효진은 이런 남편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그녀는 우유를 다 마신 후 빈 잔을 건네주었다.소정남은 빈 잔을 받아 들고 일어나 세면실로 들어가 잔을 씻었다.심효진은 일어나 방안을 걸어 다녔다.컵을 씻고 나온 소정남은 와이프가 방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물었다,“배불러? 저녁도 많이 안 먹은 것 같고, 우유 양도 평소와 같으니까 배부른 건 아닐 텐데...”“배부른 건
“몰래 마당에서 몇 입만 먹으면 안 될까? 나 몸이 좋아서 두 입만 먹어선 괜찮을 거야. 그냥 맛만 본다니까. 작년 이맘때 난 매일 아이스크림을 두 개 먹었는걸.”먹보로서 어떤 음식을 먹고 싶게 되면 정말 당장이라도 입에 넣고 싶은 마음이었다.1분도 기다리지 못할 정도였다.소정남은 말문이 막혔다.아내를 사랑하는 그는 정말이지 아내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주치의가 임신 중에는 될수록 차가운 음식을 먹지 말라고 했다.“여보, 우리 아기 이름 아직 생각 안 했는데. 예쁜 이름 생각해 봤어?”소정남은 화제를 돌려 먹보 아내의 주의를 분산시키려고 했다. 그러면 아이스크림를 잊을 수도 있으니까.아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얼마든지 먹일 것이다.하지만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라면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이름을 짓는 일은 아직 이르니까 거의 낳을 때가 돼서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아. 게다가 아직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잖아.”“남자애 이름이랑 여자애 이름 다 하나씩 지으면 돼. 그러면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이름을 갖게 되잖아.”“내 주의 돌릴 생각 마. 여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편분, 아이스크림 몇 입만 먹게 해줘.”심효진은 바보가 아니다.소정남이 화제를 돌린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그녀는 다시 아이스크림에 대한 화제로 돌렸다.소정남은 할 수 없이 말했다.“...엄마가 나를 욕할 때 날 지켜줘야 해.”“당연하지.”“정말 몇 입만 먹는 거지?”심효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몇 입만.”‘한입부터 아홉 입까지 다 몇 입에 속하니까.’소정남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따가 마당에 가서 10분 정도 걷다가 다시 아이스크림을 가지러 집에 돌아갈게. 걸으니 너무 더워서 먹고 싶어졌다고 할게.”심효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만 있으면 상관없었다.임신한 후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르기만 하면 한시도 참을 수 없었다.임신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된다고 한다.평소에 안 좋아하던 음식도 좋아하
“그럼 됐어요.”소정남은 동작을 멈추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잘된 일이었다. 집에 아이스크림이 없으니 그가 고의로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집에 없어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심효진은 시어머니가 아이스크림과 사이다를 모두 치웠다는 말을 듣고 그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친정에 돌아가서도 먹을 수 없었다.그녀의 부모님은 시어머니보다 훨씬 더 엄격했다.부모님은 시댁 식구들이 좋은 사람들이라 만족하라고, 배 속의 아이를 잘 돌보아 시댁에 튼실한 손자를 낳아주라고 했다. 그래야 그녀에 대한 시댁의 따뜻한 배려에 떳떳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은 누구보다 배 속의 아기를 소중히 여겼다.‘내일 가게 지키러 갈 때 몰래 사 먹어야지.’“내일 점심에 내가 사줄게. 점심때엔 날씨가 제일 더우니까 조금 먹어도 괜찮을 거야. 당신 직접 사 먹는 건 안 돼.”소정남의 말에 심효진이 훔쳐먹을 생각을 접었다.남편이 경호원을 배치하여 매일 따라다니게 하였으니까.그게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잘 알지만 동시에 자유를 박탈당한 느낌도 있었다. 무엇을 하든지 감시하였고 아주 작은 일까지도 소정남에게 알리곤 했다.그녀는 애초에 친구들이 왜 경호원이 따라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지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예정에게 알려줘야겠어. 임신하기 전에 아이스크림 많이 먹어두라고. 임신한 후면 남이 먹는 걸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이야.”소정남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태윤이는 언제 아빠가 될지 몰라.”심효진이 대답했다.“나 어젯밤 예정이가 임신한 꿈을 꿨어. 예정이는 딸을 낳고 난 아들을 낳은 거야. 그래서 내가 이제 사돈을 맺자고 말하니까 흔쾌히 승낙했어. 내 생각에는 곧 임신할 수 있을 것 같아.”소정남이 풋 하고 웃었다.“여보, 꿈은 모두 반대라고 하잖아? 꿈에서 예정 씨가 딸을 낳고 당신이 아들을 낳은 거라면 실제로는 예정 씨가 아들을 낳고 당신이 딸을 낳게 되겠네. 그래도 우리 두 집안이 사돈을 맺는 데에는 방해가 되지 않아. 나 내일 태
소정남은 웃으며 심효진에게 내기를 걸자고 했다.“그럼 우리 내기하자. 난 전태윤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첫째는 무조건 아들을 낳을 것으로 생각해.”심효진은 감히 내기에 응하지 못했다.“...당신이랑 내기 걸 엄두가 안 나.”승산이 없을 것 같았다.“난 내기 안 할래. 전씨 일가은 지금 몇 대째 딸이 없잖아. 난 예정이가 첫째는 무조건 딸을 낳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못하겠어. 심지어 감히 아들딸 다 가질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어.”심효진은 내기하면 자신이 질 확률이 너무 높다고 생각했다.“여보, 대담하게 내기를 해. 내가 이기면 액세서리 한 세트 사줄게. 내가 지면 두 세트, 어때? 당신이 손해 보는 일은 없어.”심효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럼 내기가 아무 의미가 없잖아. 정말 내기를 하고 싶다면, 우리 한 번 걸어. 난 예정이 부부가 아들딸 다 가질 수 있다고 걸 거야. 내가 이기면 내가 원하는 것을 사줘. 내가 지면 당신이 원하는 걸 사줄게.”소정남은 흔쾌히 승낙했다.“그럼 난 첫째와 둘째가 모두 아들이라고 걸겠어.”사실 이렇게 내기하는 것도 아내의 주의를 분산시켜 아이스크림을 먹을 생각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한밤중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좋지 않다.“둘째까지만 거는 거야? 뭐 예정이도 아마 둘째까지만 낳을 거니까 승패를 가를 수 있을 거야.”심효진은 친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둘째까지는 낳을 수 있지만 셋째를 낳을 확률은 높지 않다. 전씨 일가의 재산으로 아이를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말이야.아이가 하나뿐이면 매우 외로울 것이니 둘째까지 낳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하예정은 그들 부부가 내기를 걸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심효진이 보낸 사진들을 다시 전태윤에게 보냈다.부부 사이에 오해가 있으면 바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입을 꾹 다물고 말하지 않으면 오해만 깊어질 뿐이다.전태윤은 와이프로부터 사진을 받았을 때 마침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돌아가는 도중에
“듣기로는 모멘트에 사진을 올린 후 당신을 아는 사람이 그걸 보고 바로 정남 씨에게 전했대요. 하지만 이게 함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진만 보면 그 남자 확실히 당신처럼 보였거든요. 여보, 이 일은 먼저 확실히 조사하고 다시 행동하는 걸로 해요. 서둘러 도차연을 찾아가 따지지는 말고요. 그 남자가 당신이라고 분명히 말하지도 않았으니까요.”“음...”“효진이도 정남 씨가 그 남자가 누군지 조사할 거라고 했어요. 내가 이 일을 당신에게 말해주는 것은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 이 일을 이용해서 우리 부부의 감정을 망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내가 마침 관성에 있지 않을 때 이 사진이 유출됐으니까요. 내가 충동적인 사람이었다면 이 사진을 보자마자 당신이 내가 집에 없는 틈을 타 다른 여자랑 바람났다고 오해했을 거예요.”전태윤이 나지막이 대답했다.“여보,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먼저 확실하게 조사하는 거로 해. 도 대표도 최근 해외 출장을 가서 회사에 없어.”그는 두 그룹의 협력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직접 팔로우하지는 않지만 도 대표의 최근 상황에 대해 여전히 잘 알고 있다.도 대표가 출장 갔기 때문에 도차연이 하예정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알고 있어요. 저번에 도차연이 나를 찾아왔을 때 당신이 말한 적 있어요.”도 대표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딸이 전태윤을 좋아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다. 전태윤이 유부남일 뿐만 아니라 장차 도씨 그룹을 계승할 도차연도 하필이면 다른 여자로부터 남자를 빼앗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도씨 일가의 집안 조건으로 딸이 어떤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도 문제없었다.“일 끝났어요?”“집에 돌아가는 길이야. 당신이 보내준 사진을 받고 놀라서 식은땀을 흘렸지 뭐야. 여보, 믿어줘서 고마워. 당신이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바람피웠다고 의심하지 않아서.”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쉽게 바람피울 사람이면 애초에 내 차례도 안 왔죠.”결혼하기 전 전태윤은 계속 독신이었고
“집에 돌아가서 일찍 쉬어요. 금방 돌아갈 테니까요.”하예정은 남편에게 신신당부했다.전태윤은 일부러 억울한 듯 말했다.“여보, 오해받을 뻔했는데 미리 와서 위로도 안 해주는 거야? 옆에 같이 있어 주지도 않고. 마음이 많이 아파.”자기처럼 한마음인 남자를 바람둥이로 만들고 싶어하다니... 억울하기 그지없었다.아내의 동반과 위로가 필요했다.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알겠어요. 내일 저녁 우빈이를 데리고 돌아갈게요. 할머니는 나랑 함께 돌아가실지 모르겠어요.”그 말을 들은 전태윤이 한마디 했다.“할머니는 나이가 적지도 않으신데 하루 종일 여기저기 뛰어다니셔. 말을 전혀 듣지 않으시고. 10살만 더 젊으셨어도 아주 하늘까지 뚫었을 거야.”“할머니께서 집에 손자 돼지를 너무 많이 둬서 아내감을 찾으러 다녀야 한다고 하셨어요.”전태윤은 말문이 막혔다.자기가 바로 할머니가 말한 돼지였으니까. 그리고 와이프를 얻게된것도 모두 할머니 덕분이였다. “내일 아침에 올 수는 없어?”“연정 씨랑 애들 데리고 동물원 놀러 가기로 했어요. 우빈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안 간다고 하면 실망할 거예요. 내일 저녁에 돌아가는 것도 사실 시간을 앞당긴 거예요.”전태윤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당신은 항상 남의 집 남자를 자기 남편보다 더 생각해. 내 기분은 생각하지도 않는 거야? 우빈이가 자라서 아내를 얻으면 남의 집 남자로 되는 거라고. 당신이 아무리 잘해줘도 남의 집 남자를 돌보는 거랑 마찬가지란 말이야.”하예정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질투해도 참, 유치하긴요.”“질투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당신이 다른 남자에게 잘해주기만 하면 질투할 거야. 어른이든 아이든 간에 상관없어, 내가 아니라면 무조건 질투할 거라고.”“그렇게 질투하다가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겠어요.”“그럼 당신이 옆에서 지켜줄거지?.”하예정은 웃으며 남편에게 주의를 주었다.“이런 말 하지 마요. 우빈이 아직 옆에 있어요.”전태윤은 또 한바탕 시큰둥했다.“내일 저녁 예진 리조트로
울화가 치밀어 올라 미칠 지경이었지만 조윤은 이성을 되찾았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요. 누구지?”박수아가 잠시 고민하더니 떠보는 식으로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방금 오신 분 아닐까요?”하예진을 말하고 있었다.바로 하예진이 꾸민 일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씨 가문 내부 사람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조윤은 그 사진들을 봉투에 넣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그 사진들을 다니 꺼내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 이윤미에게 보내면서 메시지도 함께 보냈다.[윤미야, 방금 이 봉투를 받았는데 이 안에 있는 사진들은 네가 찍은 거야?]조윤도 사실 마음속으로 하예진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하지만 이윤미에게 물어보는 척하면서 떠볼겸 그녀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어쨌든 이씨 가문은 이윤미에게 넘겨질 테니까.조윤 일행의 남편들은 이미 희망이 없지만, 그녀들의 자녀도 살아가야 했기에 이윤미의 보살핌에 의지해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윤미가 딸을 낳지 못한다면 아마 조카딸 중에서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녀들의 딸에게도 희망이 생기게 된다.조윤의 딸은 올해 9월 중학교에 갓 입학해 강성에서 가장 좋은 사립 학교에 다니고 있다. 기숙 학교라 집과 매우 가깝지만 학교에서 생활해야 했고 평소에도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성적도 무척 좋고 이윤미와 좀 닮은 편이라 이윤미도 그 조카딸을 무척 예뻐했다.곧 이윤미가 회답했다.[형수님, 제가 찍은 것이 아니에요. 저는 이윤정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요. 저를 찾아오지도 않았기도 했고 저도 당분간 윤정을 지켜볼 시간이 없었어요. 여기가 어디예요?”이씨 가문에 사고가 생겨 혼란스러운 탓으로 이윤미는 미래의 가주로서 땅에 발을 붙일 새도 없이 바빴다.조윤도 이윤미의 말을 믿기로 했다.[내가 네 오빠에게 시집갔을 때 어머님께서 마련해주신 신혼집이야. 평소 아이들이 방학이 되어야만 그 별장에 가서 며칠 지내다가 오곤 했거든. 그런데 지금 네 오빠가
이윤정은 여전히 화사한 옷차림으로 한가롭게 작은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그 정원에는 그네도 설치되어 있었다.김여희와 박수아는 모두 이 작은 정원이 익숙하게 느껴졌다.조윤의 싸늘한 표정으로 사진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정원은 너무 익숙한 정원이었다.그 당시 조윤이 정일범에게 시집갈 때 이은화가 조윤 부부에게 마련해준 신혼집이었다. 부동산 소유증에는 지금도 조윤과 정일범의 이름이 적혀있다.결혼 후 조윤 부부는 이씨 가문의 큰 저택에 머물게 되면서 그 작은 별장은 가끔 휴가를 보낼 때마다 잠시 머물렀다.이윤정 그녀의 신혼집에 나타난 것으로 보면 묻지 않아도 정일범이 벌인 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형수님, 이...이 사진들은 누가 보내왔을까요?”김여희는 동정 어린 눈으로 조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만약 그녀의 남편이 이윤정을 그 별장에 머물게 한다면 김여희는 아마 남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김여희는 남편 형제들이 이윤정을 끔찍이도 아끼는 걸 생각하면서 이번에 정일범이 이윤정을 받아주게 되면 다음에는 그녀의 남편 혹은 박수아의 남편이 이윤정을 챙겨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생각한 김여희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이씨 가문으로 처음 시집왔을 때 김여희의 남편 정일군이 이윤정을 무척 귀여워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그닥 내키지 않았다.이윤정 또한 성인이 되었는데도 정일범 형제들에게 찰싹 달라붙으며 과분한 행동하는 것을 보며 마땅하지 않다고 여겼다.그러나 시댁은 여자가 후계자 자리를 이어받아야 하는 것을 떠올렸고 이윤정이 미래의 가주로 될 것을 고려하여 조윤 일행은 하는 수없이 시누이 이윤정의 비위를 맞추어 주고 있었다.하여 김여희도 뭐라고 말하기가 난처했다.그러다가 이윤정이 그들의 친 시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은화가 여전히 이윤정을 아끼고 오히려 친딸 이윤미에게 냉담하게 대하며 심지어 욕까지 했다. 그 광경을 보더니 김여희는 조윤과 박수아처럼 이윤정에게 잘 대해야 한다고 느꼈다.이윤미는 시
그러나 전호영이 공개적으로 고현을 구애했고 강수빈은 다른 연모자들과 함께 전호영과의 말싸움에서 진 뒤로 마음을 바로 접어버렸다.원래 연적도 많은 데다 전호영까지 한 명 더 추가되니 강수빈은 자신이 승산이 없다고 생각되어 진작에 단념하고 목표를 바꾸었다.이제 그녀도 새로운 애인이 생겼는데, 남서연이 기어코 그녀를 끌고 고씨 가문의 저택으로 와서 사실을 확인하려 들었다.강수빈은 무척 놀랐지만, 지금은 그녀와 무관한 일로 되었다.“이런 소문은 직접 와서 확인해 봐야 하는 법이야. 그래야 남들에게 말할 때도 설득력이 있지.”강수빈은 정색하며 물었다.“엄마는 단지 사실을 확인해서 이 소문을 퍼뜨리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예요?”“그만 말해. 집사님이 나오셨어.”남서연은 강수빈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사람들이 소문의 진실의 여부를 알아보러 온 이유가 바로 소문을 퍼뜨리기 위함이 아니겠는가!집사는 재빨리 걸어 나와 죄송스러운 표정으로 남서연 모녀에게 진미리의 뜻을 전했다.곧 집사가 별장으로 돌아갔다.“실외 주차장에 차들이 꽉 차 있는 거로 보니 아마도 수많은 사람이 찾아온 모양이야. 딸, 가자. 들어갈 생각은 접어야겠어. 고씨 가문의 큰 사모님 자리는 아마도 희망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도 좀 편해지네. 고빈 도련님한테는 관심 있어? 그분은 진정한 남자거든.”“엄마, 저 좋아하는 사람 있거든요.”강수빈은 몸을 돌려 그녀의 차로 향했고 더는 남서연과 함께 남의 집 일에 관해 이야기하기 싫었다.고빈은 바람둥이인데 그를 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고빈은 사실 바람둥이가 아닌데도 말이다.이씨 가문의 저택.정원에서는 이씨 가문의 세 사모님이 그네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녀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거로 보니 아마도 기분 좋은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이윤정을 이씨 가문의 저택에서 쫓아내 복수하는 데 성공했으니 이은화의 마음속에도 답이 생겼을 것이다.조윤 일행에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더니 그녀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따지러 온 게 아니잖아. 다만 현이가 여자아이라서 시름을 놓았을 뿐이야. 전에 현이가 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과 동성연애를 하고 있다고 들었을 때 너희들도 여의치 않다고 들었어. 외출하면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도 고현에 관한 얘기를 물어보곤 했거든. 우리 가문의 청년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행복하게 연애를 하는데도 사람들은 고현이 정말로 게이가 아니냐고 수소문하잖아.”고정호가 말했다. 그는 따지러 온 것이 아니라, 확인하려고 온 것뿐이다.사촌 조카의 말처럼 그것은 단지 고진호 부부의 집안일일 뿐 외부인과는 무관한 일이다. 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하면 될 일이다.고진호는 그의 딸의 동성 연애설이 고씨 가문의 다른 친척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고진호 부부가 고현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소문났을지는 모르지만 그간 고정호는 고진호를 찾아와서 고현의 일에 참견하지는 않았다.친척들도 고진호 부부가 자식들의 일에 참견하지 않고 진정으로 자식들의 결정과 선택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현이 정말 동성애자라고 해도 고진호 부부는 여전히 딸아이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아마 이런 상황을 알았기 때문에 고정호도 이 일에 관해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현이가 게이가 아닌 이상 현이와 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과 함께한다면 명분이 제대로 서겠네. 앞으로 누가 감히 내 앞에서 내 조카 손자를 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어.”친척들도 고정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정말 죄송하게 됐네요. 우리 가문의 젊은이들에게 누를 끼쳐 죄송해요.”고진호는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했다.“우리 빈이가 장가갈 걱정 안 해도 좋겠네. 남들이 빈의 취향을 의심하면 상대를 바꾸면 그뿐이야. 우리 빈이가 정상이라면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앞으로 현이가 시집가면 결혼식은 반드시 성대하게 치러야죠. 화려하게 꾸며서 모든 사람에게 우리 현이가 정상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죠.”“그럼요. 그럼요.”모두 제각기 맞장구치
다음 주, 전호영은 고현과 함께 보름간 휴가를 떠나 그녀와 데이트도 하고 정을 쌓을 수 있다.이제 전호영 커플은 데이트할 때 더 이상 사람들의 비난받지 않을 것이다.그와 동시, 고씨 가문의 저택.화려한 홀에는 고씨 가문의 친척들로 가득 찼다.고진호 부부도 함께 앉아 있었고 하인들은 따뜻한 물과 과일 그리고 과자를 준비해서 올려왔다.고진호 부부가 휴대전화 전원을 끄면 외부 사람들의 방해를 차단할 수 있었으나친척들의 방문을 거절할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고씨 가문의 본가, 즉 고진호의 사촌들이며, 한두 세대에 걸친 관계라 사이가 멀었지만 그렇다고 핏줄 관계가 섞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현이가 정말 여자야? 그 당시 남자 쌍둥이 낳았다고 하지 않았어?”고진호의 아버지 사촌 형제 고정호는 고현이 여자라는 사실을 여전히 믿지 못했다.그 해, 진미리는 쌍둥이를 임신해 고씨 가문의 사람들은 무척 기뻐했다. 드물게 쌍둥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진미리의 친정집 어머니가 쌍둥이를 낳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진미리는 그녀의 어머니 쌍둥이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그녀가 출산한 뒤로 사람들은 남자 쌍둥이를 낳았다고 전해 들었다.고진호는 재빨리 해명했다.“아주버니, 우리가 쌍둥이를 낳았다는 말만 했지 남자 쌍둥이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누가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남자 쌍둥이는 아니에요. 사실 우리는 쌍둥이 남매를 낳았거든요.”“저희 딸은 호적에 딸아이로 올렸어요. 그런데 현이가 늘 빈이처럼 꾸미는 것을 좋아해서 우리도 딸아이가 좋을 대로 지지해준 것뿐이에요. 그런데 그 뒤로... 이렇게 됐네요. 현이가 남자 옷을 즐겨 입어서 우리도 어쩔 수 없었어요. 현이가 어려서부터 남들이 자신을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을 꺼렸어요. 늘 빈이는 도련님이라고 부르면서 왜 자기는 아가씨라고 부르냐면서 불평을 털어놓았거든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다들 현이를 도련님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우리 저택의 하인들도 한 번 전부 바꾸는 바람에 그들도 우리 현이가 여자인 것을 몰랐어요. 현
사실 고현은 일정이 너무 바빠 여행을 거의 가보지 못했다.고현은 신혼여행을 하러 가는 김에 그녀가 가고 싶은 곳에 가서 경치를 감상할 겸 기분전환 하고 싶었다.“제가 현이 씨에게 보름간의 휴가를 얻어줬으니 이 보름 동안 회사의 어떤 일에도 끼어들지 말고 고빈 씨에게 맡겨보세요. 제가 현이 씨를 모시고 여행 다닐게요. 우린 아직 제대로 데이트해 보지 못했잖아요.”평소에 고현은 다른 사람들이 그녀가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것을 다소 꺼렸다. 그녀는 가끔 전호영과 외출할 때도 항상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경호원 없이 몰래 그와 함께 놀러 다니곤 했다.마치 바람을 피우는 듯 말이다.한 번도 떳떳하게 데이트한 적 없었다.그들은 모두 결혼에 관한 얘기를 꺼낼 수 있을 정도로 정이 깊었지만, 아직 제대로 된 데이트도 해보지 못해 결국 한으로 남겨졌다.고현은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이번 주는 중요한 일들로 일정이 꽉 차서 다음 주에야 휴가를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남 비서에게 다음 주 일정으로 취소하고 모든 일을 고빈에게 맡기도록 전할게요. 그 자식이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게으른 거예요. 제 등 뒤에 숨는 것이 편하니까요. 이제 더는 나태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고현은 고씨 그룹이 조만간 고빈에게 넘겨질 것으로 추측했다.그녀는 결혼 후에도 여전히 강성에 남게 된다고 해도 더는 친정집 회사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고빈이 고현을 오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앞으로 고빈의 아내가 어떻게 생각할지 누가 알겠는가?손을 놓아야 할 때는 놓아줘야 하는 법이다.고현도 그녀의 아버지처럼 회사에서 물러나 고빈에게 짐을 떠맡길 계획이다.“그럼요. 맡겨보지 않으면 고빈 씨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모른다니까요. 현이 씨, 제가 데릴사위로 장가올 필요 있다고 생각하세요?”전호영은 갑자기 진지하게 고현에게 묻고 있었다.고현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우리 부모님이야 의견이 없죠. 호영 씨가 데릴사위로 장가온다면 저야 언제든지 환영이죠. 어디에서 일하
비서는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그들의 고 대표님이 정말로 여자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회사 내부에서도 난리가 났지만, 아무도 감히 고현에게 직접 물어보지 못했다.고현을 몰래 사모하던 여자들은 더더욱 하늘이 무너진 듯했다.어떻게 여자를 짝사랑하게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어쩐지 고현이 여자들의 감정을 받아주지 않고 여자를 건드린 적도 없더라니! 알고 보니 여자였다.그는 사실 그녀였다.전호영이 고현의 마음을 훔치는 것에 성공한 것도 이제야 이해했다.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전호영은 상관하지 않지만, 고현이 자신을 여자라고 인정한 것은 사실 전호영에게도 좋은 일이다.고빈을 떠나보낸 전호영은 고현의 책상으로 가서 앉아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감상했다.“저를 이렇게 쳐다보면서 뭐 하세요? 이제 고빈은 호영 씨한테 잡혀 살겠네요.”“현이 씨, 너무 사랑해요. 고빈 씨는 스스로 저한테 찾아와서 약점을 잡힌 거예요. 누가 현이 씨 앞에서 그런 짓을 하래요? 현이 씨 친동생만 아니었다면 저는 당장에서 그를 죽였을 거예요. 저와 현이 씨를 갈라놓으려 하다니. 제가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연초에 전씨 할머니는 고현의 사진을 전호영에게 주셨다.이제 곧 새해가 도착한다.비록 그가 행동이 좀 느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반년 넘게 그녀의 꽁무니를 쫓아다녔다.조건이 좋은 전호영이 여자의 마음을 훔치는 데만 반년 이상이 걸렸다.그도 미래의 아내에게 구애하기가 정말로 쉽지 않다고 느꼈다.고현은 동생 대신 몇 마디 했다.“고빈은 절대로 진심이 아니에요. 사실 빈이는 호영 씨를 매우 좋아하거든요. 호영 씨가 그의 말을 들은 것을 알고 빈이가 무척 놀랐단 말이에요.”고빈이 방금 전호영의 비위를 맞추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떠올린 전호영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고빈 씨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가 저한테 그토록 많은 불만이 있을 줄 몰랐을 거예요. 사실 고빈 씨가 한 말도 사실인걸요. 저의 유일한 처남으로 될
“고씨 그룹의 무거운 짐은 전부 현이 씨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데다 지금 고빈 씨 인생의 큰일까지 걱정하고 있어야 하잖아요. 고빈 씨가 현이 씨를 아끼지 않으셔도 저는 너무 가슴이 아프거든요. 저는 고빈 씨 누나가 행복하고 근심 걱정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이거든요.”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살 수는 없어도 적어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고빈은 난처해하며 대답했다.“형, 이런 일은 급하게 생각해서 될 일이 아니에요. 저는 아직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는데, 어떻게 결혼해요? 그냥 아무 사람이나 잡고 결혼할 수는 없잖아요?”고진호 부부와 고현은 늘 고빈의 결혼 문제에 대해 고뇌하고 있는데 지금은 예비 형부 전호영까지 그의 앞에서 결혼 재촉하고 있었다.고빈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그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아직 젊은 청년이다.“고빈 씨의 수많은 미모의 지인 중에 고빈 씨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녀들 중 한 분을 고르면 될 텐데. 정 싫으시면 제가 유의하여 여자 한 분을 소개해 드리죠.”고빈은 바로 말을 건넸다.“호영이 형, 제가 지금 형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이 그렇단 얘기에요. 형도 지금 전씨 할머니께서 아내를 골라주셨잖아요. 제가 단언컨대 형이 지금 아는 젊은 여인은 아마 열 명도 안 될걸요.”고빈에게 여인을 소개해 주려 하다니, 참!전호영에게는 좋은 할머니가 계시는 건 사실이다.전호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저는 아는 젊은 여성은 많지만 잘 아는 여성은 많지 않죠. 하지만 고빈 씨만 원하시면 당신에게 어울리는 여자를 우리가 유의해 드릴 수는 있어요.”고빈은 이성적인 고현과 머릿속에 고현만 보이는 전호영에게 여자 친구 소개하는 임무를 맡겨준다면 아마 그는 평생 결혼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아무도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테니까.그냥 스스로 찾는 게 좋을 듯하다.“고마워요. 형. 제가 생각해 봤는데 저 스스로 찾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좋을 듯해요. 형과 우
“그런데 고빈 씨 누나도 사람이니 피곤하기 마련이에요. 오래 놀았으니 이제 이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요?”고빈은 당황했다.“형... 설마 우리 누나를 일을 그만두게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그건 아니고 현이 씨를 쉬게 하고 싶어요. 현이 씨와 저는 연인이지만 데이트하는 시간이 극히 적거든요. 휴가는 물론이고 연애 과정이 별로 없거든요. 앞으로 결혼하고 기억을 되돌려보면 달콤했던 기억이 별로 없으면 얼마나 아쉽겠어요. 안 그래요?”고빈은 그제야 이해했다.전호영은 고빈이 회사를 이어받게 하고 고현이 한동안 편히 쉴 수 있도록 하고 싶어 했다.그건... 가능했다.고빈은 결코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전호영의 말대로 고빈은 고현의 등 뒤에 숨어 자유롭게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다.“형, 며칠 휴가를 내게 하시려고요?”“적어도 열흘이나 보름 정도는 돼야죠. 한두 달이면 더 좋고요. 그런데 너무 오래 쉬면 현이 씨가 반대할 거예요. 고빈 씨 누나는 바쁜 일상이 습관이 돼버려서 오랫동안 출근을 못 하면 오히려 심심해할 거에요.”전호영은 고현을 쉬게 하고 싶었지만, 너무 오래 쉬면 고현이 지루해할까 봐 걱정했다.“그럼, 보름만 쉬게 드릴게요. 보름 동안 회사 일은 신경 안 써도 될 거에요. 하늘이 무너져도 제가 버텨줄 테니 휴가를 잘 다녀오세요. 제가 절대로 방해하지 않을게요.”전호영에게 약점이 잡힌 고빈은 아무런 저항도 할 능력이 없다.전호영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보름만 쉬는 거로 하죠.”고빈은 또 함께 웃어주면서 물었다.“그럼, 형. 방금 녹음한 거 삭제해 줄 수 있어요?”“앞으로 또 내 험담할 건가요?”고빈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그럴 리가요. 제가 말했잖아요. 저는 단지 형을 질투한 것뿐이에요. 형 말고는 아무도 우리 누나와 어울리지 않아요. 우리 누나도 형 한 사람만 좋아할 거에요. 저는 늘 사람들 앞에서 형 칭찬만 했다니까요. 못 믿으시겠으면 나가서 한 번 알아보세요. 저는 밖에서 형 험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