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별이 아무리 어리고 경박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다.동씨 가문 연회에서 여운초를 해치려 했지만 오지랖 넓은 하예정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 그때 여운별은 하예정에게 붙잡혔고 성소현이 그녀에게 약을 탄 술을 강제로 들이부었다. 약효가 발작한 여운별은 연회장에서 바로 옷을 벗고 싶은 충동이 생겨났다.그녀의 엄마가 서둘러 그녀를 집에 데려와 얼음물에 반나절이나 몸을 담게 해서야 약발이 겨우 떨어지고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반나절이나 얼음물에 몸을 담근 이유로 고열이 났고 부모님은 속상해 미칠 지경이었다.그럼에도 부모님은 그녀를 위해 앞장서주지 않았다.왜냐하면 시골뜨기 뒤에 서 있는 사람은 전태윤 대표님이니까.부모님은 그녀에게 여씨 일가의 사업이 관성에 있는 건 아니지만 전씨 도련님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다. 전씨 그룹의 산업은 여러 도시에 널리 분포되어 있어 전씨 도련님의 심기를 건드리기만 하면 전씨 그룹에서 여씨 그룹의 장사를 가로챌 것이고 여씨 일가는 큰코다칠 게 뻔하다.부모님은 그녀가 그날 밤 너무 지나쳤다고 꾸짖기까지 했다. 여운초에게 약을 탄 건 치명적인 잘못이라면서, 아무리 여운초를 망신 주어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하고 싶어도 많고 많은 방법 중에 왜 굳이 연회장에서 꼼수를 부리느냐고 가차 없이 질책했다.그렇게 하면 그녀 자신의 이미지도 망칠뿐더러 자리에 참석한 사모님들이 그녀가 심성이 악하다고 생각해 앞으로 좋은 시댁을 만나기도 힘들다.여운별은 그때 처음 전태윤의 강대함을 깨달았다. 자신을 제일 사랑하는 부모님조차 이토록 괴롭힘을 당했는데 대신 나서줄 수 없다니, 전태윤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사람이었다.하예정은 그녀를 차갑게 째려보며 더 기고만장하게 말을 내뱉었고 이에 여운별은 살짝 위축됐다.“야 이 촌년아, 너 딱 기다려!”여운별은 하예정에게 으름장을 놓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는데 갈 때 일부러 꽃가게 문 앞에 놓인 화분 몇 개를 발로 차버렸다.하예정은 그녀의 두 다리를 확 분질러버리고 싶었다.전에
여운초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정 씨가 이렇게 믿으시니 그럼 제가 한번 예쁘게 만들어볼게요.”그녀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하예정을 위해 예쁜 꽃다발을 만들기 시작했다.하예정은 숙련된 그녀의 솜씨에 참지 못하고 물었다.“운초 씨, 꽃 종류마다 위치를 숙지하고 있죠?”여운초는 꽃꽂이를 하며 그녀에게 대답했다.“저는 앞이 안 보이다 보니 외울 수밖에 없어요. 점원에게 부탁해 매번 물건을 들여올 때마다 종류대로 꽃을 나누고 저에게 일일이 위치를 알려주고 있어요. 가게 연지도 몇 년이 돼서 위치를 거의 다 숙지하고 있으니 오차가 없을 거예요.”하예정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떠보듯이 물었다.“운초 씨 눈 치료 가능한가요?”여운초의 미소가 살짝 가라앉았다.“저는 큰 병을 앓아서 실명하게 됐어요. 그해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실명이 뭐가 대수겠어요, 살아있음에 감사해야죠.”갑작스러운 실명에 그녀는 하마터면 이성을 잃을 뻔했다.하지만 마음으로 이 세상을 들여다보니 인심이 더 잘 보였다. 가끔 보면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 마음이었다.하예정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지금은 의학이 발달해서 여건이 허락한다면 기회를 봐서 눈을 치료하세요. 시력을 되찾을 수도 있잖아요.”“저희 고모는 줄곧 제 눈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수년간 저를 데리고 많은 안과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여전히 이대로예요.”그녀에겐 다행히 걱정해 주는 고모가 있다.고모가 셋인데 막내 고모랑 아빠가 사이가 제일 좋아서 여운초도 예뻐해 주고 있다. 나머지 두 고모는 새아빠와 친하게 지낸다. 여씨 그룹의 실세라 돈도 있고 세력도 있어서 당연히 그에게 매달리는 거겠지.하예정은 미처 말을 잇지 못했다.“걱정 안 하셔도 돼요, 예정 씨. 저는 인제 실명한 지 십 년째라 어둠에 진작 적응됐어요. 익숙한 환경 속에선 지팡이 없이도 잘 살 수 있어요.”여운초가 되레 하예정을 위로했다.그녀는 하예정을 위해 꽃을 다 고른 후 숙련된 솜씨로 예쁘게 포장해서 하예정에게
하예정은 기어코 4만 원을 여운초의 손에 쥐여줬고 여운초는 지폐를 만지작거리더니 그중 두 장을 하예정에게 돌려줬다.“그럼 절반만 받을게요, 예정 씨.”둘은 아직 친해지지 않아 그다지 친분이 없어 하예정도 더는 고집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운초가 준 2만 원을 받으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운초 씨, 고마워요. 가게 꽃들이 다 너무 이쁘네요. 나중에 필요할 때 운초 씨 가게로 와서 꽃을 사야겠어요.”여운초도 가볍게 웃었다.“언제든지 환영이에요. 앞으로 예정 씨 필요할 때 미리 전화 주시고 누구한테 선물할지 알려만 주시면 제가 예쁘게 만들어드릴게요. 예정 씨는 가게 와서 꽃만 받아가시면 돼요.”그녀는 카운터 앞으로 돌아가 책상을 짚으며 계산대의 서랍을 열고 명함 한 장 꺼내 하예정이 있는 방향으로 공손하게 건넸다.“예정 씨, 이건 제 명함이에요.”하예정이 다가와 명함을 받으며 말했다.“그럼 앞으로 필요할 때 운초 씨한테 전화할게요. 저 이만 가요.”“네, 조심히 들어가세요.”여운초는 다시 책상을 집고 카운터에서 나와 하예정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 그녀가 차에 오르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서 묵묵히 손짓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하예정은 꽃다발을 조수석에 놓고 안전벨트를 맨 다음 여운초에게 말했다.“얼른 들어가세요, 운초 씨.”여운초가 활짝 미소 지었다.하예정의 차가 멀어져 가는 소리를 들은 후에야 그녀도 가게에 들어갔다.몇 분 후 하예정은 여운별이 ‘똥차’라고 맹비난했던 차를 몰고 전씨 그룹으로 향했다.전태윤의 차고에 고급 차가 매우 많다. 밸런타인데이에 그녀에게 선물한 새 차도 이 안에 있지만 하예정이 그때 안 받았고 부부가 화해한 후에도 그녀는 차를 바꾸지 않았다.이 차는 전태윤이 선물한 첫차라 그녀에게 의미가 남다르다.전태윤도 그녀에게 차를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무슨 차를 타고 다니든 그녀는 영원히 전태윤의 부인이니까.전씨 그룹에서 구세주로 불리는 대표 사모님이 오시자 한길 막힘 없이 대표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제 막 문을
전이진이 말했다.“나 지금 막 당신네 대표님과 업무를 상의하다가 마침 마주친 거잖아. 내 형수님이기도 한데 맛있는 음식을 해오시면 도련님으로서 많이 먹진 않아도 좀 맛볼 수는 있잖아.”조 비서가 더 크게 웃었다.“그러니까 대표님이 밀쳐버리신 거죠.”감히 호랑이 입에서 음식을 뺏어가려 하다니, 부대표가 하도 대표님 동생이라 사소한 일로 얼굴 붉히는 일이 없다.전이진이 입을 삐죽거렸다.“와이프 있는 게 뭐 그리 대단해? 누군 뭐 장가 못 가는 줄 아나 봐.”“부대표님도 장가가시면 매일 도시락 싸주시는 아내분이 생길 테니 그땐 우리 같은 솔로들을 실컷 따돌리세요.”전이진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할머니는 그에게 신붓감으로 장님을 골라주셨으니 도시락을 싸주기는커녕 되레 그가 와이프에게 밥을 지어줘야 할 듯싶다.“소 이사님은 요즘 얼굴이 화사하고 발걸음이 다 가벼워진 걸 보니 사랑의 힘이 대단하긴 한가 봐요.”전이진은 조 비서 앞에 다가가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여자친구부터 찾고 나서 내게 그런 말을 해.”조 비서도 아직은 솔로이다.“난 이사님이랑 안 비교해. 이사님은 가장 운 좋은 분이야.”소정남과 심효진은 어떠한 역경도 겪지 않고 바로 함께하게 되었고 양가 부모님들도 두 사람을 결혼시키지 못해 안달이니까.심씨 일가는 소씨 일가보다 조건이 달리지만 그렇다고 가난한 집안은 아닌지라 다 같은 재벌 가문에 속한다. 게다가 심효진의 고모는 김씨 일가의 사모님이니 심효진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다.소정남과 심효진은 집안 조건이 대등하고 둘은 또 다 가십거리에 관심이 많다.전이진은 할머니가 장님 신붓감을 골라준 걸 안 이후로 소정남에게 부탁해 여운초의 조상 3대까지 낱낱이 파헤칠 심정이었지만 끝내 참았다. 소정남이 그의 일을 안줏거리로 삼을까 봐 꾹 집어삼켰다.하지만 전이진은 알까. 소정남이 작정하면 언제든지 그의 일을 파헤칠 수 있다는 것을...사무실에서 전태윤은 동생을 밖에 내쫓은 후 자연스럽게 하예정의 손에서 꽃다발을 건네받고 싸늘한 표정도
하예정은 정교한 봉투를 건네받으며 활짝 웃었다.“뭔데요?”전태윤이 소파에 앉으며 가볍게 웃었다.“보면 알아.”그는 도시락 뚜껑을 열고 와이프가 해준 사랑의 저녁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하예정은 힐긋 보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다 기초제품이네요. 소현 언니가 준 것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전태윤은 질투에 눈이 멀어 아내가 성소현이 준 화장품을 쓰는 걸 원치 않았다. 하여 터프하게 기초제품을 한가득 샀지만 줄곧 선물하지 못했다.하예정도 그가 그냥 해본 말인 줄 알고 계속 성소현이 준 기초제품들을 써왔다. 전에 혼자 샀던 브랜드 제품들보다 피부에 훨씬 잘 맞았고 역시 돈의 힘이 크긴 컸다.“앞으론 내가 준 것만 써.”전태윤은 사실 여자들이 쓰는 기초제품 브랜드를 잘 모른다. 여자에게 기초제품을 선물한 적이 없으니까. 엄마한테 사적으로 물어보고 엄마의 추천으로 몇몇 브랜드 제품을 골랐다.그의 엄마는 평생 재벌가에서 지내다 보니 사용한 제품도 최상의 제품일 테니까.하예정은 그가 제일 사랑하는 여자이니 당연히 가장 좋은 제품을 써야 한다.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네, 앞으론 태윤 씨가 주는 것만 쓸게요.”“예정아, 함께 먹을래?”“아니요, 일 인분만 준비했어요. 아까 이진 도련님 봤을 때 함께 드시면 분명 모자랄 것 같았는데 다행히 눈치껏 나가주시더라고요.”‘형수님, 저는 형한테 쫓겨난 거잖아요.’전태윤이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걔가 눈이 멀지 않았다면 남아서 우리 둘 사이를 훼방하진 않겠지.”하예정은 실소를 터트렸다.그가 맛있게 먹어주자 하예정도 기분이 좋아져 여운초 꽃가게에 갔다가 여운별을 만난 일까지 얘기했다.“운초 씨는 진짜 앞이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연기가 아니었어요. 큰 병을 앓고 나서 실명했대요.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하더라고요. 막내 고모가 수년간 운초 씨를 데리고 갖은 안과 병원에 돌아다녔는데 결국 시력을 회복하지 못했대요. 여운별 씨는 악마가 따로 없어요. 자매지간에 저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처
“분명 우리한테 손 내밀 때가 있을 거야.”전태윤은 점사를 보듯 미래를 예지한 것처럼 말했다.하예정은 실소를 터트렸다.본인도 나무토막처럼 딱딱하면서 동생들이 도움을 청한다고 대체 뭘 도울 수 있을까? 죄다 불필요한 아이디어만 제공해 괜히 더 번거로워질 뿐이다.“여보 나 안 믿네?”“그럴 리가요.”전태윤이 그녀를 힐긋 쳐다봤다.“두고 봐. 힘들 땐 분명 이 큰형한테 구원의 손길을 내밀 거야. 내가 도움을 못 주더라도 나한테 고민은 하소연할 게 뻔해.”여덟 도련님은 전태윤을 아주 존경하고 믿는다. 그걸 봐서라도 하예정은 전태윤의 예언을 믿기로 했다.“여운별 씨는 당신이랑 안 다퉜지?”하예정은 여운별을 만났고 그 집 두 자매가 사이가 안 좋다고만 말했을 뿐 자신이 여운별과 다퉜다고는 하지 않았다.여운별이 아무리 기고만장해도 하예정을 건드려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전태윤은 하예정에게 몰래 경호원을 파견해 암암리에서 그녀를 지켜주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하예정은 결국 여운별이 버릇없게 군 사실을 전태윤에게 알렸다. 괜히 또 뭘 숨겼네, 가족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둥 갖은 원망을 퍼부을까 봐.전태윤은 그녀의 말을 듣더니 낯빛이 확 어두워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는 하예정 앞에 다가와 롤스로이스 차 키를 그녀 손에 쥐여주며 박력 있게 말했다.“예정아, 이 차는 앞으로 네가 타. 다음에 또 여운별 만나면 그때도 똥차라고 말할지 지켜봐 봐. 어딜 감히 겁도 없이 네 차를 짓부수겠다고 거만을 떨어!”여 대표는 직접 찾아와 아내와 딸 대신 정중하게 사과했는데 둘째 딸 여운별은 여전히 교훈을 섭취하지 못한 듯싶다. 되레 하예정이 이를 박박 갈게 하다니.죽고 싶어 환장한 게 틀림없다!“미친개가 사람 문다고 똑같이 물어버리게요?”하예정은 차 키를 그에게 돌려줬다.“난 내 똥차가 좋아요.”“예정아.”전태윤이 나지막이 그녀를 불렀다.“딴 사람들이 널 얕잡아보는 거 나 너무 싫어.”“한 사람을 얕잡아보는 기준이 그 사람이 타고 다니는 차가
전태윤이 아무리 아쉬워해도 하예정은 결국 전씨 그룹을 떠나 가게로 돌아왔다.그녀가 돌아왔을 때 학생들이 야간 자율 학습을 시작하지 않아 가게가 매우 바빴다.소정남도 아직 안 와서 하예정과 심효진이 한참 바삐 돌아쳤다. 소정남이 서점 문 앞에 도착했을 때 학생들도 곧 자율 학습 시간이 다 되어 가게에 손님이 확 줄어들었고 하예정이 홀로 가게를 돌볼 수 있었다.소정남은 올 때마다 심효진에게 꽃 한 다발 선물한다.심효진도 그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며 두 사람 모두 섬세하게 서로를 잘 챙긴다.천생연분이란 바로 이 두 사람을 말하는 듯싶다.“예정아, 우리 밥 먹으러 갈게.”심효진은 가방을 챙기고 소정남이 선물한 꽃다발을 안은 채 활짝 웃으며 하예정에게 말했다. 하예정이 대답한 후 그녀도 안심하고 소정남과 함께 가게를 나섰다.하예정은 홀로 좀 더 바삐 돌아쳤다. 학생들이 자율 학습하러 학교로 돌아간 후에야 그녀는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덮여서 카운터에 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예정아.”옆 가게 정씨 아저씨가 접시를 들고 음식을 먹으면서 안으로 들어왔다.“아저씨, 인제 저녁 드세요?”“그래, 너도네.”정씨 아저씨가 웃으며 물었다.“효진이는 나갔어? 꽃다발 들고 너희 가게로 자주 오는 잘생긴 남자분과 함께 가던데 남자친구야?”“네, 맞아요.”하예정은 정씨 아저씨에게 자리를 안내했지만 아저씨는 앉지 않았다.“그냥 한번 들러본 거야. 너랑 얘기도 나누고.”그는 목소리를 낮추고 담담하게 웃었다.“저번에 내기한 일 너랑 말했었잖아. 내 비상금을 전부 걸었는데 크게 벌었지 뭐야. 하하하, 네가 전씨 일가 사모님이 되어도 이 서점은 정상 운영할 테고 너도 늘 똑같이 출근한다고 했거든. 그런데 다들 안 믿는 거야. 네가 전씨 일가 사모님이 되면 집에서 사모님 노릇만 할 거라며 더는 얼굴을 내밀지 않을 거라고 하더니 내가 이겼어. 전부 다 졌다고, 하하하. 아쉽게도 내 비상금이 너무 적어서 더 많이 벌진 못했어.”하예정은 하마터면 사레 걸릴 뻔했다.그
정씨 아저씨가 말했다.“하긴... 마누라한테 말 안 하길 다행이지.”“아주머니가 매달 주시는 용돈이 적은 건 맞아요. 다만 아저씨도 평상시에 다른 지출이 있으면 아주머니가 거의 다 내주시잖아요. 양가 부모님들 생활비도 그렇고 경조사 비용에 아이 키우는 돈까지 모든 지출을 아저씨가 신경 쓸 필요 없으니 사실은 아저씨가 버신 거예요. 돈 관리하는 사람이야말로 제일 수고하죠.”정씨 아저씨는 밥을 먹으며 말했다.“맞아. 그래서 마누라도 돈 관리하는 걸 좋아하니 내가 그러라고 했어. 전에 내가 돈 관리할 땐 가게 장사가 아무리 잘 돼도 1년 동안 남는 돈이 400만도 안 됐거든. 마누라가 돈 관리한 이후로 1년에 무려 2000만 원이나 저축할 수 있어. 나도 편하고 집에 적금도 늘어나고 게다가 마누라까지 매우 공평한 사람이라 제 친정 식구들만 편애하진 않아. 양가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이 똑같아. 아주 칼 같다니까. 우리 부모님도 며느리를 엄청 마음에 들어 하셔. 예정아, 만약 우리 부부가 싸우면 그땐 온 집안이 모여들어 날 질책할 거야.”정씨 아저씨는 원망을 늘어놓는 것 같지만 실은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자랑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남들처럼 어마어마한 부잣집은 아니지만 아내가 현명하여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낸다.정씨 아주머니는 말만 날카롭게 하지 실은 누구보다 마음 여린 여자다.게다가 아주머니의 대인관계는 하예정도 따라 배우고 싶을 지경이다.“여보, 여보.”정씨 아주머니가 옆 가게에서 남편을 불렀다.정씨 아저씨는 재빨리 대답하곤 나지막이 하예정에게 말했다.“예정아, 꼭 비밀로 해야 해. 나 이만 간다.”하예정이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정씨 아저씨는 곧바로 가게에 돌아가며 아내에게 호응했다.아저씨가 나간 후 하예정도 곧장 배불리 저녁을 먹고는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온 후 이웃 가게에 놀러 다니면서 다들 서로 몇 년 알고 지낸 사이라 가볍게 담소를 나눴다.이웃들은 하예정이 전씨 일가 사모님이 되면 그들과 멀리할 줄 알았는데 전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