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 한마디에 하지연은 울음을 뚝 그쳤다.그녀도 지금의 허연후가 예전의 그 다정다감한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다.하여 그의 앞에서 너무 버릇없게 굴면 안 된다.하지연은 재빨리 눈물을 닦은 뒤 허연후의 팔짱을 끼고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그녀는 한지혜와 고인우가 한창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화기애애해 보였는데 한지혜가 활짝 웃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지연은 허연후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오빠, 저 사람이 바로 고인우인데 지혜 언니를 좋아하고 있거든요
그의 물음에 한지혜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저에 대한 기억이 아예 없는 사람한테 굳이 지나간 일을 말해줘야 하나요? 걱정하지 마요. 저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매달릴 만큼 속 넓은 사람이 아니니까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다시 허연후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허 대표님의 요구대로 술도 이미 권해드렸는데 저는 이제 다른 손님들을 맞이해야 해서요. 먼저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급히 자리를 떴다.하지만 돌아선 그녀의 눈가는 어느새 빨개져 있었다.눈앞의 남자는
“지혜 언니, 고마워요.”한지혜는 신영에게 긴 셔츠와 생강차 한 잔을 부탁했다.하지만 하지연은 생강차를 마셔도 여전히 배가 아픈지 핼쑥해진 얼굴로 한지혜를 끌어안고 다시 말했다.“지혜 언니, 아무리 생강차를 마셔도 저한테는 효과가 없는 것 같은데 집에 가서 진통제나 먹어야겠어요. 예전에도 자주 생리통이 있었는데 심할 때마다 엄마랑 같이 병원에 가곤 했어요.”한지혜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그 정도로 심각했었어? 그럼 빨리 집에 가봐. 여긴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서 안 되겠다. 집에 가서 전기장판 켜놓고 핫팩도 꼭 붙이고
한지혜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다가 또다시 허연후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다정했던 그의 눈빛에는 더 이상의 따뜻함은 사라진 채 오직 차가운 한기만 돌았다.그 냉정함 때문에 한지혜는 그가 한없이 낯설게 느껴졌다.하지만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그럴 리가요. 단지 연후 씨랑 단둘이 있기 싫어서요.”허연후는 그녀의 까맣고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 쳤다.“제가 지혜 씨에 대한 기억을 잃은게 엄청 원망스러운가 봐요?”한지혜가 그를 힐끔 쳐다보며 답했다.“또 다시 허연후 씨랑 얽히는게 싫었을 뿐이에
따뜻한 숨결이 전류가 흐르듯 허연후의 배를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찌릿찌릿한 느낌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한지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소리로 위로했다.“괜찮아요. 누가 무단 횡단을 하는 바람에.”갑자기 들려오는 익숙한 말투에 한지혜는 잠시 멍해졌다.순간 허연후가 기억을 잃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매번 위험에 처할 때마다 그는 한지혜를 이토록 다정하게 위로해 줬다.한지혜는 익숙한 그의 체향을 맡다보니 또다시 예전에 두 사람이 같이 보냈던 시간들이 머리속에 떠오르면서 점점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
한지혜는 방에 들어간 뒤 약상자를 꺼내 신하준의 팔을 붕대로 감아줬다.“오늘 큰 도움 주셨는데 나중에 밥 한 끼라도 살게요.”신하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근데 내가 아무리 이렇게 도와줘도 그때 그 일에 대해서는 아직 용서해 줄 마음이 없잖아.”“그 일은 하준 씨 잘못도 아닌데요. 하준 씨 탓한 적 없어요.”“근데 우리 어머니한테 맞았잖아. 그 후로부터 계속 너한테 미안한 마음은 큰데 뭐라고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어.”한지혜가 털털하게 웃더니 그에게 다시 말했다.“하준 씨 덕분에 우리 지연이가 심장 수술
격렬한 정사가 끝나고, 조수아는 옅게 배어나온 땀을 한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육문주는 그런 조수아를 품에 안은 채 마디가 분명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오관을 덧그렸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깊고 매혹적인 눈매에 전에 없는 다정함을 담고 있었다.조수아는 몸이 혹사될대로 되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순간 사랑을 받고 있다는 기분 때문에 마음만은 충만했다.그러나 그녀의 정욕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육문주의 휴대폰이 울렸다.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본 조수아는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육문주의 팔을 끌어안고 있는 손에 힘이
육문주의 낯빛이 삽시간에 싸늘해졌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색 눈동자가 조수아에게 단단히 박혔다.“내가 결혼은 안 된다고 했잖아. 그 정도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애초에 내 제안을 거절했어야지.”조수아의 눈가에 옅은 붉은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그때는 우리 둘만의 감정이었는데 지금은 세 사람이 엮였잖아.”“걔는 너한테 위협이 안 돼.”자조 섞인 웃음이 지어졌다.“그녀의 전화 한 통에 당신이 내 생사는 상관도 안 하고 나를 내팽개치는데. 말해 봐, 문주 씨. 대체 어떻게 해야 그걸 위협이라고 쳐주는지.”육문주의 눈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