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문주의 말에 허연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그럴리가 없어. 그리고 너희들이 그랬잖아. 이 일이 터지기 전에 우리 두 사람이 다시 합치기로 했다고. 근데 어떻게 사귄 적이 없을 수 있어?”“예전에 둘이 썸을 탄 건 맞는데 단지 섹파였거든. 그리고 서로 좋아하면서도 인정하지 않다가 나중에 네가 진심으로 지혜 씨를 좋아하게 되었어. 근데 이미 여러 번 지혜 씨한테 상처도 주고 일부러 다른 여자랑 썸타면서 약 올리기까지 했어. 여기서 중요한 건 지혜 씨는 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찜해두셨던 손주며느리라는 사실이야. 근데
천우는 한껏 의기양양한 얼굴로 육문주에게 말했다.“아빠, 들었죠? 계속 저를 쫓아냈다가는 오히려 아빠가 쫓겨날지도 몰라요.”천우의 기분이 갑자기 바뀐 모습에 육문주는 미간을 찌푸리고 조수아에게 물었다.“여보, 계속 이렇게 봐주면 버릇 나빠져. 방금 천우가 연기한 거라고.”조수아는 천우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에게 답했다.“근데 천우의 말도 틀린 건 아니잖아. 우리가 허비했던 그 2년이라는 시간은 천우한테 빚진 거나 마찬가지야. 그 일만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이제 천우가 더 이상 억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곧 두 아기
한지혜는 한창 촬영장에서 바삐 일하고 있었다.뜨거운 햇빛 때문인지 목이 계속 말라왔지만 촬영 일정에 영향 주기 싫었던 한지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묵직한 사극 의상을 입고 촬영을 강행했다.아까부터 한 장면만 지금 여러 번 찍고 있던 와중에 감독이 드디어 오케이 사인을 건넸다.“컷! 오케이!”순간 현장에서 커다란 환호가 터져 나왔다.이때, 신영이 급히 뛰어오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지혜에게 말했다.“언니, 물 좀 마셔요. 날씨도 더워죽겠는데 감독은 이 장면만 스무 번도 넘게 찍은 것 같아요.”한지혜는 건네준 물을 벌컥벌
허연후는 냉큼 그녀의 손에서 텀블러를 가져가 열어주더니 한잔 따라서 다시 그녀에게 건넸다.“마셔요.”한지혜가 커피를 마시려는 순간 뒤에서 웬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혜 씨, 다음 씬에서 비를 맞는다고 하는데 아직 지혜 씨 다리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잖아요. 아니면 제가 감독님한테 말씀드려서 촬영을 며칠 미룰까요?”“아니요. 상처는 이미 다 나아서 괜찮아요.”이때, 배우진이 한지혜에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시 물었다.“제가 어제까지만 해도 매니저분이 지혜 씨한테 약 발라주는 걸 봤는데 벌써 다 나았다고요? 혹시나
한지혜는 온몸에 힘이 빠지더니, 다리에 있던 상처도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더군다나 스물일곱 번의 촬영 때문에 목소리까지 쉬어버린 한지혜는 힘없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허연후 씨, 아파요.”한지혜의 ‘아프다’라는 말에 더욱 신경이 쓰인 허연후는 안심하라는 듯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옷 갈아입고 나와요. 집에 데려다줄게요.”말을 마친 허연후는 한지혜를 안고 휴게실에서 나오며 천우를 불렀다.“천우야, 따라와.”천우는 짧은 다리로 곧장 달려와 한지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이모, 많이 힘들어요?”한지
천우의 따뜻한 말에 한지혜의 통증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한지혜는 웃으며 천우의 볼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우리 천우 참 마음이 따뜻한 남자구나. 이모 딸, 복 받았어.”천우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이모. 앞으로 정말 잘할 거예요. 기억을 잊는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천우의 말을 듣던 허연후는 약을 바르던 손을 잠시 멈칫하더니 차가운 눈으로 천우를 노려보며 말했다.“말속에 말이 있네?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천우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말속에
한지혜는 조수아가 감정이 격해지자 웃으며 달래듯이 말했다.“너한테서 배운 건데? 너 육문주랑 헤어진 2년 동안 몸 챙기면서 일했어? 몇 번이나 쓰러졌으면서.”한지혜의 말을 들은 육문주는 마음이 아파 조수아를 품에 안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처음 듣는 소리네? 왜 말 안 했어?”“다 지난 일인데 꺼내서 뭐해.”육문주는 머리를 숙여 조수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나 마음 아파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랬어?”두 사람의 달달한 모습을 보고 있던 허연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만 좀 하지? 애
말을 마친 허연후는 한지혜의 양팔을 꽉 잡은 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확실히 다친 곳 없어요? 한번 봐봐요.”허가은은 허연후가 자기를 대하는 차가운 태도와 한지혜를 대하는 걱정스러운 태도를 보더니 화가 치밀어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목숨까지 바쳐서 바꾸려고 했던 결과가 겨우 이런 거였다니.‘허연후, 한지혜는 기억하면서 나를 까맣게 잊은 거야?’‘한지혜도 기억하고 하지연도 기억하면서 나만 기억 못 하는 거야?’여기까지 생각한 허가은은 처음으로 겪어보는 죽을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허가은은 허약한 목소리로
육천우는 큰 손으로 허나연의 머리를 쓰다듬고 부드럽게 말했다.“그래. 오빠 왔어.”육천우의 대답에 코끝이 찡해진 허나연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억울한 듯 말했다.“천우 오빠, 왜 지금까지 나 보러 안 온 거야? 나연이가 싫어진 거야?”허나연의 안쓰러운 모습에 마음이 아파진 육천우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날 싫다고 그랬었잖아. 파혼까지 해달라고 소리 지른 건 너야.”허나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글썽인 채 육천우를 바라보았다.“천우 오빠, 삼 년 전에 했던 말을 취소할게. 파혼하는 거 싫어. 결혼하고 싶어. 그러
육예람은 허나연을 끌고 룸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오색 띠가 흩날렸다.친구 중 한 명이 다가오며 말했다.“나연아, 너의 천우 오빠가 돌아온다며? 축하해.”허나연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육천우 얘기 꺼내지도 마. 속이 갑갑해지려 하니까.”“갑갑할 게 뭐가 있어? 잘생겼지 능력 좋지. 겨우 26살에 M 국 금융계를 휩쓸었잖아. 개인 재산이 이미 네 아버지를 넘었다고 들었는데? 내가 만약 이렇게 좋은 남편이 있으면 자다가도 웃다가 깰 거야.”“그렇게 부러우면 네가 가질래?”“싫어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깬 허나연은 눈을 반쯤 감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기 너머에서 육예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연아,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떤 걸 먼저 들을래?”허나연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나쁜 소식.”“너의 약혼자이자 나의 오빠가 곧 돌아온대. 너 앞으로 우리랑 같이 맘 편히 못 놀겠다. 하하하. 어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지 않아?”찬물을 끼얹는듯한 소식에 허나연은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육천우가 돌아온다. 사사건건 간섭하며 아무것도 못 하게 구속하는 그가 돌아온다.‘그럼 앞으로 나이트는
“건강하고 멋진 남편으로 네 앞에 서겠다고 했잖아. 서연아, 지난번 청혼은 너무 성급했어. 오늘 양가 부모님 앞에서 다시 한번 정중하게 청혼할게.”말을 마친 뒤 박서준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더니 안에서 청록색 팔찌를 꺼내 쥐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서연아, 이건 외할아버지께서 장가갈 때 아내에게 주라고 남긴 팔찌야. 이걸 착용하면 너는 이제 박씨 집안 며느리가 되는 거고 박서준의 아내뿐만 아니라 육 씨 집안 둘째 며느리가 되는 거야. 이 모든 신분을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됐어?”정상적으로 걷고 있는 박서준 때문에 놀란 마
곽서연은 근간에 계속 여러 곳을 다니며 무대를 돌았던 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박서준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들었다.얼마나 잤는지 누군가 귀를 깨물었고 곧이어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잠꾸러기야, 집에 도착했어.”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곽서연은 뜨거워진 얼굴을 박서준의 어깨에 몇 번 문지르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삼촌, 서프라이즈는요?”박서준은 웃으며 곽서연의 이마에 뽀뽀했다.“눈 감아. 같이 어디 가자.”말을 마친 박서준이 넥타이를 풀어 곽서연의 눈을 가리자 그녀의 궁금증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박서준을 밀어낸 곽서연의 눈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욕망으로 일렁였다.“제가 나가서 해장국을 가져다줄게요. 삼촌이 방금 취한 척 했다는 걸 눈치 못 채게 하세요. 안 그러면 정말 오늘 어떻게 될지 몰라요.”박서준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여보 말 들을게.”박서준은 ‘여보’라는 호칭을 전혀 어색함 없이 불렀지만, 곽서연은 듣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 그의 가슴을 때리며 말했다.“함부로 부르지 말아요. 저 아직 아니거든요.”“조만간 될 거잖아. 하루빨리 박서준의 아내로 살면 누릴 수 있는 것도 많
입안에 들어온 물건을 알아차린 곽서연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곽서연은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입안의 물건을 내뱉자 핑크빛 다이아몬드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곽서연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삼촌, 이거 나한테 주는 거예요?”박서준은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당연한 거 아니야? 너 말고 또 누구 줄 사람 있어?”“하지만 우리 이제 겨우 시작한 건데, 이런 선물은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내 모든 재산을 전부 너한테 넘겼는데, 설마 나랑 그만둘 생각을 하는 거야
“내 아내를 내가 아껴줘야지 그럼 누가 아껴줘?”“내 아내를 내가 안 보면 누가 봐요?”말을 마친 천우는 조수아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30분 후, 두 사람은 산부인과 병원에 도착했다. 한지혜는 이미 분만실로 옮겨졌고 허연후도 동행했다.두꺼운 문 너머로 한지혜의 외침이 들려왔다. 조수아는 의아한 듯 물었다.“무통 주사를 안 맞은 거예요? 왜 저렇게 아파해요?”옆에 서 있던 윤다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무통 주사가 애한테 나쁘다고 우겨서 끝내는 안 맞고 들어갔어. 누가 지혜를 이기겠니.”“고작 그런 거로 애들 영
곽서연은 놀라서 순간적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집안 사람들이 전부 다 있는데 테이블 밑에서 몰래 입을 맞추다니.갑작스러운 스킨십에 곽서연은 가슴이 움찔했다. 그녀는 놀라서 즉시 박서준을 밀어내고 눈에 화를 가득 담은 채 그를 노려보았다.그러나 박서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가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박주영은 곽서연의 안색을 보고 즉시 물었다.“서연아, 몸이 안 좋아?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곽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좀 더워서 그래요. 저 잠깐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