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허연후는 한지혜의 양팔을 꽉 잡은 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확실히 다친 곳 없어요? 한번 봐봐요.”허가은은 허연후가 자기를 대하는 차가운 태도와 한지혜를 대하는 걱정스러운 태도를 보더니 화가 치밀어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목숨까지 바쳐서 바꾸려고 했던 결과가 겨우 이런 거였다니.‘허연후, 한지혜는 기억하면서 나를 까맣게 잊은 거야?’‘한지혜도 기억하고 하지연도 기억하면서 나만 기억 못 하는 거야?’여기까지 생각한 허가은은 처음으로 겪어보는 죽을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허가은은 허약한 목소리로
‘정말 내가 이런 망나니 같은 짓을 했다고?’허연후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것참 개자식이네요.”허연후의 말에 한지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허연후 씨 보기에도 그렇죠? 예전에 그렇게 나쁜 놈이었어요. 그뿐만 아니죠. 직장동료와 썸을 타면서 내 화를 돋워 나더러 후회하면 떠나라고 한 적도 있어요. 내 앞에서 내가 여기저기 부족하다고 혼자 살더라도 나하고는 결혼 안 한다고 해서 우리 할아버지께서 화병까지 났었죠. 그래서 지금 오히려 잘된 것 같아요. 예전에 안 좋았던 기억도 다 잊었잖아요. 이젠 각자 갈 길을 가면서 각자 행
허연후는 한지혜를 안고 위층에 올라가 침대에 눕힌 뒤 이불까지 덮어주고는 몸을 일으켜 방안을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았다.한지혜는 그런 허연후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뭘 찾는 거예요?”허연후는 눈썹을 찡그린 채 한지혜를 보며 물었다.“집에 왜 나하고 연관된 물건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오피스텔에도 없고 여기에도 없네요. 한지혜 씨, 내가 기억을 잃은 틈을 타 날 깔끔하게 잊고 싶었던 거예요?”허연후의 물음에 한지혜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무슨 물건이요?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요? 아니면 허연후 씨가
한지혜의 말이 끝나자 방문이 열리더니 하지연의 청순한 얼굴이 드러났다.“지혜 언니, 우리 오빠가 또 언니 화나게 했어요?”한지혜는 의아해하며 물었다.“지연아, 여긴 어떻게 왔어?”하지연은 웃으며 달려가 걱정되는 눈으로 한지혜를 바라보며 말했다.“할아버지한테서 언니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보러 왔어요. 지혜 언니, 우리 오빠 때문에 화나서 아픈 거예요?”“아니야, 상처에 염증이 생겨서 열이 낫던 거야. 다 나았어.”하지연은 까만 눈을 몇 번 굴리더니 물었다.“우리 오빠가 간호한 거예요?”한지혜는 회피하지 않고 솔직히 말
허연후가 고개를 돌리자, 품에 꽃다발을 안고 문 앞에 서 있는 신하준이 보였다.신하준은 검은색 정장에 흰색 셔츠를 입고 옷깃에는 특별히 정교한 사파이어 브로치까지 하고 있었다.브로치는 매고 있는 넥타이와 같은 색 계열이었다.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장착하고 있었다.딱 봐도 직장 엘리트이자 뭔가 있어 보이는 나이 많은 남자였다.신하준의 모습을 본 허연후는 화를 참지 못한 채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잘못 찾아오셨네요. 한지혜 씨는 여기 없어요. 여기 저의 집이거든요.”신하준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허연
신하준은 찻잔을 받아 들며 정중하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신하준이 찻잔을 내려놓으려는 찰나 허연후가 말을 이었다.“신 대표님, 안 마셔요? 나의 다도 실력을 못 믿는 거예요? 이 방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다도의 대가거든요. 차를 우려내는 기술이 아주 숙련되어 있어요.”허연후의 말에 웃음이 터진 신하준은 눈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허연후를 보며 말했다.“제가 보기에도 허 대표님은 확실히 다도의 대가 같네요.”말을 마친 신하준은 고개를 숙여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감탄하며 말했다.“차 맛 좋네요. 그런데 허
격렬한 정사가 끝나고, 조수아는 옅게 배어나온 땀을 한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육문주는 그런 조수아를 품에 안은 채 마디가 분명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오관을 덧그렸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깊고 매혹적인 눈매에 전에 없는 다정함을 담고 있었다.조수아는 몸이 혹사될대로 되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순간 사랑을 받고 있다는 기분 때문에 마음만은 충만했다.그러나 그녀의 정욕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육문주의 휴대폰이 울렸다.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본 조수아는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육문주의 팔을 끌어안고 있는 손에 힘이
육문주의 낯빛이 삽시간에 싸늘해졌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색 눈동자가 조수아에게 단단히 박혔다.“내가 결혼은 안 된다고 했잖아. 그 정도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애초에 내 제안을 거절했어야지.”조수아의 눈가에 옅은 붉은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그때는 우리 둘만의 감정이었는데 지금은 세 사람이 엮였잖아.”“걔는 너한테 위협이 안 돼.”자조 섞인 웃음이 지어졌다.“그녀의 전화 한 통에 당신이 내 생사는 상관도 안 하고 나를 내팽개치는데. 말해 봐, 문주 씨. 대체 어떻게 해야 그걸 위협이라고 쳐주는지.”육문주의 눈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