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숨결이 전류가 흐르듯 허연후의 배를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찌릿찌릿한 느낌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한지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소리로 위로했다.“괜찮아요. 누가 무단 횡단을 하는 바람에.”갑자기 들려오는 익숙한 말투에 한지혜는 잠시 멍해졌다.순간 허연후가 기억을 잃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매번 위험에 처할 때마다 그는 한지혜를 이토록 다정하게 위로해 줬다.한지혜는 익숙한 그의 체향을 맡다보니 또다시 예전에 두 사람이 같이 보냈던 시간들이 머리속에 떠오르면서 점점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
한지혜는 방에 들어간 뒤 약상자를 꺼내 신하준의 팔을 붕대로 감아줬다.“오늘 큰 도움 주셨는데 나중에 밥 한 끼라도 살게요.”신하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근데 내가 아무리 이렇게 도와줘도 그때 그 일에 대해서는 아직 용서해 줄 마음이 없잖아.”“그 일은 하준 씨 잘못도 아닌데요. 하준 씨 탓한 적 없어요.”“근데 우리 어머니한테 맞았잖아. 그 후로부터 계속 너한테 미안한 마음은 큰데 뭐라고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어.”한지혜가 털털하게 웃더니 그에게 다시 말했다.“하준 씨 덕분에 우리 지연이가 심장 수술
눈빛은 깊어 보이지만 감정은 잘 드러내지 않고 있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지금처럼 허연후가 방금 한 말이 농담인지 아니면 어떠한 감정을 실어서 한 말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기 힘든것처럼 말이다.한지혜는 그를 힐끔 쳐다보고는 덤덤하게 답했다.“그렇게 깨끗이 잊은거면 허연후 씨한테는 제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나 보죠. 제 말이 맞죠?”그녀의 물음에 허연후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한지혜의 눈빛만 보아도 그녀가 지금 얼마나 슬픈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비록 외관상으로는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지만
육문주의 말에 허연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그럴리가 없어. 그리고 너희들이 그랬잖아. 이 일이 터지기 전에 우리 두 사람이 다시 합치기로 했다고. 근데 어떻게 사귄 적이 없을 수 있어?”“예전에 둘이 썸을 탄 건 맞는데 단지 섹파였거든. 그리고 서로 좋아하면서도 인정하지 않다가 나중에 네가 진심으로 지혜 씨를 좋아하게 되었어. 근데 이미 여러 번 지혜 씨한테 상처도 주고 일부러 다른 여자랑 썸타면서 약 올리기까지 했어. 여기서 중요한 건 지혜 씨는 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찜해두셨던 손주며느리라는 사실이야. 근데
천우는 한껏 의기양양한 얼굴로 육문주에게 말했다.“아빠, 들었죠? 계속 저를 쫓아냈다가는 오히려 아빠가 쫓겨날지도 몰라요.”천우의 기분이 갑자기 바뀐 모습에 육문주는 미간을 찌푸리고 조수아에게 물었다.“여보, 계속 이렇게 봐주면 버릇 나빠져. 방금 천우가 연기한 거라고.”조수아는 천우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에게 답했다.“근데 천우의 말도 틀린 건 아니잖아. 우리가 허비했던 그 2년이라는 시간은 천우한테 빚진 거나 마찬가지야. 그 일만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이제 천우가 더 이상 억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곧 두 아기
한지혜는 한창 촬영장에서 바삐 일하고 있었다.뜨거운 햇빛 때문인지 목이 계속 말라왔지만 촬영 일정에 영향 주기 싫었던 한지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묵직한 사극 의상을 입고 촬영을 강행했다.아까부터 한 장면만 지금 여러 번 찍고 있던 와중에 감독이 드디어 오케이 사인을 건넸다.“컷! 오케이!”순간 현장에서 커다란 환호가 터져 나왔다.이때, 신영이 급히 뛰어오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지혜에게 말했다.“언니, 물 좀 마셔요. 날씨도 더워죽겠는데 감독은 이 장면만 스무 번도 넘게 찍은 것 같아요.”한지혜는 건네준 물을 벌컥벌
허연후는 냉큼 그녀의 손에서 텀블러를 가져가 열어주더니 한잔 따라서 다시 그녀에게 건넸다.“마셔요.”한지혜가 커피를 마시려는 순간 뒤에서 웬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혜 씨, 다음 씬에서 비를 맞는다고 하는데 아직 지혜 씨 다리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잖아요. 아니면 제가 감독님한테 말씀드려서 촬영을 며칠 미룰까요?”“아니요. 상처는 이미 다 나아서 괜찮아요.”이때, 배우진이 한지혜에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시 물었다.“제가 어제까지만 해도 매니저분이 지혜 씨한테 약 발라주는 걸 봤는데 벌써 다 나았다고요? 혹시나
한지혜는 온몸에 힘이 빠지더니, 다리에 있던 상처도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더군다나 스물일곱 번의 촬영 때문에 목소리까지 쉬어버린 한지혜는 힘없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허연후 씨, 아파요.”한지혜의 ‘아프다’라는 말에 더욱 신경이 쓰인 허연후는 안심하라는 듯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옷 갈아입고 나와요. 집에 데려다줄게요.”말을 마친 허연후는 한지혜를 안고 휴게실에서 나오며 천우를 불렀다.“천우야, 따라와.”천우는 짧은 다리로 곧장 달려와 한지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이모, 많이 힘들어요?”한지
차유라와 말다툼이 벌어지려는 찰나 지켜보던 경호원이 다가가 제지하며 말했다.“고의로 대표님 약혼자의 헛소문을 퍼뜨리고 헐뜯는 당신들은 육엔 그룹에서 출근할 자격이 없습니다. 당장 이곳에서 나가세요.”쫓겨나는 여자들을 지켜보던 차유라는 그제야 뭔가를 깨달았다.사실 육천우는 그녀를 용서하는척하면서 이 모든 걸 직접 보면서 마음을 접기를 바란 거였다.차유라는 화가 나서 이를 악문 채 강당 위에서 다정한 눈빛으로 허나연에게 목걸이를 걸어주는 육천우를 노려보았다.간간이 들리는 축복의 소리에 이가 부서지도록 악물고 있는데 차 교수의
내연녀라는 말에도 허나연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차유라 씨, 이 시점에도 그런 말을 하는 거 보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요?”“허나연 씨, 저의 아빠가 천우의 스승이라는 걸 잊었어요? 천우가 배은망덕한 사람도 아니고 날 뭐 어떻게 할 거로 생각하는 거예요? 천우야, 안 그래?”차유라는 육천우한테 눈길을 돌렸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육천우는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허나연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자기야, 우리 일단 연회에 먼저 참가하고 차유라는 연회
육천우는 손님들 접대하느라 한 바퀴 돌고 나니 머리가 좀 어지러워지자 자리를 찾아 앉아 휴식을 취했다.혼자 앉아 있는 육천우를 발견한 차유라는 바로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천우야, 왜 그래? 술 많이 마신 거야?”육천우는 반쯤 감은 눈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머리가 좀 어지럽네.”“내가 부축할게. 위층에 올라가 좀 셔.”차유라는 복무원을 불러 함께 육천우를 부축해 위층 방으로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육천우는 침대에 쓰러져 꼼짝하지 못했고 차유라는 그런 육천우에게 다가가며 불렀다.“천우야, 천우야.”아무리 불러
허나연은 그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어머니의 명성을 희롱하는 소리를 듣고 더는 억제 할 수 없어서 홧김에 달려 나가 그 여자의 뺨을 후려쳤다.“누가 감히 뒤에서 우리 엄마를 희롱하고 있어?”“허나연, 내가 틀린 말 했어? 차유라 씨랑 육 대표님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 걸 알면서 매일 대표님 사무실에 드나들더니 내연녀가 아니면 뭔데?”허나연은 그들을 비웃으면서 말했다.“차유라가 당신들한테 그렇게 말한 거야?”“차유라 씨가 말해줄 필요가 있겠어? 회사 사람들 전부 그렇게 알고 있는데. 해외에 있는 3년 동안 차유라
육천우는 대중들의 환호 속에서 허나연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고는 몸을 일으켜 허나연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나연아, 나 이제 키스해도 돼?”이 말은 분명 물음형이었지만 허나연이 대답도 하기 전에 커다란 손은 이미 그녀의 머리를 감싸 쥐고 촉촉한 입술로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고 있었다.현장에서는 축하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고 허나연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지만 육천우의 애틋한 마음에 그녀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둘은 얼마 동안 키스를 했는지도 모르고 서아의 목소리가 들릴 때 대서야 키스를 멈췄다.“아빠, 삼촌이랑 이모가 뽀뽀하
육천우의 말을 듣던 허나연은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코를 훌쩍거리며 말했다.“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거야? 조금이라도 나쁘게 대했어도 내가 이 정도로 슬프진 않았을 거잖아.”육천우는 허나연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달래며 말했다.“애기야, 울지마. 오빠한테 이거 하나만 대답해 줄래?”허나연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오빠가 묻고 싶은 게 뭔지 나도 알아. 천우 오빠, 나 어릴 적부터 오빠랑 붙어 있는 걸 좋아했고 커서도 항상 오빠 옆에만 있었고 후에 사춘기가 되니까 오빠가 너무 간섭해서 자유가 없는 것이 싫
허나연은 의아해하며 고개 들어 까맣고 반짝이는 눈동자로 육천우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떤 이벤트길래 이렇게 비밀스럽게 행동하는 거야?”허나연은 겉으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수도 없이 긴장해 하고 있었고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서 기대하면서도 긴장한 듯 하였다.육천우는 허나연의 눈을 막고 지하실에 있는 극장 쪽으로 향했고 따라가는 허나연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갔다.“육천우, 대체 어딜 데리고 가는 거야?”육천우는 극장의 문을 열고 허나연의 눈을 가린 커다란 손을 내리며 사랑이 가득 담긴 목
“오빠 이제 다신 어딜 안 갈 거야. 알았지?”허나연은 붉어진 눈으로 입을 삐쭉 내밀면서 말했다.“거짓말하지 마. 3년 전에 떠나면서 매일 연락한다고 해놓고 가서는 내 연락도 다 무시해 버렸으면서. 나 밤마다 오빠 전화 기다리다 잠들었단 말이야.”허나연은 술땜에 말투가 흐트러졌지만 육천우는 다 알아들을 수 있었고 듣고 나서 그의 마음은 칼로 베는 듯 아팠다.여태껏 육천우는 허나연이 자신을 귀찮아한다고만 생각했고 서로 성장 공간을 가져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해외에 나간 건데 허나연이 이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줄은
허나연은 입을 쀼죽하게 내밀고 육천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뭔 생각했다고 그래. 나 혼자서 얼마나 자유스러웠는데.”허나연은 사실 자유스러웠던 건 맞지만 마음은 많은 공허함을 느꼈다.육천우가 항상 옆에서 이것저것 참견하여 허나연은 귀찮게만 느꼈었지만, 그가 해외로 떠나고 나서야 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허나연은 사람들이 없을 때면 항상 조용하게 혼자 육천우랑 함께했던 나날들을 회상했었고, 커플들끼리 꽁냥 거리는것을 볼 때면 항상 옆에 있어 줬던 육천우를 생각했다.이 말을 들은 육천우는 웃으면서 허나연의 머리를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