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후는 난감한 듯 웃으며 말했다.“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품에 안겨 있는데 어떤 남자가 결딜 수 있겠어요? 전 부처처럼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그렇다고 바로 반응해버리면 안 되죠. 지금 중요한 일에 대해 말하는데 그딴 생각이나 하고. 대체 사람이 왜 그래요?”“이게 정상적인 남자죠. 그리고 전 그것도 잘하는 완벽한 남자이고.”그의 말에 한지혜는 깜짝 놀라 냉큼 그의 무릎에서 내려와 소파 위에 앉았다.허연후는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이 한지혜의 머리를 어루만져주며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오늘은 건
“아직. 누군가가 숨겨준 것 같아. 아니면 어떤 호텔이든 식당이든 이렇게까지 종적을 감출 수 없거든. 그래서 내 생각에는 아마 세력이 꽤 센 사람이 그놈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 같아.”한지혜의 눈살이 순간 찌푸려졌다.‘하정국은 출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대체 어떤 사람이 지금 그를 도와주고 있는 걸까?’‘그리고 왜 하정국 같은 사람을 도와줄까?’‘설마 도와준 뒤 다른 일이라도 시키려는 걸까?’여기까지 생각이 들던 한지혜는 머릿속에 갑자기 허가은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그리고 불길한 예감
허연후는 순간 온몸이 굳어지더니 금세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다시 사진을 빤히 들여다보았다.예전에 권성은한테도 두 사람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보니 닮은 수준이 아니라 거의 한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그는 멍한 얼굴로 한지혜에게 물었다.“아까 급하게 할 말이 있다던 게 이 일이었어요?”한지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두 사람이 너무 닮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쌍둥이가 아닌 이상 너무 이상해서요.”“닮긴 했네요. 근데 저희 어머니는 분명 딸 한 명만 낳았어요.”“
한건우가 답했다.“맞아. 왜?”“마침 저도 시간이 나서 오랜만에 같이 이야기나 할 겸 점심은 집에서 먹을게요.”그녀의 말에 한건우가 웃으며 답했다.“이제 아저씨가 밉지 않나 보지?”“미울 게 뭐가 있어요. 결정은 다른 사람이 했는데. 저 20분 뒤면 집에 도착할 수 있어요.”20분 뒤.한지혜가 거실에 들어서니 허재용과 할아버지가 한창 바둑을 두고 있었다.그녀는 웃으며 다가가 그에게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아저씨.”허재용은 그녀를 보자마자 냉큼 바둑알을 내려놓고 반갑게 맞이했다.“지혜야, 아저씨가 너한테 줄 선물이
전화를 끊자마자 하지연은 돈을 가지고 재빨리 그쪽으로 달려갔다.그리고 한지혜에게 자신의 위치를 공유했다.누구보다도 자기 아버지는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돈 문제 이외에 혹시나 다른 목적이 있을까 그게 더 두려웠다.하지만 어머니의 안전을 위해 경찰에 신고는 못 하고 공유기만 켜두었다.혹시나 무슨 일이 터지면 한지혜가 사람을 데리고 그녀를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연이 병원 입구에 도착해서 두리번거리며 길을 건너려던 이때, 누군가가 갑자기 그녀의 팔을 낚아채며 귀가에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허연후에게 마냥 고마웠던 하지연은 그가 행복하기만을 바랐다.만약 여동생이 계속 알맞은 심장을 못 찾아 혹시나 죽게 되면 그도 엄청 슬퍼할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한 하지연은 결국 그들을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어차피 이 목숨도 애초에 허연후가 구해준 것이다.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그리 좋아하던 고인우도 더 이상 볼 수 없고 자신한테는 항상 다정했던 허연후와 지혜 언니를 못 본다는 생각에 어느새 두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그녀는 가슴을 움켜쥐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다시 심장병이 발작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지금은
하지연의 정신이 희미해져 갈 때쯤, 갑자기 웬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 쪽으로 달려오더니 다시 하정국을 발로 걷어차면서 차가운 소리로 명령했다.“더 세게 때려!”그러다가 다시 하지연 쪽으로 점점 다가오면서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남자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순간 하지연은 마치 어릴 적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이 사람과 얼굴이 똑 닮은 오빠가 자신의 차가운 몸을 끌어안고 끊임없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그녀는 그 남자아이를 오빠라고 불렀고 오빠라는 사람도 그녀의 말에 답했다.“가은아, 조금만 버텨. 오빠가 꼭
그리고 간호사에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더 말해준 뒤 한지혜의 손을 잡고 자기 사무실로 들어왔다.허연후는 의사 가운을 벗고 한껏 피곤한 얼굴로 한지혜를 품에 안더니 그녀의 어깨에 턱을 대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지혜 씨, 저 너무 피곤해요.”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한 상황인데 방금 장시간의 수술까지 했으니 아무리 철인이라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한지혜는 그런 허연후가 안쓰러워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줬다.“물 한 잔 따라줄게요. 마시고 조금 쉬어요.”“아니요. 이렇게 지혜 씨가 안아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지혜 씨가
곽서연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고 윤상후한테 죄책감을 느꼈다.그녀는 단지 그와 만나는 것을 동의했을 뿐 아직 그를 좋아하기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윤상후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물건을 그녀한테 남겨주었다.그것은 그가 수년에 걸쳐 공들여 작곡한 곡들이며 그도 아직 무대에서 연주한 적 없는데 그녀한테 전부 남겨주었다.그가 남긴 것은 곡이 아니라 그녀에 대한 깊은 사랑이었다.하지만 그녀가 그런 사람한테 상처를 주었다.박서준만 아니었다면 윤상후는 밝은 미래를 포기하고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곽
“온갖 수단을 써서 그 사람을 떠나게 만드니까 속이 시원해? 박서준, 당신이 정말 미워!”곽서연이 계속 그를 ‘박서준’이라고 부르자 그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그는 그녀가 자신을 미워할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나쁜 사람이 되어야 했다.박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곽서연이 자신을 욕하는 걸 조용히 듣고 있었다.욕하다 지친 곽서연의 목소리가 잠잠해지자 그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서연아, 우리 한번 볼 수 있을까? 너한테 할 말이 있어.”곽서연은 흐느끼며 울었다.“왜? 날 비웃으려고
곽서연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선배, 지금 거짓말하는 거죠? 박서준이 선배한테 날 포기하라고 뭐라고 한 거 맞죠? 내가 직접 찾아가서 물어볼게요.”“서연아, 이건 내 결정이고 다른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어차피 우리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제때 멈추는 것도 우리 둘한테 좋은 거야. 넌 곽씨 가문의 공주니까 나랑 같이 있으면서 고생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지. 서연아, 나 이제 탑승해야 해. 네가 항상 행복하길 바라고 우리 이제 연락하지 말자.”그는 그렇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통화가 종료된 것을 본
윤상후는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서연아, 고마워. 우리 내일 봐.”통화를 마친 곽서연은 생각할수록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윤상후가 그녀의 고백을 듣고 전혀 기뻐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고통스러워하는 느낌이었다.그의 반응이 너무 이상했고 안 좋은 예감이 그녀를 휩쓸었다.드디어 애타게 기다렸던 다음날이 다가오고 곽서연은 서둘러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그녀는 윤상후를 보자 곧바로 달려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선배,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윤상후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너 롤러코스터 타고
윤상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박서준을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뜻이에요?”박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서연이를 좋아하고 그 아이가 다시는 부모님의 죽음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게 잘 보호할 거야.”“둘째 삼촌이 그렇게 하면 두 가문의 관계가 끊어지는 걸 알고 있어서 항상 두려워해 왔잖아요.”“서연이의 행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전에는 내가 너무 우유부단했고 너무 가족들 생각만 했어. 지금에서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서연이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모든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용감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흥분한 윤상후를 본 박서준은 화가 났다. “서연이한테 접근한 목적이 도대체 뭐야? 처음부터 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서연이한테 접근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거야? 넌 오래전부터 서연이를 알고 있었고 서연이랑 동문이 된 것도 모두 네가 계획한 거지? 내가 알기로는 넌 전에 이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서연이가 여기로 온 후에야 전학 왔어. 사실 하나하나가 네가 서연이한테 일부러 접근한 거라고 가리키는데 어떻게 이런 우연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어?” 윤상후는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머리를 움켜쥐고 울며 입을 열었다.
휠체어에 앉은 박서준의 귓가에는 이지훈이란 이름이 울려 퍼졌다.박서준은 그 당시 이씨 가문의 권력자인 이지훈이 프로젝트 때문에 곽서연의 아버지랑 원한을 쌓았던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그래서 사람을 매수해 일가족을 납치하였다.즉 곽서연의 부모님이 죽음은 모두 이지훈이 초래 한것이었다.그로 인해 처벌을 받았던 이지훈도 감옥에서 죽었다.윤상후는 이지훈의 혼외자이기에 비록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그와 혈연관계가 있었다.만약 자신이 부모를 죽인 원수 가문에 시집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곽서연은 철저히 무너지고 말 것이다.박
이 말을 듣고 곽서연은 어리둥절했다.미래의 시어머니를 만나는 자리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은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곽서연이 거절하려고 하는 순간 빈혜경이 말했다.“걱정하고 있었는데 너의 삼촌과 함께라면 할머니도 마음이 편안할 거 같아.”곽서연은 바로 말리고 나섰다.“할머니, 제 생각은 아니라고 봐요. 선배 어머니는 혼자 계실 텐데 저희 가문에서 여러 명이 간다면 놀라실 수도 있어요.”빈혜경은 웃으면서 말했다.“원래 너희 육 할머니랑 함께 가려고 했는데 너의 삼촌이랑 함께 가는 것도 좋아. 서준이는 마음이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본 박서준의 가슴은 찢어질 듯이 아팠고 따라서 안색도 어두워졌다.“상후를 그렇게 믿는 거야?”곽서연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니면 누구를 믿을 수 있어요? 삼촌을요?”곽서연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린 박서준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말을 이었다.“결혼은 인생의 중요한 일인데 이렇게 무모하게 결정하면 안 돼. 게다가 열아홉 살밖에 안 된 네가 아직 사람 볼 줄도 모르는데 속으면 어쩌려고 그래.”그 말에 곽서연은 씁쓸하게 웃었다.“저는 삼촌처럼 계획적이고 생각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