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후에게 마냥 고마웠던 하지연은 그가 행복하기만을 바랐다.만약 여동생이 계속 알맞은 심장을 못 찾아 혹시나 죽게 되면 그도 엄청 슬퍼할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한 하지연은 결국 그들을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어차피 이 목숨도 애초에 허연후가 구해준 것이다.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그리 좋아하던 고인우도 더 이상 볼 수 없고 자신한테는 항상 다정했던 허연후와 지혜 언니를 못 본다는 생각에 어느새 두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그녀는 가슴을 움켜쥐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다시 심장병이 발작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지금은
하지연의 정신이 희미해져 갈 때쯤, 갑자기 웬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 쪽으로 달려오더니 다시 하정국을 발로 걷어차면서 차가운 소리로 명령했다.“더 세게 때려!”그러다가 다시 하지연 쪽으로 점점 다가오면서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남자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순간 하지연은 마치 어릴 적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이 사람과 얼굴이 똑 닮은 오빠가 자신의 차가운 몸을 끌어안고 끊임없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그녀는 그 남자아이를 오빠라고 불렀고 오빠라는 사람도 그녀의 말에 답했다.“가은아, 조금만 버텨. 오빠가 꼭
그리고 간호사에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더 말해준 뒤 한지혜의 손을 잡고 자기 사무실로 들어왔다.허연후는 의사 가운을 벗고 한껏 피곤한 얼굴로 한지혜를 품에 안더니 그녀의 어깨에 턱을 대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지혜 씨, 저 너무 피곤해요.”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한 상황인데 방금 장시간의 수술까지 했으니 아무리 철인이라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한지혜는 그런 허연후가 안쓰러워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줬다.“물 한 잔 따라줄게요. 마시고 조금 쉬어요.”“아니요. 이렇게 지혜 씨가 안아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지혜 씨가
전화가 끊어지자마자 다시 울렸다.발신인을 확인한 허연후는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고 수화기 너머에서는 허재용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연후야, 지금 네 여동생의 심장병이 또 재발한 것 같아. 이번엔 좀 심각해 보여. 내가 이미 응급 실에 전화는 해놨는데 지금 빨리 수술하게 준비해.”그의 다급함에도 허연후는 덤덤하게 답했다.“사람이 그리 쉽게 죽나요? 걱정하지 마세요.”분명 이건 허가은이 짠 음모인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하지연을 납치한 뒤 자기 병이 재발했다고 거짓말해서 그 심장 수술을 자신이 받으려는 것이다.전
허가영은 직접 그 심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 했다가는 단번에 허연후의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하지연이 죽으면 자기 오빠가 분명 그 심장을 자신에게 넘겨줄 거라고 생각했다.생각만 해도 허가은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바로 이때, 간호사가 갑자기 달려와 그에게 보고했다.“허 선생님, 지연 씨가 방금 깨났는데 지금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그녀의 말에 허가은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하지연이 깨어났다고요? 지금 납치되었을 텐데요?”그러자 허연후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누가
“허연후 씨, 방금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지연이가 연후 씨 친동생이 맞아요!”그녀의 말은 마치 바늘처럼 허연후의 가슴을 찔렀다.분명 하지연이 진짜 그의 친동생이라 했다.어렸을 적 그 착하고 예뻤던 내 여동생.허연후의 눈시울은 어느새 빨개진 채 그는 잠긴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그 보고서 저한테도 보내줘요.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요.”“네. 바로 보내드릴게요.”한지혜와의 전화를 끊은 허연후는 여전히 빨간 두 눈으로 하지연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리고 당장에라도 그녀를 안고 자신이 친오빠라고 말해주고 싶
하지연은 자꾸만 허가은의 인생을 자신이 빼앗는 느낌이 들었다.본인도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지만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허연후는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잠깐이 아니라 이제부터 쭉 그래도 되니까 눈 감아 봐. 오빠가 이야기 들려줄게.”“진짜요? 그럼 어린 왕자 듣고 싶어요.”“그래. 영문 버전으로 들려줄게.”“네네. 영문 버전이 더 재미있어요.”허연후는 핸드폰을 꺼내 영문 버전의 어린 왕자를 찾아서 그녀에게 들려줬고 방안에는 금세 그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순간 하지연은 지금 마치
허연후의 물음에 허가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그의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에 얼어버렸기 때문이다.순간 예전의 그 허연후가 아니라는 느낌에 혹시나 그가 이미 뭔가 알아챈건 아닌지 걱정되었다.하여 허가은은 버벅거리며 변명하기 시작했다.“오빠, 왜 그런 눈빛으로 봐? 난 그저 간호사들이 한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야. 뭐가 이상해?”허연후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아니, 원래부터 남의 일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오지랍을 부리기에 놀라서.”“나랑 지연 씨가 동갑이잖아. 그리고 같은 심장병을 앓고 있으니까 왠지 모르게 동병
그 메시지를 받은 송학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리고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 [언제든지 괜찮아. 차 비서가 정해.] [오늘 저녁 괜찮을까요? 제가 아림이랑 천우 데리고 대표님이 좋아하는 그 레스토랑에 갈게요.] [그래. 좀 이따 보자.] 간단한 문자를 보며 ‘차 비서'라는 익숙한 말에 차서윤은 마음속에 물결이 일렁였다. 몇 년 전의 몇 장면이 떠올랐다. “차 비서, 커피에 왜 설탕을 넣은 거야?” “인생이 이미 너무 쓰니까요. 그걸 더 쓰게 만들 이유가 없잖아요.” 송학진은 커피를 한입에 다 마
차서윤은 싸늘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한마디만 더 욕해봐. 출발하기 전에 이미 예약 전송 설정을 해뒀어. 지금이라도 바로 메일 보낼 수 있어. 누가 이 업계에서 사라지게 될지 한 번 볼까.” 그 말을 들은 이장우는 조금 겁이 났다. 그는 줄곧 차서윤이 그저 만만한 상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자신도 모르게 증거를 남겨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를 악물며 거부하려던 순간 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송 대표님, 죄송합니다. 이 여자가 좀 말을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면 아림이 아버지시군요. 어쩐지 가족분들 모두가 그렇게 잘생기셨더라고요.” 천우는 고개를 들어 송학진을 향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외삼촌, 이건 제가 한 말이 아니에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예요!” 송학진은 웃으며 천우의 머리를 가볍게 톡 치고는 별다른 설명 없이 말했다. “자, 이제 동생 손잡고 얼른 들어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말썽부리지 말고. 알았지?” 천우는 바로 아림의 손을 꼭 잡고 의젓하게 오빠다운 말투로 말했다. “동생아, 이제부터 오빠가 널 지켜줄게
차서윤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다. 송학진에게 아무런 부담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송학진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송 대표님, 좋은 제안 감사하지만 저는 가지 않겠어요. 이장우 쪽에서 일하는 건 그만두고 제 능력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단지 송 대표님께 부담드리고 싶지 않아요.”송학진은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차서윤, 정상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너의 전 직장 상사였고 지금 더 좋은 기회를 제시하는 건데 왜 거절하는 거야?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는 일이
그 말을 들은 송학진은 눈이 촉촉해졌다. 그는 이 작은 아이가 그런 장면을 목격하고 그로 인해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차서윤과 그녀의 딸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는 아림을 꼭 끌어안고 큰 손으로 아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오늘 밤은 아저씨가 같이 있어 줄게.” 그는 아림을 다른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눈 감고 자. 아저씨는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정말 짐승 같은 놈이네!그는 바로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말했다. “너희 엄마는 괜찮아. 술을 많이 마셔서 탈수된 거야. 링거 맞으면 금방 나을 거니까. 조금 있으면 엄마를 볼 수 있을 거야. 알겠지?”아림은 이해심이 깊은 아이였다.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저씨, 제가 암호를 하나 알려줄게요. 제가 문을 열어줄 때 그 암호를 말해야 문을 열어줄 거예요. 아니면 절대 문을 열지 않아요.”그 말을 듣고 송학진은 이 아이가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그는 생각할 것도 없이 이 아이가 자주 혼자 집에 있을 거라는 걸 알 수
얇은 검은 천 아래로 드러난 여자의 새하얀 피부가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몸을 자꾸 비틀며 저항하는 듯했지만 어쩐지 보는 이를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그 광경을 본 송학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는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을 거칠게 벗겨냈다. 막 꾸짖으려던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눈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멈칫했다. 그녀의 입술은 떨리고 있었으며 이를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간신히 힘을 내어 부드럽고 연약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제발... 저를 건드
송학진은 즉시 아버지를 위로하며 말했다. “아버지, 인제 그만 우세요. 우리 작은 공주님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게 우리가 수아에게 못 줬던 사랑을 아이들에게 두 배로 주면 되잖아요.” “그래! 내 돈은 전부 세 아이한테 쓰겠다. 어차피 너는 결혼도 못 할 테니 네 몫으로 남겨둘 필요도 없겠지.”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결혼을 못 한다니요? 언젠가 아내랑 아이들까지 데리고 올지 누가 알아요?” 이 말을 듣고 육문주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천우가 너랑 아림 엄마랑 잘되
송학진은 바로 일어나 송군휘를 부축하며 말했다.“아빠, 급해 마시고 제가 부축할 테니 함께 마중 나가요.”“그래. 빨리 가자.”두 사람이 별장에서 나오자 조수아와 육문주는 이미 아이를 안고 차에서 내린 뒤였다.송군휘와 송학진이 다가오는 것을 본 조수아는 순간 눈빛이 어두워지며 송학진을 불렀다.“오빠.”그리고 이내 시선을 다시 송군휘 쪽으로 돌렸다.초점 없는 눈으로 조수아와 육문주의 방향을 보고 있는 송군휘는 많이 늙은 것 같았다.송군휘는 어색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웃고 있었다.조수아는 겨우 입을 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