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거리는 너무 가까워졌고, 한지혜는 허연후의 검은 눈동자에 담긴 진심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게다가 그의 뜨거운 숨결까지 느낄 수 있었다.허연후의 진심이 담긴 고백과 진지한 얼굴을 보자, 한지혜의 심장은 점점 더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갑자기 허연후를 밀쳐내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뭐 대단한 거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고작 이런 촌스러운 멘트라니! 참 식상하네요!”허연후는 심박수 모니터에 표시된 숫자를 가리키며 미소 지었다.“촌스럽든 아니든, 지혜 씨의 심장을 빨리 뛰게 만들었잖아요. 그걸로 충
한지혜는 허연후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난관을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10개의 땅콩을 다 먹지 못하면 이 방을 나갈 수 없고, 계속 이 ‘개자식’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그 생각에 한지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허연후가 건네는 땅콩을 냉큼 받아먹었다. 두 사람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이 짧아서 허연후가 먹여주는 땅콩을 받아먹으려면 한지혜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야만 했다.“허연후 씨, 좀 빨리할 수 없어요?”허연후는 수갑을 살짝 흔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수갑이 너무 바짝 채
“연후 씨, 변태야?”한지혜는 작은 손으로 주먹을 쥐어 잡고는 허연후를 향해 내리쳤다.지난 이틀 동안 한지혜는 허연후 때문에 화가 단단히 난 상황이었다.기분 같아서는 다리 한쪽이라도 부러뜨려야 화가 풀릴 것 같았다.허연후는 한지혜의 솜방망이 같은 주먹에 맞으면서 찍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그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그 자리에 서서 싱긋 웃으며 한지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허연후의 눈에는 한지혜가 삐져서 열심히 앞발을 휘두르는 아기 고양이처럼 귀엽기만 했다.이제는 한지혜의 손이 아플 때까지 허연후는 꼼짝하지 않고 낮은 목
허연후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한지혜는 다른 사람의 차에 덥석 올라탔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허연후가 아니었다.허연후는 서둘러 차에 시동을 걸고 액셀 페달을 밟아 바로 검은색 승용차를 가로막았다.싸늘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린 허연후는 운전석에 차창을 똑똑 두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사는 게 지겨운가 봐요. 감히 제 여자를 가로채려는 걸 보면.”허연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차창이 스르륵 열리더니 한건우의 자상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계속 욕을 퍼부으려던 허연후는 한건우를 보자 하려
한지혜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휴대폰이 갑자기 벨을 울렸다.발신자를 본 한지혜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얼른 전화를 받았다.그러자 천우의 앳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이모, 어디까지 왔어요? 저 이모가 너무 보고 싶어요.”한지혜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마 한 시간 후면 도착할 거야.”“잘됐네요. 오늘 아빠가 한턱 낸다고 해서 집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게다가 맛있는 음식도 가득 차려놨어요. 잠시 후 이모가 오면 제가 먹여드릴게요.”천진난만한 천우의 모습에 한지혜는 절로 웃음이 나왔
허연후는 그제야 한지혜가 요즘 생리가 온 것이 생각났다.그는 바로 뜨거운 물을 한 잔 따라서 한지혜에게 건네며 말했다.“다 제 불찰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일을 까먹을 수가... 잠시 후, 집에 가면 지혜 씨를 따뜻하게 꼭 안아줄게요.”허연후의 능청스러운 태도에 한지혜는 싸늘한 눈길로 그를 노려봤다.“바쁜 연후 씨한테 폐를 끼치면 안 되죠. 제가 핫팩도 챙겨서 괜찮아요.”이윽고 한지혜는 닭 날개 하나를 집어 천우의 그릇에 올려놓았다.“천우야, 이것 좀 먹어봐. 네 엄마가 나를 위해서 만든 요리야. 내가 요즘 이게 먹
육문주는 조수아의 손을 덥석 잡고는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잔뜩 화가 난 허연후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육문주, 너희 부부는 지혜 씨가 내 약혼녀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거야?”육문주는 대수롭지 않게 피식 웃었다.“그래도 알아차린 걸 보니 아주 바보는 아니네.”허연후는 씩씩거리며 육문주를 걷어찼다.“넌 정말 악랄한 사람이야. 네가 수아 씨를 쫓아다닐 때 내가 어떻게 도와줬는지 잊었어? 어떻게 손 놓고 강 건너 불구경을 할 수 있어? 너 양심은 있는 거야?”육문주는 미안해하기는커녕 허연후를 흘깃 쳐다
한지혜는 거절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연후 씨를 집으로 데려다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허연후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져서 육문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난 이만 와이프와 먼저 가볼게. 너희 두 사람도 빨리 자.”허연후가 얄밉게 굴자 한지혜는 화가 나서 그의 엉덩이를 툭 쳐놓았다.“또 헛소리하면 연후 씨를 여기에 버리고 갈 거예요.”허연후는 바로 겁을 먹고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한지혜를 따라 집을 나섰다.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계단을 걸어 내려가 허연후의 차 옆에 멈춰 섰다.“연후 씨, 차 열쇠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