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후는 그제야 한지혜가 요즘 생리가 온 것이 생각났다.그는 바로 뜨거운 물을 한 잔 따라서 한지혜에게 건네며 말했다.“다 제 불찰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일을 까먹을 수가... 잠시 후, 집에 가면 지혜 씨를 따뜻하게 꼭 안아줄게요.”허연후의 능청스러운 태도에 한지혜는 싸늘한 눈길로 그를 노려봤다.“바쁜 연후 씨한테 폐를 끼치면 안 되죠. 제가 핫팩도 챙겨서 괜찮아요.”이윽고 한지혜는 닭 날개 하나를 집어 천우의 그릇에 올려놓았다.“천우야, 이것 좀 먹어봐. 네 엄마가 나를 위해서 만든 요리야. 내가 요즘 이게 먹
육문주는 조수아의 손을 덥석 잡고는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잔뜩 화가 난 허연후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육문주, 너희 부부는 지혜 씨가 내 약혼녀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거야?”육문주는 대수롭지 않게 피식 웃었다.“그래도 알아차린 걸 보니 아주 바보는 아니네.”허연후는 씩씩거리며 육문주를 걷어찼다.“넌 정말 악랄한 사람이야. 네가 수아 씨를 쫓아다닐 때 내가 어떻게 도와줬는지 잊었어? 어떻게 손 놓고 강 건너 불구경을 할 수 있어? 너 양심은 있는 거야?”육문주는 미안해하기는커녕 허연후를 흘깃 쳐다
한지혜는 거절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연후 씨를 집으로 데려다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허연후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져서 육문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난 이만 와이프와 먼저 가볼게. 너희 두 사람도 빨리 자.”허연후가 얄밉게 굴자 한지혜는 화가 나서 그의 엉덩이를 툭 쳐놓았다.“또 헛소리하면 연후 씨를 여기에 버리고 갈 거예요.”허연후는 바로 겁을 먹고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한지혜를 따라 집을 나섰다.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계단을 걸어 내려가 허연후의 차 옆에 멈춰 섰다.“연후 씨, 차 열쇠 좀
한지혜는 허가은이 그녀가 들으라고 하는 말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연후 씨가 잘 도착한 것을 봤으니까 저는 이만 가볼게요. 연후 씨를 잘 보살펴 주세요. 그리고 저는 허씨 가문에 시집가지 못했다고 해서 한 번도 아쉬운 적 없었어요.”한지혜는 허가은을 매서운 눈길로 노려보고는 발길을 돌렸다.허연후가 한지혜의 뒤를 쫓으려고 하자 허가은은 다급히 그를 막아섰다.“지혜 씨가 오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왜 계속 남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거야. 됐어, 가자. 내가 부축해 줄게.”허가은은 허
육문주는 조수아를 꼭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그래. 꼭 무사히 돌아올게.”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하여 M 국으로 향했다.하늘에서 멀어져 사는 비행기를 보며 조수아는 꾹 참아왔던 감정을 더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조수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송학진을 바라봤다.“오빠, 저 울고 싶어요.”송학진은 조수아를 꼭 안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독였다.“걱정하지 마. 문주한테 안전장치를 해놨으니까 아무 일 없이 돌아올 수 있을 거야.”조수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마
다만 조수아의 생각과 달리 왕위에 오른 사람은 박주영이 아닌 육연희였다.생중계를 본 조수아는 순간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박주영은 자신을 미끼로 삼았다.그들은 크리스가 즉위식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계승자를 납치할 것을 예상하였다. 하여 박주영은 자신이 왕위를 계승할 것이라고 거짓 정보를 내보냈다.모든 게 아수라장이 되었을 때, 새로운 세력을 내세우는 것이다.그렇게 육연희는 엘사 4대 계승자로서 왕위에 올랐다.육연희는 크리스가 다시는 손을 쓰지 못하도록 조치했다.자연스레 황실의 왕위 다툼이 중단되었다.육연희의
소식을 들은 조수아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귓가에는 방금 박주영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육문주가 폭탄에 맞아 바다에 빠져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했다.다친 곳 하나 없이 바다에 빠진다고 해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희박한데 육문주는 폭탄에 맞기까지 했다.육문주가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조수아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조수아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하얗게 질린 입술을 꼭 깨물고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박서준은 얼른 조수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붙잡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수아 씨, 이빨에 힘 풀어요. 형의 종적
박주영도 마음이 아팠지만 조수아보다 마음을 더 강하게 먹어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조수아는 더 힘들어할 것이다.그녀는 조수아가 마음의 상처가 깊은 것을 진심으로 이해했다.조수아는 거실에 앉아 혼자 오랫동안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부엌에서 향긋한 밥 냄새가 나고서야 조수아는 천우가 아직 밥을 먹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조수아는 얼른 눈물을 닦아내고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러자 천우는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조수아는 순간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어린아이의 마음이 더 괴로울 것을 조수아는 그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