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혜는 거절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연후 씨를 집으로 데려다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허연후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져서 육문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난 이만 와이프와 먼저 가볼게. 너희 두 사람도 빨리 자.”허연후가 얄밉게 굴자 한지혜는 화가 나서 그의 엉덩이를 툭 쳐놓았다.“또 헛소리하면 연후 씨를 여기에 버리고 갈 거예요.”허연후는 바로 겁을 먹고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한지혜를 따라 집을 나섰다.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계단을 걸어 내려가 허연후의 차 옆에 멈춰 섰다.“연후 씨, 차 열쇠 좀
한지혜는 허가은이 그녀가 들으라고 하는 말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연후 씨가 잘 도착한 것을 봤으니까 저는 이만 가볼게요. 연후 씨를 잘 보살펴 주세요. 그리고 저는 허씨 가문에 시집가지 못했다고 해서 한 번도 아쉬운 적 없었어요.”한지혜는 허가은을 매서운 눈길로 노려보고는 발길을 돌렸다.허연후가 한지혜의 뒤를 쫓으려고 하자 허가은은 다급히 그를 막아섰다.“지혜 씨가 오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왜 계속 남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거야. 됐어, 가자. 내가 부축해 줄게.”허가은은 허
육문주는 조수아를 꼭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그래. 꼭 무사히 돌아올게.”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하여 M 국으로 향했다.하늘에서 멀어져 사는 비행기를 보며 조수아는 꾹 참아왔던 감정을 더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조수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송학진을 바라봤다.“오빠, 저 울고 싶어요.”송학진은 조수아를 꼭 안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독였다.“걱정하지 마. 문주한테 안전장치를 해놨으니까 아무 일 없이 돌아올 수 있을 거야.”조수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마
다만 조수아의 생각과 달리 왕위에 오른 사람은 박주영이 아닌 육연희였다.생중계를 본 조수아는 순간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박주영은 자신을 미끼로 삼았다.그들은 크리스가 즉위식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계승자를 납치할 것을 예상하였다. 하여 박주영은 자신이 왕위를 계승할 것이라고 거짓 정보를 내보냈다.모든 게 아수라장이 되었을 때, 새로운 세력을 내세우는 것이다.그렇게 육연희는 엘사 4대 계승자로서 왕위에 올랐다.육연희는 크리스가 다시는 손을 쓰지 못하도록 조치했다.자연스레 황실의 왕위 다툼이 중단되었다.육연희의
소식을 들은 조수아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귓가에는 방금 박주영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육문주가 폭탄에 맞아 바다에 빠져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했다.다친 곳 하나 없이 바다에 빠진다고 해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희박한데 육문주는 폭탄에 맞기까지 했다.육문주가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조수아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조수아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하얗게 질린 입술을 꼭 깨물고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박서준은 얼른 조수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붙잡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수아 씨, 이빨에 힘 풀어요. 형의 종적
격렬한 정사가 끝나고, 조수아는 옅게 배어나온 땀을 한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육문주는 그런 조수아를 품에 안은 채 마디가 분명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오관을 덧그렸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깊고 매혹적인 눈매에 전에 없는 다정함을 담고 있었다.조수아는 몸이 혹사될대로 되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순간 사랑을 받고 있다는 기분 때문에 마음만은 충만했다.그러나 그녀의 정욕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육문주의 휴대폰이 울렸다.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본 조수아는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육문주의 팔을 끌어안고 있는 손에 힘이
육문주의 낯빛이 삽시간에 싸늘해졌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색 눈동자가 조수아에게 단단히 박혔다.“내가 결혼은 안 된다고 했잖아. 그 정도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애초에 내 제안을 거절했어야지.”조수아의 눈가에 옅은 붉은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그때는 우리 둘만의 감정이었는데 지금은 세 사람이 엮였잖아.”“걔는 너한테 위협이 안 돼.”자조 섞인 웃음이 지어졌다.“그녀의 전화 한 통에 당신이 내 생사는 상관도 안 하고 나를 내팽개치는데. 말해 봐, 문주 씨. 대체 어떻게 해야 그걸 위협이라고 쳐주는지.”육문주의 눈밑에
술잔을 쥔 육문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심장이 그 순간 쿡하고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송미진이 자살시도를 했을 때 조수아가 생리통 때문에 여러번이나 전화한 걸 처음에는 받았다가 나중에는 짜증이 나서 그냥 끊어버렸던 게 생각이 났다. 설마 그것 때문에 조수아가 헤어지자고 한 건 아니겠지? 눈매를 드리운 육문주는 송학진과 허연후가 그 쓰레기 남편 흉을 보는 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끝까지 타들어간 담배가 손가락을 뜨겁게 하는데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온밤을 육문주는 마음이 뒤숭숭했다.보통 이맘때쯤 되면 조수아가 걱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