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엄마라는 호칭에 조수아는 순간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조수아는 송학진의 품에 기대 목 놓아 울었다.잃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쳐 올랐다.2년간 조수아는 슬픈 감정을 참으려 일부러 아이의 생각을 하지 않았다.일에 모든 정신을 쏟아부은 조수아는 자신이 이미 아이의 일을 잊었다고 생각했다.천우가 앳된 목소리로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오랫동안 세워두었던 방어벽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천우가 슬퍼하는 조수아를 달래려고 하는 소리인 것도, 천우가 그녀의 아이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여태까지 육문주는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진영택을 줄곧 데리고 갔었다.처음으로 강지영을 행사에 데리고 가는 것이었기에 제대로 준비해야 했다.사무실에서 나온 후, 강지영은 바로 한곳으로 전화를 걸었다.강지영의 보고를 듣고 박경준은 의미심장하게 웃고는 비서에게 말했다.“조수아한테 초청장을 보내라고 서준이한테 전해요. 두 사람이 서로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게 맞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요.”다른 한편, 조수아는 계속 조병윤의 곁을 지켰다.한지혜는 먹을 것을 사 들고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소연과 허연후가 함께 사무
육문주는 검은색 옷차림으로 볼캡을 푹 눌러쓰고 검은색 마스크를 낀 채 병실에 나타났다.그는 천천히 조수아 곁으로 다가갔다.한껏 초췌해진 조수아의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본 육문주는 끝내 참지 못하고 그녀의 하얀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그리웠던 조수아를 이렇게 다시 마주하니 마음이 칼로 찌르듯 아팠다.그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해져서 목구멍은 가시가 걸린 듯 턱턱 막혔다.그는 목소리를 잔뜩 내리깔고 중얼거렸다.“수아야, 미안해.”할 수 있는 말이라곤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육문주는 유능하기로 소문난 의사를 찾아 조병윤을 다
간호사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조수아가 병실에서 나왔다.간호사는 조수아를 발견하고 얼른 상황을 설명했다.“변호사님, 어서 이쪽으로 와보세요. 이분이 자꾸 환자분을 데려가려고 해요.”조수아는 놀란 기색도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장현숙을 쳐다봤다.“아빠가 심장 수술을 두 번이나 받는 동안 얼굴 한번 비추지 않더니 수술을 끝내고 회복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 찾아와서 자극하는 바람에 아빠는 목숨을 잃을 뻔했어요. 아빠가 혼수상태인 동안 조씨 가문에서 병문안을 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근데 아빠가 곧 죽어가니까 찾아온 이
조수아는 조병윤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인 것을 바로 포착했다.그녀는 한걸음에 달려가 조병윤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천우야, 할아버지한테 다시 말을 걸어봐.”잔뜩 놀란 조수아를 보고 천우도 뭔가 눈치를 챈 듯 보였다.천우는 의자를 딛고 침대 위로 올라가더니 조병윤의 목을 부둥켜안고 말을 걸었다.“할아버지, 저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요. 얼른 일어나서 저랑 놀아주세요. 네?”천우는 말하면서 조병윤의 볼에 뽀뽀했다.그러자 자극을 받았는지 조병윤은 또 손가락을 움직였다.처음엔 우연이지만 우연이 반복되면 더 이상 우연
다음날.조수아와 주지훈은 제로그룹 회장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그녀가 회장실 문을 똑똑 두드리고 문을 열자 키가 180은 훌쩍 넘어 보이는 남자가 창가에 서 있었다.남자는 하얀 티셔츠에 회색 슬랙스 차림으로 나긋하게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조수아가 들어오자 남자의 눈은 잠깐 반짝거리다가 이내 다시 퀭해졌다.그는 담배를 끄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조수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그의 허스키한 목소리에는 부드러움이 섞여 있었다.“조 변호사님, 워낙 유명하셔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조수아는 공손하게 손을 내밀고 밝은
주지훈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그래서 뭐라고 했는데?”“들킬까 봐 우유 반, 설탕 반이라고 했습니다.”주지훈은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냈다.조수아는 워낙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단 하나의 허점이라도 보이면 안 된다.만약 오늘 이 커피에 설탕을 넣지 않고 우유는 조금만 탔다고 말했더라면 분명 그의 신분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주지훈은 비서를 향해 나가보라고 손을 휘저었다.그렇게 사무실 의자에 앉아 서류 위 조수아가 싸인한 이름을 살짝 만져보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수아야, 널 지켜주려고 이러는 거야.”조수
“저한테 준거라곤 상처뿐인 사람에게 제가 다시 돌아갈 것 같나요?”“그리고 강 비서님, 그렇게 할 일 없으면 회사 일에 좀 더 신경 쓰는 게 어때요?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마시고요. 비서님은 제 상대가 아닌 것 같네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백시율과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그러다가 얼마 가지 않아 먼 곳에 있는 육문주를 보게 되었다.훤칠한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는 못본 사이에 더욱 차갑고 매서워진 듯했다.그러다가 그도 조수아를 발견했는데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두 사람이 지금은 원수 사이가 되어버렸
이미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송학진한테 차서윤의 말은 마치 휘발유처럼 그를 더욱 불타오르게 했다.송학진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선물?”차서윤은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말했다.“먼저 씻어요. 조금 후면 알게 될 거예요.”송학진은 차서윤의 코를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여보, 내가 뭘 원하는지 잘 알잖아. 저쪽 칸에서 씻을 테니까 자기가 여기서 씻어. 씻고 나왔을 때 선물이 날 실망하게 하지 않길 바랄게.”“그럴 일 없어요.”차서윤은 송학진을 방에서 밀어내고 물건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송학진
“외삼촌이 그럴 리가 없어요. 외숙모와 아림이도 나 때문에 만난 거잖아요. 만약 유치원에서 내가 아림의 치마를 적시지 않았다면 외삼촌이 외숙모를 만날 일이 있었을까요?”천우의 말을 잠깐 생각해보던 육문주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만약 천우가 아니었다면 송학진은 어쩌면 아직도 솔로였을 수도 있었다.갑자기 뿌듯해진 육문주는 잔을 들고 자리에 있는 형제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너희들 우리 아들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천우가 아니었으면 우리 이 축하주를 언제 마셨을지도 모를 일이야.”곽명원은 웃으며 말했다.“천우가 아니었
박서준은 웃으며 말했다.“배은망덕한 건 아닌 것 같네. 보살펴준 보람이 있어. 왔던 김에 가족들이랑 며칠 시간 좀 보내다 갈 거야.”박서준의 말에 곽서연은 즉시 활짝 웃으며 말했다.“정말요? 그럼 우리 그동안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박서준은 곽서연을 흘려보며 말했다.“삼촌이랑 헤어지는 게 그렇게 싫어?”“네. 매일 매일 삼촌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야? 천우보다 더하네?”곽서연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삼촌은 내가 달라붙는 게 싫어요?”박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싫다고 그러면 또 울
곽서연과 박서준이 동시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곽명원이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박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형네 집 공주님께서 발을 삐끗해서 울고 계시잖아.”곽명원은 별생각 없이 곽서연 곁으로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그녀의 발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마구잡이로 잡고 돌리는 턱에 아파 난 곽서연은 바로 소리를 질렀다.“아! 삼촌 살살 좀 해요.”곽서연은 참을 수 없는 아픔에 고여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곽명원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아프다고? 어릴 때처럼 아픈 척하
송학진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난 강한나는 눈시울을 붉히고 입술을 깨물며 경호원을 바라보고 말했다.“내 발로 나갈 테니까 비켜요.”말을 마친 강한나는 도도한 걸음으로 이곳을 떠났다. 많은 사람이 뒤에서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모든 것이 끝나고 송학진은 차서윤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와 예복을 갈아입었다.송학진은 차서윤의 붉어진 눈을 보더니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서윤아, 이제 내가 있으니까 누구도 감히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송학진은 차서윤이 이십여 년간 저런 아버지 밑에서 보내다 겨우 그
차경훈은 한순간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차서윤이 모든 증거를 모으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차경훈은 울며 빌었다.“서윤아, 아빠가 그때는 정신이 없었어. 앞으로 안 그럴 테니까 고소만 하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차서윤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고소뿐만 아니라 부녀지간의 관계까지 끊을 거니까 앞으로 다시는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마세요. 더는 꿈에서조차 보기 싫으니까. 우리 이젠 죽을 때까지 연락하지 말죠.”차서윤의 말에 경호원은 차경훈을 강제로 현장에서 끌고 나갔다.차서윤의 완강한 태도에 겁을
그 말을 들은 차서윤의 눈에서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송학진의 볼에 입맞춤하고 눈물을 머금은 채 결심을 내렸다.“감사해요. 근데 저는 학진 씨가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마음속의 흉터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해야 한다 해도 학진 씨를 위해서 뭐든 할 거예요.”말을 마친 차서윤은 신부 들러리로부터 핸드폰을 가지고 송학진에게 건네줬다.“제 핸드폰과 스크린을 연결해 주세요.”그 말은 들은 송학진은 차서윤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그녀에게 무수한 악몽을 남겨준 악마 같은 남자를 보자 차서윤은 지금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분노와 슬픔이 있었고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감옥에 있어야 할 차경훈이 왜 멀쩡하게 결혼식장에 나타난 것일까.송학진이 재빨리 다가와서 그녀를 품에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해 줬다.“괜찮아. 내가 사람을 불러서 저 사람을 감옥으로 돌려보낼게.”그가 매니저에게 눈치를 보내자 매니저는 사람을 불러와서 송학진을 제압했다. 경호원들에게 잡힌 차경훈은 그들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네가 안고 자고 싶다면 될 일이야? 네가 그러다가 이모부한테 쫓겨 나오면 내 잘못 아니다.”둘째와 셋째는 아빠와 천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신바람이 나서 쉴 새 없이 옹알이했다.육문주는 셋째를 끌어안고 볼 뽀뽀를 하며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딸이 좋아. 역시 우리 보배 딸이 제일이야. 너희 오빠 한번 봐봐. 고작 3살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와이프를 입에 붙이고 살잖아.”셋째는 아빠의 따뜻한 품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입을 비죽이며 뭐라 말했다. 아기의 귀여운 모습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