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든 담배는 이미 다 타버린 지 오래다.담뱃재가 살짝 그의 손등 위에 떨어졌지만 그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조수아는 연성빈과 이야기를 마치고 옆 병실에서 나오자마자 육문주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곧바로 육문주에게 다가가 걱정스레 물었다.“문주 씨, 무슨 일 있었어?”갑자기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의 심장은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그리고 재빨리 손에 든 담뱃불을 끄고 애써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아니. 그냥 담배가 피우고 싶어서. 미안, 앞으로는 조심할게.”그러더니 가볍게 그녀를 품에 안고 정수리에 입
허연후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이모님이랑 병윤 아저씨는 아직도 이야기 중이신가요? 이미 식당도 예약했는데 이따가 같이 식사라도 합시다.”하지만 한지혜는 이를 꽉 깨문 채 어두운 얼굴로 답했다.“저희 엄마도 이제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만 연기해도 돼요. 의사 선생님은 그만 일 보러 가세요.”말을 마친 뒤 그는 냉큼 휠체어를 끌고 자리를 떴다.그녀의 뾰로통한 뒷모습을 보고 허연후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혼잣말했다.“왜 또 화가 났지, 아까까지는 괜찮았는데? 대체 무슨 일로 화가 난 걸까?”육문주는 이미 알아채고 그
그녀의 살려달라는 애원에 임다윤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고 눈물은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녀는 교도소에서 나온 뒤 차에 올라타자마자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미진이를 구해내야 해요.”별장 안 거실에서 웬 남자가 어두운 얼굴로 검은 양복을 입은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자기 할 일만 해. 그리고 모든 건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임다윤은 핸드폰을 꽉 움켜쥐더니 다시 그에게 말했다.“예전에 저랑 미진이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했죠. 지금 감옥에 갇혀있는데 안에서 괴롭힘을 심하게 당하고 있어요.
그의 말에 임다윤의 눈시울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그리고 억울하다는 듯이 호소했다.“설매는 분명 자기 딸이 걱정되는 마음에 내가 대신 돌봐주기를 원했어. 그래서 난 몇 년 동안 미진이를 잘 대해줬을 뿐이고. 만약 조수아가 친딸이라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내가 왜 너희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겠어.”그녀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더니 육문주를 보고 애원했다.“다 내 잘못이야. 난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수아한테 미안하고 설매한테도 미안해. 문주야, 당장 수아를 이쪽으로 데려와. 그 애가 용서할 때까지 내가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
그녀의 말에 육문주의 미간이 순간 찌푸려지더니 되물었다.“눈치채셨나요?”오현자는 감격에 차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그저 의심만 들었는데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확신이 드는구나. 문주야, 우리 수아를 위해서 이렇게 큰 부상까지 입다니, 내가 설매를 대신해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 그리고 내 안목이 맞았어.”육문주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외할머니, 그저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그의 입에서 ‘외할머니’라는 소리가 들려오자 오현자는 또다시 눈물이 마구 차올랐다.드디어 진짜 외손녀를 찾았을 뿐만 아니라 손녀사위
듣고 있던 조수아는 깜짝 놀랐다.여태껏 육문주가 그녀 앞에서 오현자를 외할머니라고 부르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대체 언제 외할머니라고 불렀지?’하지만 예전에 송미진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오르자 오현자가 측은해 보였다.딸은 누군가에게 살해되었고 20년 넘게 애지중지 키운 손녀는 내연녀의 자식이었다.그런 사람이 지금 한껏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조수아도 마음이 점점 약해졌다.“외할머니.”그녀의 부름에 오현자는 끝내 참지 못하고 또다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눈물은 볼을 타고 마구 흘러내렸다.
육문주는 깍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많이 좋아졌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을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몇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황애자와 육상근도 연회장으로 들어왔다.그리고 박주영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임다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어?”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전부 시선을 이쪽으로 돌렸다.그리고 마침 박주영과 육상근의 눈빛이 서로 마주쳤다.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박주영은 자기도 모르게 박서준의 팔을 꽉 잡았다.기억을 잃은 후,
박주영은 연한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등위로 샹들리에가 떨어지자마자 원피스는 빨간 피로 물들었다.피는 그녀의 몸을 타고 마구 흘러내렸다.박서준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재빨리 그녀에게 달려갔다.박주영은 고통스러워 눈을 꼭 감고 있다가 육상근이 무사한 모습을 발견하고는 안심의 미소를 살짝 지었다.그리고 무슨 말 하려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박서준은 그녀를 즉시 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육문주는 냉큼 진영택을 불렀다.“당장 앞뒤 문을 다 봉쇄하고 누가 샹들리에에 손을 댔는지 CCTV 확인해.
송학진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난 강한나는 눈시울을 붉히고 입술을 깨물며 경호원을 바라보고 말했다.“내 발로 나갈 테니까 비켜요.”말을 마친 강한나는 도도한 걸음으로 이곳을 떠났다. 많은 사람이 뒤에서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모든 것이 끝나고 송학진은 차서윤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와 예복을 갈아입었다.송학진은 차서윤의 붉어진 눈을 보더니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서윤아, 이제 내가 있으니까 누구도 감히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송학진은 차서윤이 이십여 년간 저런 아버지 밑에서 보내다 겨우 그
차경훈은 한순간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차서윤이 모든 증거를 모으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차경훈은 울며 빌었다.“서윤아, 아빠가 그때는 정신이 없었어. 앞으로 안 그럴 테니까 고소만 하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차서윤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고소뿐만 아니라 부녀지간의 관계까지 끊을 거니까 앞으로 다시는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마세요. 더는 꿈에서조차 보기 싫으니까. 우리 이젠 죽을 때까지 연락하지 말죠.”차서윤의 말에 경호원은 차경훈을 강제로 현장에서 끌고 나갔다.차서윤의 완강한 태도에 겁을
그 말을 들은 차서윤의 눈에서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송학진의 볼에 입맞춤하고 눈물을 머금은 채 결심을 내렸다.“감사해요. 근데 저는 학진 씨가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마음속의 흉터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해야 한다 해도 학진 씨를 위해서 뭐든 할 거예요.”말을 마친 차서윤은 신부 들러리로부터 핸드폰을 가지고 송학진에게 건네줬다.“제 핸드폰과 스크린을 연결해 주세요.”그 말은 들은 송학진은 차서윤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그녀에게 무수한 악몽을 남겨준 악마 같은 남자를 보자 차서윤은 지금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분노와 슬픔이 있었고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감옥에 있어야 할 차경훈이 왜 멀쩡하게 결혼식장에 나타난 것일까.송학진이 재빨리 다가와서 그녀를 품에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해 줬다.“괜찮아. 내가 사람을 불러서 저 사람을 감옥으로 돌려보낼게.”그가 매니저에게 눈치를 보내자 매니저는 사람을 불러와서 송학진을 제압했다. 경호원들에게 잡힌 차경훈은 그들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네가 안고 자고 싶다면 될 일이야? 네가 그러다가 이모부한테 쫓겨 나오면 내 잘못 아니다.”둘째와 셋째는 아빠와 천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신바람이 나서 쉴 새 없이 옹알이했다.육문주는 셋째를 끌어안고 볼 뽀뽀를 하며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딸이 좋아. 역시 우리 보배 딸이 제일이야. 너희 오빠 한번 봐봐. 고작 3살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와이프를 입에 붙이고 살잖아.”셋째는 아빠의 따뜻한 품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입을 비죽이며 뭐라 말했다. 아기의 귀여운 모습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자리로 돌아간 송학진은 차서윤을 아래 우로 훑어보고 관심 어린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는 나한테 연락해야지. 내가 걱정했잖아. 날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거 맞아?”미간을 찌푸린 채 잔뜩 화가 나 보이는 송학진을 차서윤이 빙그레 웃으며 달래줬다.“걱정하지 마세요. 강한나 씨를 만났을 때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어요. 식사하는 내내 자꾸 저희를 보면서 친구들과 뭐라고 소곤거리더군요. 그 사람들이 무슨 수를 쓸 것을 먼저 예상하고 화장실로 간 거예요. 둘째 도련님이 다가올 때 먼저 스프레이를 뿌리고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전 그런 적 없어요. 바람피우다가 송 대표님한테 잡혀서 저한테 덮어씌우려는 수작인 것 같은데요. 그만하시죠.”차서윤은 장사연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더니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그녀의 뺨을 후려치고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저 남자를 이용해서 저를 망가뜨리고 제가 바람났다고 학진 씨를 불러올 수작이었죠. 이런 수작에 제가 넘어갈 줄 알았어요? 제가 바보로 보여요?”말을 마친 차서윤은 화가 가시지 않는지 장사연의 나머지 반쪽 뺨을 후려쳤다.“제가 학진 씨와 결혼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가
강한나와 친구들은 시간이 됐다 싶어 화장실을 찾아가서 문이 잠겨있다며 호텔직원을 불러 모았다.그 소식을 들은 송학진도 아림을 데리고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무슨 영문인지 화장실 앞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서 마음이 놓이지 않은 송학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에요?”어떤 여자가 비꼬는 말투로 대답했다.“딱 보면 알리죠. 파렴치한 남녀가 지금 바람피우는 거죠. 정말 이상한 여자가 다 있네요. 방 하나 예약하면 될 일을 굳이 화장실에서 저러잖아요.”“더 스릴 있으니까 그러는 거죠. 저는 이런 장면 많이
강한나가 4년을 기다려 기다려온 것은 송학진이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이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그 소식이 가짜라 생각했고 송학진이 다른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강한나는 송학진과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외국에서 돌아왔는데 한차례 모욕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늘 아침에 발생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뺨이라도 처맞은 것처럼 얼굴이 얼얼했고 가슴이 아파 났다.그녀는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내 남자는 영원히 내 것이야. 누구도 빼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