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지연은 신연 옆에 앉아 있었다. 둘은 매우 가까이 붙어있었고 겉으로는 마치 친밀한 사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신유리의 시선은 컵을 쥐고 있는 태지연의 손에 머물렀다. 손가락 마디는 긴장한 듯 구부러진 채 편안한 모습은 아니었다. 신유리는 눈을 살짝 내리며 서준혁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신연은 신유리만 초대했지만 서준혁은 신연에 대한 경계심이 늘 강하다 보니 함께 가겠다고 고집했다. 신유리 역시 신연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고 굳이 자두를 데려오라고 한 점도 의아했기에 서준혁의 동행을 막지 않았다. 신연은 서준혁을 보고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그는 고개를 살짝 들며 말했다. “서 대표님.”서준혁은 맞은편에 앉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신연은 서준혁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의 품에 아긴 자두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큰 감정 변화가 보이지 않았지만 형식적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아이가 참 귀엽네요.”자두는 반응이 빨랐다. 신연이 자신을 칭찬하는 걸 알아채고 게다가 엄마, 아빠도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낯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신연을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몸을 더 흔들며 다가가려고 했다. 신유리가 말했다. “인사하는 거예요.”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당신을 좋아하나 봐요.”신연의 시선이 자두에게 머문 채 이마에 미세한 주름이 잡혔다. 그는 신유리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유리 씨, 딸이 참 귀엽네요. 정말 예쁘게 생겼어요. 유리 씨랑 많이 닮았네요.”태지연이 말했다. 신유리는 자두를 태지연에게 인사시켰고 자두도 순순히 “이모”라고 불렀다. 태지연은 가방에서 우유 사탕 한 박스를 꺼내 자두에게 건넸다. 자두는 건네받아 신유리의 품에 넣었다. 태지연은 자두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았고 식사 중에도 종종 자두를 챙겼다. 자두도 낯을 가리지 않은 채 태지연 곁에 바짝 붙어
송지음이 바닥에 주저앉자 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태지연은 입술을 꽉 깨문 채 고개를 숙였다. 호흡은 전보다 거칠어졌고 긴장한 듯 보였다.신연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바닥에 있는 송지음을 힐끗 바라보더니 말했다. “경고하는데 이젠 지연 씨가 아니라 내 와이프야.”송지음은 목이 잠긴 채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전부 제 잘못입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 지연 아니, 사모님.”신연의 표정은 조금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는 태지연의 손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용서할 거야?”태지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연의 손은 마치 무거운 족쇄처럼 느껴져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송지음의 등장은 신연이 일부러 작정하고 보여준 것이었다.겉으로는 사과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태지연의 모든 것을 자신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것이었다.그는 태지연의 주위에 그물을 쳐 두고 그녀가 어떻게 하든지 신연이 그물을 거둬들이는 순간 그녀는 순순히 남아야 했다.마치 송지음처럼 말이다. 사실, 태지연은 오늘 송지음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를 잊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지금 태지연 앞에 나타나서 두려움에 떨며 1년 전의 작은 일로 사과를 하고 있었다.과연 사과일까?아니다.그저 신연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순순히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태지연은 감정을 억누르며 한참을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사과받을게.”신연은 가볍게 대답하고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당신이 그녀를 어떻게 처분할지는 마음대로 하세요.”신유리도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신연이 송지음에게 무슨 짓을 할지 예상은 했지만 그녀가 신연을 이토록 두려워할 줄은 몰랐다.물론 신유리는 송지음을 동정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신연의 수법에 충격을 받았을 뿐이었다.누군가 신유리의 오른손을 꼭 잡고 있었다. 서준혁은 따뜻한 손바닥으로 신유리의 손을
신유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맞아.” “너 그 여자를 봤었어?” 그녀의 대답에 연우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그는 요즘 부산에서 꽤나 잘 나가고 있었지만 매일 신연의 주위에 맴도는 바람에 피로가 쌓이고 있었다. 신유리는 아직도 연우진과 신연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고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너랑 태지연 씨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연우진은 신유리의 물음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침묵하다 결심한 듯 천천히 입을 뗐다. “너도 부산 쪽에 생긴 변동들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믿어. 신연 그 사람이 지연이 부모님을 가뒀어.” “전에는 지연이를 가두더니 이젠 부모님에게까지 손을 대나봐. 내가 지연이를 해외에 보내줬어. 그래서 지금 신연 씨는 나한테 복수를 하려고 하는 거고.” 연우진은 부산에서 열심히 산 시간동안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했고 전에 다정다감하던 남자는 지금 날카롭고 매서운 눈매를 가진 남자로 변해갔다. 그는 신유리에게 물었다. “신연 씨 지연이는 잘 해주는 것 같아? 아직도 지연이를 막 감시하지는 않아?” 신유리는 전에 해외에 있을 때 태지연의 몸에서 발견했던 몇 개의 감시기계들이 생각이 났다. 그에 더해 최근 태지연을 만났을 때도 늘 그녀의 옆에 딱 붙어 따라다니던 신연의 모습들도 떠올랐다. 신유리는 그저 두 사람이 결혼을 한 사이라 더욱 더 친밀하고 가깝게 다닌다고만 생각을 했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 연우진에게 물었다. “태지연 씨랑 신연 씨가 결혼한 사실은 알아?” “응.” 연우진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알아. 신연 씨가 이메일로 보내주더라고.” 신유리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 연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지연이를 강박하고 협박했을 거야. 신유리, 너 그거 알아? 지연이는 절대 신연 씨랑 더 만나고 싶지 않아해. 절대로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을 거라고!” 신유리는 연우진에게 무슨 말을 더 해줘야 할지 몰라 그저 침묵했다. 신연과 태지연
신유리는 파티가 끝난 후 바로 서준혁을 데리러 갔다.그녀는 룸 문을 열었고, 열자마자 어린 여자와 마주치게 되었다.여자는 깔끔한 얼굴에 빛나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호감을 사는 얼굴이었다.신유리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바로 비서팀에 새로 온 인턴 송지음이었다.송지음은 고개를 들어 신유리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신유리에게 말했다. “유리 언니.”방금 밖에서 들어와서인지 신유리의 몸에는 차가운 공기가 조금 남아있었다. 그녀는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주 웃지 않는 탓에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거리감을 주곤 했다.신유리는 담담하게 송지음의 말에 대답했다. 그녀는 룸 안을 한 바퀴 둘러본 후에야 시선을 송지음에게 멈추었다. “준혁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서준혁의 이름을 듣자 송지음은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더니 신유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룸 안의 스피커 소리에 거의 묻힐 정도로 작고 부드러웠다.“서 대표님, 제 음료수 사러 가셨어요.”그녀의 말에 신유리는 눈썹을 찌푸렸다. 송지음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 이상한 감정이 조금 더 많아졌다.그녀도 서준혁을 오랫동안 따라다녔지만, 그동안 뭘 해달라고 번거롭게 만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지난달, 신유리의 차는 누군가에게 미행을 당했고 그로 인해 왼쪽 손목이 다쳤었다. 모든 거동이 불편했지만 서준혁은 그녀에게 물 한 잔 따라 준 적이 없었다.위아래로 자신을 훑어보는 눈빛에 송지음은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그녀는 옷자락을 만지작대며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서 대표님, 금방 오실 거예요.”하지만 신유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저번 주에 급히 합정에 회의를 참석하러 갔었다. 오늘 서둘러 서씨 집안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서준혁은 집안사람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 그래서 이런 가족 모임은 항상 신유리보고 대신 참
신유리가 다음 날 다시 회사에서 송지음을 보게 되었을 때 누군가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송지음도 신유리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빠르게 시선을 거두었다. 피하는 느낌이 조금 있었다.신유리는 발걸음이 조금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바로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단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을 뿐이었다. 점심시간, 비서팀의 리사가 잘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리사가 바로 아침에 송지음을 곤란하게 만든 그 장본인이었다.오후가 되었을 때, 신유리는 대표 사무실에서 송지음을 만나게 되었다.그녀는 쭈뼛거리며 사무실 안에 서 있었고, 풋풋함이 가득한 앳된 얼굴과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유리 언니, 성 대표님이 대표 사무실로 오라고 하셨어요.”서준혁의 말이 맞다. 송지음은 확실히 착한 사람이었다.신유리는 손으로 서류를 뒤적거렸고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비록 앉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압박감은 엄청났다.그녀의 말투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준혁이 너 보고 뭐 하라고 했어?”송지음은 더더욱 떨리기 시작했다. “옆에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우라고 하셨어요.”신유리는 서류를 덮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 곧이어 그녀는 자리 하나를 그녀에게 가리켰다. “저기로 가.”대표 사무실 비서는 다른 비서들과 달랐다. 신유리까지 합쳐도 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이렇게 송지음이 많아졌으니, 지금 상황에서는 제일 구석진 자리를 그녀에게 남겨줄수 밖에 없었다.송지음의 얼굴은 대놓고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빠르게 자신의 감정을 조절했다.머뭇대는 송지음의 모습에 신유리가 물었다. “더 할 말 있어?”송지음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고맙습니다, 유리 언니.”신유리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송지음을 관찰하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서준혁이랑 어디까지 갔어?”송지음은 꼬리가 잡힌 듯 서서히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송한 얼굴로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불안한 모습으로 신유리에게 해명했다.“저와
신유리는 조용히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서준혁이 말 한 그 일이, 송지음이랑 같이 야근하는 거였구나.그녀는 감정을 가다듬더니 아무 일 없는 척하며 핸드폰을 챙기러 안으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그제야 그녀의 존재를 발견했다.송지음은 바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유리 언니, 오늘 내로 꼭 보고서 완성할게요.”“그래.” 신유리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고는 책상에서 핸드폰을 챙겼다. “서 대표님이 도와주시는데, 당연히 다 완성해야지.”그녀의 말이 맞았다. 서준혁 같은 BOSS가 일을 도와주는데, 수월한 게 당연하지.단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던 송지음의 얼굴이 창백해질 뿐이었다.서준혁은 아무런 생각 없이 고개를 들어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왜 아직도 안 갔어?”신유리는 핸드폰을 흔들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까먹어서. 지금 갈 거야.”호연의 파티는 금주 호텔에서 진행됐다. 모두 전부터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혼자 파티에 찾아온 신유리의 모습에 그녀에게 다가와 서준혁은 언제쯤 도착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신유리는 가뿐하게 상황을 처리했다. “저녁에 도저히 미룰 수 없는 회의가 있어서요. 최대한 빨리 오실 거예요.”다들 무슨 상황인지 대충 마음속으로 눈치채고 있었다.근데, 서준혁이 진짜로 왔다.파티가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때, 그가 송지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남자의 고결한 분위기는 사람을 압도했고, 옆에 서 있던 아가씨도 귀엽고 발랄했다.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신유리와 얘기를 나누던 사모님이 고개를 까닥이며 뒤를 가리켰다. “서 대표 옆에 있는 아가씨는 누구야?”송지음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와인잔을 들고 있던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서준혁도 그녀를 보게 되었다. 오가는 시선 사이로, 그녀는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신유리는 사모님에게 말 몇 마디를 건네고는 그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안 온다며?” 그녀는 와인잔을 든 채로 나른하게 물었다.“얘한테 좀 보여주려고.” 서준혁의 시선은 옆에 있는 송지음에
그럼 나는.나랑 서준혁이 함께한 8년은 뭔데?신유리는 인내심 넘치게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숨소리도 좀 더 가벼워진 듯했다.서준혁의 말투는 방금 송지음보고 착하다고 했을 때랑 별반 다름이 없었다. 단호하고 담담했다. “너도 알잖아. 너 내 스타일 아닌 거.”그건 맞지.처음에 잠깐동안 서준혁 옆에 여자가 없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나중에 그가 만난 여자들은 모두 신유리와 큰 차이가 있었다.그녀는 착하고 말 잘 듣는 여자를 좋아했다. 하지만 신유리처럼 그의 말을 듣는 여자는 좋아하지 않았다.신유리의 눈동자에는 어둠이 숨어져 있었고, 그 속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목소리만 여전히 물처럼 차가웠다. “오늘 밤 여기 있을 거야?”서준혁은 몸을 일으키더니 옆에 있던 외투를 챙겼다. “됐어.”신유리는 서준혁의 됐다는 말이 두 사람 사이를 가리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단지 다음날 회사에 도착했을 때, 송지음의 자리가 그녀의 옆자리로 바뀌었을 뿐이었다.이 자리는 마침 대표 사무실과 마주 볼 수 있었다. 고개를 들면 바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송지음은 그녀와 인사를 했다. “유리 언니, 좋은 아침이에요.”신유리는 가방을 챙기더니,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숨길 수 없는 기쁨을 보며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 “내가 배정해 준 자리가 마음에 안 들어? 어제 말하지 그랬어?”그 말에 송지음은 멍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허둥지둥 해명했다. “마음에 안 든 게 아니에요. 일하는 거 지켜보시겠다면서 서 대표님이 오라고 하셨어요.”말을 하던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신유리의 존재를 인식했고, 서서히 눈빛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신유리는 본인이 백설 공주 계모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일부러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았다.“일해.”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송지음의 자리가 바뀌었다는 말은 빠르게 회사에 전해졌다. 신유리가 인수인계하러 아래층에 갔을 때, 그녀는 이러쿵저러쿵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그들은 신유리의 모습을
신유리와 하정숙은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서준혁이 처음으로 신유리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부터 하정숙은 신유리를 성에 차지 않아 했다.서준혁은 줄곧 신유리가 서씨 집안과 가까이 지내는 걸 꺼려했다. 정말 필요 한 일이 아니라면 그는 그녀는 서씨 저택으로 보내지 않았다.신유리는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이번 전화는 서준혁이 받게 되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기분 좋아?”“나쁘지 않아.” 그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오래 대화를 나누기 싫은지 웃음기를 거두며 그녀에게 말했다. “무슨 일 있어?”신유리는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아주머니가 지금 서씨 저택으로 오래.”서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유리는 옆에서 전해지는 송지음의 비명을 듣게 되었다. 실수로 어딘가에 부딪힌 것 같았다.곧이어, 서준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를 끊기 전, 그는 이런 말을 그녀에게 던졌다. “이런 일은 나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 신유리는 회의실에서 10분 정도 더 있은 후에야 차를 몰아 서씨 저택으로 갔다.서준혁이 물어볼 필요 없다고 했으니까.아마 잊었을 것이다. 신유리가 처음으로 그를 따라 서씨 저택에 갔을 때, 그녀는 하정숙에게 난처한 일을 당했었다. 하정숙은 뜨거운 물을 그녀의 손에 부었었다.그때 서준혁은 귀를 만져주며 그녀를 위로해 줬었다. 앞으로 하정숙을 만날 때는 각별히 조심하라면서 말이다.신유리는 내내 입술을 오므린 채로 서씨 집안에 도착했고 마침 하정숙이 누군가를 마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그 사모님과 친분이 있었고, 웃으면서 사모님에게 인사를 했다.그녀는 예쁘고 행동도 올발랐다. 서씨 집안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전부 그녀를 서씨 집안의 미래 며느리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을 보낸 후, 하정숙은 그녀를 흘겨보기 시작했다. “준혁이는? 왜 같이 안 왔어?”“준혁 씨는 일이 있어서요.” 신유리가 대답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