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리는 오전 10시 비행기였고 임아중은 데려다주겠다고 말을 했지만 신유리가 거절해버렸다.핸드폰으로 부른 택시가 이미 별장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나가려는 때에 이신은 신유리를 대신해 캐리어를 들어주었고 임아중은 기분이 안 좋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었다.“이번에 부산에 내려가서 한참 있겠다고 했지? 곡연 씨도 먼데도 공부하러 떠나고... 나 혼자 성남에서 심심해서 어떻게 살아?”신유리가 어린 아이를 달래듯 대답했다.“부산으로 와, 나 찾으러.”임아중은 원망스런 눈빛으로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을 했다.“됐어, 난 부산 안 좋아해. 그쪽 사람들 다 너무 열심히 살아, 재미없게.”이신은 트렁크에 신유리의 캐리어를 잘 정리해놓고는 조용하게 신유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신유리는 이번에 부산으로 돌아가 홍란의 모든 과정들을 따라야 했고 적어도 3개월은 걸릴 듯싶었다.임신을 한 이래로 살이 찌기는커녕 나날이 야위어 가던 신유리를 바라보며 이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기다릴게.”그가 손을 내밀자 그의 손바닥 위엔 평안부적 하나가 쥐어져있었고 신유리는 조금 당황해하는 기색이었다.[명절 보낼 때 금방 주지 않았나..?]“그때 절에 갔을 때 되게 용하다고 해서... 내가 사왔어.”이신은 쓸데없는 말 하나 없이 신유리를 보았는데 그의 눈빛엔 다른 감정들이 가득 섞여져있는 것 같았다.“가져, 유리야.”이신의 목소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 부드러웠고 신유리는 자상한 그의 목소리에 홀린 듯 평안부적을 건네받았다.사람들과 인사를 다 마친 신유리는 차에 올라 공항으로 출발했고 기사가 코너를 돌 때 신유리는 백미러로 낯선 하얀색 승용차 하나를 발견했다.그 차는 출발할 때부터 신유리가 탄 택시를 따라왔지만 그녀는 별 생각없이 슥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하지만 어느 다리에 다다랐을 무렵, 그 차는 여전히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고 일정한 거리를 항상 유지하고 있었다.“기사님, 조금만 빨리 가주실 수 있으실까요?”신유
신유리의 말이 떨어지자 서준혁은 귀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이명까지 들리기 시작했다.그는 처음엔 당황하고 막연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나중에는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섞인 얼굴로 그 자리에 서서 신유리의 무감정한 눈빛을 보며 가슴에 총을 맞은 느낌이 들어 아파왔다.아프고 시리고 고통스러웠다.숨이 막혀오는 기분은 서서히 서준혁을 잠식시켰고 심장은 누군가의 거대한 손에 의해 꽉 잡힌 듯 점점 조여 오고 점점 아파와 제대로 서있기조차 바빴다.또렷하게 보이던 눈앞이 점차 흐려져 갔고 신유리의 공허한 눈빛만이 병실 안을 가득 채웠다.신유리의 목소리는 한번, 또 한 번 서준혁의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그는 견디기 힘들었다.[서준혁 씨 아이 없어졌어요.][서준혁 씨 아이.]서준혁의 냉랭하던 표정이 산산조각이라도 나는 것처럼 부서졌고 그는 신유리를 보며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방황했다.“서준혁 씨.”임아중의 목소리가 둘 사이의 침묵을 깨뜨렸고 그녀는 조롱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지금 그 표정은 무슨 의미죠? 웃기지 않나요? 서 씨 가문에서 유리 뱃속 아이를 지우려고 검사결과도 조작하고 낙태까지 시키려고 끌고 가고... 이런 악독한 일들도 생각해낸 집안사람이 왜 지금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거죠?”“정말 토악질 나오네요, 우리 유리가 서준혁 씨를 만난건 인생에서 제일 재수 없고 잘못된 일이었어요!”임아중은 굉장히 큰 목소리로 신유리의 침대 옆에 서서 그녀를 보호해주며 말을 했지만 서준혁은 임아중에게 시선을 옮기기는커녕 뒤에 있는 신유리만 바라보고 있었다.신유리는 그냥 침대에 앉아있기만 했는데도 핏기 하나 없는 입술과 아무런 생기가 돌지 않는 눈빛 때문에 서준혁과는 아예 다른 세상의 사람 같았다.그녀의 눈에서 흐른 모든 눈물들을 가시가 되어 서준혁의 가슴을 찔렀고 이석민이 서준혁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에는 이미 한시간이나 지난 뒤였다.서준혁은 병원 주위에 있는 크나큰 나무 밑에 서있었지만 이석민은 서준혁이 뭔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임아중이 도착했을 때, 서준혁은 이미 떠나버린 뒤였다.그녀는 푹 우려낸 삼계탕을 들고 와 건네주며 신유리에게 말을 걸었다.“이거 나 혼자 레시피 찾아보면서 만든 거니까 많이 먹어야 돼, 너 요즘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내가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신유리는 입맛이 없어 고개를 푹 떨구고는 핸드폰만 쳐다보았다.그녀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소문이 퍼졌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딱히 없던 신유리에게 고객들이 문자를 보내 걱정과 위로를 해줬다.채리연의 문자도 섞여있었고 그녀는 신유리에게 뜬금없이 이런 물음을 물었다.[너 경찰에 신고했다면서?]신유리는 그녀가 보낸 이 문자는 답장을 할 생각이 없어 채리연과 나눈 대화를 지워버리고는 핸드폰을 꺼버렸다.경찰에 신고는 사고가 난 그날, 이신이 직접 신유리를 대신해 해준 것이었다.원래는 흔히 있는 교통사고지만 신유리는 자신의 검사결과와 끌려가 낙태를 당할 뻔 했던 사실까지 모조리 말을 했고 경찰이 서창범에게까지 찾아가 조사를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도 신유리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서창범은 너무나 수법이 대담했고 신유리는 그저 작은 먼지와도 같이 보였는지 한치도 숨기지 않았다.하지만 그 또한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쉽게 한 것 이었고 서씨 가문이 누구와 비해도 꿀리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신유리는 이런 일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작은 일이겠다는 예상을 했다.“너무 걱정마세요, 제가 저희 엄마랑 변호사를 통해 알아보라고 했거든요? 이 일 아주 잘 해결될거라고 그랬어요.”서씨 집안에서는 주현이 하정숙을 위로하고 달래주고 있었다.“돈만 많이 쥐어준다면 신유리도 절대 끝까지 쫓아오지는 않을 것 같아요.”하정숙은 잔뜩 썩은 표정을 하고는 피식 웃음을 짓더니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상위에 세게 내려놓으며 대답했다.“돈 가지고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나는 신유리 그 *이 이 기회를 틈 나 우리 준혁이한테 들러붙을까봐 그게 걱정이야.”그녀는 평소와는 다른 진중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
서준혁의 손이 조금씩 떨리더니 잔뜩 어두워진 안색으로 있었는데 딱 봐도 아픈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그는 신유리의 말에도 굴하지 않고 대답했다.“필요한 물건 있으면 가져다 드리고 나가겠습니다.”신유리는 서준혁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병실 입구로 돌리더니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서준혁은 신유리가 삐쩍 마른 모습과 야윈 얼굴을 보자 가슴이 너무 아파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그는 그 책을 신유리에게서 제일 가까운 곳에 놓아주고는 신유리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나갔고 문 앞으로 다가가자마자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그러자 보이는 것은 신유리가 서준혁이 놓아준 책을 바로 먼 곳에 던져버리는 모습이었다.그는 신유리의 병실 문을 꾹 닫고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고 보통 위출혈이 오면 아주 강한 고통에 시달리지만 서준혁은 그런 고통 따위 없이 우울감과 절망감에 휩싸여있었다.“어디 갔었니?”금방 병실로 돌아온 서준혁의 귀에 쨍한 하정숙의 목소리가 들렸다.서준혁은 고개를 들어 하정숙을 쳐다보며 되물었다.“여기는 왜 오셨습니까”“왜 왔냐고?”하정숙은 그의 물음에 순간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차가운 시선으로 서준혁을 쳐다보다가 애써 진정한 뒤 대답했다.“물어볼 일이 좀 있어서 왔어.”“듣자하니 네가 스스로 하 씨 가문 사람들을 찾으러 갔다던데 맞아? 누기 너한테 가라고 했어? 그 사람들이 네가 먼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거 몰랐니?”그녀는 날선 눈으로 서준혁을 쳐다보며 피식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신유리 그 애 때문에 그러니? 너 지금 혹시 걔 그런 모습보고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하정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준혁은 고개를 들어 하정숙을 노려보며 굳게 잠겨있던 입을 열었다.“말 다 하셨습니까”원래 애써 진정했던 하정숙이 또 다시 화가 나기 시작했고 그녀가 뭐라 고함을 지르기 전에 서준혁이 먼저 말을 이어갔다.“다 말하셨으면 이제 그만 나가주시죠.”하정숙은 왔을 때도 화가 나 씩씩 거리면서 왔지만 갈 때는 더욱 더
서준혁은 심장은 한순간에 누군가에게 꽉 잡힌 듯 조여왔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는 더욱 깊어졌고 목젖을 위아래로 굴렸다.그는 원래 회사에 회의하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가는 길에 하정숙이 병원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거의 즉시 달려왔다. 며칠간의 업무로 그는 눈에 띄게 피곤해 보였다.신유리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시선은 창밖을 향했다. 비록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거부의 뜻은 뚜렷했다.하정숙의 방문은 사람들을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다. 임아중은 신유리처럼 참을성이 없어 이를 악문 채 서준혁을 한 번 쏘아보고는 그녀를 쫓아냈다.경찰 쪽의 조사는 이신과 연우진이 맡았다.신유리는 병원에서 이틀 더 머물다가 퇴원했다. 퇴원하는 날 마침 날씨가 좋았다. 임아중은 특별히 그녀에게 빨간 외투를 가져왔다.“나쁜 기운을 날려버려야지.”신유리는 오랫동안 햇볕을 쬐지 못했던지라 병원을 나서는 순간 공기가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그동안 그녀는 병으로 인해 피부가 병약할 정도로 하얬다. 빨간 외투는 그녀의 여위고 창백한 얼굴에 약간의 혈색을 더해주었다.이신은 주차장에 가서 차를 몰고 올 테니 그녀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다.그러자 신유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밖에서 기다릴게. 오래 누워있었더니 조금 걷는 게 좋을 것 같아.”임아중은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병원 입구에는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가지는 이미 말라 있어서 푸른 잎 하나 보이지 않았다.그 나무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눈에 띄는 마이바흐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서준혁은 차 앞에 선 채 깊은 눈동자로 빤히 바라보면서 이쪽으로 걸어오려 했다. 다만 두 걸음도 채 못 가고 이신의 차가 그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신유리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보는데 귓가에 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 신유리는 그만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가 입원해 있는 동안 이신은 거의 매일 병원에 갔지만 작업실때문에 바삐 돌아쳤다.임아중은 신유리를 도와 차에 짐을 실었다.“퇴원 축하해. 앞으로는
신유리는 일찍이 장수영에게 부탁해 부산시에서 좋은 인프라와 구조의 집을 임대해 두었다.그녀는 허경천에게 인수인계한 후 부산시에서 안심하고 지냈다. 성남 쪽 상황은 이신이 돌보고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다만 유일하게 불만이 있는 사람은 임아중이었다. 신유리가 새집을 정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전화를 걸어와 여러 차례 불평했다.“너희 다 가버리면 나 혼자 어떡하라고! 게다가 아빠가 또 선 보라고 강요까지 하는데, 글쎄 우서진 그 새끼가 나왔어.”임아중은 투덜거리더니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우서진이 너 어디 있는지 은근슬쩍 물어보던데 안 알려줬어.”그가 신유리를 왜 궁금해하는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누군가를 대신해 물어본 것이 분명했다.신유리는 임아중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 사실 서준혁이 알아도 별로 두렵지 않았다. 이렇게 큰 부산시에서 쉽게 마주칠 리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일부러 장수영에게 부탁해 시내에서 다소 먼 곳에 집을 구해두었다.주거 조건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주변 이웃 들은 좋았다. 그녀가 금방 이사 온 날, 위층 아줌마는 그녀에게 계란 한 팩을 가져다주었다.그와 동시.“최근 집안 사람들과 심하게 다투었다고 들었는데 심지어 주현이 시한으로 돌아가려 할 정도로 화났다며?” 우서진은 와인잔을 흔들며 무심하게 물었다.“굳이 그럴 필요 있어? 너희 아버지와 싸워 좋을 것 없잖아. 화인 그룹 지사에서 내쫓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해.”그의 말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준혁은 맞은편에 앉아 자신의 와인잔에 술을 따르고 있었다. 우서진은 못 참겠다는 듯이 손을 뻗더니 잔을 빼앗았다. “그만해. 위출혈 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병원 가고 싶어서 환장했냐?”“그럴 리 없어.”서준혁은 짧게 대답하고 다시 술잔을 들었다. 우서진은 착잡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준혁아, 너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잖아.”그 자제심이 강한 서준혁이 제어 못 하고 이런 식으로 술에 취해본 적이 없었다.
신유리는 임아중의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끄고 계속해서 새로운 기획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금장 부산시에 왔을 동안 그녀는 이곳의 날씨, 환경, 입맛, 그리고 낯선 억양 등 모든 것이 어색했다. 허경천과 그녀는 멀리 떨어져 있었던 데다 두 사람은 별로 친하지 않아 주로 이메일과 카톡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평소에는 얼굴을 볼 일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다른 친구도 없어 신유리는 거의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녀 역시 별로 나가고 싶지 않았고 친구도 없는 데다가 꼭 해야 할 일도 없었다. 얼마 전에 한 번 나갔다가 눈에 띄는 화인 그룹의 거대한 홍보 포스터를 봤다. 화인 그룹 본사는 금융뿐만 아니라 실물 자산도 다루고 있어서 지사와는 다르게 더 넓은 범위였다.그녀를 밖으로 나가게 한 건 부산시에 드물게 맑은 날이었을 때였다. 그녀는 빨래를 널다가 실수로 거울에 부딪혔다. 전신 거울이 흔들리며 신유리의 전체 모습을 비췄다. 창백한 얼굴, 가느다란 목, 이전에는 잘 맞았던 옷이 지금은 헐렁하게 느껴졌다. 신유리는 거울 속에 비친 여위고 눈빛이 공허한 여자를 보고 멍해졌다. 그녀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무의식 간에 손을 뻗어 거울 속의 자신을 쓰다듬었다.‘이게 나야?’‘어떻게 이렇게 엉망일 수가...’‘어떻게 내가 이렇게 엉망일 수 있지?’‘분명히 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신유리의 마음속에 큰 파도가 일었다. 그녀는 거울 앞에 오랫동안 서서 자신을 바라봤다.임아중이 전화를 걸어올 때까지.“뭐 하고 있어? 오늘 나가 놀았어? 오늘 부산 날씨 좋다던데.”신유리는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 집에 있었어.”“또 집에만 있었어? 내가 전화할 때마다 집에만 있더라. 거의 반달이나 됐어.”임아중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병원 가서 검진받는 거 잊지 않았지?”“응.”“다행이네.”임아중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말을 이어갔다. “이번 주말에 주언이 부산 간다고 했어. 걔한테 물건 좀 맡겼으니까 이제
같은 시각, 성남시.검은 정장을 쫙 빼입고 창문 앞에 서 있는 남성은 어딘가 우울해 보였다.새까만 눈동자는 유난히 깊어 보였고 어딘가 접근할 수 없는 냉담함이 느껴졌다.서준혁은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주시에 있는 게 확실해?”이석민은 말했다.“전에 남주시로 출장 갔던 사람이 심 씨 그룹에서 유리 씨를 만났다고 했어요.”그는 말을 마치고 조심스럽게 서준혁을 쳐다보았다.모두 신유리가 서준혁에게 별것 아닌 존재라고 생각했고 두 사람이 그렇게 헤어졌을 때도 후회할 사람은 신유리뿐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신유리가 떠나버리자 뜻밖에도 서준혁이 크게 후회하는 상황이 되었다.이석민은 그동안 서준혁을 몇 번이나 술집에서 데리고 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번마다 서준혁은 만취 상태였고 결국 병원에 또 입원하더니 조금 나아졌다.서준혁은 짧게 대답하고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마지막 연락은 그에게 송금한 3억 원이었다. 돈은 새로운 계좌로 송금되었고 성남시라고 적혀있었다. 아무 말 없이 단지 차가운 숫자뿐이었다. 신유리가 얼마나 그와의 관계를 끊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서준혁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더니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잠시 후,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오담윤 쪽 상황은 어떻습니까?”“이사회는 현재 매우 긴박한 상황입니다. 이사장님께서 오담윤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어요.”서준혁의 눈에 엷은 조소가 스쳤다. “참으로 정이 깊은 부자네요.”이석민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서준혁과 서씨 가문의 갈등이 모두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자연히 서창범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이 사생아는 서준혁이 화인 그룹 본사에서 쫓겨난 해에 서창범이 직접 본사로 데려와 양성했고 현재는 본사 기획부의 부장이다. 누가 더 높은 지위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석민은 서준혁에게 물었다.“그럼 남주시 쪽은 어떻게 할까요?”“그녀를 방해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