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친구랑 같이 온 거라서, 나 말고 매장 직원에게 물어보는 게 어때?"임유진이 담담하게 얘기하자 배여진은 그녀의 말대로 직원 쪽으로 다가갔다.그때 강현수가 임유진 쪽으로 걸어왔다."외할머니 일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사람은 원래 언젠가는 다 죽게 돼 있어요. 그저 누가 먼저 가느냐의 차이일 뿐인 거죠."이건... 위로인가?임유진은 고개를 들어 강현수를 바라봤다. 딱 떨어지는 슈트 차림은 그의 슬림하지만 탄탄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나게 했고 조금 차가운 듯한 얼굴은 잘생김이 더 해져 시선을 떼지 못하게 했다.연예계의 황태자인 그는 여자친구를 밥 먹듯이 바꾸는 거로 유명하다. 임유라와 헤어진 지금 그의 여자친구는 누가 될까? 배여진?강현수의 전 여자친구들은 전부 배여진의 대체품이었으니 이제는 정말 한 사람에게 충성하게 되는 걸까?"무슨 생각 해요?""아무것도 아니에요."강현수의 말에 임유진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아까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가 없다. 배여진과 어떤 사이가 되든 임유진과는 상관없는 일이니까.그저... 자꾸 그 꿈이 생각나 견딜 수가 없다. 대체 뭐였을까? 꿈속의 남자아이와 강현수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거지?남자아이가 언덕에서 미끄러져 여자아이의 손을 꽉 잡았을 때 느껴졌던 그 떨림과 두려움, 임유진은 꿈에서 깨고 나서도 그 감각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두려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임유진은 조금 뜸을 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어릴 때 혹시...""네?"그때 배여진이 가방 하나를 들고 흥분한 얼굴로 강현수에게로 다가왔다."현수 씨, 이 가방 어때요?"그녀가 들고 온 건 한정판 가방이다. 얼마 전 한 부잣집 영애가 이 가방을 들고 사진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댓글에는 그녀의 재력과 미모를 칭찬하는 글들이 파다했다. 그래서 배여진은 만약 자신도 저 가방이 있다면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꺼번에 살 거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그때 마침 임유진의 입에서 이 한마디가 튀
"둘이 무슨 얘기 했는데 갑자기..."배여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현수가 입을 열었다."임유진 씨, ‘현수야’라는 호칭 어떻게 알았어요?"순간 배여진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끼며 임유진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유진이가 그 호칭을 불렀다고...? 설마 기억이 돌아온 건가?’임유진의 기억이 돌아오면 배여진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빼앗기게 된다."그래서 어릴 때 정말 ‘현수야’라고 불렸던 거예요?"임유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꿈속 남자아이가 정말 강현수라는 건가? 꿈속에서 있었던 모든 일도 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그 호칭을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었어요."강현수가 그녀를 추궁했다."내가! 내가 어릴 때 유진이에게 알려줬어요!"그때 배여진이 갑자기 끼어들었고 임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그리고 강현수는 배여진의 말에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네가 알려준 거라고?""네, 어릴 때 유진이한테 현수 씨 구해줬던 일을 얘기한 적 있어요. 그때 이름도 알려줬고요. 유진이가 아마 그래서 알고 있었나 봐요."배여진은 임유진과 자신의 행동을 바꿔서 말해버렸다.강현수의 눈동자는 다시 어둡게 가라앉았고 이내 실소를 터트렸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미 찾고 싶었던 사람을 찾았잖아!’그렇게 되뇌었는데도 임유진의 입에서 나온 ‘현수야’라는 한마디에 그는 또다시 이성을 잃고 말았다."유진아!"그때 옷을 다 갈아입은 한지영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와보니 거기에는 뉴스에 자주 등장하던 강현수가 친구의 팔을 잡고 있었고 그 옆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이게 무슨..."한지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아, 여기는 강현수 씨, 너도 알지?"임유진의 말에 한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예계 일이라면 빠삭한 한지영이 강현수를 모를 리가 없었다."그리고 여긴 내 사촌 언니인 배여진."임유진의 소개에 한지영은 어색하게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상황이 돌아가는 걸 보니 강현수와 배여진이라는 여자 사이에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강현수의 말을 듣는 순간 임유진은 마음 한구석이 찌릿하고 아파 났다....한지영은 임유진에게서 강현수와 배여진의 일을 전해 들은 후 입을 틀어막으며 중얼거렸다."이건 뭐 드라마도 아니고..."허구한 날 여자친구가 바뀌던 강현수가 그렇게 찾아 헤맨 여자가 바로 친구의 사촌 언니라니... 이런 우연이 세상에 또 있을까?"근데 아까 네 팔은 왜 그렇게 잡고 있었던 거야?"한지영이 물었다."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물었는데...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나 봐, 내가."임유진은 지금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배여진이 왜 강현수에 관한 얘기를 자신에게 들려줬다고 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한 배여진은 한 번도 어린 시절 어떤 남자를 구해줬다는 얘기를 해준 적이 없다. 게다가 ‘현수야’라고 불리는 남자는 더더욱 없었다.아까는 타이밍이 안 맞아 제대로 물어보지 못했다."참, 그때 강현수가 너를 어릴 적 자기를 구해줬던 사람으로 착각한 적 있었잖아? 너 솔직히 말해봐, 만약 네가 정말 그 소녀라면 넌 강지혁과 강현수 중 누구를 선택할 거야?"한지영은 친구 연애사에 들뜬 여고생 같은 얼굴을 했다.그 말에 임유진은 불현듯 그 꿈이 떠올랐다. 그러다 이내 꿈은 꿈이고 강현수를 구해준 건 배여진이라며 생각을 정리했다."그런 일이 생길 리가 없잖아."임유진이 답했다."그리고 무슨 일이 있든지 내가 선택할 사람은 혁이뿐이야.""너 강지혁 씨 정말 많이 사랑하는구나."한지영은 조금 감개무량해졌다. 전에는 출소한 후 친구의 인생이 걱정됐던 것도 사실이다. 전과가 있는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각박한 세상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강지혁이라는 남자도 만나고 곧 결혼도 하게 된다.이건 뭐 강현수와 배여진의 사연보다 더 드라마 같은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응."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전에는 무섭고 두렵기도 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임유진은 강지혁을 사랑하고 있다.저녁.임유진이 강지혁을 향해 물었다."우
"사실 우리 지금도 결혼한 거랑 다를 거 없잖아."생각해보면 두 사람은 지금 같은 집에 살고 있고 심지어는 같은 침대까지 사용하고 있다.결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저 나라가 허락했다는 종이 쪼가리만 없을 뿐이다."달라."강지혁이 단호하게 말했다."사람들 눈에 누나는 강씨 가문 사모님이 아니잖아. 나는 누나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 거였으면 좋겠어. 물론 나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누나 것이 되고 싶고."임유진은 강지혁이 형식적인 절차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싶었다."결혼했다가 이혼하는 커플도 있어."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강지혁의 얼굴은 무섭게 굳어졌고 칠흑 같은 눈동자가 더욱더 어둡게 가라앉았다."그러니까 누나 말은 우리도 언젠가 이혼할 거라는 소리야?"임유진은 아까부터 자신의 팔을 잡고 있던 강지혁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그런 뜻 아니야. 그냥 결혼했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의 것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결혼은 사람이 하는 거지 그딴 종이 쪼가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임유진은 강지혁의 눈을 마주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때면 우리는 서로의 것이겠지만 만약 사랑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아무리 나라에서 결혼한 사이라고 지정해도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되겠지.""나 안 사랑할 거야?"강지혁은 이글거리는 눈동자와는 다르게 꽤 조심스럽게 묻고 있다.그러자 임유진이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웃었다."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어."강지혁은 그녀를 위해 많은 걸 해주었고 절망 속에 허우적거리는 그녀를 구제해주었으며 기꺼이 사랑해주었다. 이런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언제부턴가 그를 향한 사랑이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걸 느끼고 있다.하지만 그녀의 말에 강지혁의 마음은 더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냐고? 그럴 이유가 있다는 게 문제였다!"날 사랑해줘. 내 곁을 떠
임유진은 기지개를 한번 켠 후 몸을 일으켜 씻으러 갔다.다 씻고 나온 후 막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배여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유진아, 오늘 시간 돼?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데 잠깐 볼까?"임유진은 조금 고민하더니 이내 알겠다고 했다."그래, 그럼, 거기서 만나."마침 그녀도 배여진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으니 잘 됐다.‘현수야’라는 호칭과 어릴 적 강현수를 구해준 사실을 얘기해줬다는 것에 관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야만 했다.커피숍에 들어서자마자 배여진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온갖 명품으로 몸을 휘감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요즘 제일 유행하는 가방이 놓여 있었다. 웨이브를 넣은 머리에 선글라스까지 낀 그녀는 마치 셀럽이 따로 없었다.누가 지금의 배여진을 보고 한때는 시골 마을의 가정주부였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어? 유진아, 여기야."배여진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환하게 웃었다."그러고 보니 우리 둘이서 이렇게 만나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지 않아? 앞으로 나도 S 시에 자주 놀러 올 테니까 우리 자주 만나자."임유진은 배여진이 고작 이런 얘기나 하려고 자신을 불러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고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게다가 그녀가 감옥살이했을 때 그녀는 임유진을 비웃음거리로 만든 적도 있었다."왜 보자고 했어? 본론이나 얘기해 줄래?"임유진의 말에 배여진도 진지한 얼굴로 얘기했다."그래, 좋아. 내가 오늘 너 찾아온 건 현수 씨 때문이야."그러자 임유진도 같은 이유로 찾아왔기에 조금 흠칫했다."유진아, 나 솔직히 그날 너무 당황스러웠던 거 알아? 갑자기 현수 씨 이름을 그렇게 불러버리면 어떡해,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 게다가 넌 남자친구도 있는데 조심 좀 해야지."배여진이 뻔뻔하게 말했다."언니 정말 어릴 때 나한테 강현수 씨 구해준 얘기 한 적 있어? 그리고 ‘현수야’라는 호칭도 언니가 알려준 거 맞아?"임유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배여진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부
배여진은 턱을 치켜들었다."솔직히 말하면 현수 씨가 나 그동안 많이 찾고 있었다는 거 알고 설렜어. 그리고 나 이제 이혼도 했고 이제는 자유롭게 내 행복을 찾아다녀도 아무 문제 없는 거잖아. 나 너랑 현수 씨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는 거 알아. 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너를 나로 오해하기도 했었다는 얘기도 들었고. 하지만 결국 네가 아니라 나였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는 좀 주의해 줬으면 좋겠어."요즘 배여진은 항상 스타일리스트에게 코디와 메이크업을 받는다. 생긴 건 평범해도 꾸미면 연예인 버금가는 외모가 되어버려 그녀는 지금 자신감이 최고치에 달했다.그녀는 자신이 예쁘게 꾸미기만 한다면 강현수의 전 여자친구들에게 절대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유진아, 난 네가 내 행복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만약 방해한다면 그때는 그게 아무리 사촌 동생이라도 난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배여진은 하늘에서 굴러온 강현수라는 떡을 절대로 남에게 빼앗길 수 없었다....임유진은 지금 또다시 비슷한 꿈을 꾸고 있다.꿈속 남자아이 얼굴은 여전히 몽롱한 상태였고 꿈속에서 그녀는 상대방의 손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주고 있다. 두 사람은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 위로 올라가려고 애썼다.언덕은 너무 가팔랐고 발을 헛디디는 순간 죽지는 않겠지만 심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남자아이의 몸은 힘을 다 소진한 듯 점점 떨리기 시작했고 여자아이는 끊임없이 그에게 힘내라고 외쳤다."나 절대 안 놓을 거니까, 너도 조금만 더 힘을 내. 내가... 내가 꼭 너를 저 위에까지 데리고 올라갈게!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정말 안 놓을 거야?"남자아이가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응, 안 놓을 거야."여자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단호하게 대답했다.두 아이는 몇 번이나 더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질 뻔했지만 포기하지 않은 덕에 끝내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제일 안전한 곳까지 끌어올렸다.안전하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두 사람은 바닥에 털썩 누워버렸다."내가 그랬지?
임유진은 두 눈을 번쩍 떴다. 또 그 꿈이었다.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꿈.다만 이번엔 남자아이가 바닥에 주저앉았고 임유진은 곧바로 잠에서 깼다!시선을 올리자 익숙한 그 눈빛과 마주했다. 강지혁은 한없이 짙은 두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칠흑 같은 깊은 바다처럼 아득했다.“꿈꿨어?”강지혁이 얇은 입술을 움직이며 그녀에게 물었는데 목소리가 왠지 희미하게 들렸다.“응.”임유진이 머리를 끄덕이고 벽시계를 봤더니 어느덧 새벽 두 시를 넘긴 시각이었다.“나 때문에 깼어?”“아니.”강지혁이 대답했다.“나도 마침 잠이 안 오더라고. 무슨 꿈을 꿨길래 안색이 이렇게 창백해?”임유진이 입을 열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한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구하는 꿈을 꿨는데 그 남자아이가 강현수 같다고 말해도 될까?안 그래도 강지혁은 강현수가 그녀를 어릴 때 그 소녀로 착각한 일을 언짢게 생각하고 있는데 왜 지금 이런 꿈을 꾼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배여진이 어릴 때 강현수를 구해줬다고 말한 것 때문에 이런 꿈을 꾼 걸까?그런데 왜? 꿈속의 여자아이가 왜 꼭 임유진 본인처럼 느껴질까?“아니야, 아무것도.”임유진이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그냥 별 의미 없는 꿈이었어.”의미 없는 꿈? 강지혁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이마에 땀 엄청 많이 흘렸어.”강지혁은 말하면서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임유진은 그제야 이마에 땀이 난 걸 발견했다. 손과 등에도 온통 땀으로 흠뻑 젖었다.하지만 곧이어 강지혁의 손이 그녀의 이마에 멈췄다. 더는 아래로 내려가며 땀을 닦아주지 않았다.임유진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왜 그래?”순간 강지혁의 안색이 확 일그러졌다. 그는 힘겹게 손을 거두어들였다.임유진은 그의 손을 확 잡았는데 손이 엄청 세게 떨렸다.“너 손 왜 이렇게 떨어?”그녀는 묻자마자 발견했다. 강지혁은 손뿐만 아니라 전신이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혁아, 왜 그래? 왜 이렇게 심하게 떠는 거야?”임유진이 초조하게
그녀의 말 한마디에 이토록 당혹감에 휩싸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좀 괜찮아?”임유진이 물었다. 그에게 안겨 있는 것이 얼마나 아픈지는 안중에 없다. 그녀가 걱정되는 건 오직 강지혁뿐이다.다행히 강지혁은 좀 전보다 떨림이 잦아들었다. 서서히 안정을 되찾은 듯싶다.“응, 많이 나아졌어...”그는 중얼거리며 여전히 임유진을 안고 있었다.그녀는 강지혁을 극도의 불안감에 떨게 했다. 그녀의 영향력은 강지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한참 후에야 강지혁이 완전히 떨림을 멈췄다.그는 두 손을 놓아주며 임유진에게 말했다.“방금 누나 안고 있어서 많이 아팠지?”“괜찮아. 그렇게 아픈 것도 아니야. 나 사실 아픈 거 되게 잘 참아.”감옥에서 그런 비인간적인 고통을 겪고 나니 평범한 작은 고통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강지혁은 뭔가 생각난 듯 두 눈이 어두워졌다.“됐어, 나 이제 괜찮아.”“너 아까는 대체 왜 그런 거야?”그녀가 물었다. 연유를 모르니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아마도...”강지혁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악몽을 꾸다가 놀라서 깼거든. 그래서 몸이 세게 떨린 거야.”임유진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꿈을 꿀 때 강지혁도 꿈을 꾸고 있었다니.심지어 악몽 때문에 놀라서 온몸을 그토록 격하게 떨 줄 예상치도 못했다.“많이 무서운 꿈이었어?”그녀가 의아한 듯 물었다.“아마도.”“아마도?”“깨고 나서 그 꿈이 기억나지 않았지만 몸이 반응하고 격하게 떨린 것 같아.”그녀가 ‘현수야’라고 부를 때 강지혁에겐 악몽과도 다름없었다.꿈에서 강현수를 본 걸까? 왜 강현수에 관한 꿈을 꾸지? 그녀의 마음속에 강현수가 있다는 걸 의미할까?두 사람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게 아무리 애써도, 배여진이 그의 소원대로 임유진의 신분을 대체했어도 이건 마치 그 어떤 굴레처럼 끊으려고 안간힘을 써도 도통 끊을 수가 없었다!“이제 고작 새벽 두 시야. 얼른 더 자.”강지혁이 말했다.“그럼 넌? 넌 안 자?”그녀가 초조하게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