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강지혁이 덥석 그녀의 양손을 잡고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유진아, 그만... 이제 충분해..."하지만 임유진의 눈동자는 마치 어린 악동처럼 반짝였다.충분하다고? 하지만 왜 그녀는 계속 부족하다고... 이대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임유진은 강지혁이 너무 갖고 싶었다. 이대로 계속 자신의 곁에만 있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곁에 있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혁아..."임유진의 두 손이 또다시 그의 볼로 향했고 취기에 가득 찬 눈은 한참이 지나서야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너... 끄윽... 너무 예뻐."그녀는 트림하면서 중얼거렸다.마치 신이 빚은 듯한 남자의 얼굴은 만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인물처럼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이 남자가 정말 내 남자야? 그리고 나는 이 남자와 얼마 안 가 곧 결혼할 거고...?’"나 진애령 씨 사진 봤어... 너무, 너무 예쁘고 너랑도... 잘 어울렸어... 그때 뉴스에는 온통... 정말 온통 너희 얘기뿐이었어."임유진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너... 진애령 씨 사랑했니...? 왜... 왜... 진애령 씨가 죽었을 때 제대로 진실을 밝히지 않았던 거야...?"그녀의 말에 강지혁의 몸이 굳어버렸다.아마 이 말은 임유진이 맨정신일 때 마음속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담았던 말일 것이다.강지혁은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는 조용히 읊조렸다."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뿐이야."강지혁은 진애령을 사랑한 적 없고 그때 그녀를 약혼녀로 선택한 것은 진애령이 그를 사랑했고 그녀의 집안이 강씨 일가에 도움이 돼줄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좋은 혈통의 후계자를 낳아줄 것 같아서였다.그때의 그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없어도 되는 것이라고 여겼고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일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임유진은 마치 그의 말을 알아들은 듯 또다시 입을 열었다."사랑하지 않아도... 네 약혼녀였잖아... 너... 너는... 조사했었어야지... 왜... 왜 안 했어... 네가 그
"유진아, 나 용서해줘.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용서해줘..."이 말을 강지혁은 항상 그녀가 잠들고 나서야 뱉을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며 용서를 빌 용기가 없었으니까.임유진의 옷을 다 갈아 입힌 강지혁은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옷을 잡아당기더니 몽롱한 눈을 힘겹게 뜨고 입을 열었다."혁아, 용서할게..."강지혁은 온몸에 전율이 흐르더니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뭘 알고 이러는 걸까?임유진은 빨갛게 변해버린 눈가를 하고는 천천히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예쁜 웃음을 지었다. "난... 네가 왜 나한테 용서를 구하는지 모르겠지만 용서할게, 그게 뭐든 용서해줄 거야... 너는... 혁이니까..."그녀는 말을 마친 후 다시 눈을 감았고 재차 잠이 들었다.강지혁은 멍하니 임유진을 바라보다 허리를 숙이고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그래, 나는 혁이야. 누나의 혁이야..."강지혁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혹 임유진이 자신을 용서해주지 않아도 절대 놓아주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이제 임유진이 없는 강지혁은 강지혁이 아니니까....다음 날, 잠에서 깬 임유진은 두통에 시달렸다. 항상 과음한 다음 날은 이렇게 되어버렸고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이마를 주물렀다."머리 많이 아파?"그때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임유진은 그제야 강지혁도 이 방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조금, 많이 아픈 건 아니야."그 말인즉 이 정도의 고통은 아직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숙취해소제 준비하라고 얘기해 뒀으니까 일단 먼저 씻자."그 말에 임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막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강지혁이 한발 빨랐고 그는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아!"임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걸, 걸어가는 것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데.""머리가 아프다는 사람이 걷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강지혁은 단호하게 말하더니 그녀
임유진은 얼른 입을 헹구고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진짜야?""내가 거짓말하는 거 같아?"강지혁이 되묻자 그녀는 열심히 어제의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어제, 한창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어떤 여자가 다가왔고 강지혁에게 관심 있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다 임유진은 강지혁을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여자에게 화가 났고 그 뒤로는 또다시 생각이 안 났다. 하지만 정황상 강지혁이 거짓말한 것 같지는 않았다."그래도 난 기뻤어."강지혁이 말했다."난 누나가 어제처럼 다른 여자들 앞에서 내가 누나 거라고 선언하는 거 너무 좋았다고."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예쁘게 웃는 강지혁에 임유진은 순간 민망함이 싹 가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씻고 나온 후 임유진은 숙취해소제와 뜨끈한 국물로 해장했다.식사를 마치자 강지혁이 그녀를 향해 얘기했다."오늘 고이준이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리스트를 가지고 올 거야. 그러면 누나가 보고 어떤 디자이너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 골라."콜록콜록.임유진은 침에 사레들릴 뻔했다.다른 사람은 결혼하면 웨딩드레스를 고른다는데 그녀는 디자이너를 골라야 한다고?오후가 되자 고이준이 디자이너 리스트를 가져왔고 임유진은 그제야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라는 걸 깨달았다.일반 사람은 그들에게 옷 한 벌 부탁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인데 웨딩드레스는 감히 꿈도 못 꿀 것이다.그런데 그녀는 지금 디자이너 한 명도 아닌 여러 명 중에서 고를 수 있게 된 것이다.옆에는 디자이너들이 지금까지 제작한 웨딩드레스와 이브닝드레스 사진이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다 걸작이 아닐 수 없었다."유진 씨, 이것들은 절대 급하지 않으니 천천히 보시고 저한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혹 디자이너분과 소통하고 싶으시면 마찬가지로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바로 안배하겠습니다."고이준은 비서답게 평온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지만 속은 이미 난리가 났다. 강지혁이 드디어 결혼을 결심했으니까!심지어 결혼 상대는 바로 임유진! 물론 고이준도 강지혁이 임유
어릴 적 강지혁은 행여나 이 노인의 눈 밖에 날까 봐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그러다 지금 드디어 한때는 자신의 운명을 쥐고 있던 노인이 나이가 들었다.할아버지와 손자 사이라고는 하지만 피가 섞인 외에 가족 간의 정은 아마 얼마 없을 것이다."저 임유진과 결혼해요."청량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웠고 강지혁은 마치 통보하듯 말을 내뱉었다."결혼?"강문철이 피식 웃었다."그 여자는 우리 강씨 집안과 어울리지 않아.""그건 내가 정해요."강지혁은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고 강문철은 우습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네가 지금 그 여자 사건까지 뒤집고 있다지?"강문철은 병상에 계속 누워있지만 그렇다고 소식까지 느린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알고 있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그 여자는 아니? 그 사건에 사실 너도 엮여 있었다는 거."강문철은 여유롭게 물었고 강지혁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다."전에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난 그 일을 절대 유진이가 모르게 할 예정이라고.""그럼 내가 대신 말해줄까? 그 여자가 그걸 알고도 너와 결혼하겠다고 하는지 궁금하구나. 만약 돈이 목적인 여자라면 그 사실을 알고도 저와 결혼할 테지. 강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면 앞으로 막대한 재산을 손에 쥐고 휘두를 수 있을 거니까. 다만 지혁아, 너는 네 어미처럼 돈만 밝히는 그런 여자를 원하는 거냐?"지금의 강문철은 마치 악마처럼 두 개의 막다른 길을 강지혁이 앞에 내어주었다. 만약 임유진이 사실을 알고 그를 포기한다면 당연히 결혼은 못 하게 될 것이고 만약 그를 포기하지 않고 결혼을 원한다면 임유진은 강씨 일가의 돈 때문에, 돈을 보고 결혼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 된다.그리고 강지혁은 돈만 보고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를 극도로 경멸하고 미워했다.그래서 이 사실을 임유진이 알게 되는 순간 결혼은 물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강지혁은 얼굴을 굳히더니 천천히 병상 옆으로 다가왔다.강문철의 옆을 지키던 비서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도련님, 뒤로...
강문철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직접 키운 아이기는 하지만 도저히 입맛대로 다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고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다."너 이렇게 보니 정말... 네 아버지를 많이 닮았구나."강문철은 조금 복잡한 눈으로 자기 손주를 바라보았다. 그때 당시 강선우도 강문철의 앞에서 강지혁의 엄마와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강씨 집안 도련님 신분 따위 포기해도 상관없다고 했었다.마치 강문철이 일궈놓은 것이 전혀 값어치가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강지혁은 그의 말에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하지만 언젠간 후회할 거다. 네 아버지처럼 후회할 거야..."강문철은 강선우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고 강지혁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확고하게 답했다."난 후회 안 해요. 유진이를 사랑하고 유진이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건 아마 제일 잘한 일일 거예요.""그러냐? 하하하..."강문철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후회를 안 한다라... 말은 쉽지. 그런데 네가 후회하는 꼴을 내가 볼 수 있겠는지 모르겠구나.""그럼 더 오래 사시던가요."강지혁은 강문철을 빤히 바라보며 말해다."백 세까지 사셔서 내가 얼마나 후회 안 하고 잘살고 있는지 한번 보세요. 그때가 되면 아마 나와 유진이 사이에서 나온 아이도 볼 수 있을지 모르죠. 그리고 그게 더 재밌지 않겠어요?"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발에 힘을 풀었고 바닥에 깔려있던 비서는 얼른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강문철을 향해 물었다."회장님, 괜찮으세요?"강문철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손주를 바라보았다."내가 정말 백 세까지 살았으면 좋겠냐?""네."강지혁이 옅게 웃었다. 아까까지만 까만 눈동자에 서려 있던 살기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고 그 대신 부드러움이 자리 잡았다."할아버지, 백 세까지 사시라고 한 말 진심이에요. 제가 아버지와 달라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할아버지도 드디어 깨달으시는 날이 오겠죠."그 말을 끝으로 강지혁은 병실을 나갔다.강문철의 눈에
"다만, 뭐?"강지혁이 물었다."내 몸에 흉터가 좀 많아서 웨딩드레스는 전신을 감싸는 듯한 디자인 밖에 할 수 없을 거야. 노출이 많으면 흉터가 드러나잖아."임유진은 조금 민망해 하며 말했다.하지만 그 모습에 강지혁은 또다시 마음이 찌릿하게 아파왔다."보수적인 디자인도 좋아. 난 내 신부가 노출이 많은 옷을 입는 거 싫어."강지혁은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임유진을 꼭 끌어안았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출이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어. 누나도 알지? 나 소유욕 엄청나게 강한 거.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 여자를 아예 보지 말았으면 좋겠어."임유진은 그의 말로 민망했던 마음이 싹 가셨다."혁아, 고마워."임유진이 중얼거렸다."나, 누나 기분 생각해서 이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진심이야."강지혁은 입술로 임유진의 얼굴을 이리저리 비비적거리며 말했다."나는 누나 몸에 흉터가 있다고 해도 상관없어. 그 흉터마저 소유하고 싶으니까. 가능하면 어디 무인도에다 누나를 가둬두고 나만 보고 싶은 기분이야. 그러면 누가 뺏어갈 일도 없을 테니까."임유진이 피식 웃었다."누가 날 뺏어가."강지혁은 대답 대신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임유진은 모를 것이다. 그녀가 강지혁을 얼마나 떨리게 하고 미치게 하는지. 그리고 그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또 얼마나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지.그건 마치 어떻게 할 수 없는 임유진만의 마력과도 같았다. 그리고 강현수도 그걸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그 증거로 강현수는 임유진이 자신이 찾는 여자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끌려버리고 말았다.임유진은 고심 끝에 디자이너를 골랐다. 해당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면 클래식하고 보수적인 스타일이 많았고 그것이 그녀의 요구에도 꼭 들어맞았다.강지혁도 물론 그녀가 좋다고 하면 다 좋았다."참, 우리 결혼하는 거 너희 할아버지가 허락하실까? 반대하시면 어떡해?"임유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허락은 안 하시겠지만 이건 우리 결혼이야. 난 할아버지 의견 필요 없어."강
임유진은 그 어린 강지혁이 그 저택에서 혼자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무서웠을지 너무나도 상상이 갔다. 하나밖에 없는 핏줄에게서는 가족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는 언제든지 대체 당할 걱정까지 해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강지혁은 그래서 부단히 강해질 수밖에 없었고 나약해질 기회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나약함을 보이는 순간 바로 버려질 게 뻔했으니까."어릴 때 많이 힘들었어...?"임유진은 눈앞에 있는 남자가 안쓰러워 미칠 것 같았다.그를 알기 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강지혁을 알았을 때 그녀는 위에서 고고하게 내려다보는 남자는 걱정 없이 편히 인생을 즐길 것만 같았다.하지만 지금 보니 걱정 없이 편히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강지혁이 현재 누리는 모든 것들은 어린 그가 힘들게 얻은 것이다.어린 나이에 다른 아이들은 상상조차 못 할 것들을 짊어지고 있었다."괜찮아."강지혁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 지금 이 순간, 임유진의 눈동자에는 온통 강지혁밖에 없었다."모두 지난 일이고 적어도 지금은 내 걱정 안 해도 돼. 이제는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체할 수 없을 테니까."강지혁의 운명은 이제 오로지 그의 손에 쥐고 있으니까."응, 모두 지난 일이야."임유진은 그의 손을 잡고는 볼을 그의 손바닥에 비볐다."나한테 있어 너는 절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어."강지혁의 그녀는 꼭 이렇게 듣고 싶은 말만 해준다."그 말 영원히 잊어버리지 마."강지혁은 낮게 속삭이더니 허리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키스가 끝나고 임유진은 또다시 조금 전 문제로 돌아갔다."그럼 할아버지 쪽은 정말 이대로 내버려 둘 거야? 아니면 내가... 내가 만나볼까?"이 말을 하는 그녀의 몸이 살짝 떨렸다. 강문철을 향한 두려움을 어떻게 금방 떨쳐낼 수 있을까."아니야."강지혁이 말했다."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허락하든 안 하든 누나와 결혼 할 거야. 만약 할아버지가 누나한테 허락 안 한다고 하면 누나는 나와
임유진은 탈의실로 들어가 웨딩드레스를 갈아입었고 한지영도 들어가 도왔다.한편, 탈의실 밖 대기 공간에는 강지혁과 백연신 두 남자가 앉아 있었다.백연신은 솔직히 강지혁이 이렇게까지 빨리 임유진과 결혼식을 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임유진 씨 사건 곧 뒤집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요?"백연신이 먼저 화제를 찾아 말을 걸었다."소식이 빠르시네요."강지혁은 고개를 들어 백연신을 쳐다보았다."지영이가 임유진 씨 사건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서요.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게 많아요."백연신이 말을 이었다."그런데 듣기론 강지혁 씨는 이번 사건의 원흉이 허재명이라고 하셨다면서요?"강지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백연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임유진 씨 사건, 나도 조사한 적 있어요. 허재명은 정말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모든 걸 임유진 씨에게 덮어씌우려고 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때 당시 허재명은 사건이 종결된 후 바로 사직서를 내고 해외로 나갔어요. 그런데 누가 봐도 수상쩍은 행동을 한 그를 진씨 가문은 가만히 내버려 뒀죠."백연신의 질문에 강지혁이 차갑게 물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그저 진씨 일가도 수상하다고 생각됐을 뿐이에요."백연신이 웃으면서 말했다."그 당시 파일을 보면 진씨 일가는 마치 뭔가에 쫓기듯 서둘러 임유진 씨의 죄를 단정 지으려고 그뿐만 아니라 당시 언론매체나 여론도 재판부에 빨리 사건을 종결시키라는 이상한 부담을 줬더라고요. 그리고 비슷한 다른 사건과 비교해 봤을 때 이 사건은 유독 빨리 끝났기도 했고요."강지혁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그에 반해 백연신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물론 사회적 관심이 많이 쏠린 사건이니만큼 빨리 종결한 것도 있었겠죠. 하지만 지금 임유진 씨가 무죄라는 게 증명이 되면 진씨 가문이 당시 정말 숨기는 게 없는 건 맞는지 다시 한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죠."강지혁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백연신 씨가 이렇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