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천사가 아닐까...?강지혁은 마치 진짜 천사를 만난 사람처럼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그에게는 임유진이 천사가 맞을 것이다. 메마른 그의 삶을 구제해주고 의미를 부여해줬으니 말이다.만약 임유진이 없었다면 강지혁은 아마 계속 그렇게 무의미한 채로 살았을 것이다."혁아, 어때?"임유진이 물었다.아까 문이 열리기 전 거울을 보는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녀는 마치 딴 사람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드레스로 결정한 건 아니지만, 정말 너무 예뻐서 소리를 지를 만큼 마음에 들었다.아마 여자들의 마음속에는 모두 웨딩드레스를 향한 로망이 있는 듯싶다.어릴 적 임유진은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입장하는 신부를 보며 언젠가는 자신도 저런 드레스를 입고 동화 속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그리고 지금... 임유진은 드디어 그녀만의 왕자님을 만난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강지혁을 바라봤다. 그는 마치 모델처럼 정장을 너무 잘 소화했고 아마 기본 티에 츄리닝을 입혀도 강지혁은 여전히 멋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게다가 신이 내린듯한 정교한 이목구비는 그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해주었다."예뻐."섹시한 입술에서 간단명료한 두 글자가 튀어나왔다."나도 이 드레스 너무 예쁜 것 같아."임유진이 웃으며 대답했다."아니, 옷 말고 너."강지혁의 말에 그녀는 금세 얼굴이 핑크빛으로 달아올랐다.다른 남자들이 이런 말을 하면 느끼해 보이기만 하던데 왜 강지혁이 하면 이렇게나 설렐까?임유진은 아까부터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너 지금 순백의 천사 같아."강지혁은 허리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갖다 대고 임유진만 들을 수 있게 속삭였다."그래서 널 이대로 납치해 내 곁에만 두고 싶어."만약 정말 천사라면 강지혁은 임유진이 어디에도 못 가게 그녀의 양 날개를 부러트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임유진은 얼핏 들으면 조금 무서운 고백도 강지혁의 입에서 나와서 그런지 설레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
“파였어요? 난 모르겠는데.”한지영은 몸에 걸친 드레스를 훑어봤다. 그녀는 어깨가 드러난 이브닝드레스를 입었다. 치마 길이는 뒷면이 앞면보다 긴데 앞면은 무릎 위까지 내려오고 뒷면은 발목까지 내려온다.드레스 핏이 워낙 예뻐 그녀의 몸매를 한 층 업그레이드해주고 허리라인도 맞춤하게 잡아줬다.이건 여자들이 꿈에 그리던 완벽한 효과였다!한지영이 백연신에게 말했다.“나 이렇게 입으면 뭔가 좀 있어 보이고 섹시한 것 같지 않아요? 몸매도 훨씬 예뻐 보이고요.”백연신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한지영 얘는 여자 맞아? 내 앞에서 뭐가 있어 보인다느니, 섹시하다느니, 뭘 이렇게 거침없이 묻고 있어. 날 아예 남자로 안 보는 거야?’두 사람은 현재 명의상 애인 사이가 맞지만 한지영은 마음속으로 단 한 번도 그를 남자친구로 생각한 적이 없는 듯싶다!그녀에게 백연신은 그저 복수하고 빚이나 돌려받으려는 사람일 뿐이다.“너 진짜 이 옷 입고 신부 들러리를 할 생각이면 미리 말하는데 결혼식 날 예식장도 못 갈 줄 알아!”백연신이 싸늘하게 말을 내뱉었다!“연신 씨...”한지영이 그를 째려봤다.“왜 이래요 진짜. 고작 드레스일 뿐이잖아요!”“그럼 어디 해보시던가. 내가 보내줄 것 같아?”백연신이 말을 이었다.“세상 어떤 남자가 제 여자친구에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히는 걸 좋아하겠어?”그녀의 몸매는 확실히 눈 호강할 만큼 날씬하고 예쁘다. 다만... 백연신만 보면 됐지 딴 남자들에겐 절대 보여줄 수 없다.게다가 강지혁의 결혼식에 수많은 하객이 참석하겠는데 그중에서 한지영에게 흑심을 품을 남자가 없을 거란 보장은 못 한다.한지영은 한심해서 말문이 막혔다. 왠지 백연신이라면 정말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렇지만 그녀가 전에 백연신을 따라 연회에 참석했을 때 지금 한지영이 입은 드레스보다 훨씬 노출이 심한 드레스를 입고 온 여자들을 봐도 백연신은 노골적이란 말 한마디 없었다!요즘 드레스 중에 어깨를 가린 드레스가 몇 개나 된다고!백연신은
외할머니는 얼마 전에 퇴원하시고 집에 돌아가 편히 휴식을 취하셔서 병이 차츰차츰 나아질 거로 알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방금 병원 간호사에게 전화가 걸려 왔는데 그 간호사는 외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임유진에게 전화했다. 할머니가 지금 병원에 계시는데 상태가 매우 위독하시고 간헐적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고 했다. 한편 외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죽기 전에 임유진을 한 번 보는 거라고 하셨다!간호사는 외할머니가 이미 입원하신 지 3일이 되었다고 하는데 큰 삼촌, 둘째 삼촌, 그리고 셋째 이모까지 왜 아무도 그녀에게 전화해서 알리지 않았을까?오늘 간호사의 전화가 없었더라면... 그랬다면 임유진은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도 못 지켜봤을 것이다!‘아니, 아니야. 마지막 모습이라니, 그럴 리 없어.’임유진은 속으로 끝없이 되뇌었지만 휴대폰을 쥔 두 손은 점점 더 세게 떨렸다.이때 강지혁이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떨리는 두 손을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걱정 마. 무슨 일 있어도 내가 항상 옆에 있어.”임유진은 고개 들어 옆에 앉은 강지혁을 쳐다봤다.“혁아, 할머니가 만약 진짜...”‘죽음’이란 두 글자는 목에 걸린 듯 도저히 내뱉을 수 없었다.“나 어떡해? 할머니 잃고 싶지 않단 말이야!”가족 중에 외할머니만이 그녀를 진심으로 대했다. 나중에 제대로 효도해드리며 할머니를 모시고 여기저기 구경시킬 생각인데 이젠 그 희망들이 회색빛으로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잃고 싶지 않다고... 강지혁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도 한때 엄마를 잃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엄마는 떠나갔다. 나중에 아빠도 잃고 싶지 않았지만 또 끝내 그의 곁을 떠났다.지금 강지혁이 지키고 싶은 사람은 임유진 한 명뿐이다!“유진아, 네겐 아직 내가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항상 옆에 있어 줄게!”강지혁이 부드럽게 말했다.그는 신이 아니다. 아무리 권력과 재력을 지녀도 생명 앞에선 가끔 무기력해질 따름이다.병실에서 노쇠한 어르신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간신히 숨을 쉬며 버텨가는 중이었고
외할머니는 결국 마지막 그 한마디를 잇지 못했다. 눈도 여전히 뜨고 있고 입도 벌리고 있지만 그만 숨이 멎었다.임유진은 멍하니 넋 놓고 있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옆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는 외할머니의 사망시간을 확인하고 임유진에게 말했다.“임유진 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인의 명복... 가족 중에 유일하게 그녀를 사랑해주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임유진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할머니의 몸에 엎드려 대성통곡했다.“흐엉.”몸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데 호흡이 멈추고 심장 박동이 멈췄다. 앞으로 그녀는 더이상 할머니의 부름을 들을 수 없고 자신을 향해 웃는 할머니의 미소를 볼 수 없다...임유진은 엉엉 울었고 강지혁은 옆에 서서 묵묵히 그녀를 위로했다.지금은 슬픈 만큼 눈물을 쏟아내야 한다. 외할머니는 그녀에게 정신적 지주이자 그녀가 엄마를 여읜 후 유일하게 지켜준 사람이다.임유진은 이제 더이상 할머니를 볼 수 없다.가족을 잃은 고통이 무엇인지 강지혁은 잘 안다. 그해 아빠도 그의 앞에서 얼어 죽었다. 그 순간 강지혁은 온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듯한 슬픔에 잠겼다.나중에 친척 관계를 확인하고 강씨 일가로 돌아갔지만 가족이란 느낌은 전혀 없었다.다만 아빠에게 죽음은 일종의 해탈이겠지. 아빠는 엄마를 너무 사랑하셔서 엄마를 잃은 후 사는 게 죽는 것만 못한 고통이었을 테니까.그래도 아빠는 본인에게 자식이 있다는 걸 기억하셔야 했다. 아빤 모든 감정을 엄마에게 쏟아부었고 자식에겐 유서 한 장만 남겼다. 유서로 강지혁의 신분을 밝혔고 그가 강씨 일가에 돌아갔으면 하는 소원을 적었다.임유진은 오랫동안 울고 나니 나중에 눈물이 메말라서 잠긴 목소리로 울먹였다.“유진아, 외할머니 편히 보내드리자.”강지혁이 드디어 말을 꺼냈다.그녀는 흐느끼며 두 눈이 벌겋게 부어올랐다.“그래, 편히 보내드려야지... 우리 할머니...”말을 마친 임유진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손으로 할머니의 얼굴을 가렸다. 눈도 감으시고 입도 다물게 해드렸다
임유진의 큰삼촌, 둘째 삼촌과 셋째 이모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두세 시간 만에 병원 연락을 받고 속속들이 병원에 도착했다.한편 그녀의 외할아버지 노준태는 몸이 편찮다는 이유로 병원에 안 왔다. 병원에 와서 시신을 보고 상심이 크면 몸이 더 안 좋아질 테니까.저승에 계신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이런 이유를 들으면 과연 어떤 심정일까? 임유진은 가히 짐작할 수 없었다.한편 삼촌, 이모들은 임유진을 보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바로 외할머니의 묘지와 장례식 비용이었다. 임유진도 엄마 몫을 내야 한다며, 일전 한 푼 안 낼 순 없다고 한다!임유진은 저도 몰래 울화가 치밀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삼촌, 이모들이 신경 쓰는 건 오직 돈 문제였다.“돈이요?”옆에서 줄곧 아무 말 없던 강지혁이 입을 열었다.두 삼촌은 그제야 병실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너무 성급하게 온 것도 있고 조카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어 유난히 눈에 띄다 보니 옆에 있던 강지혁은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강지혁이 입을 열자 두 삼촌은 흠칫 놀라며 바로 그를 알아봤다. 그날 밤 박씨 일가에서 봤던 사람이니까.처음에 그들은 임유진을 박씨 일가의 바보 아들 박성호에게 시집보낼 생각이었는데 한밤중에 강지혁이 한 무리 사람들을 거느리고 와서 임유진을 데려갔다.나중에 그들은 현지 경찰서에 며칠이나 갇혀 있어야만 했다!“당... 당신이 여긴 어떻게?”두 삼촌이 버벅거리며 물었다.셋째 이모는 강지혁을 보더니 자연스럽게 말했다.“유진의 남자친구도 있었네. 네가 한꺼번에 돈을 내놓지 못하겠으면 남자친구더러 보태 달라고 해. 외할머니 장례식 치르고 묘지 살 돈도 없는 건 아니잖니.”임유진이 막 말을 꺼내려 할 때 강지혁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짓누르며 이모님께 말했다.“돈은 문제없어요. 근데 당신들이 과연 감당할 수 있겠어요?”셋째 이모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말은 무슨 뜻이지?이때 두 삼촌이 얼른 이모를 잡아당기며 전에 박성호의 집에서 있은
큰외삼촌이 유독 험상궂은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야 이 자식아, 저번에 네가 우릴 구치소에 그 오랜 시간을 가둬 넣었지? 지금 당장 사과하고 손해배상비 물어내. 안 그러면 두 발로 걸어 나가지 못할 줄 알아.”“아직 감히 내게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은 없는데.”강지혁이 느긋하게 말했다.한편 임유진은 마냥 의아할 따름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두 외삼촌이 원래 혁이를 무서워했는데 이모가 방금 그 말을 한 뒤로 두 삼촌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설마 이모네 딸 배여진에게 뒷배가 생겨서 이러는 걸까?배여진은 남편과 자그마한 철제 가게를 운영하고 수입도 보통인데, 마을의 대다수 주민들과 비슷한 수준인데 대체 무슨 뒷배가 있다는 걸까? 임유진은 이해되지 않았다.“좋아. 사과 안 한다 이거지? 이따가 무릎 꿇고 빌어도 이 일은 절대 쉽게 넘어갈 수 없어! 그런 줄 알아!”큰 외삼촌이 표독스럽게 말했다.셋째 이모는 옆에서 좋은 구경 난 것처럼 거들먹거렸다.“유진아, 이모는 분명히 말해뒀어.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 얼른 네 남자친구더러 두 삼촌께 사과하고 보상 톡톡히 해드리라고 해. 너도 알다시피 여진이가 평상시에 두 삼촌들과 사이가 얼마나 좋아. 삼촌들이 괴롭힘당하는 걸 절대 보고만 있을 여진이가 아니지.”임유진은 그제야 알아챘다. 셋째 이모는 오늘 옷차림이 전과 달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교하게 만든 옷이라 싸구려는 아닐 듯싶었다. 게다가 손에 다이아몬드 반지와 금팔찌를 끼고 있었는데... 돈벼락이라도 맞은 듯싶었다.셋째 이모가 계속 입을 떠벌렸다.“너희 여진 언니는 더이상 예전의 여진이가 아니야. 뒤에 귀인이 뒷받침해주고 있어 감히 우리 여진의 심기라도 건드리면, 쯧쯧...”“귀인?”강지혁이 경멸의 미소를 날렸다.“마침 잘됐네요. 대체 어떤 귀인인지 한번 지켜봐야겠어요.”“너 따위가 뭔데? 이 세상엔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사람도 있어!”셋째 이모가 두 눈을 부릅뜨고 강지혁을 노려보며 이제 곧 후회할 일만 남았다고 암시하는 듯
“혁아, 됐어, 관둬.”임유진이 말했다.“금방 숨 거둔 외할머니, 가시는 길 편히 보내드리고 싶어.”어쨌거나 셋째 이모는 외할머니의 친딸이었으니!그녀가 아무리 셋째 이모에게 불만이 많아도 이런 때에 외할머니를 불편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다.적어도 가시는 길은 편히 보내드리고 싶었다.“그래.”강지혁이 다정하게 말하며 셋째 이모의 손을 놓았다.셋째 이모는 휘청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서다가 겨우 자세를 다잡았다.그녀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아픈 손목을 매만지며 임유진을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감히 아까처럼 덮쳐들진 못했다.“죽일 놈의 계집애, 이따가 여진이 오거든 너 아주...”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배여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엄마, 뭔데? 내가 오면 뭐?”임유진은 고개 들어 이리로 걸어오는 배여진을 쳐다봤다.배여진은 샤넬 신상 슈트를 입고 가방도 샤넬 시그니처 크로스백이었다. 얼굴엔 세련된 메이크업을 했고 머리도 전처럼 대충 묶은 게 아니라 웨이브를 넣어서 우아하게 풀어헤쳤다.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고 아예 딴사람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임유진을 가장 놀라게 한 건 바로 배여진 곁에 따라온 사람이 강현수였다!!검은색 정장 차림의 강현수는 전보다 조금 야위었고 여전히 잘생긴 얼굴이지만 양미간 사이에 피곤함이 살짝 묻어났다.강현수가 그날 윤이 식당에 달려와 다짜고짜 임유진에게 강지혁과 결혼하냐고 물은 이후로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여기서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이야.게다가... 임유진의 사촌 언니와 함께 들어오다니.그럼 설마 셋째 이모가 말한 사촌 언니의 귀인이 강현수였다고?!한편 강현수는 안에 들어서자마자 임유진에게 시선이 꽂혔다. 예상했다는 눈빛이지만 그 속엔 놀라움도 담겨 있었다.그는 임유진이 당연히 이리로 올 줄 알았다. 그녀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안 올 수가 없지.바로 이 때문에 배여진이 이 병원에 간다고 할 때 함께 온 것이다. 오는 길에서 강현수는 수없이 되뇌었다. 본인은 단지 배여진 때문에 병원에 가
강지혁은 강현수와 그의 옆에 있는 배여진을 보더니 두 눈을 반짝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한 손으로 임유진의 어깨를 잡고 강현수에게 말했다.“현수야, 여기서 또 이렇게 보네.”강현수는 그제야 강지혁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래, 오랜만이야.”한편 딸에게 불만을 늘어놓으려던 셋째 이모는 이 광경을 보더니 놀란 기색이 역력했고 이어서 어리둥절한 채 물었다.“두 분 아는 사이에요?”강현수가 생각에 잠긴 눈길로 강지혁을 쳐다봤다.“이분들 아직 네가 누군지 몰라?”“아마도.”강지혁이 대답했다.“난 너처럼 오만하지 않잖아. 그건 그렇고 네가 왜 여기 있어? 이 여자는...”그의 시선이 강현수 옆에 있는 배여진을 향했다.“너 이 여자 만나? 아까 다들 이 여자 뒤에 귀인이 뒷받침해준다더니 그게 너였어?”강현수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고 시선은 또다시 웨딩드레스를 입은 임유진을 향했다.가슴이 또다시 후벼 파듯 아프고 모든 게 그의 착각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가 생각했던 건 전부 그의 환상일 뿐, 그저 꿈에 불과했다.그녀가 본인이 찾는 사람이길 얼마나 바랐던가?하지만 그녀의 과거를 따라 조사해봤더니 또 다른 ‘팩트’를 얻었다.“여진이가 내가 찾는 사람이었어.”강현수가 말했다.임유진은 흠칫 놀랐지만 강현수의 말을 바로 이해했다. 한때 강현수는 사람을 잘못 알아보고 그녀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강현수가 그 사람을 찾는 일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임유진은 제대로 체감했다.그런데 여진 언니가 바로 강현수가 애타게 찾던 그 사람이라고? 어릴 때 그 소녀였단 말인가?!임유진은 문득 세상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일단 축하해야겠네.”강지혁이 미소를 지었지만 경멸의 눈빛으로 배여진을 쳐다봤다.인간의 탐욕이란 역시! 분명 아니면서 한사코 옳다고 잡아떼는 추악한 몰골!강지혁이 꼼수를 부려 온갖 단서를 조작해 배여진이 바로 강현수가 찾는 사람이라고 만들었다. 하지만 강현수가 정말 배여진을 찾았을 때 그녀가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