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영화 시사회 보는 거 안 좋아해?”강지혁이 되물었다.“아니, 그게 아니라.”그녀는 힘껏 고개를 내저었다.‘시사회를 일반인이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게다가 현장에 가면 수많은 연예인들을 구경할 수 있을 텐데. 이건 정말...’하지만 임유진은 결국 사욕을 참고 윤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기로 했다.“나 윤이 학원 보내야 해서 시사회는 못 갈 것 같아.”그녀가 말했다.강지혁은 또다시 그녀 옆의 꼬맹이에게 시선을 옮겼다.“왜 누나가 얘 학원 보내줘?”그의 말투 속에 질투가 살짝 섞여 있었다.“유미 언니 어머님이 다리를 상해서 오늘 오후에 수술하신대. 언니는 어머님 간호하러 병원에 갔고 내가 선뜻 윤이 학원 바래다주겠다고 했거든.”“...”강지혁은 미간을 살짝 구겼다. 한편 임유진의 옆에 있던 녀석은 그의 눈빛이 조금 불편했는지 임유진에게 몸을 기대며 작은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임유진은 아이의 정서 변화를 바로 느끼고 쪼그리고 앉아서 달래주기 시작했다.“윤이야 괜찮아, 두려워하지 마. 이 아저씨는 이모 친구야. 이모처럼 윤이를 좋아하게 될 거야.”임유진은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최대한 천천히 말하며 수어도 했다.말을 마친 그녀는 강지혁에게 일침했다.“윤이한테 부드럽게 대하고 자주 웃어. 안 그러면 아이가 무서워한단 말이야.”강지혁은 눈썹을 들썩거렸다. 그녀는 이미 아이 대신 강지혁에게 불만을 표했다.하지만 방금 그녀의 말투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말투란 걸 임유진은 모를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지혁은 불쾌했을지 몰라도 그녀이기에 전혀 짜증이 나지 않았다.심지어... 이렇게 막 다루는 그녀의 태도가 더 좋았다. 예전에는 조심스러운 말투였을 뿐인데 지금은 마치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누나 요구라면 바로 들어주지.”강지혁이 말하면서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고 살벌한 압박감을 최대한 자제했다.탁윤은 두 눈을 깜빡이면서 살짝 의아한 눈길
“그럼 충분해. 시사회가 오후 다섯 시에 열리거든. 윤이 학원 끝나고 시사회 보러 가면 돼.”“정말? 그래도 돼?”임유진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사회를 볼 기회가 생기다니, 그녀는 너무 기뻤다.“당연하지.”강지혁이 실소를 터트렸다.“진짜 시간이 없어도 누나만 원하면 내가 시사회 한 번 더 만들어줄 수 있어.”임유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만을 위해 시사회를 열어준단 말인가? 이건... 스케일이 너무 커지는 거 아닐까? 다만 다시 생각해보니 강지혁이라면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닌 듯싶었다.임유진은 그가 진짜 번거롭게 시사회를 다시 열어주길 바라지 않았지만 말만 들어도 마음이 훈훈해졌다.강지혁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차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임유진이 아이의 손을 꼭 잡고서 차에서 내렸다. 강지혁도 두 사람과 함께 학원 교실까지 가주었다.이곳에는 인공와우를 착용한 아이들이 꽤 많았는데 다들 학부모와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강지혁은 아이를 교실까지 바래다주고 선생님께 맡기면 그만인 줄 알았는데 임유진이 떡하니 윤이의 곁에 앉았다.“여기 수업은 학부모가 함께 도와줘야 해. 너 지루하면 밖에 나가 돌아다닐래? 수업 끝나고 전화할게.”임유진이 말했다.강지혁은 입술을 앙다물고 의자를 끌어와 아이의 옆에 앉았다.“그럼 나도 함께 남아있어야지.”임유진이 활짝 웃었다.그녀와 강지혁은 처음 이곳에 왔지만 여기 있는 다른 학부모들은 윤이를 일찌감치 알고 있어 하나같이 이상한 눈길로 두 어른을 쳐다봤다. 전에 윤이랑 같이 온 학부모는 두 사람이 아니었으니까.그중에서도 강지혁이 내뿜는 카리스마와 출중한 외모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윤이의 앞에 앉은 아이의 학부모는 고개 돌려 임유진에게 물었다.“윤이 엄마는 오늘 왜 안 오시고...”“저는 윤이의 이모예요.”임유진이 자기소개했다. 어차피 윤이가 그녀를 이모라고 부르니까 문제 될 건 없다.“그럼 이분은...”학부모의 시선이 또다시 강지혁에게 쏠렸다.유난
그 학부모는 부러움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렇군요. 남자친구분이 참 좋으시네요. 함께 윤이를 데리고 학원까지 오고 말이에요. 앞으로 두 분 결혼해서 아이 생기면 분명 좋은 아빠가 되실 거예요. 요즘 남자들은 이렇게 인내심 있기가 참 드물어요. 우릴 좀 보세요. 대부분 엄마들만 함께 왔잖아요.”아이가 생긴다고... 임유진의 두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 학부모와 얘기를 나눈 후 그녀는 머리를 푹 숙이고 평평한 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요즘 그녀는 줄곧 약 먹으며 몸조리를 했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희망은 생겼다. 적어도 지금 그녀는 ‘아이’문제가 언급돼도 예전처럼 절망적이진 않으니까.문득 그녀의 귓가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나중에 우리한테 아이가 생기면 난 꼭 좋은 아빠가 될 거야.”임유진은 흠칫 놀라서 고개를 돌렸는데 강지혁이 어느새 그녀 옆에 바짝 다가와 얼굴을 거의 맞대고 있었다. 결국 고개를 돌린 순간 그의 입술이 그녀의 볼에 닿았고 임유진은 얼굴이 화끈거렸다.“너랑 아이 꼭 잘 지켜줄 거야. 맹세해.”강지혁은 아이에게 어떠한 그늘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부성애를 남김없이 쏟을 테고 그녀 또한 모성애를 아낌없이 줄 것이다.임유진은 그의 엄마처럼 아이를 빌미로 삼다가 목적에 도달할 수 없게 되면 모질게 버리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아직... 아이도 없는데 웬 유난이야.”임유진은 얼굴이 너무 화끈거려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강지혁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다.“누나만 원하면 우린 바로 아이 가질 수 있어!”임유진은 잠시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단호한 그의 말투는 마치 그녀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도 전부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둘만의 아이라... 그게 가능하다면 그녀도 너무 갖고 싶었다!“이모...”윤이의 목소리에 임유진은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이는 고개 들어 의아한 눈길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임유진은 얼른 마음을 다잡고 아이에게 괜찮다며 수어로 알려주었
“당연히 되지.”강지혁이 대답했다. 아이 한 명 늘어난다고 그에게 딱히 문제 될 건 없다.“근데 윤이가 정말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임유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비록 그 영화가 전체연령 관람가이긴 하지만 아이가 아직 너무 어리고 대부분의 소리와 언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그래도 영화를 보는 건 나름대로 새로운 체험이니 그때 가서 수어로 설명해주거나 옆에서 조금씩 도와주면 될 듯싶었다.임유진은 빨리 함께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윤이와 함께 영화 보는 장면이 너무 기대됐다.그녀는 수어로 아이에게 영화 보기 좋아하는지 물었고 아이는 머리를 내저으며 본 적이 없다고 했다.“그럼 이따가 이모랑 함께 영화 보러 갈래?”그녀는 물으면서 아이가 못 알아들을까 봐 수어까지 결부했다.아이는 작은 머리를 끄덕이며 신나는 표정을 지었다.윤이는 영화라는 단어만 이해하고 있지만 내심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그런 아이의 모습에 임유진은 살짝 유감스러웠다. 오늘 만약 윤이와 함께 만화영화를 봤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하지만... 만약 아이가 영화 보는 걸 좋아하면 다음에 또 함께 만화영화 보러 가면 된다.차는 극장으로 향했지만 정문에 세우지는 않았다. 정문 쪽에는 언론 매체들이 너무 많았고 그녀가 기자들의 주목을 받는 걸 아주 꺼린다는 것을 강지혁은 잘 아니까.게다가 강지혁 본인도 기자들이 매우 싫었다.옆문엔 경호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강지혁의 차를 확인하자마자 공손하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강지혁과 임유진, 탁윤까지 나란히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내부에는 기자들이 딱히 없고 상영관에 축하 화환들과 시사회에 참석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임유진은 그 사람들을 쭉 둘러봤는데 전부 눈에 익었고 스크린에서 자주 봐왔던 유명한 배우들이었다. 게다가 국내외 유명 감독들도 있었고 평상시 정재계 뉴스로만 봐왔던 유명인사들도 있었다.그녀는 어안이 벙벙했다. 고주원이 현재 인지도가 높긴 하나 이 정도까진 아닌데... 또한, 이번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업계
게다가 강지혁 옆에 있는 여자는 또 어떻게 된 거지?!이런 장소는 스캔들이 나기 가장 쉬운 장소였다. 임유진은 자신과 윤이를 향한 이상야릇한 눈빛을 쳐다보며 문득 사람들의 속내를 알 것 같았다.“저기... 이 사람들 뭔가 오해한 것 같아.”그녀가 나지막이 복화술로 강지혁에게 말했다.강지혁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오해? 무슨 오해?”그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강지혁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드는 걸까? 그녀는 두 눈을 깜빡이며 강지혁을 물끄러미 쳐다봤고 도화살 가득한 영롱한 그의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하고 맑아 보였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윤이가 우리 아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단 말이야!”“그럼 오해하라고 하지 뭐.”강지혁은 되레 담담하게 말했다.뭐라고?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해하게 놔두라니? 이게 말이 돼?“하지만...”“괜찮아. 문제 될 거 없어.”강지혁이 말을 이었다.“어차피 우리도 조만간 아이가 생길 거 아니야. 저 사람들 몇 년 일찍 오해하라고 하지 뭐. 아무 일 아니야.”“...”그의 대답을 들은 임유진은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가자, 이만.”그는 탁윤의 다른 한 손을 잡고 안으로 걸어갔다.이 모습에 추측이 난무하던 사람들은 셋의 관계를 더 확신하는 것만 같았다. 두 남녀가 한 아이의 손을 잡고 있으니 한 가족 말고 또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그렇지만 강지혁은 외부에 결혼 사실을 알린 적이 없는데 3, 4살 돼 보이는 아이까지 있다니?!설마 비밀결혼? 그것도 아니면 단지 애인일 뿐이라고? 이 아이는 그럼 사생아란 말인가? 문득 많은 사람들이 동정 어린 눈길로 임유진을 쳐다봤다.그렇지만 부러움에 휩싸인 눈빛이 절대다수였다. 아들까지 낳아줬는데 안방마님으로 등극할 수 없을까? 설사 강씨 일가에 발을 들이진 못한다 해도 평생 넉넉하게 살 순 있잖아!이 영화감독은 강지혁과 친분이 있다. 전에 시사회 초대장을 나눠줄 때 강지혁이 비서를 시
다만 소찬호 감독은 티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당연하죠. 고주원 씨도 이런 팬분이 있다는 걸 엄청 좋아하실 거예요.”둘은 또 몇 마디 담소를 나누다가 소찬호가 먼저 자리를 떠났다.임유진도 의외이긴 마찬가지였다. 강지혁이 그녀를 위해 고주원과 만날 기회를 마련해주다니, 덕질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다!!“왜 그래?”그는 멍하니 넋 놓은 임유진에게 물었다.“고주원 씨랑 사진 찍고 사인받을 생각에 넋이 나갔어?”“기쁘긴 한데 그런 기쁜 마음이 아니라...”임유진은 말을 더듬거렸다. 기쁘긴 한데 고주원을 가까이에서 보고 사진도 찍고 사인받을 기회가 생겨서 기쁜 것보다 강지혁이 무심코 그녈 위해 신경 써준 모든 것이 그녀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그녀는 더이상 쓸모없는 년이 아니고, 귀찮게 한 명 더 늘어난 계집애가 아니고,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하찮은 인간이 아닌, 심지어 가족들에게 구박받는 재수 없는 년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소중히 다루어지는 귀한 존재인 것만 같았다.“됐어, 어떤 기쁨이든 다 좋아. 누나 소원이라면 뭐든 다 이뤄줄게.”강지혁이 나지막이 말하며 몸을 기울이더니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조건은 단 하나, 누나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나여야 해, 알겠지? 이건 영원히 변할 수 없어.”감미로운 목소리로 사람 마음을 홀릴 듯한 말들을 내뱉으며 애틋한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는데 이건 단지 그의 다짐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맹세도 원하고 있었다.임유진은 저도 몰래 머리를 끄덕였다.“알겠어.”그녀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강지혁이었다. 사랑받는다는 느낌과 소중히 다뤄진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고 있으니까.이 세상에 그녀를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존재했다니, 이토록 깊이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니, 이 모든 걸 강지혁이 그녀에게 절실히 알려주고 있었다!강지혁은 흡족한 미소를 날렸고 둘 사이에 끼운 탁윤은 턱을 치키고 예쁜 눈동자로 둘을 쳐다봤다. 어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의아한 눈길로 쳐
이 광경을 본 임유진도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 아이가 너무 어려 이런 영화를 지루해할 줄 알았고,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상영관을 나가겠다고 떼쓰면 안고 나갈 생각까지 다 했는데 뜻밖의 경사였다!그녀도 드디어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이 영화는 캐릭터와 캐스팅 설정이 조화를 이루었고 CG 효과도 예뻤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단조로운 느낌은 안 들었다.고주원도 기존 이미지를 깨고 새로 이미지 변신한 셈인데 이건 또 다른 장르에 대한 도전이었다.임유진은 고주원의 연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영화 속 캐릭터를 아주 완벽하게 소화했다.심지어 하이라이트로 접어들 땐 그녀도 참지 못하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눈물이 흘러내린 순간 임유진은 제 모습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잘 우는 편이 아니다. 전에 영화 볼 때 옆에서 아무리 대성통곡을 해도 그녀는 딱히 울지 않는다.영화 내용이 아무리 감동적이어도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그랬던 그녀가 이 영화의 감정선에 흠뻑 도취해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영화 속 캐릭터가 그녀와 너무 닮아서 제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흐느낀 듯싶다.평범하던 데로부터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갔지만 상상했던 진정한 완벽함을 이루지 못한 채 가장 어두운 곳으로 떨어졌다. 그 뒤로 또다시 본인 노력으로 한 걸음씩 더 나아가 밝은 미래를 맞이했다.영화에서 익살스럽게 이 과정을 연출했지만 그 속에 담긴 아픔은 임유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그 고통을...그녀가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으려 할 때 강지혁이 선뜻 손 내밀어 그녀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울어?”“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영화가 너무 감동적이라.”임유진이 코를 훌쩍거리며 대답했다.“이렇게 우는 거 보니까 괜히 데려왔나 싶어.”강지혁은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울면 강지혁도 속상하니까.영화가 감동돼서 그렇다 해도 그는 여전히 임유진을 울게 하고 싶지 않았다.“영화가 재미있으니까 우는 거지. 웃기
될 수 있다면 그녀가 평생 슬퍼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강지혁은 그녀 얼굴에 묻은 눈물에 조금씩 입 맞췄고 임유진은 온몸이 굳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강지혁이 입 맞췄던 곳은 뜨겁게 불타오를 것만 같았다.영화가 다 끝난 후 임유진은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다. 영화의 80퍼센트는 재미있게 잘 봤는데 뒷부분 20퍼센트는 강지혁의 키스 때문에 도저히 집중해서 볼 수가 없었다.그저 엔딩 장면만 머릿속에 남았지만 윤이는 달랐다. 영화가 다 끝난 후에도 아이는 흥이 채 가시지 않는지 계속 나쁜 놈을 때리고 싶어 했다.임유진은 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데려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이렇게 재미있게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윤이 이따가 이모랑 함께 영화배우들 보러 갈래? 아까 나쁜 놈 때렸던 주인공 말이야.”임유진은 아이에게 물으며 수어로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네.”윤이는 어쩌다가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대답했다.임유진은 너무 기뻤다. 윤이은 앞으로 할 줄 아는 말이 점점 더 많아질 테고 머지않아 보통 아이들처럼 정상적으로 대화할 수 있겠지.그녀는 아이와 함께 강지혁 따라 스텝들의 안내를 받으며 배우 대기실로 향했다.대기실이라기보단 엄청 큰 룸에 가까웠고 고주원을 비롯한 몇몇 주연 배우들이 휴식하는 중이었다.감독이 미리 고주원에게 말했던 터라 그는 강지혁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서 함께 사진 찍고 사인하는 걸 알고 있었다.애초에 고주원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S 시에서 명성이 자자한 강지혁 대표님이 여자친구가 있다고? 게다가 여자친구분이 자기 팬이었다니?! 그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강지혁 같은 인물은 고주원이 가까이에서 볼 수 없는 유명인사인데 지금 팬 덕분에 가까이에서 보게 된 셈이다.“강지혁 씨 맞으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고주원이에요.”고주원이 앞으로 걸어가며 활짝 웃더니 임유진에게 시선을 돌렸다.“감독님께 전해 들었어요. 제 팬이시라고요? 영광입니다. 만나서 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