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래. 우리 유진이가 제일 효도하네.”외할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효도? 임유진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만약 진짜 효도한다면 외할머니를 집으로 모셔가서 직접 보살펴줘야 한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강지혁의 집에서 지내기에 할머니를 모시고 가서 보살펴주려면 사전에 강지혁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할머니만 괜찮으시다면 유진이더러 할머니를 S 시로 모시고 가서 보살펴드리게 할게요.”이때 불쑥 강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유진은 화들짝 놀란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곤 예상치도 못한 듯싶었다.외할머니도 흠칫 놀라더니 웃으며 대답했다.“성의만 받을게. 난 여기서 지내는 거에 이미 적응됐어. 게다가 아들, 딸도 있는데 외손녀가 보살펴주면 사람들이 뭐라 해. 나중에 몸이 좀 나아지면 그때 다시 너희들 보러 S 시로 갈게.”외할머니는 고개 돌려 임유진에게도 말했다.“이만 가보거라. 늦기 전에 S 시에 도착해야지.”임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다음에 또 뵈러 올게요.”외할머니와 작별인사를 마친 후 임유진과 강지혁은 차를 타고 시동을 걸어 서서히 외할머니 집에서 멀어져갔다. 임유진은 백미러로 줄곧 제자리에 서 계시는 할머니를 바라봤다. 할머니는 차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두 사람을 배웅했다. 임유진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오늘 외할머니를 뵈러 왔지만 할머니는 예전보다 확연히 늙은 모습이었다. 큰 병을 앓고 난 후 비록 다 회복했지만 할머니의 몸은 전보다 많이 못 해졌다.노인들은 원기를 회복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한 듯싶다.“외할머니 걱정되면 내가 방법을 생각해볼게. 사람 시켜서 할머니를 S 시로 모셔올 수도 있어.”강지혁의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임유진은 묵묵히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야. 외할머니는 집에 머물면서 잘 쉬면 몸이 빨리 나아지실 거야.”삼촌, 이모들이 얼마나 효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체면은 꼭 지켜야 한다.마을 사람들과 거의 다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삼촌, 이모들이 외
강지혁은 임유진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이렇게 그녀를 보고 있으면 평소 항상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있던 마음이 드디어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찾게 된 것처럼 말이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의 겉모습을 보고 그가 화려한 생활만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돈과 권력을 많이 거머쥘수록 더욱더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것이 강지혁의 인생이다.지금 강씨 가문이 S 시에서 군림하고 있다고는 하나 조금이라도 책잡히는 일이 생기면 지금까지 구축해온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매사 신중해야 하고 뭔가를 결정할 때 몇 수 앞을 내다보고 행동해야 한다.그러니 이런 그에게 편안함이란 사치와도 같았고 지금 이런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임유진밖에 없을 것이다.차가 휴게소에 도착한 후 강지혁은 물을 사러 갔고 임유진은 시선을 옆으로 돌려 운전석의 운전대를 바라봤다.그녀는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두근거리는 기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운전면허 학원도 그녀가 첫 월급으로 지급한 것이다.그때의 임유진은 운전면허를 딴 바로 1년 뒤에 끔찍한 악몽이 자신에게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운전대를 잡아본 게 대체 얼마 만이지?임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운전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윽고 손가락이 운전대를 만졌을 때 그녀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당시 교통사고의 장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때 그녀는 재빨리 운전대를 돌려 상대방의 차를 피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고 그녀는 돌진해 오는 차에 부딪혀 그대로 기절했다.얼마나 기절해 있었을까? 한 몇십 초 아니면 1분... 2분...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매만져 보니 손에는 피가 흥건했고 어렵게 차 밖으로 나왔을 때 돌진해 온 차량에 불이 나고 있었다그녀는 기어서라도 눈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어떻게든 끄고 싶었지만 불은 이미 차량을 덮친 상태였다...임유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
강지혁은 생수병을 임유진에게 주려고 조수석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다급하게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아니, 난... 난 그냥..."임유진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그 모습에 강지혁은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고 한 손은 아직도 운전대를 꽉 잡고 있었으며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어 공황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그냥 뭐?"강지혁은 생수병을 옆에 놓은 후 운전대를 잡은 그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고는 천천히 그녀의 손을 운전대에서 멀리 떼어냈다."내가 옆에 있어.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나 좀 봐."강지혁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맴돌았고 그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심호흡을 길게 두 번 하고서야 비로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임유진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다 지난 일이고 이제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라고 되뇌며 천천히 눈을 떠 강지혁을 바라보았다."괜찮아. 그냥 사고 당시 기억이 떠올라서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운이 좋았어."임유진의 말대로 그녀는 정말 운이 좋았다. 만약 그녀가 조금이라도 운이 나빴더라면 절대 그 사고에서 멀쩡히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이게 바로 어떻게든 살길은 있다는 것일까? 하늘은 그녀에게 시련을 내려주고서도 그녀의 목숨은 앗아가지 않았다.그녀가 간신히 진정됐을 때, 강지혁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더니 자신의 품에 꽉 끌어안고는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이에 임유진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혁아, 왜 그래?"임유진에 이어 이제는 강지혁까지 이상증세를 보이고 있다. 아까 임유진이 사고 당시 얘기를 꺼내며 운이 좋았다고 했을 때 강지혁의 머릿속에는 사고 당시 자료들이 스쳐 지나갔다.자료에서는 임유진이 탄 차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고 만약 충돌 위치가 조금만 더 옆으로 빗나갔더라면 그녀가 타고 있던 차도 불길에 휩싸였을 것이라고
강씨 저택으로 돌아온 후, 강지혁은 사용인에게 따뜻하게 데워진 한약과 사탕 그리고 초콜릿을 가져오라고 했다.임유진은 한약을 희망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분명히 쓴데도 전혀 쓰게 느껴지지 않았다. 운이 좋으면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있으니까.강지혁은 초콜릿을 까더니 임유진에게 건네주었고 그녀는 당연하게 입을 벌려 그의 손에 든 초콜릿을 받아먹었다. 그러다 실수로 그의 손가락을 깨물어 버리고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미안해."임유진이 얼른 말했다,강지혁은 그녀에게 깨물린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로 가져가고는 물었다."많이 달아?"그의 목소리는 마치 여름밤의 산들바람처럼 그녀의 마음을 간지럽혔다.임유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강지혁이 물어보는 게 초콜릿임을 알면서도 마치 그의 손가락이 다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느껴졌다.입안에 있는 초콜릿은 그녀의 구강 온도에 서서히 녹아들었지만, 그녀는 초콜릿을 음미할 겨를이 없었다."달아?"그의 계속되는 질문에 임유진은 심장이 뛰는 걸 느끼며 그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그녀를 끌어당기듯 시선을 돌리 수가 없었다.강지혁의 눈빛, 표정, 그리고 손짓 하나하나까지 마치 당연히 이끌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녀를 그렇게 끌어당겼다."달아."임유진이 간신히 두 글자를 내뱉자 강지혁은 예쁘게 웃더니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는 예쁜 얼굴을 그녀의 눈앞에 갖다 댔다."누나, 나 사랑해주면 안 돼?"강지혁은 이토록 누군가의 사랑은 바란 적은 임유진이 처음이고 그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해야만 이 갈증이 해소될 것 같았다.사랑해 달라고? 임유진은 아직도 그의 얼굴에 취해 정신이 몽롱해서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임유진이 강지혁을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사랑? 만약 사랑한다고 하면 그녀는 과연 그를 어느 정도로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그녀가 막 입을 벌려 얘기를 하려고 할 때 강지혁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쳐왔고 임유진은 그제야 입안 가득 퍼진 초콜릿 향을 느낄 수 있었다.정말 달아.
강지혁은 마치 소중한 것을 다루듯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고 천천히 입술을 열고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나 좀 사랑해줘. 응?"마치 구걸하듯 그녀의 사랑을 바라는 그의 모습에 임유진은 저도 모르게 입술이 바짝 타는 것을 느끼며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그러고는 마치 그의 숨결에 잠식된 사람처럼 사고가 멈춰버린 채 몽롱한 얼굴을 했다.청초한 얼굴, 검은 눈동자, 앙증맞은 코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눈빛, 강지혁은 마치 덫에 걸린 사람처럼 평생 그녀에게 벗어날 수 없음을 느꼈다.한때 그는 여자의 사랑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 생각은 임유진을 만나고 나서 싹 다 사라져버렸고 그녀를 갖고 싶고 그녀의 사랑을 갖고 싶다는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그녀와 마주할 때면 그는 자존심과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해왔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있었고 온전히 새로운 감정에 자신을 맡기고 싶었다.강지혁의 입술이 다시 그녀의 입술을 포개왔고 그는 부드러운 키스로 그녀를 녹이기 시작했다.그때 임유진이 정신을 차리고는 빨개진 얼굴로 강지혁의 가슴팍을 밀어버렸다."나... 나..."버벅대며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명백한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임유진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서린 두려움을 본 강지혁은 눈빛이 점차 맑아지더니 곧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임유진은 지금 겁을 먹었다. 아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가 혹은 아직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강지혁은 그녀를 하루빨리 갖고 싶다는 마음에 급하게 몰아붙여 미처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미안해..."강지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임유진이 너무나도 갖고 싶지만 결코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진심으로 원할 때, 그때 관계를 맺고 싶었다.강지혁은 서서히 몸을 일으킨 후 웃음을 자아내려고 노력하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누나가 싫으면 안 해.
강지혁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지금 누나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는 알아...?"그는 간단한 한마디를 힘겹게 한 글자 한 글자씩 내뱉었고 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천천히 답했다."응... 알아."이 순간, 그녀는 단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에게 전해주고 싶을 뿐이다."혁아, 나 너 사랑하는 것 같아."임유진은 더 이상 강지혁이 그녀에게 자신을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아무런 대답도 못 한 채 그의 눈빛이 서서히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고 싶지 않았다. 매번 그녀가 침묵할 때면 그의 눈은 항상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가라앉았고 그는 줄곧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이런 진실한 감정을 그에게 전부 보여주고 싶었다."너를 얼마만큼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어. 지금, 이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는지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널 사랑하는 이 마음이 진짜라는 건 확신할 수 있어."임유진은 이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다. 그가 오해하며 혼자 마음 아파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강지혁은 잔뜩 굳어버린 몸을 천천히 돌려 눈앞의 그녀를 응시하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정말이야? 날 정말 사랑해?"그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대답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 건지, 아니면 실감이 나지 않는 건지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답을 요구했다."응."임유진이 말했다"널 사랑해. 혁아, 난 널 원해."말을 마친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발끝을 들어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며 행동으로 그에게 확신을 주었다.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게 이런 걸까. 임유진은 강지혁을 사랑하기에 그가 더는 참지 않았으면 좋겠고 자신이 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그에게 주고 싶었다.맞닿았던 입술이 천천히 떨어지고 강지혁은 허리를 숙여 그녀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고는 낮게 속삭였다."후회 안 해
어젯밤 일이 떠오른 임유진은 서서히 부끄러워 났다. 그녀는 진작에 깼지만, 눈을 뜨면 바로 강지혁의 얼굴이 보일까 봐 아직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대체 무슨 얘기를 해야 하지?임유진은 이따 있을 어색함을 떨치기 위해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했고 아직 생각 정리가 채 되지 않았는데 옆에서 강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깼어? 깼으면 눈 좀 떠봐. 아니면... 내 얼굴을 보게 되는 게 겁나?"임유진은 그 말에 흠칫하더니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신이 조각한 듯한 강지혁의 얼굴이었다.그는 한 손으로 침대를 짚고는 허리를 숙이고 있었고 얼굴은 그녀의 얼굴과 매우 가까워 숨결까지 느낄 수 있었다.여자들도 질투할 만한 길고 검은 속눈썹은 그의 예쁜 눈동자와 환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임유진은 그와 눈이 마주치고는 자기도 모르게 어젯밤 그녀를 홀릴 듯 바라봤던 그의 눈동자가 떠올랐다."무슨 생각해?"그때 강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임유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얼른 대답했다."아니야, 아무것도..."부랴부랴 옷을 입은 후 임유진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강지혁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잠깐만."그는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정성스럽게 양말을 신겨주었다. 그러고는 슬리퍼까지 신겨준 후 그녀를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뭐, 뭐 하는 거야?"임유진이 당황한 듯 물었다."씻으려는 거 아니야?"강지혁이 되물었고 임유진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그에게 몸을 맡겼다.욕실로 들어간 후 강지혁은 그녀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작게 속삭였다."서 있기 힘들면 나 잡아.""응."임유진은 짧게 대답한 후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었고 강지혁은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위해 칫솔에 치약을 짜주고 있었다.그녀는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을 위해 움직이는 강지혁을 보며 이게 바로 사랑받는 느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여기."강지혁은 그녀에게 칫솔을 건
이도 닦고 세수까지 마친 임유진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다 못해 곧 터질 듯했다.그녀가 빗을 들고 머리를 빗으려고 하자 강지혁이 그녀의 손에서 빗을 뺏어 들었다."내가 해줄게."이에 임유진이 조금 놀란 얼굴로 말했다."하지만...""걱정 마. 예쁘게 빗겨줄 테니까."강지혁은 씩 웃더니 빗을 들고 마치 아기 다루듯 부드러운 손길로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기 시작했다.강지혁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임유진 말고 또 있을까?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과 강지혁을 바라봤다.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이 넘쳐흐르고 있었고 강지혁은 입가에 수많은 여자의 마음을 훔칠 듯한 웃음을 머금은 채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는 빗을 내려놓은 후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한곳으로 모으고는 이내 머리끈으로 묶었다."앞으로도 종종 나한테 누나 머리를 빗게 해줘."강지혁은 만족한 듯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임유진은 그가 말한 앞으로라는 단어가 가슴에 확 와 닿았고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어떻게 된 거예요? 대체 누가 우리 가문을 대상으로 공매도를 하고 있냐고요?"윤수경의 말에 진기태는 얼굴이 어두워져서 대답했다."강지혁이야.""네?"윤수경은 깜짝 놀랐다."강지혁이요? 아니, 우리하고 대체 무슨 원수를 졌다고 공매도를 한대요?"원수를 지지 않았다고? 진기태의 생각은 달랐다. 일전 임유진의 일로 그를 찾아가긴 했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강지혁은 아직 끝낼 생각이 없는 것이다.윤수경도 머리를 굴리다 진기태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설마... 강지혁이 임유진 그 여자 때문에 우리 집안에 복수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윤수경은 본인이 말하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임유진을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으니까.그런데 강지혁 같은 남자가 여자 하나 때문에 이런 짓을 벌여가며 진씨 가문을 적으로 돌리는 것도 불사한다고?"감방까지 살고 온 여자잖아요!"윤수경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소리쳤다."그래.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