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임유진의 지시 아래 강지혁은 드디어 그녀의 부러진 손톱을 예쁘게 자를 수 있었다. 임유진은 차라리 자기가 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며 약간의 피로감을 느꼈다.하지만 그에 반해 강지혁은 이것마저도 중독이 된 사람처럼 그녀의 다른 손가락을 펴보더니 씩 웃으며 전부 자르기 시작했다.그는 그녀의 다른 손톱까지 다 자르고 나서도 뭔가 아쉬운 듯 말을 꺼냈다."혹시 또 손톱이 자라게 되면 내가 해줄 테니까 누나는 손대지 마.""..."임유진은 강지혁의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아직 점심이라 윤이를 보러 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강지혁은 다시 책상 앞으로 가서 회사 일을 처리했고 임유진은 핸드폰을 꺼내 이것저것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그때, 인기 검색어 하나가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클릭해보니 거기에는 임유라에 관한 기사가 올라와 있었는데 임유라가 사랑과 커리어를 동시에 획득한 인생 승자라는 내용이었다.임유라는 곧 S 시에서 열리게 될 GF파티에 강현수의 파트너로 동행한다고 쓰여있었고 파티에 참석하는 인사들은 모두 S 시에서 알아주는 거물들이었다. 그로 인해 임유라는 다른 사람들 입방아에 한창 오르내리고 있는 강현수와의 결별설을 일축할 수 있게 됐다.기사에는 임유라가 브랜드 모델이 됐을 때 찍었던 사진 그리고 유명 잡지 표지모델이 됐을 때 사진들도 함께 첨부되었다.임유라는 지금 확실히 잘나가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강현수가 남자친구로서 지원해 줬기에 가능했다는 걸 임유진은 잘 알고 있었다.강현수와 헤어지고 나면 분명히 임유라는 더 이상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고 아마 헤어짐조차도 유쾌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강현수는 귀찮게 달라붙는 걸 질색하는 사람이었고 그가 들러붙는 전 여자친구들에게 얼마나 무정한 사람이었는지 임유진은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봤었다.그럼 임유라는 강현수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임유진은 임유라를 걱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실소했다
대체... 얼마나 잔 거야!"깼어? 좀 더 잘래?"강지혁의 목소리에 임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나 왜 안 깨웠어? 깨우지...""너무 잘 자길래 그대로 좀 더 자게 뒀어."강지혁이 답했다."윤이 보러 가기로 약속했는데..."임유진은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보고 다행히 3시밖에 안 된 걸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시간은 충분할 거야. 지금 가자."강지혁은 몸을 일으켜 옆에 걸려있던 외투를 입고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뭔가 생각났는지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역시 잠을 잔 탓에 머리는 이미 헝클어져 있었고 그녀는 머리끈을 풀고는 빠르게 다시 묶었다. 이 모든 행동이 고작 6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고 강지혁은 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원래도 그렇게 빨리 했었어?""아니, 전에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했는데 감옥 생활을 하다..."임유진은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췄다. 그녀의 감옥 생활이 두 사람에게는 좋은 추억은 아니었으니까."미안해."강지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아, 아니야... 네가 날 감방에 일부러 넣은 것도 아닌데."임유진은 무거워진 분위기를 다시 살려보려고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감옥 생활이 힘들긴 했지만, 그 대신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됐어. 어떤 사람이 진정한 내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가면을 쓰고 나한테 접근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됐거든." 그게 아니었더라면 임유진은 지금까지도 독선적인 사랑과 혈육의 정에 바보처럼 허우적대고 있었을 것이다.강지혁은 조금 어두워진 얼굴로 임유진을 향해 물었다."누나는 그 가면 쓰고 접근하는 사람이 나일까 봐 두렵지는 않아?"그러자 임유진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는 피식하고 웃었다."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한테 네가 가면을 쓰고 접근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그러게, 누나 말이 맞네."강지혁은 옅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가자."임유진은 자신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했
탁유미가 이경빈 옆에 있었을 때 이씨 일가와 강씨 일가는 비즈니스적으로 왕래를 하지 않았기에 당시에는 강지혁의 얼굴을 볼 일이 아예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경빈 곁을 떠나고 나니 탁유미는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벌써 두 번이나 강지혁과 마주쳤다. 그것도 매번 임유진의 주위에서.탁유미는 강지혁이 자신에게 했던 경고를 떠올리고는 임유진이 그에게 사랑받는 일이 잘된 일인지 아닌지 가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뭐가 됐든 탁유미는 그저 임유진이 행복했으면 했다."참, 과일을 깜빡했네요. 윤이가 석류를 먹고 싶다고 했는데."입원하기 전 임유진은 윤이에게 석류를 꼭 사 오겠다고 약속했었기에 다급히 핸드폰을 챙기고 병실을 나서려고 했다."유진 씨, 아니에요. 장난감도 이렇게 사 왔는데 뭐 하러 다시 가요. 석류는 내가 이따 내려가서 살게요."탁유미가 다급하게 그녀를 불러세웠다."괜찮아요, 어차피 근처라서 제가 금방 다녀오면 돼요. 윤이와 한 약속은 지켜야죠."임유진은 그렇게 빠르게 병실을 뛰쳐나갔다.병실에는 탁유미와 탁유미 엄마 그리고 강지혁 이렇게 세 사람이 있었다.탁유미 엄마는 어제 딸의 입에서 강지혁이 어떤 사람인지 듣고는 그가 많이 불편했는지 윤이를 돌보는 척 고개를 돌려버렸다.그때 탁유미가 정적을 깨고 그에게 물었다."강지혁 씨, 차라도 드릴까요?""괜찮습니다."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시선을 윤이에게로 옮겼다."저 아이가 바로 당신과 이경빈 씨 아들입니까?"강지혁의 담담한 한마디에 탁유미와 탁유미 엄마는 얼굴이 확 굳어졌고 탁유미 엄마는 손까지 덜덜 떨었다.탁유미는 잠깐 놀라긴 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물었다."이것도 역시 날 조사해서 얻은 정보인가요?""정확히 말하자면 받은 정보에서 시간을 추측했을 뿐입니다. 그리고..."강지혁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이경빈 씨는 아직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자기에서 이런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탁유미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윤이는 내 아들이에요. 이경빈은 처음
그럴 리가 없었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준 사람은 임유진일 것이다.‘그럼 유진 씨가 강지혁 씨에게 도와달라고 얘기한 걸까? 윤이를 도와달라고?’그때 임유진이 손에 석류를 한가득 들고 병실로 돌아왔다."이제 윤이가 깨어난 후 의사 선생님 허가만 있으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됐네요."임유진은 아주 예쁘게 활짝 웃었다."유진 씨, 고마워요."탁유미는 눈시울이 빨개져서 임유진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고작 석류 한 봉지인데요, 뭘."임유진은 탁유미가 윤이 때문에 울컥했다고 생각해 얼른 그녀를 달래주었다."언니, 윤이 수술 성공적으로 끝났잖아요. 이제는 인공와우에 적응하는 일만 남았어요. 위험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이제는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예요.""네, 모든 게 다 괜찮아 질 거예요."탁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탁유미는 임유진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자신이 임유진이 귀인일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힘든 시기에 흔쾌히 가게에서 일하도록 해줬으니까. 하지만 지금 보면 임유진이 자신의 귀인이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윤이는 절대 이런 치료를 받을 수 없을 테니까.강지혁과 임유진은 이제 가 봐야 했지만 윤이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다음에 또 보러 올게요."하여 임유진은 다음을 기약하고 인사를 한 뒤 강지혁과 함께 병원 주차장으로 향했다.그녀가 막 차에 타려고 할 때 강지혁이 그녀를 제 품에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나 보고 웃어 봐.""뭐?"임유진은 어리둥절했다."나 보고 웃어보라고. 병실에서 웃었던 것처럼."강지혁은 항상 임유진의 살짝 쑥스러운 듯한 옅은 미소밖에 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아까 그녀의 활짝 웃는 얼굴을 봤을 때 마치 햇살처럼 빛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너 앞에서 나 꽤 잘 웃는다고 생각하는데?"임유진은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누나가 아까 너무 예쁘게 웃어서 다시 한번 보고 싶어."강지혁은 낮은 목소
임유진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강지혁을 쳐다봤다."왜 그렇게 봐? 누나 전에 나 데리고 재래시장도 간 거 잊었어?"강지혁은 웃으며 말했다."그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을 때 일이고."임유진은 ‘혁이’가 강지혁인 줄 알았으면 절대 그를 데리고 재래시장으로 가 옷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뭐가 다른데? 어차피 예전이나 지금이나 난 여전히 누나에게 ‘혁이’일 뿐인데."강지혁의 눈빛은 정말... 반칙이었다."그럼 가든가..."임유진은 그와 같이 먹자골목으로 들어섰다.대학생 때, 임유진은 친구들과 자주 여기로 왔었다. 취직하고는 발걸음이 좀 뜸해졌고 그러다 감옥에서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출소하고 나서도 생계를 유지하기에 급급해 여기 올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저녁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었고 임유진과 강지혁은 걷다가 길거리 음식들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여기는 먹거리들뿐만 아니라 액세서리 같은 작은 물품들도 팔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했기에 여기는 용돈이 많지 않은 학생들이 오기에 좋은 곳이었다.임유진은 길을 걷다가 수많은 여성의 시선을 느꼈는데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역시 강지혁이었다. 확실히 그는 눈에 튀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웬만한 아이돌들 보다 잘생겼다.전에 재래시장을 같이 거닐 때의 강지혁은 앞머리가 길어 거의 눈까지 덮여 있었는데 지금은 깔끔하게 머리를 뒤로 넘겨 잘생긴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임유진은 머리끈을 파는 가게 앞에 멈춰서서 말했다."나 머리끈 사야 해."그녀가 가지고 있는 머리끈은 다 저렴한 것이었기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탄성을 잃어갔다. 원래는 인터넷으로 구매할 예정이었지만 마침 가게가 눈에 보였다.강지혁이 그녀가 한 머리끈을 자세히 보니 안에 있는 하얀색 고무줄이 다 튀어나와 있었다.임유진은 고개를 숙여 고르다가 결국에는 제일 저렴한 것을 고르고 거기에서 가격을 흥정하려고까지 했다.그때 강지혁이 그녀의 손을 잡고는 자리를 떠났다."나 아직 못 샀어."임유진이 다
임유진은 깜짝 놀랐다.강지혁이 지금... 화내는 건가?"누나가 직접 돈을 벌고 싶다고 해서 배달원 하는 것도 허락했고, 나한테 의지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최대한 그렇게 했어. 그래, 다 괜찮아. 이해할 수 있어."강지혁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말을 이었다."하지만 남자친구로서 여자친구 선물 정도는 사줄 수 있는 거잖아. 누나는 날 누나 애인으로 보기는 해?"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강지혁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나한테 의지하고 싶지 않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려는 모든 걸 다 거절할 필요까지는 없는 거잖아."강지혁은 그녀에게 더 좋은 인생을 선물해 주고 싶었고 돈에 허덕이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이렇게 된 게 과거에 있던 일 때문이고 변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다.하지만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이 감정을 아무리 억누르려고 해도 억눌려지지 않는다. 사실 이 감정은 임유진보다는 강지혁 자신을 향한 것이다.만약 그때 강지혁이 일이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고 임유진을 위해 몇 마디만 했더라면 그녀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임유진의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전도유망한 변호사에서 일자리도 제대로 못 찾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다름 아닌 강지혁이다. 임유진에게 경제적 압박을 느끼게 하고 그녀로 하게끔 저렴한 물건을 사는 일에서조차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모두 강지혁이다.임유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강지혁을 향해 말했다."알겠어. 그럼 머리끈 네가 사줘."임유진은 곰곰이 돌이켜보더니 자신이 너무 선을 그은 것 같다고 느꼈다. 전과 똑같은 전철을 밟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남에게 기생하는 기생충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임유진은 모든 걸 다 제 힘으로 하려고 했다.하지만 지금 강지혁과 자신은 연인 사이고, 연인 사이에 꼭 모든 걸 그렇게 선 가르듯이 나눌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처럼 그 선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는 방해물이
강지혁은 직원을 향해 말했다."이거 다 포장해 주세요."직원도 큰손 손님에 들떴는지 아이템들을 포장하는 손이 기뻐 보였다. 강지혁은 계산한 후 쇼핑백을 받아들었다. 임유진은 이것들이 전부 강지혁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말 않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서 또다시 거절했다가는 강지혁이 속상할 것 같았으니까."그럼 이제 옷이랑 신발도 좀 둘러 볼까?"강지혁은 마치 자기 옷을 쇼핑하는 사람처럼 들떠있었다."나 옷 있어. 머리끈은 필요해서 산 거고.""난 누나가 예쁜 옷 입은 모습도 보고 싶어."강지혁이 계속 말을 이었다."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표현 중 하나가 돈 쓰는 거라던데? 그리고 나는 그때 누나가 나 옷이랑 신발 사줬을 때 거절 안 했잖아."임유진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강지혁이 비싼 브랜드만 골라 살 것 같아서 임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내가 좋아하는 거로 고를게.""그래."이곳저곳을 돌아보다 임유진은 정말 제 마음에 쏙 드는 옷과 신발을 발견했다.그녀는 곧바로 옷을 입어보았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가격도 너무 비싸지 않아 안성맞춤이었다.임유진은 지금 바캉스 느낌 나는 베이지색 긴 드레스와 같은 색 계열의 샌들을 신고 있었다.대체 얼마 만에 이런 느낌의 옷을 입어보는 건지...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는 마치 예전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다만 지금의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는 예전과는 매우 달랐다. 예전의 임유진이 날이 잘 서 있는 칼과 같았다면 지금의 그녀는 날이 무뎌지고 녹이 슨 그런 느낌이었다.하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막 출소했을 때와 확연히 달라졌다. 어두컴컴하고 우울한 기운이 조금은 가셔진 것 같았다.강지혁 때문일까? 강지혁 때문에 임유진이 희망이라는 걸 품을 수 있게 된 걸까?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자기를 절망에 빠트린 사람이 지금에 와서는 희망을 주는 사람이 돼 있을 줄은."마음에 들어?"그때
그때 강지혁이 그녀의 손목을 확 낚아챘고 임유진은 깜짝 놀라 물었다."왜 그래?"그러자 위험하게 가라앉았던 강지혁의 눈빛이 점차 맑아지더니 싱긋 웃고는 그녀의 손목을 놔주었다."아니야, 갈아입고 와."임유진이 탈의실에 들어가 문까지 잠그고 나서야 강지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아직은 안돼... 여기까지 내가 어떻게 왔는데, 무섭게 해서는 안 돼.’임유진은 경계심이 100에 달해 있는 초식동물처럼 신중하고 겁이 많았다. 그래서 강지혁은 인내심 100에 달해 있는 상태로 그녀의 경계심을 풀고 가랑비에 옷 젖든 그녀가 자연스럽게 그에게 기댈 수 있게 해야 했다.그래야만 임유진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영원히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참고 또 참고 있다. 임유진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원래 옷으로 다 갈아입은 임유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지혁을 보고 물었다."왜 그래? 무슨 생각해?"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이 고개를 들더니 예쁘게 웃어 보였다."아무것도 아니야."그러고는 그녀의 손에 들린 옷과 신발을 직원에게 넘겨주고는 계산을 마쳤다.두 사람이 막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젊은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강지혁 앞에 서더니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안녕하세요. 저 S 대 2학년 이다희라고 해요. 번호 좀 줄래요?"예쁘장한 얼굴에 검은색 긴 머리, 브랜드 옷으로 육감적인 몸매를 감싼 여자애는 온몸으로 자신이 부잣집 아가씨라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강지혁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힐끔 보며 바로 거절했다."왜요? 옆에 있는 이 여자 때문이에요? 여자친구예요?"이다희는 처음 보는 임유진에게 삿대질하는 상당히 무례한 행동을 했다.그러자 강지혁이 미간을 찌푸렸고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냉기에 이다희는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동시에 강한 정복욕구가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했다.이다희는 미인이었고 평소 그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그녀에게 끊임없이 대시했지만, 그녀의 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