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강지혁을 쳐다봤다."왜 그렇게 봐? 누나 전에 나 데리고 재래시장도 간 거 잊었어?"강지혁은 웃으며 말했다."그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을 때 일이고."임유진은 ‘혁이’가 강지혁인 줄 알았으면 절대 그를 데리고 재래시장으로 가 옷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뭐가 다른데? 어차피 예전이나 지금이나 난 여전히 누나에게 ‘혁이’일 뿐인데."강지혁의 눈빛은 정말... 반칙이었다."그럼 가든가..."임유진은 그와 같이 먹자골목으로 들어섰다.대학생 때, 임유진은 친구들과 자주 여기로 왔었다. 취직하고는 발걸음이 좀 뜸해졌고 그러다 감옥에서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출소하고 나서도 생계를 유지하기에 급급해 여기 올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저녁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었고 임유진과 강지혁은 걷다가 길거리 음식들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여기는 먹거리들뿐만 아니라 액세서리 같은 작은 물품들도 팔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했기에 여기는 용돈이 많지 않은 학생들이 오기에 좋은 곳이었다.임유진은 길을 걷다가 수많은 여성의 시선을 느꼈는데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역시 강지혁이었다. 확실히 그는 눈에 튀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웬만한 아이돌들 보다 잘생겼다.전에 재래시장을 같이 거닐 때의 강지혁은 앞머리가 길어 거의 눈까지 덮여 있었는데 지금은 깔끔하게 머리를 뒤로 넘겨 잘생긴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임유진은 머리끈을 파는 가게 앞에 멈춰서서 말했다."나 머리끈 사야 해."그녀가 가지고 있는 머리끈은 다 저렴한 것이었기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탄성을 잃어갔다. 원래는 인터넷으로 구매할 예정이었지만 마침 가게가 눈에 보였다.강지혁이 그녀가 한 머리끈을 자세히 보니 안에 있는 하얀색 고무줄이 다 튀어나와 있었다.임유진은 고개를 숙여 고르다가 결국에는 제일 저렴한 것을 고르고 거기에서 가격을 흥정하려고까지 했다.그때 강지혁이 그녀의 손을 잡고는 자리를 떠났다."나 아직 못 샀어."임유진이 다
임유진은 깜짝 놀랐다.강지혁이 지금... 화내는 건가?"누나가 직접 돈을 벌고 싶다고 해서 배달원 하는 것도 허락했고, 나한테 의지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최대한 그렇게 했어. 그래, 다 괜찮아. 이해할 수 있어."강지혁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말을 이었다."하지만 남자친구로서 여자친구 선물 정도는 사줄 수 있는 거잖아. 누나는 날 누나 애인으로 보기는 해?"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강지혁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나한테 의지하고 싶지 않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려는 모든 걸 다 거절할 필요까지는 없는 거잖아."강지혁은 그녀에게 더 좋은 인생을 선물해 주고 싶었고 돈에 허덕이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이렇게 된 게 과거에 있던 일 때문이고 변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다.하지만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이 감정을 아무리 억누르려고 해도 억눌려지지 않는다. 사실 이 감정은 임유진보다는 강지혁 자신을 향한 것이다.만약 그때 강지혁이 일이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고 임유진을 위해 몇 마디만 했더라면 그녀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임유진의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전도유망한 변호사에서 일자리도 제대로 못 찾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다름 아닌 강지혁이다. 임유진에게 경제적 압박을 느끼게 하고 그녀로 하게끔 저렴한 물건을 사는 일에서조차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모두 강지혁이다.임유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강지혁을 향해 말했다."알겠어. 그럼 머리끈 네가 사줘."임유진은 곰곰이 돌이켜보더니 자신이 너무 선을 그은 것 같다고 느꼈다. 전과 똑같은 전철을 밟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남에게 기생하는 기생충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임유진은 모든 걸 다 제 힘으로 하려고 했다.하지만 지금 강지혁과 자신은 연인 사이고, 연인 사이에 꼭 모든 걸 그렇게 선 가르듯이 나눌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처럼 그 선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는 방해물이
강지혁은 직원을 향해 말했다."이거 다 포장해 주세요."직원도 큰손 손님에 들떴는지 아이템들을 포장하는 손이 기뻐 보였다. 강지혁은 계산한 후 쇼핑백을 받아들었다. 임유진은 이것들이 전부 강지혁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말 않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서 또다시 거절했다가는 강지혁이 속상할 것 같았으니까."그럼 이제 옷이랑 신발도 좀 둘러 볼까?"강지혁은 마치 자기 옷을 쇼핑하는 사람처럼 들떠있었다."나 옷 있어. 머리끈은 필요해서 산 거고.""난 누나가 예쁜 옷 입은 모습도 보고 싶어."강지혁이 계속 말을 이었다."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표현 중 하나가 돈 쓰는 거라던데? 그리고 나는 그때 누나가 나 옷이랑 신발 사줬을 때 거절 안 했잖아."임유진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강지혁이 비싼 브랜드만 골라 살 것 같아서 임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내가 좋아하는 거로 고를게.""그래."이곳저곳을 돌아보다 임유진은 정말 제 마음에 쏙 드는 옷과 신발을 발견했다.그녀는 곧바로 옷을 입어보았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가격도 너무 비싸지 않아 안성맞춤이었다.임유진은 지금 바캉스 느낌 나는 베이지색 긴 드레스와 같은 색 계열의 샌들을 신고 있었다.대체 얼마 만에 이런 느낌의 옷을 입어보는 건지...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는 마치 예전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다만 지금의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는 예전과는 매우 달랐다. 예전의 임유진이 날이 잘 서 있는 칼과 같았다면 지금의 그녀는 날이 무뎌지고 녹이 슨 그런 느낌이었다.하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막 출소했을 때와 확연히 달라졌다. 어두컴컴하고 우울한 기운이 조금은 가셔진 것 같았다.강지혁 때문일까? 강지혁 때문에 임유진이 희망이라는 걸 품을 수 있게 된 걸까?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자기를 절망에 빠트린 사람이 지금에 와서는 희망을 주는 사람이 돼 있을 줄은."마음에 들어?"그때
그때 강지혁이 그녀의 손목을 확 낚아챘고 임유진은 깜짝 놀라 물었다."왜 그래?"그러자 위험하게 가라앉았던 강지혁의 눈빛이 점차 맑아지더니 싱긋 웃고는 그녀의 손목을 놔주었다."아니야, 갈아입고 와."임유진이 탈의실에 들어가 문까지 잠그고 나서야 강지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아직은 안돼... 여기까지 내가 어떻게 왔는데, 무섭게 해서는 안 돼.’임유진은 경계심이 100에 달해 있는 초식동물처럼 신중하고 겁이 많았다. 그래서 강지혁은 인내심 100에 달해 있는 상태로 그녀의 경계심을 풀고 가랑비에 옷 젖든 그녀가 자연스럽게 그에게 기댈 수 있게 해야 했다.그래야만 임유진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영원히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참고 또 참고 있다. 임유진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원래 옷으로 다 갈아입은 임유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지혁을 보고 물었다."왜 그래? 무슨 생각해?"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이 고개를 들더니 예쁘게 웃어 보였다."아무것도 아니야."그러고는 그녀의 손에 들린 옷과 신발을 직원에게 넘겨주고는 계산을 마쳤다.두 사람이 막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젊은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강지혁 앞에 서더니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안녕하세요. 저 S 대 2학년 이다희라고 해요. 번호 좀 줄래요?"예쁘장한 얼굴에 검은색 긴 머리, 브랜드 옷으로 육감적인 몸매를 감싼 여자애는 온몸으로 자신이 부잣집 아가씨라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강지혁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힐끔 보며 바로 거절했다."왜요? 옆에 있는 이 여자 때문이에요? 여자친구예요?"이다희는 처음 보는 임유진에게 삿대질하는 상당히 무례한 행동을 했다.그러자 강지혁이 미간을 찌푸렸고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냉기에 이다희는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동시에 강한 정복욕구가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했다.이다희는 미인이었고 평소 그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그녀에게 끊임없이 대시했지만, 그녀의 눈에
하지만 상황은 이다희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그녀를 향해 욕을 해야 할 임유진은 더없이 차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고, 우물쭈물해야 할 강지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꺼져’ 라고 말했다.이다희는 눈을 크게 뜨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S대 여신인 이다희에게 저런 말을 그것도 면전에 대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이봐요!"이다희는 쪽팔림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강지혁은 임유진의 손을 잡고 아무렇지 않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때 이다희가 같이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했지만, 강지혁의 얼음장 같은 눈빛을 보고는 몸이 굳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아까 옆에서 거들었던 손유미라는 여자애가 강지혁의 흉을 봤다."뭐야, 저 남자. 예의라는 것도 몰라?!"이를 꽉 깨문 이다희는 처음 겪은 모욕감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평소 공주님 대접만 받고 살았던 그녀가 이대로 당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춘 걸 확인하고는 손유미를 끌고 똑같이 1층으로 향했다.1층에 도착한 이다희는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을 확인하고는 손유미를 향해 말했다."차 가지고 올 테니까 계속 감시하고 있어.""응, 알겠어..."두 사람은 언뜻 친구처럼 보여도 이다희는 부잣집 아가씨에 이씨 일가에서 사랑을 잔뜩 받는 공주님이었고 손유미는 줄곧 이다희의 시녀 같은 존재였다.이다희는 두 사람을 계속 미행할 생각이었다. 집 주소만 알아내면 뒷조사는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그녀는 반드시 강지혁을 임유진에게서 빼앗은 후 자신에게 무례한 말을 한 걸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다.이다희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왔고 손유미를 빠르게 차에 태웠다."두 사람이 탄 차량은 저 앞에 있는 벤틀리야."이다희는 당황한 얼굴로 멀지 않은 곳에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벤틀리를 바라보았다."저거 맞아? 네가 잘 못 본 건 아니고?"손유미는 혹시 몰라 기억해뒀던 차량번호까지 읊었다."저거 맞아."손유미는 맹세까지 할
"뭐?"임유진은 강지혁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로 교통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아마 S 시 통틀어서 이럴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그때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고 강지혁은 시동을 걸었다. 임유진은 아까 강지혁이 알려준 후부터 계속 백미러를 주시했는데 확실히 그들을 따라오는 게 맞았다.하지만 그때 경찰차 한 대가 흰색 차 옆으로 다가서더니 바로 그 차를 세웠다. 곧이어 경찰 두 명이 경찰차에서 내렸고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더는 보이지 않았다.‘저 경찰차... 설마’임유진은 경찰의 빠른 대처에 놀랐고 S 시에서의 강지혁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이다희는 두 경찰의 요구 아래 신분증과 면허증을 건네주었다.분명 경찰에게 잡힐 만한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경찰의 검문에 걸렸고 그 탓에 쫓아가던 차를 놓치게 된 이다희는 잔뜩 성을 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까 이다희는 손유미를 시켜 차량번호 사진을 찍게 했고 이러면 누군지 알아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그렇게 경찰이 떠난 후 이다희는 곧장 그녀의 사촌오빠에게 전화해 차량번호 조회를 부탁했다. 이다희 사촌오빠는 발이 넓었고 이런 일은 10분이면 바로 조회할 수 있었다.하지만 또다시 그녀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발생했고 10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이다희 사촌 오빠는 다급하게 그녀에게 전화하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다희야, 네가 알아내려는 사람 대체 누구야?""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이다희는 고작 차주 좀 알아내겠다는데 왜 이렇게 호들갑인가 싶었다."당연히 문제가 있으니까 이러지!"다희 사촌 오빠가 다급하게 말했다."네가 찾으려고 하는 차주, 조회 시스템에 이름 대신 ‘TOP SECRET’이라고 뜬다고. 그 말인즉슨 꽤 높은 사람들이 아니고는 조회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소리야. 너 대체 어쩌다 이런 사람하고 엮인 거야?"이다희는 그 말을 듣고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이미 사라진 도로를 바라봤다.그 남자 대체 누구야?!...두 사람은 강씨 저택으로 돌아왔고 강지혁
그는 신분을 제쳐두고 외모만으로도 수많은 여자들을 매혹시킨다.다만 그녀의 대답은 강지혁을 살짝 실망하게 했다.“질투 같은 건 아예 없어?”“질투?”임유진은 흠칫 머뭇거렸다.강지혁은 그녀를 꿰뚫어 보기라도 할 듯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한참 후에야 현실을 받아들인 듯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누나 진짜 너무 하네. 질투 난다고 하면 나도 기분 좋았을 텐데.”임유진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질투 났을까... 방금 이다희라는 여자가 강지혁에게 달려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듯이 하찮은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을 때, 그녀는 과연 질투가 났을까?임유진은 그 순간 질투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단지 강지혁은 그런 여자를 받아줄 리가 없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강지혁은 내 사람이라고 이토록 믿는 걸까? 언제부터 그에 대한 믿음이 이렇게 커졌지?여기까지 생각한 임유진은 속으로 적잖게 놀랐다.“누난 대체 언제쯤이면 날 위해 질투해줄까? 날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언제쯤이면 나도 느낄 수 있을까...”강지혁은 허리를 숙이고 얼굴을 들이밀며 그녀의 한쪽 뺨을 가볍게 문질렀다.강지혁만 그녀 때문에 질투가 나고 화도 나고... 항상 아쉬움만 가득했다. 마치 이 감정에서 자신만 쉽게 마음이 휘둘리고 그녀에게 끌려다니는 불공평한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사랑이란 원래 공평한 것이 아니었으니... 항상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아직 감정이 옅은 자가 있는 법이다.임유진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그녀가 만약 진짜 질투한다면... 그건 사실 강지혁을 더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다음날 강지혁이 그녀의 건강검진을 안배한 탓에 오늘 밤 임유진은 일찍 잠들었다. 아침에 깨어나 보니 강지혁이 어제 산 옷과 신발을 챙기고 그녀에게 말했다.“이걸로 입어. 옷은 이미 사람 시켜서 다 씻었어.”임유진은 그의 뛰어난 효율에 입이 쩍 벌어졌다.강지혁은 캐쥬얼한 스타일의 옷을 챙겨왔다. 탈의가 편해서 오늘 건강검진에 제격이다. 신발도 끈이
되새겨보니 그녀 옷장엔 출근할 때 정장 말곤 소민준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옷만 들어있고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옷은 몇 벌도 안 됐다.지난 인생은 저 자신보다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산 듯싶다.“누나를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강지혁이 문득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만약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두 사람은 지금보다 예쁜 만남을 가졌을 텐데, 그러면 그녀가 3년 동안 감방 생활을 할 리도 없고 강지혁도 지금처럼 그녀에게 지난 일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할 리도 없을 테니 말이다.강지혁의 눈빛에 그녀가 알 수 없는 정서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가자, 이만.”그는 말하면서 임유진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오늘은 건강검진을 받는 날이라 그녀는 아침을 거르고 공복 상태로 병원에 가야 한다.강지혁은 그녀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임유진은 어제 산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었는데 심플한 검은색 머리끈이 한결 정갈해 보였다. 어제처럼 머리끈 안의 하얀 고무줄이 드러나지 않았으니까.강지혁은 그녀를 이토록 소중히 여기면서 왜 전에는 신경 쓰지 못했을까? 그는 어제 그녀의 머리끈에 흰 고무줄이 나온 걸 본 순간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예전에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이 기분을 오직 그녀만 줄 수 있다. 이건 마치 ‘무수한 재부를 지녀도 여전히 그녀에게 닳아빠진 머리끈만 해주는’ 극심한 대비를 이루는 것 같았다.애초에 임유진이 감방에 안 갔더라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텐데.그녀가 지금처럼 초라해진 것은 전부 강지혁 때문이라곤 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다.“머리끈 쓸 만 해?”강지혁이 무심코 물었다.“꽤 좋은데.”가격은 확실히 비싸지만 노점상에서 산 것보다 품질이 훨씬 좋았다.“그럼 됐어. 나중에 사람 시켜서 다른 브랜드 것도 더 사 오라고 할게. 어느 브랜드가 좋은지 누나가 한번 비교해봐.”강지혁이 말했다.“아니야, 어제 산 것도 한동안은 쓸 수 있어.”임유진은 재빨리 그를 말렸다.“내가 누나 챙겨주고 싶어서 그래. 남자친구가 여자친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