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도 안 좋아.”강현수는 시선을 거두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응, 알았어.”임유라는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말했다.유라는 예전에 알아본 적이 있다. 현수는 말을 잘 듣는 여자를 좋아하고 말을 잘 들을수록 현수의 곁에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총애를 이용해 필사적으로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고, 유일하다고 생각하던 여자들은 현수에게 일찌감치 차였다.유라도 비록 예외이고 유일한 여자가 되고 싶지만, 유라는 조급해하지 않을 것이다. 유라는 천천히 그의 마음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현수 씨, 오늘 선물해 준 목걸이 고마워. 아주 마음에 들어. 하지만 이렇게 고급스러운 목걸이를 착용할 기회가 없을까 봐 걱정이야.”유라는 먼저 즐거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유라가 스스로 완벽한 연기라고 생각할 때 현수는 가소롭다고 생각했다.현수는 자신의 앞에서 연기하는 수많은 여자를 봐왔다.“헤븐 파티에 참석할 때 착용하면 되잖아.”유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난 단지 작은 배우일 뿐이라 헤븐파티의 초청장을 받지 못할 거야.”“거기에 가는 게 무슨 초청장이 필요해? 그냥 날 따라가면 돼.”현수가 말했다.“그때 감독 몇 명을 소개해 줄게.”유라는 재빨리 대답했다.“현수 씨, 너무 좋아!”운전을 하고 있는 현수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다.현수는 당연히 유라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기에 유라에게 맞춰준 것이다. 지금 유라는 현수의 여자친구이기 때문이다.현수는 여자에게 조금의 혜택을 주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단지 유라가 현수에게 약간의 위안을 줄 수만 있으면 된다.차가 유라의 주택단지 앞에 도착하자 유라는 아쉬워했다.“현수 씨, 데려다줘서 고마워. 혹시…… 우리 집에서 좀 놀다가 갈래?”“아니야.”현수는 말을 하며 유라의 얼굴에 천천히 다가갔다.유라는 순간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뛰었다. 설마 현수가 유라에게 키스하려고 하는 것일까?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는 실망
“넌 일단 돌아가.”강지혁이 따라 들어온 고이준에게 말했다.이준은 조금 의아했지만 지혁의 성격을 잘 알기에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물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네.”이준은 대답을 하고 월세방을 떠났다.강 대표님이 먼저 돌아가라고 했으니 강 대표님이…… 오늘 밤 그곳에서 잔다는 걸 의미하는 걸까?그 시각 월세방에는 지혁과 유진 두 사람만 남았다.지혁은 유진을 도와 신발과 외투를 벗긴 후에 이불을 덮어주고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앉았다.지혁이 한동안 이곳에서 지내지 않았을 뿐인데 이 방에는 지혁이 살던 흔적이 모두 없어졌다.유진이 지혁이 쓰던 것들을 다 버린 것일까? 그 생각을 하자 지혁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바로 이때 침대에서 잠들었던 유진이 갑자기 눈을 뜨고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왜?”지혁이 물었다.유진은 흐리멍텅하게 눈을 반쯤 뜨고 있었다.“물…… 물 마시고 싶어…….”아마도 술을 많이 마셨기에 목이 마를 것이다.지혁은 한숨을 쉬더니 유진을 못 움직이게 했다.“가만히 앉아있어. 내가 가서 물 가져다줄게!”지금 만약 유진이 스스로 물을 가지러 간다면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지혁은 보온병이 놓여 있는 작은 테이블로 향했다. 유진은 항상 그곳에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병을 놓았고 물을 마시고 싶을 때 찬물과 뜨거운 물을 섞어서 마셨다.지혁은 컵을 하나 꺼내 따뜻한 물을 섞은 후에 다시 침대 옆으로 돌아왔다.다행히도 유진은 정말 얌전하게 침대에 앉아 있었다. 앉은 자세가 아주 반듯하여 초등학생 같았다. 지혁은 유진을 보자 결국 피식 웃었다.유진은 그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인지 턱을 치켜들었다. 유진의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때문인지 입술마저 더 빨갛게 된 것 같았다.“물 마실래, 물…….”유진은 끊임없이 외쳤지만 앉은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지혁은 유진의 이런 모습이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다.“알았어. 물 가져왔어.”지혁이 말하고는 손에 든 물컵을 조심스럽게 유진에게 건네주었다.유
강지혁은 임유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유진의 취한 모습은 아주 부드럽고 사랑스러웠다. 유진의 이런 모습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본 적 있을까?‘아마 소민준도 본 적 있겠지?’지혁은 갑자기 질투가 났다. 민준이 유진과 사귀었던 것이 질투가 났다. 유진이 민준과 사귈 때도 이렇게 부드럽게 민준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유진이 민준과 사귈 때 얼마나 다정했을까?“정말 내가 예쁘다고 생각해?”지혁이 중얼거리며 물었다. 지혁은 유진을 이렇게 곁에 묶어두고 아무도 유진의 요염한 모습을 볼 수 없게 하고 싶었다.“응, 예뻐. 혁이는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예뻐.”유진은 싱긋 웃더니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지혁의 코를 톡톡 두드렸으며 마치 지혁을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지혁을 장난감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유진밖에 없는 것 같다.그때 갑자기 유진의 표정이 변하고 웃음이 사라지더니 낯색이 슬프게 변했다.“혁아, 내가 너에게 잘할게. 그러니 날 떠나지 않으면 안 돼?”유진의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찼다. 마치 유진에게 혁은 아주 중요한 존재이고 혁이 떠나는 걸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았다.“난 여태껏 누나를 떠나려 한 적 없어. 누나가 내 곁에 있기를 원하지 않은 거야. 잊었어?”지혁이 말했다. 분명 지금 유진이 취해 내일이 되면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지만 지혁은 유진에게 진지하게 대답했다.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내가…… 왜 혁이의 곁에 남지 않겠어? 난 혁이와 있고 싶어…… 내가 제일 바라는 건 혁이의 곁에 있는 거야.”아마 유진이 취해야만 지혁은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유진의 얼굴이 지혁의 입술에 다가와 잠자리처럼 키스했다.지혁의 몸은 갑자기 굳어지더니 유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진해졌다.“지금 뭘 한 건지 알아?”유진은 당연히 모른다. 유진은 아주 즐거운 듯 활짝 웃었으며 마치 방금 달콤한 음식에 키스한 것 같았다.평소 지혁과 엮이려는 여자들이 더
임유진은 초롱초롱하게 강지혁을 바라보면서 웃으며 혁이라고 불렀다. 유진이 부드럽게 지혁의 목을 감싸고 있을 때, 그 맑은 기운이 코끝으로 느껴질 때 지혁은 자신마저 취한 것 같았다.“술에 취한 여자를 건드리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지혁이 중얼거리며 말했다. 처음으로 지혁은 자기가 한 말을 바꾸고 싶었다. 유진 때문에!지혁은 고개를 숙이고 유진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토록 그리웠고 또 그토록 애틋했다.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키스한 것인지 키스를 멈추고 보니 유진이 이미 다시 잠들었다.“정말…….”모처럼 무기력감이 지혁의 몸에 가득 찼다. 지혁을 이렇게 처참하게 만들고 또 잠들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유진뿐일 것이다!지혁은 칠흑 같은 눈동자로 자기 아래에 누워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참이 지나자 결국 지혁은 한숨을 쉬더니 다시 유진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침대 옆에 앉았다.“누나는 나한테 한 번 빚졌어, 알았지?”지혁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공중에 흩어졌다.그리고 이 작은 월세방은 더 이상 차갑지 않고 아주 따뜻했다.…….유진이 깨어났을 때 침대 옆에 앉아 있는 지혁을 보자 순간 멍을 때렸다.“넌 왜 여기 있어?”유진이 물었다.“그렇지 않으면 누나가 술에 취해서 혼자 걸어왔을까?”지혁이 반문했다.유진은 그제야 떠올랐다. 어제…… 유진은 술을 많이 마셨고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조차도 룸에서 술을 마신 기억뿐이었다.“그럼 어제 날 데려다주고 돌아가지 않은 거야?”유진은 조금 이상했다. ‘설마 밤새 여기에 앉아 있던 건 아니겠지?’“맞아. 돌아가지 않고 밤새 누나를 돌봤어.”지혁이 말했다.“나한테 고맙다고 말해야 하지 않아?”“고마워.”유진은 말을 하며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지혁이 유진에게 술을 마시라고 했는데 지금 유진이 오히려 지혁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있다.“참, 내 큰삼촌을 풀어줄 거야?”유진은 갑자기 어젯밤 술을 마신 이유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지혁이 거절할까 봐 갑자기 긴장한 모습으로 바
“하지만 누나 때문에 옥살이까지 했는데 지금 풀려나면 그들이 누나한테 원한을 품고 심지어 더 심하게 괴롭힐까 봐 걱정되지 않아?”강지혁이 물었다.임유진은 침묵하고 있었다. 당연히 알고 있다. 이번 일로 큰삼촌은 유진이 그들을 풀어준 것에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유진에게 더 큰 원한을 가질 것이다.“그들은 내가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 그들이 날 얼마나 미워하고 어떻게 생각할지는 나랑 상관없어.”유진은 눈을 지그시 감고 덤덤하게 말했다.그러나 유진의 덤덤한 모습에 지혁은 오히려 괴로웠다.“그럼 나는?”지혁이 불쑥 물었다.“뭘?”유진은 순간 반응하지 못하고 멍때렸다.지혁은 두 손으로 침대 머리를 잡고 유진에게 다가가 물었다.“난? 누나는 날 신경 써? 내가 누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있어?”유진은 멍해졌다. 만약 그가 혁이라면 유진은 당연히 신경 쓰지만, 지금의 그는 강지혁이다…….“내가 신경 쓰든 말든 너에게는 전혀 상관없잖아.”유진이 말했다.“만약 내가 하필 상관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지혁이 말했다.유진은 입술을 깨물고 한숨을 쉬었다.“신경 쓰여.”유진이 곧바로 대답하자 지혁은 조금 의외였다.“이유는?”“넌 강지혁이니까. S시에서 아주 대단한 사람이니까. 네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으니 난 당연히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쓸 수밖에 없어. 난 네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없어.”지혁의 기분을 상하게 해 감옥에서 수없는 고통을 받았다. 유진은 무서웠다. 너무 무서웠다!지금의 유진은 사실 지혁에게 미움을 살 아무런 자격도 없다.지혁의 기분은 삽시에 나빠졌다.“내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없다고? 그러면 애초에 누나가 내 곁에 남지 않겠다고 했을 때 이미 내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생각 안 해?”지혁이 차갑게 말했다.그러자 유진의 몸이 움츠러들었다.지혁은 갑자기 손을 들어 유진의 얼굴을 잡더니 아주 따뜻한 말투로 말했다.“어젯밤 내가 누나를 이곳에 데려온 뒤 이 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임유진은 다급히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한마디 말하고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난 좀 씻을게.”강지혁은 도망치는 듯한 유진의 뒷모습을 보자 낯색이 더 어두워졌다.화장실에서 유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새빨간 얼굴을 보며 숨을 헐떡였다.유진은 도무지 방금 지혁이 말한 것을 믿을 수 없다. 유진이…… 주동적으로 지혁에게 키스했다.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하지만…… 유진은 조금 망설였다. 정말 불가능할까? 유진은 자신이 술에 취한 줄도 몰랐다. 무슨 짓을 했을까?만약…… 지혁의 말이 사실이면? 그럼 유진은…….그런 가능성을 생각하면 유진은 자신을 매장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황급히 세수를 마치고 화장실을 나오자 지혁은 여전히 집에 있었다.지금 지혁은 의자에 앉아 물 한 잔을 들고 홀짝거리고 있다.핸드메이드 정장, 넓은 어깨와 두 긴 다리가 우아하게 겹쳐 있다. 아름다운 얼굴, 입체적이고 깊은 윤곽,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그리고 지혁이 눈을 반쯤 깔고 있을 때, 긴 속눈썹은 부채 같았고 두 눈을 완전히 떴을 때는 아주 분위기 있고 우아했다.지혁이 앉아 있기만 해도 마치 그림 한 폭을 보는 것처럼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비록 지금 지혁이 들고 있는 것은 싸구려 찻잔이지만 지혁의 몸에서 풍기는 귀티는 여전하다.왜 그전에는 눈치채지 못했을까!유진은 마음속으로 자신을 욕하고 있다. 사실 지혁이 유진과 지낼 때도 유진은 지혁의 습관적인 동작과 식사 예절, 그리고 자세에서 교양이 드러났고 노숙자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때 지혁이 고개를 돌려 복숭아 같은 눈동자로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순간 유진은 지혁의 눈빛에 빠진 것 같았다.“난…… 나 출근해야 돼.”유진은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았다. 이미 오전 9시가 넘은 시간이라 몇 시간이나 지각했다. 또 돈이 깎이고 혼날 것이다.“조급해하지 마. 내가 이미 휴가 신청을 했어.”지혁이 말했다.유진은 멍하니 지혁의 말을 듣고 있었다.“참, 내가 쓰던 물건이랑 옷은 다 버린 거야?”유진은 입술을 오므
강지혁 같은 사람은 평소 명품 브랜드의 특별제작한 장갑만 착용할 것이다.지혁은 임유진의 멍한 모습을 보고 한마디 더 보탰다.“내가 누나의 친척을 풀어줬으니 감사의 표시를 해야잖아?”유진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이미 그때 적어둔 치수가 없어.”그때 유진은 장갑을 만들기 위해 줄자로 한참 동안 지혁의 손바닥 치수를 재었다.나중에는 장갑을 만들 필요가 없어 치수가 적힌 종이도 버렸다.“치수가 없으면 다시 재봐.”지혁이 곧바로 말했다.유진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줄자를 꺼낸 다음 지혁의 옆에 앉아 줄자를 들고 지혁의 손 치수를 측정했다.자연히 유진의 손은 어쩔 수 없이 지혁의 손에 닿았다.유진의 손끝이 지혁의 손에 닿을 때마다 유진은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피했다. 줄자조차도 두 손가락의 가장자리로 잡고 치수를 재고 있었다.지혁은 비웃는 듯 유진의 행동을 바라보았다.“어젯밤에는 그렇게 대담하게 나를 안고 키스하고 뽀뽀했는데, 지금은 날 만지기도 싫어하네. 왜 날 만지는 게 누나한테는 너무 어려운 일이야?”유진의 얼굴은 갑자기 다시 붉어졌다.“난…… 난 그때 술에 취했어…….”“그러니까 술에 취하지 않으면 날 만지기도 싫어?”지혁은 유진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유진은 지혁의 비웃는 듯한 눈빛에 숨이 막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지혁은 가볍게 눈을 감았다.“누나, 난 언젠가 누나가 날 주동적으로 만지게 할 거야. 지금은 누나를 강제로 내 곁에 남게 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언젠가 누나가 내 곁에 남고 싶어서 나한테 부탁할 거야.”차가운 목소리는 잡담을 말하는 것처럼 담담했다. 하지만 유진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갑자기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주동적으로 지혁을 만지고 자발적으로 지혁의 곁에 남아 있으려 한다.그게 말이 될까?유진과 지혁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하물며…… 유진에게 강지혁 세 글자를 대표하는 상처가…… 너무너무 많다.…….유진은 오후에 환경위생과로 왔다.서미옥은 유진의 초췌한
빨리 만들기 위해 임유진은 절반을 짠 장갑과 털실을 직장에 가져가 점심 휴식 시간에도 짰다.서미옥은 유진이 장갑을 짜는 것을 보자 궁금해졌다.“네가 착용할 거야? 좀 커 보이는데.”“선물할 거야?”미옥이 물었다.“네.”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설마 남자친구 생긴 거야?”미옥이 또 물었다.“아니에요.”유진이 얼른 부인했다.“없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만드는 거야? 점심 휴식 시간까지 만들 필요가 있어?”미옥은 유진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유진은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설마 지혁에게 선물할 거라고 말할 것인가? 빨리 주고 일을 끝내기 위해 점심 휴식 시간까지 이용한다고?만약 정말 그렇게 말한다면 아마 미옥은 유진의 머리가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정말 아쉬워. 동현 씨가 실연한 거 같아.”미옥은 조금 아쉬웠다.“사실 동현 씨는 형편도 괜찮고 사람도 좋아. 집까지 마련했잖아. 그런 남자에게 시집가면 한평생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건데.”확실히 만약 정말 곽동현에게 시집간다면 한평생 안정될 수 있다.다만 그 당시 교통사고가 났을 때부터 유진은 한평생 안정될 수 없다.유진은 동현이 진정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여자를 찾기 바란다.“소문을 들었는데 동현 씨 사직할 거래. 비록 환경위생과에서 일하는 게 조금 부끄럽지만 그래도 동현 씨는 공무원이잖아. 공무원이 되는 게 얼마나 힘든데.”유진은 흠칫 놀랐다.“곽동현 씨가 사직한대요?”“나도 들은 거야.”미옥이 중얼중얼 말했다.“다른 사람은 원해도 못 가지는 직장을 자진해서 사직한다니, 그럴 리가요.”유진은 생각이 많아졌다.동현이 사직하는 게 자기 때문일까? 설마 그날 밤 유진의 말 때문에? 동현이 가난해서 싫다고 해서 그런 걸까?유진은 단지 동현이 더 이상 자기에게 시간을 낭비하는 게 싫어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만약 동현이 진짜 사직한다면…….유진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갔다.동현을 찾았을 때 동현은 인수인계하고 있었
사실 고이준은 지금껏 마음 한구석으로는 늘 임유진은 강지혁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래서 임유진이 강지혁 대신 죽음을 택했을 때 그 누구보다 놀랐고 그녀의 행동에 탄복했다.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일지 모르나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던진다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다.“대표님을 사랑하시니까요. 그래서 자신보다는 대표님께서 살기를 바랐던 거죠.”고이준의 말에 강지혁의 몸이 움찔 떨렸다.그는 잔뜩 잠긴 목소리로 조용히 읊조렸다.“날 사랑한다고... 그래, 날 사랑해서 그런 거야. 유진이는 날... 줄곧 사랑하고 있었어.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어. 그렇게도 확실하게 얘기해줬는데 나는 믿어주지 않았어...”강지혁은 임유진이 아이들 때문에 그를 용서한 게 아니라 그를 사랑해서 용서하는 거라고 했을 때 그럴 일 없다며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그는 줄곧 자신이 더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사랑이 그녀의 사랑보다 더 크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임유진은 마지막 순간 자신의 목숨으로 그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보여줬다.“대표님, 사모님은 아마 바다에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대표님 걱정을 하셨을 겁니다. 절대 대표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서 절벽에서 떨어진 게 아닐 겁니다. 그러니 진정으로 사모님을 위하신다면 다시 정신을 차려주세요!”고이준은 강지혁이 홧김에 나쁜 선택을 할까 봐 너무나도 걱정이 됐다.“이준아...”그때 강지혁의 곧 부서질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만약 정말 이대로 유진이를 찾지 못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애초에 살아갈 수는 있을까...?”모든 걸 다 가진 남부러울 것 없는 남자가 지금은 마치 모든 걸 다 잃은 사람처럼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저녁 바다를 담은 그의 검은색 두 눈동자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탁해져 있었다.고이준은 그런 그의 모습에 순간 만약 정말 이대로 임유진을 찾지 못하면 강지혁은 어쩌면 정말 나쁜 선택을 할지도 모
“이 여자 살려내. 그리고 배 속에 있는 세 명의 아이도.”김재호의 말에 의사가 난감한 기색을 표했다.“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살릴 수 있을지 없을지 확언하기 어렵습니다.”“당신이 이 근방에서 제일 실력이 좋은 의사라는 거 알아. 그리고 이력서 보니 산부인과에서 몇 년이나 근무한 경력이 있던데 그러면 수술 같은 건 당신한테는 어려운 일이 아닐 거 아니야.”김재호는 일을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의사의 이력은 이미 진작에 조사를 마쳤다.“물론 그렇습니다만... 네 명 다 살릴 수 있을지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만약 넷 중 누구 한 명이라도 살려내지 못하면 그때는 이 보건소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될 거야. 그러니 반드시 살려내.”김재호가 음산한 얼굴로 협박했다....임유진이 탄 차량은 육지로 건져졌다. 하지만 차 안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경찰과 강지혁의 경호원들이 바다 근처를 전부 다 수색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72시간의 골든 타임도 이제는 훌쩍 지나버렸다. 이제는 정말 죽은 거라고 포기해야 할 때가 왔다.하지만 이곳에는 아직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고이준은 멘탈이 붕괴하기 직전까지 온 강지혁이 너무나도 불안하고 또 걱정됐다. 또한 멘탈이 무너지는 순간 강지혁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몰라 정말 너무나도 무서웠다.고이준은 배 갑판에 가만히 서 있는 강지혁을 걱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요 며칠 강지혁은 거의 배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임유진의 행방을 쫓았다. 그는 가끔 시체라도 좋으니 제발 눈앞에 나타나 달라며 외쳤다.하지만 고이준은 오히려 임유진의 시체가 나타나지 않은 이 상황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임유진의 시체를 마주하게 되면 강지혁은 볼 것도 없이 미쳐버릴 테니까.임유진은 강지혁의 목숨은 구해주었지만 그 대신 강지혁의 멘탈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갔다.“대표님, 시간이 늦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고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세요. 벌써 3일
그리고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강문철의 예상을 벗어남으로써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쟁취했다. 물론 그것도 하늘의 뜻이 어떤지 봐야겠지만 말이다.김재호는 하늘을 바라보며 강문철이 살아생전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만약 임유진이 정말 지혁이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그때는... 살려둬. 하지만 지혁이 곁에 두지는 마. 임유진은 지혁이한테 약점밖에 안 돼.”“그러면 차라리 죽도록 내버려 두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김재호의 질문에 강문철은 끝까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김재호는 그저 강문철에게 임유진이 만약 바다에 빠졌는데도 살아나면 그때는 그녀를 살려주라는 지시만 받았다.한편 절벽에서 2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작은 오두막 안에 있던 진세령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휴대폰을 바닥으로 힘껏 내던졌다.예쁜 얼굴이 단숨에 질투와 분노로 무섭게 일그러졌다.“왜! 왜 임유진이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왜 살려주려고 하는데! 왜! 왜!”강지혁은 그녀의 언니인 진애령의 죽음 때는 자기와는 아주 조금도 상관없는 사람의 죽음을 들은 듯한 표정으로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동정심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그런데 그랬던 강지혁이 임유진을 위해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버튼을 누르며 죽음을 택했다.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임유진의 행복만을 빌었다.“임유진이 뭐라고 그렇게 해!”진세령은 결과적으로 임유진이 죽은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봤는데도 전혀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분명히 속이 시원하고 상쾌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지독한 패배감만 들었다.강지혁처럼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죽어주려고까지 하는 남자를 그녀는 영원히 얻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으니까....강지혁이 미쳐버린 지금 고이준은 자신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싶어 일단 경찰을 불러 바다에 떨어진 임유진을 수색하게 한 다음 강제로 강지혁을 구급차에 태워 병원에 보냈다.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느 정도 처리하고 보니 그제야 김재호가 그
강지혁은 생각보다 감정에 섬세한 남자라 임유진은 차라리 그가 그녀를 조금 덜 사랑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아무리 지금은 마음이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을 수 있을 테니까.임유진은 강지혁이라는 남자와 흰머리로 뒤덮일 때까지 정말 잘살아 보고 싶었다. 예쁜 아이 셋을 낳고 평생 웃으며 행복하게 잘살아 보고 싶었다.그래서 그때 그에게 영원의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평생 그의 곁에 있어 주겠다는 말을 했다.하지만 그녀는 그 약속을 이제 지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본의 아니게 약속을 어겨버렸네...?’임유진은 중력으로 몸이 점점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문득 강문철이 그녀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강문철은 그녀가 정말 강지혁을 사랑하는지 내기를 하자고 했다.‘내가 혁이를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는지 테스트해 보고 싶으셨나? 그래서 내 손을 기어봉에 묶어놨나? 내가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려고?’임유진의 귓가에 강지혁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극심한 고통과 해수가 그녀를 집어삼켰다.“유진아! 유진아!”강지혁은 이대로 임유진의 차량을 따라가려는 듯 절벽 쪽으로 달려갔다.그리고 고이준은 그런 그를 있는 힘껏 끌어당기며 이내 경호원들에게 같이 힘을 보태라고 지시했다.그러자 경호원들이 우르르 달려와 강지혁의 팔과 몸을 잡았다.“놔! 이거 놔! 유진이 구하러 가야 하니까 이거 놔!”강지혁이 눈이 빨개진 채로 목이 부서지라 외쳤다.“사모님께서는 차량과 함께 떨어지셨습니다! 이대로 대표님께서 뛰어봤자 함께 목숨을 잃는 것밖에 안 된다는 뜻입니다! 사모님이 마지막으로 했던 얘기, 대표님도 들으셨잖습니까! 그런데도 이대로 사모님을 따라가실 겁니까?!”고이준이 외쳤다.그러자 그 말에 강지혁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그도 알고 있다. 임유진이 그를 위해 희생했다는 사실쯤은. 하지만... 그녀가 세상에 없는데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그때 기계 장치 쪽에서 치지직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금 강문철
임유진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새어 나왔다.지금 이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남의 행복이나 비는 바보 같은 남자 때문에 그녀는 가슴이 아프고 또 숨이 막혔다.강지혁의 엄지손가락이 결국에는 버튼을 눌렀고 그와 동시에 그녀가 있는 차 안 모니터에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임유진은 그게 폭탄 해제까지 걸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그녀와 강지혁 사이에는 이제 고작 2분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2분이라는 시간 동안 강지혁은 언제든지 손을 떼고 그곳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다.“고 비서님, 당장 혁이를 저기서 끌어내 주세요!”임유진이 고이준을 향해 외쳤다.그 말에 고이준의 몸이 움찔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강지혁을 끌어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임유진이 탄 차량 주위에 깔린 폭탄들이 터지게 된다.“내 몸에 손대면 그게 누구든 가만 안 둬!”강지혁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아주 크게 울려 퍼졌다.이에 경호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고이준은 더더욱 마음이 복잡해졌다.“고이준, 유진이가 절벽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면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가. 그리고 지금 당장 내 곁에서 멀리 떨어져.”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다시 시선을 돌려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유진아, 이건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 그러니까 괜한 생각하지 마.”원해서 하는 거라고?하지만 그게 원해서든 아니든 임유진은 그가 죽는 걸 원치 않았다.그때 그녀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방법이 떠올랐다. 사실 그녀에게는 강지혁의 죽음을 막을 방법이 하나 남아 있었다.임유진은 뭔가를 결심한 얼굴로 기어봉에 묶인 손을 한번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여 어느새 많이도 불룩해진 자신의 복부를 바라보았다.“미안해. 엄마가 너무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라 정말 미안해... 엄마가 한 선택에 너희를 휘말리게 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너희 아빠를 사랑하고 있어. 그래서 혁이가 죽는 걸 이대로 지켜볼 수 없어... 그러니까 너희들이 엄마 한 번만 봐줘.”임유진은 숨을 한번 고
하지만 강문철은 틀렸다. 강지혁은 임유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강지혁이 기계 장치 가까이에 다다르자 바로 타이머부터 보였다. 타이머에 표시된 숫자는 8이었다.이제 8분이 지나면 폭탄이 터지게 된다.“안 돼! 혁아, 그러지 마!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너희 할아버지는 절대 네가 그런 선택을 하게 내버려 둘 분이 아니야. 누구보다 가문을 중요시했던 분이셨잖아! 네가 죽으면 가문을 이을 사람도 없어지고 회사도 망하게 될 텐데 너희 할아버지가 그것도 생각 못 하셨을 것 같아? 그러니까 제발 멈추고 우리 다시 생각해보자! 응?!”“유진아, 괜찮아. 겁먹지 않아도 돼. 내가 반드시 널 구해줄 테니까.”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곧바로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치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이내 강문철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콜록콜록... 결국에는 임유진 때문에 목숨을 거는 선택을 하고야 말았구나. 그런데 네 선택은 틀렸다.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임유진은 네가 목숨을 걸고서까지 구해줄 만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콜록콜록... 폭탄을 해제하려면 네 엄지로 빨간색 버튼을 한동안 누르고 있어야만 한다. 폭탄이 해제되기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하거든. 그런데 계속해서 누르고 있으면 임유진 쪽 폭탄은 해제되겠지만 이 기계에 설치된 폭탄은 바로 터지게 되겠지.”강문철의 담담한 목소리에 사람들은 괜히 몸이 오싹해 나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도무지 친할아버지라고는 생각을 못 할 얘기였다.“다만 버튼을 누르고 폭탄이 해제되는 시간 동안 너는 언제든지 손을 떼고 이 기계에서 멀리 떨어질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해제에 실패하고 임유진 쪽의 폭탄이 바로 터지게 되겠지. 어디 한번 보자꾸나. 네가 그 여자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콜록콜록... 그리고 임유진이 정말 네가 목숨을 바칠만한 여자인지.”강문철의 목소리가 완전히 끊기고 이내 무거운 적막이 찾아왔다.임유진은 자신의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어
임유진은 자신의 양손이 왜 한쪽은 핸들에 묶여있고 또 한쪽은 기어봉에 묶여있는지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애초에 다른 선택지는 없게 둘 중 하나가 살 수 있게만 만들어놓은 것이었다.지금 그녀가 탄 차량의 주위에 얼마만큼의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그걸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만약 파악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폭탄을 건드리면 최악의 결과로 치닫게 된다.정말 두 사람 다 사는 방법은 없는 걸까?임유진은 머리를 최대한으로 굴리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그때 김재호의 말을 전부 듣고 있던 진세령이 표독스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어때? 상황이 엄청 재미있어졌지? 이제 강지혁은 어떻게 할까? 나는 강지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널 버릴 거라는 거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은데 너는 어때? 혹시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얼굴이 그렇게 죽상이 된 거야? 하하하!”임유진은 진세령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강지혁의 얼굴만 바라보았다.그리고 강지혁도 그런 그녀를 똑같이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그의 눈동자에 뭔가의 결심이 섰고 임유진은 그걸 보고는 서둘러 크게 외쳤다.“혁아, 하지 마!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그런데 강지혁은 그녀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녹음을 켠 후 휴대폰을 입 가까이에 가져갔다.“나 강지혁은 죽은 후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전부 아내인 임유진에게 넘겨주겠다. 이건 그 어떤 외부의 강요도 받지 않은 온전한 내 의지임을 밝힌다.”그는 말을 마친 후 곧바로 휴대폰을 고이준에게 던져버렸다.그리고 고이준은 그의 휴대폰을 받고 그대로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지금 자기 목숨을 희생해 유진 씨를 구하려는 건가? 그래서 유언을 남긴 건가...? 하지만 이대로 대표님이 죽어버리면...’고이준은 그 뒤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강지혁의 유언에 굳어버린 건 고이준 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김재호의 얼굴 역시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대표님, 정말 임유진 씨를
김재호가 한 손을 들어 임유진이 타 있는 차량과 약 20m 정도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저쪽으로 가시면 웬 기계 장치가 하나 보일 건데 거기에 폭탄을 해제할 수 있는 버튼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는 대표님의 지문이 필요합니다.”김재호의 웃음기가 한층 더 깊어졌다.그리고 강지혁은 김재호의 말에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이 상황이 단지 지문을 찍고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만약 그렇게 간단한 거였으면 굳이 이런 짓을 벌이지는 않았을 테니까.“인내심 테스트하지 말고 똑바로 끝까지 말해. 너와 여기서 입씨름할 시간 없으니까!”강지혁은 지금 일 초라도 빨리 임유진을 저기서 구해내고 싶었다.“그러죠. 만약 대표님께서 해제 버튼을 누르시게 되면 기계 장치에 설치된 폭탄의 스위치가 자동으로 켜지게 될 겁니다. 즉 임유진 씨를 구하면 대표님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뜻이죠.”김재호는 강지혁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큰 목소리로 말했다.차 안에 있는 임유진에게도 이 얘기가 전달되기를 바라서였다.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임유진은 그의 말을 아주 똑똑히 들어버렸다.임유진은 마치 온몸이 한기에 둘러싸인 것처럼 몸이 뻣뻣하게 얼어붙어 버렸다.자신이 사는 대가로 강지혁이 목숨을 잃게 될 줄은 정말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왜... 대체 저 남자는 뭣 때문에 이런 짓을 계획한 거지? 단순히 내 목숨이 목적인 거면 내가 기절해있을 때 진세령을 통해 나를 죽이면 됐을 텐데...?’그때 임유진의 의문에 대답을 해주듯 김재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께서 이 판을 계획한 건 다 대표님이 정신을 차렸으면 해서입니다. 임유진 씨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요. 대표님, 임유진 씨를 대체할 여자는 차고도 넘칩니다. 만약 외모 때문이라면 똑같이 성형하게 하면 될 일입니다.”요즘은 의술이 워낙 좋아 완전히 똑같게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비슷하게는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임유진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차분한 음성으로 진세령에게 말했다.“지금이라도 날 풀어주면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해줄게. 혁이한테도 널 봐달라고 하고 네 집안이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라고도 할게.”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최대한 진세령이 혹할 만한 제안을 제시하는 것밖에 없었다. 진세령에게 조금이라도 틈이 보인다면 그걸 기회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그런데 진세령은 마치 임유진의 말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 건지 자기 할 말만 이어나갔다.“나는 그냥 확인하고 싶을 뿐이야. 강지혁이 널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우리 언니가 죽었을 때는 눈물은커녕 동정심도 내보이지 않았거든. 솔직히 너도 확인해보고 싶지 않아? 강지혁이 널 위해서 정말 목숨을 걸 수 있을지 없을지?”진세령의 두 눈은 어느새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임유진을 증오했다. 한낱 버러지 같은 여자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 너무나도 억울했으니까.진애령의 사고가 있었던 그때 사실 진세령은 임유진의 곁에서 소민준을 빼앗으며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소민준이 임유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에게는 일말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을까 봐.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소민준은 아주 손쉽게 임유진을 버렸다. 마치 다 쓴 건전지를 버리듯 너무나도 쉽게 그녀를 버려버렸다.생각해보면 첫사랑의 이미지로 남자들을 홀린 자신이 임유진 따위를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그래서 진세령은 강지혁도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소민준처럼 임유진을 가차 없이 버릴 거라고 확신했다.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그는 김재호라는 남자에게서 거액의 보수를 건네받은 후 해외로 넘어가 남은 생을 편히 즐기면 된다.그때 검은색 승용차가 연이어 이곳에 도착했다.임유진은 차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연달아 내리는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 중에 강지혁의 모습이 보였다.강지혁은 아슬아슬한 상태로 절벽에 걸려있는 차량과 그 차량의 운전석에 앉은 임유진을 확인하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