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은 겨우 말을 끝까지 다 했다.“그럴게.”강지혁이 말했다. 자신이 약속한 일이니 당연히 지켜야 한다.유진이 이토록 취했으니 유진이 원하는 대로 사람들을 풀어주어야 한다.지혁은 유진이 들고 있던 술잔을 가져와 다 마셨다.유진은 정말 심하게 취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강지혁을 혁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유진은 지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혁이라고 부르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를 것이다. 마치 아주 고요한 밤에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말이다.유진은 또 싱긋 웃었다. 아주 달콤하게 웃었으며 마치 미션을 완수하는 것처럼 지혁에게 안겨 지혁의 목을 껴안았다.“혁아, 나…… 나 너무 졸려. 자고 싶어…….”유진은 중얼중얼 말하다가 곧바로 지혁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지혁은 고개를 숙이고 멍하니 품속의 사람을 보고 있다.깨어 있을 때의 유진은 니혁을 매우 경계했지만, 잠든 유진은 오히려 지혁에게 모든 경계를 풀고 있었다.“누나는 취한 모습이 아주 귀여워.”지혁이 나지막하게 말하며 손을 들어 귓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만졌다.유진의 볼은 술 때문에 발그레했으며 살구 같은 눈동자는 감고 있다. 그래서 유진의 곱슬곱슬한 속눈썹, 앙증맞은 코, 요염한 입술을 더욱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그리고 마치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지혁의 심장은 더 빨리 뛰었다.지혁은 조심스레 자신의 옆에 놓인 외투를 유진의 몸에 덮어주고 유진을 안아서 곧장 룸을 나섰다.유진은 지혁의 품에 안겨 편안하게 잠들었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고이준이 공손하게 차 문을 열었다.지혁은 유진을 안고 차에 올랐다.한편 멀지 않은 곳에서 두 사람이 주차장으로 걸어왔다. 그 장면을 본 강현수는 뜻밖에도 눈썹을 치켜세웠다.보아하니 지혁은 정말 여자가 있는 것 같다. 지혁이 방금 조심스럽게 여자를 안고 차에 오를 때 모습을 보니 지혁이 그 여자를 아주 아끼는 것 같았다.마찬가지로 이 장면을 본 사람은 임유라도 있었다. 다만 유라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도 안 좋아.”강현수는 시선을 거두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응, 알았어.”임유라는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말했다.유라는 예전에 알아본 적이 있다. 현수는 말을 잘 듣는 여자를 좋아하고 말을 잘 들을수록 현수의 곁에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총애를 이용해 필사적으로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고, 유일하다고 생각하던 여자들은 현수에게 일찌감치 차였다.유라도 비록 예외이고 유일한 여자가 되고 싶지만, 유라는 조급해하지 않을 것이다. 유라는 천천히 그의 마음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현수 씨, 오늘 선물해 준 목걸이 고마워. 아주 마음에 들어. 하지만 이렇게 고급스러운 목걸이를 착용할 기회가 없을까 봐 걱정이야.”유라는 먼저 즐거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유라가 스스로 완벽한 연기라고 생각할 때 현수는 가소롭다고 생각했다.현수는 자신의 앞에서 연기하는 수많은 여자를 봐왔다.“헤븐 파티에 참석할 때 착용하면 되잖아.”유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난 단지 작은 배우일 뿐이라 헤븐파티의 초청장을 받지 못할 거야.”“거기에 가는 게 무슨 초청장이 필요해? 그냥 날 따라가면 돼.”현수가 말했다.“그때 감독 몇 명을 소개해 줄게.”유라는 재빨리 대답했다.“현수 씨, 너무 좋아!”운전을 하고 있는 현수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다.현수는 당연히 유라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기에 유라에게 맞춰준 것이다. 지금 유라는 현수의 여자친구이기 때문이다.현수는 여자에게 조금의 혜택을 주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단지 유라가 현수에게 약간의 위안을 줄 수만 있으면 된다.차가 유라의 주택단지 앞에 도착하자 유라는 아쉬워했다.“현수 씨, 데려다줘서 고마워. 혹시…… 우리 집에서 좀 놀다가 갈래?”“아니야.”현수는 말을 하며 유라의 얼굴에 천천히 다가갔다.유라는 순간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뛰었다. 설마 현수가 유라에게 키스하려고 하는 것일까?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는 실망
“넌 일단 돌아가.”강지혁이 따라 들어온 고이준에게 말했다.이준은 조금 의아했지만 지혁의 성격을 잘 알기에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물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네.”이준은 대답을 하고 월세방을 떠났다.강 대표님이 먼저 돌아가라고 했으니 강 대표님이…… 오늘 밤 그곳에서 잔다는 걸 의미하는 걸까?그 시각 월세방에는 지혁과 유진 두 사람만 남았다.지혁은 유진을 도와 신발과 외투를 벗긴 후에 이불을 덮어주고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앉았다.지혁이 한동안 이곳에서 지내지 않았을 뿐인데 이 방에는 지혁이 살던 흔적이 모두 없어졌다.유진이 지혁이 쓰던 것들을 다 버린 것일까? 그 생각을 하자 지혁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바로 이때 침대에서 잠들었던 유진이 갑자기 눈을 뜨고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왜?”지혁이 물었다.유진은 흐리멍텅하게 눈을 반쯤 뜨고 있었다.“물…… 물 마시고 싶어…….”아마도 술을 많이 마셨기에 목이 마를 것이다.지혁은 한숨을 쉬더니 유진을 못 움직이게 했다.“가만히 앉아있어. 내가 가서 물 가져다줄게!”지금 만약 유진이 스스로 물을 가지러 간다면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지혁은 보온병이 놓여 있는 작은 테이블로 향했다. 유진은 항상 그곳에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병을 놓았고 물을 마시고 싶을 때 찬물과 뜨거운 물을 섞어서 마셨다.지혁은 컵을 하나 꺼내 따뜻한 물을 섞은 후에 다시 침대 옆으로 돌아왔다.다행히도 유진은 정말 얌전하게 침대에 앉아 있었다. 앉은 자세가 아주 반듯하여 초등학생 같았다. 지혁은 유진을 보자 결국 피식 웃었다.유진은 그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인지 턱을 치켜들었다. 유진의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때문인지 입술마저 더 빨갛게 된 것 같았다.“물 마실래, 물…….”유진은 끊임없이 외쳤지만 앉은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지혁은 유진의 이런 모습이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다.“알았어. 물 가져왔어.”지혁이 말하고는 손에 든 물컵을 조심스럽게 유진에게 건네주었다.유
강지혁은 임유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유진의 취한 모습은 아주 부드럽고 사랑스러웠다. 유진의 이런 모습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본 적 있을까?‘아마 소민준도 본 적 있겠지?’지혁은 갑자기 질투가 났다. 민준이 유진과 사귀었던 것이 질투가 났다. 유진이 민준과 사귈 때도 이렇게 부드럽게 민준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유진이 민준과 사귈 때 얼마나 다정했을까?“정말 내가 예쁘다고 생각해?”지혁이 중얼거리며 물었다. 지혁은 유진을 이렇게 곁에 묶어두고 아무도 유진의 요염한 모습을 볼 수 없게 하고 싶었다.“응, 예뻐. 혁이는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예뻐.”유진은 싱긋 웃더니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지혁의 코를 톡톡 두드렸으며 마치 지혁을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지혁을 장난감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유진밖에 없는 것 같다.그때 갑자기 유진의 표정이 변하고 웃음이 사라지더니 낯색이 슬프게 변했다.“혁아, 내가 너에게 잘할게. 그러니 날 떠나지 않으면 안 돼?”유진의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찼다. 마치 유진에게 혁은 아주 중요한 존재이고 혁이 떠나는 걸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았다.“난 여태껏 누나를 떠나려 한 적 없어. 누나가 내 곁에 있기를 원하지 않은 거야. 잊었어?”지혁이 말했다. 분명 지금 유진이 취해 내일이 되면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지만 지혁은 유진에게 진지하게 대답했다.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내가…… 왜 혁이의 곁에 남지 않겠어? 난 혁이와 있고 싶어…… 내가 제일 바라는 건 혁이의 곁에 있는 거야.”아마 유진이 취해야만 지혁은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유진의 얼굴이 지혁의 입술에 다가와 잠자리처럼 키스했다.지혁의 몸은 갑자기 굳어지더니 유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진해졌다.“지금 뭘 한 건지 알아?”유진은 당연히 모른다. 유진은 아주 즐거운 듯 활짝 웃었으며 마치 방금 달콤한 음식에 키스한 것 같았다.평소 지혁과 엮이려는 여자들이 더
임유진은 초롱초롱하게 강지혁을 바라보면서 웃으며 혁이라고 불렀다. 유진이 부드럽게 지혁의 목을 감싸고 있을 때, 그 맑은 기운이 코끝으로 느껴질 때 지혁은 자신마저 취한 것 같았다.“술에 취한 여자를 건드리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지혁이 중얼거리며 말했다. 처음으로 지혁은 자기가 한 말을 바꾸고 싶었다. 유진 때문에!지혁은 고개를 숙이고 유진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토록 그리웠고 또 그토록 애틋했다.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키스한 것인지 키스를 멈추고 보니 유진이 이미 다시 잠들었다.“정말…….”모처럼 무기력감이 지혁의 몸에 가득 찼다. 지혁을 이렇게 처참하게 만들고 또 잠들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유진뿐일 것이다!지혁은 칠흑 같은 눈동자로 자기 아래에 누워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참이 지나자 결국 지혁은 한숨을 쉬더니 다시 유진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침대 옆에 앉았다.“누나는 나한테 한 번 빚졌어, 알았지?”지혁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공중에 흩어졌다.그리고 이 작은 월세방은 더 이상 차갑지 않고 아주 따뜻했다.…….유진이 깨어났을 때 침대 옆에 앉아 있는 지혁을 보자 순간 멍을 때렸다.“넌 왜 여기 있어?”유진이 물었다.“그렇지 않으면 누나가 술에 취해서 혼자 걸어왔을까?”지혁이 반문했다.유진은 그제야 떠올랐다. 어제…… 유진은 술을 많이 마셨고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조차도 룸에서 술을 마신 기억뿐이었다.“그럼 어제 날 데려다주고 돌아가지 않은 거야?”유진은 조금 이상했다. ‘설마 밤새 여기에 앉아 있던 건 아니겠지?’“맞아. 돌아가지 않고 밤새 누나를 돌봤어.”지혁이 말했다.“나한테 고맙다고 말해야 하지 않아?”“고마워.”유진은 말을 하며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지혁이 유진에게 술을 마시라고 했는데 지금 유진이 오히려 지혁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있다.“참, 내 큰삼촌을 풀어줄 거야?”유진은 갑자기 어젯밤 술을 마신 이유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지혁이 거절할까 봐 갑자기 긴장한 모습으로 바
“하지만 누나 때문에 옥살이까지 했는데 지금 풀려나면 그들이 누나한테 원한을 품고 심지어 더 심하게 괴롭힐까 봐 걱정되지 않아?”강지혁이 물었다.임유진은 침묵하고 있었다. 당연히 알고 있다. 이번 일로 큰삼촌은 유진이 그들을 풀어준 것에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유진에게 더 큰 원한을 가질 것이다.“그들은 내가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 그들이 날 얼마나 미워하고 어떻게 생각할지는 나랑 상관없어.”유진은 눈을 지그시 감고 덤덤하게 말했다.그러나 유진의 덤덤한 모습에 지혁은 오히려 괴로웠다.“그럼 나는?”지혁이 불쑥 물었다.“뭘?”유진은 순간 반응하지 못하고 멍때렸다.지혁은 두 손으로 침대 머리를 잡고 유진에게 다가가 물었다.“난? 누나는 날 신경 써? 내가 누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있어?”유진은 멍해졌다. 만약 그가 혁이라면 유진은 당연히 신경 쓰지만, 지금의 그는 강지혁이다…….“내가 신경 쓰든 말든 너에게는 전혀 상관없잖아.”유진이 말했다.“만약 내가 하필 상관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지혁이 말했다.유진은 입술을 깨물고 한숨을 쉬었다.“신경 쓰여.”유진이 곧바로 대답하자 지혁은 조금 의외였다.“이유는?”“넌 강지혁이니까. S시에서 아주 대단한 사람이니까. 네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으니 난 당연히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쓸 수밖에 없어. 난 네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없어.”지혁의 기분을 상하게 해 감옥에서 수없는 고통을 받았다. 유진은 무서웠다. 너무 무서웠다!지금의 유진은 사실 지혁에게 미움을 살 아무런 자격도 없다.지혁의 기분은 삽시에 나빠졌다.“내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없다고? 그러면 애초에 누나가 내 곁에 남지 않겠다고 했을 때 이미 내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생각 안 해?”지혁이 차갑게 말했다.그러자 유진의 몸이 움츠러들었다.지혁은 갑자기 손을 들어 유진의 얼굴을 잡더니 아주 따뜻한 말투로 말했다.“어젯밤 내가 누나를 이곳에 데려온 뒤 이 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임유진은 다급히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한마디 말하고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난 좀 씻을게.”강지혁은 도망치는 듯한 유진의 뒷모습을 보자 낯색이 더 어두워졌다.화장실에서 유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새빨간 얼굴을 보며 숨을 헐떡였다.유진은 도무지 방금 지혁이 말한 것을 믿을 수 없다. 유진이…… 주동적으로 지혁에게 키스했다.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하지만…… 유진은 조금 망설였다. 정말 불가능할까? 유진은 자신이 술에 취한 줄도 몰랐다. 무슨 짓을 했을까?만약…… 지혁의 말이 사실이면? 그럼 유진은…….그런 가능성을 생각하면 유진은 자신을 매장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황급히 세수를 마치고 화장실을 나오자 지혁은 여전히 집에 있었다.지금 지혁은 의자에 앉아 물 한 잔을 들고 홀짝거리고 있다.핸드메이드 정장, 넓은 어깨와 두 긴 다리가 우아하게 겹쳐 있다. 아름다운 얼굴, 입체적이고 깊은 윤곽,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그리고 지혁이 눈을 반쯤 깔고 있을 때, 긴 속눈썹은 부채 같았고 두 눈을 완전히 떴을 때는 아주 분위기 있고 우아했다.지혁이 앉아 있기만 해도 마치 그림 한 폭을 보는 것처럼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비록 지금 지혁이 들고 있는 것은 싸구려 찻잔이지만 지혁의 몸에서 풍기는 귀티는 여전하다.왜 그전에는 눈치채지 못했을까!유진은 마음속으로 자신을 욕하고 있다. 사실 지혁이 유진과 지낼 때도 유진은 지혁의 습관적인 동작과 식사 예절, 그리고 자세에서 교양이 드러났고 노숙자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때 지혁이 고개를 돌려 복숭아 같은 눈동자로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순간 유진은 지혁의 눈빛에 빠진 것 같았다.“난…… 나 출근해야 돼.”유진은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았다. 이미 오전 9시가 넘은 시간이라 몇 시간이나 지각했다. 또 돈이 깎이고 혼날 것이다.“조급해하지 마. 내가 이미 휴가 신청을 했어.”지혁이 말했다.유진은 멍하니 지혁의 말을 듣고 있었다.“참, 내가 쓰던 물건이랑 옷은 다 버린 거야?”유진은 입술을 오므
강지혁 같은 사람은 평소 명품 브랜드의 특별제작한 장갑만 착용할 것이다.지혁은 임유진의 멍한 모습을 보고 한마디 더 보탰다.“내가 누나의 친척을 풀어줬으니 감사의 표시를 해야잖아?”유진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이미 그때 적어둔 치수가 없어.”그때 유진은 장갑을 만들기 위해 줄자로 한참 동안 지혁의 손바닥 치수를 재었다.나중에는 장갑을 만들 필요가 없어 치수가 적힌 종이도 버렸다.“치수가 없으면 다시 재봐.”지혁이 곧바로 말했다.유진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줄자를 꺼낸 다음 지혁의 옆에 앉아 줄자를 들고 지혁의 손 치수를 측정했다.자연히 유진의 손은 어쩔 수 없이 지혁의 손에 닿았다.유진의 손끝이 지혁의 손에 닿을 때마다 유진은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피했다. 줄자조차도 두 손가락의 가장자리로 잡고 치수를 재고 있었다.지혁은 비웃는 듯 유진의 행동을 바라보았다.“어젯밤에는 그렇게 대담하게 나를 안고 키스하고 뽀뽀했는데, 지금은 날 만지기도 싫어하네. 왜 날 만지는 게 누나한테는 너무 어려운 일이야?”유진의 얼굴은 갑자기 다시 붉어졌다.“난…… 난 그때 술에 취했어…….”“그러니까 술에 취하지 않으면 날 만지기도 싫어?”지혁은 유진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유진은 지혁의 비웃는 듯한 눈빛에 숨이 막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지혁은 가볍게 눈을 감았다.“누나, 난 언젠가 누나가 날 주동적으로 만지게 할 거야. 지금은 누나를 강제로 내 곁에 남게 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언젠가 누나가 내 곁에 남고 싶어서 나한테 부탁할 거야.”차가운 목소리는 잡담을 말하는 것처럼 담담했다. 하지만 유진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갑자기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주동적으로 지혁을 만지고 자발적으로 지혁의 곁에 남아 있으려 한다.그게 말이 될까?유진과 지혁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하물며…… 유진에게 강지혁 세 글자를 대표하는 상처가…… 너무너무 많다.…….유진은 오후에 환경위생과로 왔다.서미옥은 유진의 초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