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혁 같은 사람은 평소 명품 브랜드의 특별제작한 장갑만 착용할 것이다.지혁은 임유진의 멍한 모습을 보고 한마디 더 보탰다.“내가 누나의 친척을 풀어줬으니 감사의 표시를 해야잖아?”유진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이미 그때 적어둔 치수가 없어.”그때 유진은 장갑을 만들기 위해 줄자로 한참 동안 지혁의 손바닥 치수를 재었다.나중에는 장갑을 만들 필요가 없어 치수가 적힌 종이도 버렸다.“치수가 없으면 다시 재봐.”지혁이 곧바로 말했다.유진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줄자를 꺼낸 다음 지혁의 옆에 앉아 줄자를 들고 지혁의 손 치수를 측정했다.자연히 유진의 손은 어쩔 수 없이 지혁의 손에 닿았다.유진의 손끝이 지혁의 손에 닿을 때마다 유진은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피했다. 줄자조차도 두 손가락의 가장자리로 잡고 치수를 재고 있었다.지혁은 비웃는 듯 유진의 행동을 바라보았다.“어젯밤에는 그렇게 대담하게 나를 안고 키스하고 뽀뽀했는데, 지금은 날 만지기도 싫어하네. 왜 날 만지는 게 누나한테는 너무 어려운 일이야?”유진의 얼굴은 갑자기 다시 붉어졌다.“난…… 난 그때 술에 취했어…….”“그러니까 술에 취하지 않으면 날 만지기도 싫어?”지혁은 유진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유진은 지혁의 비웃는 듯한 눈빛에 숨이 막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지혁은 가볍게 눈을 감았다.“누나, 난 언젠가 누나가 날 주동적으로 만지게 할 거야. 지금은 누나를 강제로 내 곁에 남게 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언젠가 누나가 내 곁에 남고 싶어서 나한테 부탁할 거야.”차가운 목소리는 잡담을 말하는 것처럼 담담했다. 하지만 유진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갑자기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주동적으로 지혁을 만지고 자발적으로 지혁의 곁에 남아 있으려 한다.그게 말이 될까?유진과 지혁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하물며…… 유진에게 강지혁 세 글자를 대표하는 상처가…… 너무너무 많다.…….유진은 오후에 환경위생과로 왔다.서미옥은 유진의 초췌한
빨리 만들기 위해 임유진은 절반을 짠 장갑과 털실을 직장에 가져가 점심 휴식 시간에도 짰다.서미옥은 유진이 장갑을 짜는 것을 보자 궁금해졌다.“네가 착용할 거야? 좀 커 보이는데.”“선물할 거야?”미옥이 물었다.“네.”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설마 남자친구 생긴 거야?”미옥이 또 물었다.“아니에요.”유진이 얼른 부인했다.“없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만드는 거야? 점심 휴식 시간까지 만들 필요가 있어?”미옥은 유진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유진은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설마 지혁에게 선물할 거라고 말할 것인가? 빨리 주고 일을 끝내기 위해 점심 휴식 시간까지 이용한다고?만약 정말 그렇게 말한다면 아마 미옥은 유진의 머리가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정말 아쉬워. 동현 씨가 실연한 거 같아.”미옥은 조금 아쉬웠다.“사실 동현 씨는 형편도 괜찮고 사람도 좋아. 집까지 마련했잖아. 그런 남자에게 시집가면 한평생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건데.”확실히 만약 정말 곽동현에게 시집간다면 한평생 안정될 수 있다.다만 그 당시 교통사고가 났을 때부터 유진은 한평생 안정될 수 없다.유진은 동현이 진정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여자를 찾기 바란다.“소문을 들었는데 동현 씨 사직할 거래. 비록 환경위생과에서 일하는 게 조금 부끄럽지만 그래도 동현 씨는 공무원이잖아. 공무원이 되는 게 얼마나 힘든데.”유진은 흠칫 놀랐다.“곽동현 씨가 사직한대요?”“나도 들은 거야.”미옥이 중얼중얼 말했다.“다른 사람은 원해도 못 가지는 직장을 자진해서 사직한다니, 그럴 리가요.”유진은 생각이 많아졌다.동현이 사직하는 게 자기 때문일까? 설마 그날 밤 유진의 말 때문에? 동현이 가난해서 싫다고 해서 그런 걸까?유진은 단지 동현이 더 이상 자기에게 시간을 낭비하는 게 싫어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만약 동현이 진짜 사직한다면…….유진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갔다.동현을 찾았을 때 동현은 인수인계하고 있었
“하지만 경력을 쌓아도 유진 씨의 마음에는 들지 않을 거잖아요.”곽동현이 말했다.순간 임유진은 할 말이 없었다.그때 동현은 씩 웃으며 말했다.“사실 그 전부터 직장을 바꿀 생각이었어요. 환경위생과에서 일하면 한눈에 인생을 볼 수 있잖아요. 30살이 되기 전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도전? 만약 이전의 유진에게 도전으로 가득 찬 인생과 한눈에 미래를 볼 수 있는 안정된 생활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묻는다면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다만 그렇게 많은 일을 겪은 뒤 유진은 안정이 사실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유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말했다.“정말 그날 제가 했던 말을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단지 저는 동현 씨가 저에게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으면 해요. 동현 씨에게 설레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그러니 우리는 같이 할 수 없어요.”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진지하게 말했다.“만약 제가 진짜 동현 씨를 사랑한다면 당신이 아주 초라하더라도 같이 할 것이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부자라 할지라도 같이 할 수 없을 거예요.”동현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래요? 그럼 제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네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돈에 끌려다니겠어요?”“그럼 여전히 사직할 거예요?”유진은 자신 때문에 상대가 안정된 직장을 잃는 것이 싫다.“밖에 나가서 부딪쳐 보는 게 내 소원이에요.”동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성공하든 실패하든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죠?”유진은 동현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는 더 이상 말려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그럼…… 성공을 기원할게요.”“고마워요!”동현이 말했다.유진이 떠나려 할 때 동현이 말했다.“유진 씨는 좋은 여자예요. 내가 복이 없어 날 좋아하게 만들지 못했어요.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어요. 사직하는 건 유진 씨와 상관없어요. 앞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삶을 주고 싶어 사직하는 거예요.”한편 동현과 얘기를 끝낸 유진은 돌멩이에 가슴이 막힌 것처럼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었다.이틀 후
그 남자, 임유진이 사랑하는 사람일까?결국 곽동현은 이 질문을 하지 못했다.지금의 동현은 그럴 자격이 없다. 아마 앞으로 정말 성공할 수 있다면 다시 한번 유진의 앞에 설 자격이 있을 것이다…….동현은 운전을 하고 떠났고 유진은 한 걸음 한 걸음 월세방으로 걸어갔다. 다만 문을 열기도 전에 방안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왔다.유진이 외출하기 전에 분명히 불을 끄고 나갔는데, 설마…….유진이 흠칫 놀라 재빨리 문을 열자 조명아래 의자에 앉아있는 강지혁이 눈에 들어왔다.“너…….”유진이 집으로 들어갔다.“이렇게 늦은 밤에 왜 여기에 온 거야?”“내가 누나한테 물어봐야 하잖아? 오늘 야간근무도 아니고 당직도 설 필요가 없는데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어?”지혁이 고개를 살짝 들고 유진을 훑어보며 말했다.“회사에 사직한 동료가 있어서 같이 나가서 밥을 먹었어.”유진이 말했다.“어느 동료?”지혁이 물었다.그러자 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곽동현.”어차피 유진이 말하지 않아도 지혁은 알아낼 수 있다.지혁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설마 오늘도 누나를 데려다준 건 아니겠지?”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유진의 표정을 보니 맞는 것 같다.“누나는 아직도 그를 신경 안 쓴다고 할 거야? 신경 안 쓰면 몇 번이나 집에 데려다주는 걸 승낙해?”지혁은 일어서서 한 걸음 한 걸음 유진에게 다가갔다.유진이 지혁의 눈을 마주쳤다.“난 단지 그를 평범한 동료라고 생각해. 그리고 오늘 이후로 동료도 아니야. 네가 믿든 안 믿든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지혁의 발걸음은 유진의 앞에 멈추었고, 검은 눈동자로 유진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심문하는 것 같았다.지혁이 빤히 바라보자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있다. 지혁의 눈빛은 마치 압박하는 것처럼 손바닥마저 식은땀이 스며들었다.유진은 자신이 동현을 신경 쓰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유진이 동현을 신경 쓴다면 오히려 동현에게 더 불리하다.동현을 무시할수록 더 좋다.갑자
“예전에 나도 여기 살았잖아? 매일 밤, 같은 방에서 같이 자지 않았어?”강지혁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그 말을 듣자니 너무 다정했던 것 같았다!임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하지만 지금은…….”“지금 왜?”지혁이 되물었다.“여기는 여분의 침구가 없고 네가 썼던 것들은 모두 치웠어. 씻지도 않았고 말리지도 않아서 꺼내도 냄새가 날 거야.”“그거는 아주 간단해.”지혁은 말하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어딘가로 몇 마디 분부했다.그리고 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유진이 문을 열자 고이준과 유진이 병원에서 본 적이 있는 지혁을 따라다니던 경호원 몇 명이 이불 세트를 가져왔다.그들은 들어오면서 유진에게 한마디 했다.“임유진 씨, 실례합니다.”들어오는 사람마다 이렇게 말했다.유진은 황당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괜찮아요.”물건을 유진의 방에 세팅한 뒤 그 사람들은 또 줄지어 나갔다.잠시 사이에 방안에는 또 유진과 지혁 두 사람만 남았다.유진은 침대 밑에 잘 펴진 이불을 바라보았다. 또 전에 그랬던 것처럼 되었다. 그때도 지혁은 유진의 침대 밑에 이불을 폈다.“정말 여기서 자려고?”유진은 망설이며 말했다.“그럼 가짜일 리가 있어?”지혁이 우스꽝스럽게 반문했다.지금 이렇게 하는 것도 게임일까? 그렇지 않으면 지혁은 분명히 쉴 수 있는 편안한 곳이 있는데 왜 하필 유진의 좁은 월세방에서 자는 것일까?가난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그런 걸까?그리고 유진은……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유진은 시선을 거두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했다.갑자기 지혁이 유진에게 백허그했다.“단지 오늘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오늘, 그녀의 생일이야.”유진은 흠칫 놀랐다.“그녀가 누구인데?”그러나 지혁은 대답하지 않고 유진의 어깨에 머리를 깊이 묻고 부탁하는 듯 중얼중얼 말했다.“오늘 밤만 여기에서 지내게 해줘. 예전처럼 그렇게 자자. 어때, 누나?”
예전에 잘 살 때는 살이 찌면 옷 핏이 보기 싫을까 봐 두려워 하루 종일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외쳤다.하지만 지금은 다이어트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 임유진은 아주 말랐지만 옷 입은 모습을 생각할 겨를이 없고 옷의 가격, 옷의 실용성, 그리고 오래 입을 수 있는지만 고려한다.가끔 생각해 보면 정말 우습다.무언가를 얻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막상 이루고 보면 자신이 필사적으로 가지려고 했던 게 전혀 쓸모없게 되었다.유진은 자신을 비웃었다. 강지혁은 왜 말끝마다 유진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일까? 마치 유진을 아주 신경 쓰고 그들이 함께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지혁이 유진에게 관심이 있는 걸까?가끔씩 지혁의 표현을 보면 유진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지만 유진은 오히려 다른 생각이 든다. 그것도 연기일까?유진은 더 이상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유진은 미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고 당장 지금의 상황만 보면 된다.황급히 세수를 마치고 화장실을 나오자 지혁은 이불을 편 바닥에 앉아 예전처럼 굿나잇 인사를 하고 잠을 자려고 했다.유진은 어색한 표정으로 다가가서 말했다.“굿나잇.”유진은 말하고 얼른 침대에 올라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유진은 빨리 잠이 들어 빨리 이 밤을 보낼 생각만 했다.그러나 유진이 눈을 감기도 전에 지혁은 몸을 기울여 유진에게 다가갔다.“누나, 여태껏 내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았어. 누나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 싶어.”유진은 흠칫 놀랐다. 지금 몸을 등지고 눈을 감는다면 너무 티가 난다.하지만 그를 마주하면…….“왜, 아까 예전처럼 지내기로 약속했잖아?”지혁이 말했다.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예전에는 지혁만 연기했는데 지금은 두 사람이 같이 연기해야 하는 걸까?“혁아, 굿나잇.”유진은 마침내 그 이름을 말했다.분명 그가 강지혁이라는 걸 안 것이 한 달의 시간밖에 안 되었지만 유진은 아주 오래된 것 같았고 마치 전생과 현생인 것 같았다.지혁은 가볍게 웃은 뒤 머리를 살짝
다만 임유진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강지혁은 혼잣말을 계속했다.“나는 한 사람을 미워한 적이 있어. 아주 증오했어. 만약 어느 날, 그녀를 찾으면 어떻게 복수할 거라고 수천 번 생각했어. 하지만 그녀의 생일이 되니 마음이 너무 불편해. 누나한테 와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거 같아.”유진은 눈을 감고 잠든 것처럼 말하지 않았다.사실 지혁은 유진이 잠들기를 바라고 유진에게 이런 말들을 안 들려주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을까? 유진은 마음속으로 추측했다. 그렇게 되면 더 잠든 척해야 한다.“아마 난 조금이라도 그녀를 빨리 만나고 싶은 거 같아. 그래야 내가 빨리 복수할 수 있잖아? 그녀가 어디에 숨었든 언젠가는 그녀를 찾아내 가족에게 배신당하고 괴롭히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느끼게 하고 싶어.”지혁의 목소리는 계속 그윽하게 울려 퍼졌다. 다만 지혁의 말은 아주 흉악했다.유진의 몸은 저도 모르게 떨렸다. 가족…… 설마 지혁이 미워하고 복수하려는 사람이 지혁의 어머니일까?유진은 지혁의 어머니가 지혁과 지혁의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만약 지혁이 그때 한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지혁의 어머니는…….강지혁은 S시의 황제와도 같은 사람이다. 지혁의 보복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감옥에 있던 그 3년을 생각했다.“누나는 절대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줄래?”지혁의 목소리가 거친 바람처럼 들렸다.유진은 온몸의 피가 갑자기 굳는 것 같았다.사실…… 지혁은 유진이 줄곧 자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까?…….하룻밤을 이렇게 보냈다. 유진이 이튿날 새벽 4시가 넘어 일어나 출근하려 할 때 지혁은 이미 집에 없었다.유진은 좀 이상했다. 도대체 지혁은 언제 갔을까?그러나 유진도 한숨을 돌렸다. 적어도 어색하게 마주할 필요는 없었다.아직 완성하지 않은 그 장갑을 보니 유진은 빨리 장갑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장갑이 완성되면 좀 더 빨리 지혁과의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한편 지혁은 차의 뒷좌석에 앉아 의자에 기대어
기사는 즉시 방향을 바꾸어 병원으로 향했다.강지혁이 병원에 도착할 때도 강문철의 응급처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지혁은 응급실 밖에서 서 있었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이런 시기가 되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뿐이다.한때 할아버지는 지혁이 보기에 강하고 모질고 냉혹했다. 할아버지의 유일한 가족 간의 정은 아마 일찍 하늘나라로 간 아들에게만 준 것 같았다.문철의 손자 지혁을 포함한 다른 사람은 문철에게 모두 바둑돌일 뿐이다!문철은 항상 지혁을 손자가 아니라 강씨 가문의 상속자로만 여겼기에 그들 사이에는 사실 아무런 정도 없다.2시간이 지나서야 응급실 문이 열렸다. 의사가 걸어 나오더니 지혁에게 말했다.“목숨은 구했지만 어르신의 연세가 많은 데다 몇 차례 수술까지 한 적 있어 이제는 시간을 얼마나 끌 수 있냐에 달렸어요. 잘하면 몇 년, 못하면 몇 개월일 거예요.”지혁은 생로병사는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자연히 알고 있다.문철은 수술 후 관찰을 위해 ICU로 옮겨졌다.이틀 후, 할아버지는 ICU를 나왔고 지혁은 또다시 할아버지와 만날 수 있었다.“내가 응급처치를 받을 때 네가 응급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며?”문철이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목소리가 낮았고 수술로 인해 힘이 없는 것 같았다.“네.”지혁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이 늙은이 때문에 병실 밖까지 지키고 용썼네.”문철이 말했다.지혁은 담담하게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할아버지, 저를 만나겠다고 연락준 게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잖아요?”문철은 간병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여 마신 뒤 병실에 있는 사람을 모두 내보내고 지혁에게 말했다.“내가 임유진이라는 여자를 잘 알아봤는데, 그녀는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 S시의 수많은 가문에서 어울리는 영애를 고를 수 있잖아.”“저한테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는 할아버지가 판단할 것이 아니라 제가 판단해요.”지혁이 곧바로 대답했다.두 사람이 마주 보자 공기마저 싸늘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