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상태가 양호한 편이기는 하지만 유산방지 주사는 맞아야 합니다. 하루에 한 번, 일주일을 맞게 될 거예요. 더 맞을지 말지는 일주일 뒤에 다시 판단하게 되고요. 미리 말씀드리면 주사는 복부에 맞게 됩니다. 그래서 팔이나 엉덩이에 맞는 것보다 통증이 조금 있을 거예요. 마음의 준비를 해주세요.”“네, 그럴게요.”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다 참을 수 있다.하지만 강지혁은 아니었다.그는 주삿바늘이 임유진의 복부를 향해 천천히 다가올 때 잔뜩 긴장한 채로 간호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이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겁니까?”“네... 그렇죠?”간호사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정말 배에 맞아도 괜찮은 겁니까? 확실해요? 이거보다 더 짧은 건 없나요?”“...”간호사는 그 말에 당황한 듯 안절부절못했다.그러자 임유진이 강지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혁아, 난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그 말에 강지혁은 그제야 간호사의 손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고 간호사가 손에 든 주삿바늘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이에 간호사는 괜히 긴장돼 강지혁의 눈치를 보며 주사 놓는 것을 망설였다.“혁아, 너 잠깐 나가 있을래? 네가 이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면 이분이 긴장하시잖아.”보다 못한 임유진이 말했다.“여기 있을 거야. 대신 시선은 다른 곳을 볼게.”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시선을 바로 임유진의 얼굴 쪽으로 돌렸다.간호사는 감시의 시선이 사라지자 그제야 안심하고 주삿바늘을 임유진의 복부로 밀어 넣었다.주삿바늘이 들어온 순간 임유진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리며 이를 꽉 깨물었다.의사 말대로 확실히 다른 곳보다 많이 아팠다. 하지만 이 정도 고통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3년이나 감옥에서 버텼는데 이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주사를 다 맞은 후 강지혁이 임유진의 손을 꼭 잡고 물었다.“많이 아파?”“괜찮아. 그냥 다른 주사에 비해 조금 더 아팠을 뿐이야.”임유진이 웃으
박현재는 임산부와 그 임산부의 남편이 듣는 수업에 왜 강지혁이 버젓이 앉아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몇 번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당신 왜 그래? 눈에 뭐 들어갔어?”박현재의 와이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박현재는 쿵쿵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하며 와이프에게 웃어 보였다.그러고는 와이프의 손을 잡고 강지혁의 뒤쪽으로 가서 앉았다.근거리에서 보니 확실히 강지혁이 맞았다. 게다가 상황을 보아하니 옆에 앉은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와 함께 수업을 들으러 온 듯했다.‘임산부 같은데 강 대표랑은 어떤 사이지? 친척 동생인가? 설마 부인일 리는 없고.’만약 강지혁이 결혼을 했으면 이미 기사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그 시각 임유진은 선생님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로 노트와 펜을 집어 들었다.강지혁은 진지한 얼굴의 그녀를 보고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놓친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을 집으로 불러 따로 수업해 달라고 할게.”“아니, 나는 지금 이 분위기가 좋아.”임유진이 주위에 앉은 임산부들을 둘러보며 조금 들뜬 얼굴로 말했다.“그래?”강지혁은 임유진이 말한 분위기가 어떤 분위기인지 잘 몰랐지만 그녀가 좋다고 하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시간이 되고 수업을 맡게 된 의사가 활짝 웃으며 회의실로 들어왔다.의사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걸어들어오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강지혁의 얼굴에 잠시 흠칫했다.해당 의사는 임유진의 주치의는 아니었지만 당시 강지혁이 의사들을 불러모았을 때 그 자리에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강지혁이 임유진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다 알고 있는데도 아내를 따라 임산부 수업을 들으러 온 강지혁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강지혁이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약혼녀가 죽었을 때도 냉랭한 표정을 지었던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하지만 지금 보니 강지혁은 그저 그간 임자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는 여자들이
“아버님들 중에 또 지원하실 분 없으세요?”간호사는 예비 아빠들을 쭉 훑어보더니 이내 강지혁의 앞에 멈춰 섰다.“잘생긴 아버님, 시범 좀 보여주지 않으시겠어요?”예비 아빠들 중 강지혁의 얼굴은 단연 눈에 띄었다. 그래서 간호사는 분위기도 끌어올릴 겸 바로 강지혁을 지목했다.하지만 간호사의 말에 의사는 안절부절못했다. 아무리 강지혁이 지금 이 자리에 참석했어도 앞으로 나와 사람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것까지는 무리라고 생각했으니까.그러나 예상외로 강지혁은 간호사의 말에 바로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임유진에게 물었다.“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너 하고 싶어?”임유진이 되물었다.“네가 원하면 나갈게.”그 말에 임유진은 강지혁을 빤히 바라보았다.솔직히 말하면 강지혁이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어떤지 무척이나 궁금했다.그래서 임유진은 잠깐 고민하다가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응, 원해.”“좋아.”강지혁은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정장 재킷을 벗은 후 앞으로 유유히 걸어 나갔다.잘생긴 얼굴에 모델 같은 기럭지가 앞으로 걸어 나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강지혁에게로 쏠렸다.예비 엄마들은 물론이고 예비 아빠들도 입을 떡 벌리고 강지혁을 바라보았다.한편 의사는 강지혁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해졌다.그도 그럴 것이 아내가 원한다는 한마디에 싫은 내색도 없이 바로 앞으로 걸어 나왔으니까.강지혁의 뒤에 있던 박현재도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그 언젠가 의사의 가르침 아래 아이 모형을 안고 있는 강지혁을 보게 될 줄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이건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지인들에게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을 사실 그대로 얘기해도 믿어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자기야, 저 남자 너무 잘생겼다. 배우일까? 아니면 모델?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인데 대체 누구지?”박현재의 와이프가 박현재의 팔을 콩콩 두드리며 작게 소리를 질렀다.이에 박현재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당연히 한 번도 본 적 없겠지. 쉽게 볼
임유진은 아이들이 태어난 뒤의 미래가 점점 더 기대되기 시작했다.강지혁은 정말 좋은 아빠가 될 것이 틀림없다....그 뒤로 임유진은 매일같이 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병원을 갈 필요는 없었다.강지혁이 임유진이 힘들게 움직이는 건 싫다고 간호사를 직접 저택으로 불러 주사를 놓게 했으니까.유산방지 주사는 맞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 고통도 점점 더 강해졌고 주사를 맞은 곳은 누군가에게 얻어맞기라도 한 듯 퍼렇게 변해갔다.저녁.강지혁은 이미 몇 번이나 주사를 맞은 임유진의 복부를 보며 미간을 꿈틀거렸다.“의사한테 다른 방법은 없나 한번 물어볼까?”“더 좋은 방법이 있었으면 진작 얘기해주셨을 거야. 그리고 이거 겉보기에 이래서 그렇지 그렇게 아픈 것도 아니야. 나보다 더 심한 임산부들도 많은데 뭐. 특히 시험관 시술을 한 사람들은 임신할 때까지 이걸 거의 매일 맞아야 한 대. 그러니 나 정도는 양호한 거지 뭐.”강지혁은 그녀의 말에도 여전히 표정을 풀지 못했다.고작 일주일 맞은 것으로도 이러한데 만약 앞으로 더 맞게 되면 그때는 고통이 배로 증가하게 될 거고 멍도 더 세게 들 테니까.“혁아, 나 정말 괜찮아.”임유진은 웃어 보이며 강지혁을 위로했다.그러자 강지혁이 고개를 숙이더니 그녀가 주사를 맞았던 곳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그러고는 임유진이 이런 고생을 감내한 만큼 아이들도 무사히 태어나주기를 바랐다.“할 수만 있다면 너 대신 내가 아이를 낳고 싶어.”“난 네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돼. 그래서 한 번도 혼자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 안 해.”임유진은 이렇게 말을 해줬지만 강지혁은 지금 그녀를 살뜰히 보살펴 주는 것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할 수만 있으면 그녀에게는 조금의 고통도 주고 싶지 않았다.그때 임유진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임유진은 발신자가 탁유미인 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네, 언니.”“늦은 시간에 미안해요. 혹시 자고 있었던 건 아니죠?”탁유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니에요.”임유진은
강지혁은 그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윤이가 이경빈한테 가면 부족함 없이 자랄 거래. 윤이가 어른들 싸움에 상처받는 게 싫대. 그런데 이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잖아. 그런데 갑자기 이 문제로 양육권을 포기한다고?”임유진은 탁유미가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자신을 해한 여자에게 제 아들을 부탁할 여자가 아니었으니까.“예상외의 선택이기는 하지만 틀린 결정은 아니야. 아이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확실히 탁유미 씨보다는 이경빈 쪽이 훨씬 더 나을 테니까.”강지혁이 객관적인 사실을 늘어놓았다.“게다가 승소할 확률도 낮았잖아.”“재판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그리고 지금 그 재판에서 이기려고 네가 공수진의 주치의도 찾고 있잖아. 그 주치의를 찾으면 일이 쉽게 해결될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너무 아깝지.”임유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안 되겠어. 지금 당장 언니를 만나러 가야겠어.”“안 돼. 오늘은 너무 늦었어.”강지혁이 다시 임유진을 자리에 앉혔다.“그리고 네가 지금 찾아간다고 해도 일하느라 제대로 얘기도 못 할 거야. 그러니까 내일 다시 찾아가든지 해.”그 말에 임유진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그럼 내일 다시 언니한테 물어볼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그 시각, 탁유미는 포장마차 골목이 아닌 택시를 타고 이경빈이 묵고 있는 호텔로 왔다.으리으리한 호텔을 바라보며 그녀는 쓰게 웃었다. 그러고는 두 먹을 꽉 말아쥐었다.이미 생각을 다 끝낸 일이다.이제 와서 망설일 이유는 없다.이경빈에게 보내주는 게 윤이를 위한 선택이다.탁유미는 머릿속으로 이게 맞다며 되뇐 후 천천히 발걸음을 들어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그러고는 리셉션 데스크로 가 직원에게 말했다.“이경빈 씨한테 연락 좀 넣어주시겠어요? 탁유미가 찾아왔다고 말해주시면 돼요.”그 말에 직원이 내선 전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두어 마디 나눈 후 다시 전화를 끊고 탁유미를 바
탁유미가 이경빈을 따라 소파 쪽으로 다다랐을 때 이경빈이 드디어 발걸음을 멈추더니 뒤돌아 입을 열었다.“이번에는 또 뭣 때문에 찾아왔는데? 드디어 양육권을 포기할 마음이라도 들었어?”“그래.”탁유미의 입에서 긍정의 두 글자가 튀어나왔다.다만 이 말을 내뱉을 때 탁유미는 자신의 영혼마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이경빈은 그녀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양육권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기쁘기는커녕 찝찝하고 기분이 나빠졌다.“진심으로 하는 말이야?”이경빈이 눈을 가늘게 뜬 채 탁유미를 빤히 바라보았다.그러자 탁유미가 쓰게 웃었다.“네가 원하던 거 아니야? 대신 조건이 두 가지 있어.”이경빈은 그녀의 처연한 미소가 너무나도 거슬렸다.“말해.”이경빈이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첫 번째는 네가 직접 윤이를 키웠으면 좋겠어. 공수진에게 아이 교육을 다 맡는 게 아니라 네가 직접. 공수진이 아이를 양육하는데 완전히 발을 뺄 수 없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만약 공수진과 윤이 사이에 트러블이 생기면 그때는 윤이 말에 더 많이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어. 너도 알다시피 공수진과 나는 사이가 안 좋았잖아. 그러니 공수진도 제 아이처럼 대하지는 못할 거야.”“수진이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여자가 아니야. 수진이가 윤이를 학대할까 봐 걱정인가 본데 쓸데없는 걱정이야. 윤이를 자기 아들처럼 대하겠다고 했어.”이경빈이 싸늘한 얼굴로 얘기했다.“공수진의 말을 전부 다 믿어?”“내 아내가 될 사람이야. 내가 안 믿으면 또 누가 믿어?”이경빈의 단호한 말에 탁유미는 순간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만약... 윤이랑 공수진 사이에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는 윤이를 네 어머니한테 맡겨줘. 어머님이 윤이를 돌보게 해줘. 그래 줄 수 있어?”탁유미의 말에 이경빈이 미간을 찌푸렸다.“너 대체 지금 뭐 하자는 거야?”“엄마로서 내 아들이 좋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라는 것뿐이야. 너는 공수진을 믿지만 나는 아니거든.”탁유미는 이경빈의 눈을 똑바로
“네가 이 두 가지 조건을 다 수락하면 너한테 양육권 넘겨줄게.”탁유미가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이경빈과의 거리를 벌렸다.“윤이를 짐처럼 여기면서 3개월은 왜 필요한 건데? 차라리 지금 당장 나한테 보내.”“싫어!”탁유미가 단호하게 외치며 이경빈을 바라보았다.“3개월이야. 3개월만 윤이랑 같이 살다가 너한테 보내준다잖아. 그것도 안 돼?”“3개월?”이경빈이 코웃음을 쳤다.“어차피 까맣게 잊어버릴 건데 3개월이 왜 필요해?”그 말에 탁유미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만약 내 조건에 응하지 않으면 나도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이경빈은 탁유미의 태도에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갑자기 찾아와서 나한테 양육권을 양보하겠다고 하는 의도가 뭐야? 너 설마 남자 생겼어? 그래서 그 남자랑 새 인생 살려고 생각을 바꿨어?”탁유미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침묵이 이경빈에게는 묵인하는 것으로 보였다.순간 이경빈은 가슴에 무수히 많은 가시가 돋친 것처럼 심장이 욱신거렸다.탁유미가 시선을 내린 채 입술을 깨물고 있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점점 더 아파 왔다.“어떤 놈한테 반한 건지 얘기나 해봐. 혹시 알아? 한때 너랑 연인이었던 정으로 내가 축하선물이라도 보낼지.”이경빈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내 개인적인 일에 상관하지 말고 너는 대답만 해주면 돼. 내 조건에 응할 건지 말 건지.”탁유미는 다시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이경빈과의 거리를 벌렸다.하지만 거리를 벌린 즉시 이경빈이 또다시 다가와 거리를 좁혔다.“개인적인 일? 그 남자한테 아주 단단히 빠졌나 봐? 그 남자는 너한테 아이가 있다는 거 모르지? 어떻게 시간 날 때 내가 대신 말해줄까? 너랑 나랑 어떻게 붙어먹었는지?”짝!날카로운 마찰음이 방안에 울려 퍼지고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이경빈의 얼굴은 옆으로 돌아갔고 탁유미의 손바닥은 화끈거리며 빨개졌다.그렇다.탁유미가 이경빈의 뺨을 내리친 것이다.탁유미는 이경빈을 똑바로 바
“아, 아무것도... 아니야...”탁유미가 힘겹게 대답했다.고작 1분 남짓의 통증일 뿐인데도 그녀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린 채 에너지를 다 빼앗긴 것처럼 고통스러워했다.이경빈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마치 심장에 돌이라도 있는 것처럼 답답해졌다.“병원까지 데려다줄게.”“괜찮아.”탁유미는 말을 마친 후 손을 들어 이경빈의 팔을 덥석 잡았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이경빈은 순간 팔이 찌릿 저렸다.“고질병일 뿐이야. 조금만... 조금만 이렇게 있으면 괜찮아져. 그보다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탁유미가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그리고 이경빈은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고질병이라니?대체 언제부터 생긴 거지?당시 그녀와 연애할 때는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렇다는 건 역시 감옥에 있을 때 생긴 병인가?“대답해...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탁유미가 재촉했다.기어코 그의 입에서 꼭 답변을 듣고야 말겠다는 표정이었다.이경빈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그래, 받아들일게.”그 말에 탁유미의 입가에 그제야 미소가 번졌다. 듣고 싶은 말을 들어 안심된다는 듯한 미소에 창백한 얼굴색이 더해지니 아름답기도 하고 또 유약해 보이고 했다.이경빈은 순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탁유미는 천천히 손에 힘을 풀더니 몸을 바로 세웠다.“그럼 3개월 뒤에 약속대로 윤이를 보낼게. 약속을 어길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그녀는 천천히 이경빈의 팔을 잡았던 손을 놓고는 휘청휘청 문으로 향했다.“탁유미!”이경빈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이에 탁유미가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았다.“뭐 할 말 남았어?”“너 정말... 괜찮은 거 맞아?”이경빈은 어쩐지 지금 너무나도 불안했다. 불안한 탓에 심장도 빨리 뛰었다.“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지. 감옥에서 애까지 낳아 길렀는데... 무슨 일이 있겠어. 괜찮아. 안 괜찮아도 괜찮아지게 할 거야...”탁유미는 이경빈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다시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