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번거로워지잖니. 네 남편한테 경찰서 쪽에 연락 한번 돌리면 끝날 일을 뭘 변호사까지 불러. 안 그래?”방미령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나는 날 해하려고 했던 사람을 도와주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자꾸 네 동생 네 동생 하는데 우리 엄마가 살아생전에 낳은 자식은 나 하나뿐이에요. 나한테 동생 같은 건 없어요.”임유진의 말에 방미령이 못 참고 삿대질했다.“너 그게 무슨 말본새야? 너 혹시 지금 우리한테 복수하는 거니? 네가 그때 감옥살이했을 때 우리가 너 도와주지 않은 거 복수하는 거냐고. 그때는 우리 모두 다 힘들었어. 너만 힘들었던 게 아니라고. 그리고 네가 감옥살이했다고 네 동생까지 감옥살이해야겠니? 그래야 네 속이 시원하겠어?”그 말에 임유진이 차갑게 웃었다.“감옥살이라뇨. 아직 감옥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억울했을 때는 가만히 있더니 임유라는 감옥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초조해 나시나 봐요? 어떻게 뻔뻔하게 나한테 복수니 뭐니 하는 말을 할 수가 있죠? 그리고 임유라가 정말 잘못했으면 그에 마땅한 벌을 받아야죠.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예요.”“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그때 너 감옥 들어갔을 때 네가 건드린 건 진씨 가문과 강씨 가문...”방미령은 강지혁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은 걸 보더니 뒷말을 도로 삼켜버렸다.강지혁의 눈빛은 꼭 이대로 그녀를 찢어 죽일 것 같았다.그는 방미령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차갑지 그지없는 목소리로 물었다.“어디 계속해보지 그래?”방미령은 강지혁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눌려 몸을 덜덜 떨었다.“임유라를 법의 테두리 안에 맡긴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만약 앞으로 또다시 유진이 찾아오면 그때는 그렇게 아끼는 딸과 함께 감옥으로 보내주지.”강지혁이 무섭게 경고하고 뒤로 돌았다.그리고 다시 임유진 곁으로 가려는데 임정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솔직히... 솔직히 강 대표님도 그때는 유진이한테 죄가 있다고 생각했잖아요. 유진이가 형을 살게 됐을 때도 쟤가 억울해하는 거 믿어주
임유진의 목소리에 강지혁은 그제야 이성이 돌아온 듯 손힘을 살짝 풀었다.분노에 잠식됐던 두 눈도 서서히 다시 원래 모습대로 돌아왔다.“혁아, 이거 놔. 난 이 사람이 뭐라고 하든 신경 안 써. 그러니까 너도 신경 쓰지 마. 이런 인간 때문에 네 손을 더럽힐 필요 없어!”임유진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정말... 신경 안 써?”강지혁의 말에 임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신경 안 써.”그 말에 강지혁은 그제야 완전히 힘을 풀었다.임정호는 죽다 살아난 후 완전히 겁에 질려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방미령도 몸을 덜덜 떤 채로 임정호의 뒤로 가 숨었다.임유진은 그런 그들을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임유라 일로 내가 당신들에게 도움을 줄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때 일로 복수할 마음도 없고요. 당신들은 그럴 가치조차 없는 사람들이니까. 다시는 가족이라고 찾아오지 마세요. 나한테 가족은 혁이뿐이에요.”그녀는 말을 마친 후 강지혁의 손을 잡고 저택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임정호와 방미령은 임유진이 떠나는 걸 보고도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강지혁은 임유진의 발걸음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집으로 향했다.머릿속에는 온통 그녀가 했던 ‘나한테 가족은 혁이뿐이에요’라는 말뿐이었다.이제껏 수많은 사랑의 속삭임 중에서 이 말이 가장 심장을 울리는 말이었다.임유진은 거실까지 들어와서야 발걸음을 멈추고 강지혁을 바라보았다.“그런 사람들 때문에 화낼 필요 없어.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그러지 마.”강지혁이 임유진을 빤히 바라보았다.그녀는 모를 것이다. 아까 임정호의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왔을 때 그가 순간 얼마나 불안하고 또 초조했는지.게다가 아까 병원에서 만약 자신이 탁유미였다면 용서 안 했을 거라는 말 때문에 더더욱 심장이 쿵쿵 뛰었다.사실 임정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강지혁과 그들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맞으니까.임유진이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게 됐을 때 그 역시 그들처럼 아무
그 생각만 하면 강지혁은 핏기가 가시고 손부터 떨렸다.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이고 눈앞에 임유진이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심장이 쿵쿵 뛰며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응,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진애령 씨 일을 안타깝게 됐지만 지금은 그 사고의 진실이 모두 밝혀졌으니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잠들겠지.”강지혁은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진실이 무엇인지 임유진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그리고 강지혁은 그런 그녀에게 진실을 얘기해줄 용기가 없었다.정의감 넘치는 그녀가 이제껏 진실이 뭔지 알면서 그녀를 속여온 남자를 쉽게 용서해줄 리가 없었다.“너 왜 그래? 왜 그런 눈을 하고 있어?”임유진이 이상해하며 물었다.“꼭 잘못을 저지른 애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아.”그 말에 강지혁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만약 내가 정말 잘못을 저질렀다면...?”그러자 임유진이 웃었다.“솔직하게 털어놓고 상대가 용서해주기를 바라야지.”“솔직하게 얘기하면 뭐든 용서받을 수 있어?”“그건 솔직해져 봐야 알겠지?”임유진이 장난 섞인 말투로 답했다.솔직히 그녀는 강지혁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한들 강지혁이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혁아, 혹시 무슨 고민 있어? 그런 거면 나한테 얘기해 봐. 우리 부부잖아. 서로의 허물도 감싸줄 수 있는 게 바로 부부야.”“나는 왜 너와 조금 더 빨리 만나지 못한 걸까?”강지혁이 입을 열었다.“너를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너를 더 빨리 사랑했을 거고 그러면 네가 그런 고통을 겪지 않게 해줬을 거야.”“지금도 늦지 않았어.”임유진은 강지혁의 볼을 매만지던 손을 떼어내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강지혁은 머릿결도 좋았다.“늦지 않았다고?”“응. 하나도 늦지 않았어.”강지혁도 모든 게 다 늦지 않은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다 그녀를 지키는 데 쓰고 싶었고 그녀가 더 이상 아무런 상처도
대체 강지혁은 뭘 그렇게 불안해하고 있는 걸까?속마음까지 다 털어놓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는데 뭐가 그리도 불안한 걸까?키스가 끝난 후 강지혁의 두 눈이 임유진을 빤히 바라보았다.“유진아.”그의 목소리에 임유진은 심장이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강지혁은 마치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을 끌어안듯 그녀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그리고 임유진은 그런 그의 품에 안긴 채 조금 거센 그의 심장박동 소리를 느꼈다.어쩐지 그를 향한 마음을 인정하고 입 밖으로 내뱉은 뒤로 강지혁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점점 더 커져 가는 것 같았다.임유진은 두 손을 그의 허리에 두른 채 그가 속삭이는 말을 들었다.“예전 일은 다 잊겠다고 약속해. 그리고 나랑 다시 시작해.”“나는 우리가 진작 다시 시작한 줄로 알고 있었는데?”임유진이 웃으며 말했다.“약속해.”강지혁이 고집스럽게 말했다.“그래, 알았어. 예전 일은 다 잊을게. 힘들었던 일, 슬펐던 일, 화났던 일까지 전부 다 잊어버릴게.”임유진의 대답에 강지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결혼식부터 올릴 거야. 네가 내 와이프인 거 전 세계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어.”그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오로지 임유진을 사랑하고 지켜주며 그녀의 고통을 지워주는 데에 쓸 생각이다.그리고 그녀와 백발의 주름 가득한 노인이 될 때까지 줄곧 함께할 생각이다....윤이의 새로운 인공와우가 완성됐다.이틀 사이에 완성된 것을 보니 이경빈이 신경을 많이 쓴 게 틀림없어 보였다.윤이는 다시 들을 수 있게 돼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으며 이경빈에게 예의를 갖춰 말했다.“아빠, 고마워요!”그러고는 옆에 있는 탁유미에게 와락 안겼다.“엄마, 미안해요. 다음에는 절대 이런 일 없게 할게요.”기기 값이 비싸 탁유미가 그간 힘들게 돈을 모으고 있었다는 걸 윤이도 알고 있다. 그러다 운이 좋게 임유진의 도움으로 인공와우를 착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말이다.그리고 지금 착용하고 있는 이 기기는 그간 줄곧 없는 줄로만 알
탁유미는 부드럽게 웃으며 윤이의 얼굴을 매만졌다.이경빈은 두 눈에 서로밖에 없는 듯한 탁유미와 윤이를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다.한 번도 탁유미가 엄마가 되면 어떤 모습일까 같은 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의도치 않게 지금 그 모습을 봐버렸다.순간 이경빈의 머릿속으로 전에 탁유미가 웃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경빈이 너는 되게 엄격한 아빠가 될 것 같아.”“그럼 너는?”“나는 아마... 다정한 엄마겠지?”“다정한 엄마는 아이에게 휘둘리기 십상이야.”“나는 엄격하지 않아도 아이를 잘 키울 자신 있어. 나는 분명히 좋은 엄마가 될 거야.”윤이의 교육이 제대로 잘 된 건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윤이의 눈에 탁유미는 좋은 엄마인 것은 분명했다.그때 한창 얘기하던 탁유미의 미간이 찡그려지더니 윤이를 향해 다급하게 말했다.“엄마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아빠랑 얘기하고 있어.”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복도 끝쪽에 있는 화장실로 걸어갔다.가는 길, 그녀는 손을 들어 오른쪽 갈비뼈 아래를 꾹 짓눌렀다.이경빈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꿈틀거렸다.화장실로 들어온 탁유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오른손으로 갈비뼈 쪽을 더 꽉 짓눌렀다. 그러고는 고통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사실 이 통증은 몇 개월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몇 분 뒤면 금방 괜찮아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통증이 더더욱 심해졌다.5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통증이 멎고 탁유미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5분뿐이었지만 그녀는 마치 모든 에너지를 다 쏟은 것처럼 얼굴이 창백해지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탁유미는 요즘 일 때문에 힘들어서 그렇다며 세수를 한 뒤 화장실에서 나왔다.“너 어디 아파?”화장실에서 나오자 이경빈이 물었다.“아니.”탁유미는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이제 그만 가볼게. 새 기기 고마워.”이경빈은 그 말에 입술을 한번 깨물고 말했다.“데려다줄게.”“괜찮아. 나는...”“데려다준다고.”
이경빈은 탁유미와 윤이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다. 심지어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졌는데도 차를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대체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걸까?왜 탁유미와 윤이가 함께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따뜻하다고 느끼는 걸까?왜 두 사람을 위해 양육권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걸까?윤이에게 탁유미가 좋은 엄마인 건 맞지만 제 아들이 탁씨 가문 사람 손에 키워지는 건 절대로 두고 볼 수 없는 노릇인데도 말이다.이경빈은 탁유미의 아버지를 증오했다.그녀의 아버지 때문에 이씨 가문이 하마터면 가루가 되어 사라질 뻔했으니까.얼마나 지났을까, 이경빈의 시야에 탁유미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차에 식자재가 든 큰 통을 하나하나 실었다.가뜩이나 살집도 별로 없는 몸인데 지금은 바람이 불면 그대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탁유미는 식자재를 다 옮기고는 운전석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때 그녀가 자리에 우뚝 멈춰서더니 또다시 오른쪽 갈비뼈 아래를 꾹 짓누르며 몸을 웅크렸다.이경빈은 그 모습을 보더니 서둘러 차에서 내려 탁유미 쪽으로 다가갔다.가까이에서 본 그녀의 얼굴을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고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입술에서는 피까지 났다.“너 왜 그래? 어디 아파?”이경빈의 질문에는 그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초조함이 묻어나왔다.“나... 난 괜찮아...”탁유미가 힘겹게 한 자 한 자 말을 내뱉었다.그녀는 하루에 통증이 두 번이나 일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지금은 아까 화장실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아픈듯했다.이경빈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미간을 꿈틀거렸다.“병원에 데려다줄게.”그는 말을 마친 후 탁유미를 부축하려는 듯 그녀의 팔을 잡았다.“괜찮아.”그러자 탁유미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단호하게 거절했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신경 써줄 필요 없어. 그리고... 어차피 돈 아까워서 병원도 못 가.”이경빈은 그 말에 하마터면 그깟 돈 자신이 대신 대주
“정말 괜찮아?”강지혁이 임유진의 손가락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응, 괜찮아.”임유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너도 알잖아. 날씨가 추워지거나 습해지면 원래 이런다는 거. 내일 소 선생님한테 가보려고.”사실 소영훈의 말에 따랐으면 원래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으로 찾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그간 여러 일이 겹치고 임신까지 하는 바람에 치료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늦게 찾아왔다고 뭐라 하실 것 같은데...’“내일 같이 가.”강지혁이 말했다.“괜찮아. 나 혼자 가도 돼. 넌 일해야지.”“같이 가.”단호한 그의 말에 임유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밥을 먹으려 다시 수저를 들려는데 강지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먹여줄게.”“응? 먹여준다고?”임유진이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손 아프잖아. 내가 먹여줄게.”조금 아프긴 해도 젓가락을 쥐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런데 대답도 듣지 않고 멋대로 젓가락을 빼앗아버리는 강지혁의 행동에 임유진은 결국 피식 웃으며 그의 말을 따랐다.그렇게 강지혁은 임유진의 옆으로 와 손수 새우껍질도 까주고 찌개도 후후 불어주며 임유진에게 대령했다.또한 그녀를 먹이는 동안 강지혁은 한 번도 입에 음식을 넣지 않았다.하지만 그럼에도 한 번도 인상을 찡그리거나 귀찮아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표정이 너무나도 다정했다.그의 다정함은 오직 임유진 한해서였다.옆에 있던 도우미는 천하의 강지혁이 누군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것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그도 그럴 것이 남의 시중을 받았으면 받았지 절대 시중을 들 사람이 아니었으니까.강지혁의 행동은 말 그대로 시중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은 꼭 임유진이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았다.강지혁이 임유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다음날.강지혁은 약속대로 임유진과 함께 소영훈을 찾아갔다.소영훈은 임유진과 강지혁이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더 이상 강현수에게는 그 어떠한
“치료를 중단하겠다고요?”소영훈이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내가 전에 치료를 중도에 그만두면 어떻게 되는지 다 얘기해준 것 같은데? 지금은 몇 주라서 괜찮지만 1년이 지나면 그때는...”“저 임신했어요.”임유진이 소영훈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여기서 더 치료하게 되면 아이한테 영향이 갈까 봐서요. 그래서 일단은 중단하려고요.”그 말에 소영훈의 얼굴이 굳었다.“확실히 임신한 상태로는 더 이상 지금껏 받아왔던 치료법대로 치료받을 수 없어요. 하지만 이대로 치료를 중단하면 상황이 더 악화하고 그때는 주먹을 쥐는 것조차 힘들 수 있어요.”“네? 그게 무슨.”강지혁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어쩌면 양손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요.”소영훈이 말을 덧붙이자 강지혁의 얼굴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강지혁의 다급한 말에 소영훈이 혀를 차며 답했다.“유진 씨가 여기로 와서 치료를 받기 시작할 때 각종 위험한 상황에 대해서 이미 다 알려줬어요.”“선생님 말씀은 1년 뒤에도 치료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임유진이 물었다.“치료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다시 치료할 때 통증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플 거예요. 그리고 만약 치료하기 전에 두 손을 아예 못 쓰게 되면 그때는 치료고 뭐고 없고요.”강지혁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손을 아예 못 쓰게 되는 것도 1년 뒤 더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는 것도 그 어느 것도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당시 그는 임유진이 치료받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었다.아무런 마취도 없이 살을 그대로 파고드는 치료법에 임유진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던가.그런 고통은 절대 익숙해질 수 없다.“걱정하지 마. 여기서 안 되면 그때는 전 세계를 전부 뒤져서라도 네 손을 고쳐줄 의사를 데려올 테니까.”강지혁이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해외는 모르겠지만 일단 국내에서 유진 씨 손을 고쳐줄 수 있는 의사는 나뿐이에요.”소영훈의 말에 강지혁의 얼굴이 또다시 어두워졌다.“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