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유미는 부드럽게 웃으며 윤이의 얼굴을 매만졌다.이경빈은 두 눈에 서로밖에 없는 듯한 탁유미와 윤이를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다.한 번도 탁유미가 엄마가 되면 어떤 모습일까 같은 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의도치 않게 지금 그 모습을 봐버렸다.순간 이경빈의 머릿속으로 전에 탁유미가 웃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경빈이 너는 되게 엄격한 아빠가 될 것 같아.”“그럼 너는?”“나는 아마... 다정한 엄마겠지?”“다정한 엄마는 아이에게 휘둘리기 십상이야.”“나는 엄격하지 않아도 아이를 잘 키울 자신 있어. 나는 분명히 좋은 엄마가 될 거야.”윤이의 교육이 제대로 잘 된 건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윤이의 눈에 탁유미는 좋은 엄마인 것은 분명했다.그때 한창 얘기하던 탁유미의 미간이 찡그려지더니 윤이를 향해 다급하게 말했다.“엄마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아빠랑 얘기하고 있어.”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복도 끝쪽에 있는 화장실로 걸어갔다.가는 길, 그녀는 손을 들어 오른쪽 갈비뼈 아래를 꾹 짓눌렀다.이경빈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꿈틀거렸다.화장실로 들어온 탁유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오른손으로 갈비뼈 쪽을 더 꽉 짓눌렀다. 그러고는 고통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사실 이 통증은 몇 개월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몇 분 뒤면 금방 괜찮아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통증이 더더욱 심해졌다.5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통증이 멎고 탁유미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5분뿐이었지만 그녀는 마치 모든 에너지를 다 쏟은 것처럼 얼굴이 창백해지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탁유미는 요즘 일 때문에 힘들어서 그렇다며 세수를 한 뒤 화장실에서 나왔다.“너 어디 아파?”화장실에서 나오자 이경빈이 물었다.“아니.”탁유미는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이제 그만 가볼게. 새 기기 고마워.”이경빈은 그 말에 입술을 한번 깨물고 말했다.“데려다줄게.”“괜찮아. 나는...”“데려다준다고.”
이경빈은 탁유미와 윤이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다. 심지어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졌는데도 차를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대체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걸까?왜 탁유미와 윤이가 함께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따뜻하다고 느끼는 걸까?왜 두 사람을 위해 양육권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걸까?윤이에게 탁유미가 좋은 엄마인 건 맞지만 제 아들이 탁씨 가문 사람 손에 키워지는 건 절대로 두고 볼 수 없는 노릇인데도 말이다.이경빈은 탁유미의 아버지를 증오했다.그녀의 아버지 때문에 이씨 가문이 하마터면 가루가 되어 사라질 뻔했으니까.얼마나 지났을까, 이경빈의 시야에 탁유미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차에 식자재가 든 큰 통을 하나하나 실었다.가뜩이나 살집도 별로 없는 몸인데 지금은 바람이 불면 그대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탁유미는 식자재를 다 옮기고는 운전석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때 그녀가 자리에 우뚝 멈춰서더니 또다시 오른쪽 갈비뼈 아래를 꾹 짓누르며 몸을 웅크렸다.이경빈은 그 모습을 보더니 서둘러 차에서 내려 탁유미 쪽으로 다가갔다.가까이에서 본 그녀의 얼굴을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고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입술에서는 피까지 났다.“너 왜 그래? 어디 아파?”이경빈의 질문에는 그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초조함이 묻어나왔다.“나... 난 괜찮아...”탁유미가 힘겹게 한 자 한 자 말을 내뱉었다.그녀는 하루에 통증이 두 번이나 일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지금은 아까 화장실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아픈듯했다.이경빈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미간을 꿈틀거렸다.“병원에 데려다줄게.”그는 말을 마친 후 탁유미를 부축하려는 듯 그녀의 팔을 잡았다.“괜찮아.”그러자 탁유미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단호하게 거절했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신경 써줄 필요 없어. 그리고... 어차피 돈 아까워서 병원도 못 가.”이경빈은 그 말에 하마터면 그깟 돈 자신이 대신 대주
“정말 괜찮아?”강지혁이 임유진의 손가락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응, 괜찮아.”임유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너도 알잖아. 날씨가 추워지거나 습해지면 원래 이런다는 거. 내일 소 선생님한테 가보려고.”사실 소영훈의 말에 따랐으면 원래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으로 찾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그간 여러 일이 겹치고 임신까지 하는 바람에 치료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늦게 찾아왔다고 뭐라 하실 것 같은데...’“내일 같이 가.”강지혁이 말했다.“괜찮아. 나 혼자 가도 돼. 넌 일해야지.”“같이 가.”단호한 그의 말에 임유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밥을 먹으려 다시 수저를 들려는데 강지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먹여줄게.”“응? 먹여준다고?”임유진이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손 아프잖아. 내가 먹여줄게.”조금 아프긴 해도 젓가락을 쥐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런데 대답도 듣지 않고 멋대로 젓가락을 빼앗아버리는 강지혁의 행동에 임유진은 결국 피식 웃으며 그의 말을 따랐다.그렇게 강지혁은 임유진의 옆으로 와 손수 새우껍질도 까주고 찌개도 후후 불어주며 임유진에게 대령했다.또한 그녀를 먹이는 동안 강지혁은 한 번도 입에 음식을 넣지 않았다.하지만 그럼에도 한 번도 인상을 찡그리거나 귀찮아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표정이 너무나도 다정했다.그의 다정함은 오직 임유진 한해서였다.옆에 있던 도우미는 천하의 강지혁이 누군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것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그도 그럴 것이 남의 시중을 받았으면 받았지 절대 시중을 들 사람이 아니었으니까.강지혁의 행동은 말 그대로 시중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은 꼭 임유진이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았다.강지혁이 임유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다음날.강지혁은 약속대로 임유진과 함께 소영훈을 찾아갔다.소영훈은 임유진과 강지혁이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더 이상 강현수에게는 그 어떠한
“치료를 중단하겠다고요?”소영훈이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내가 전에 치료를 중도에 그만두면 어떻게 되는지 다 얘기해준 것 같은데? 지금은 몇 주라서 괜찮지만 1년이 지나면 그때는...”“저 임신했어요.”임유진이 소영훈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여기서 더 치료하게 되면 아이한테 영향이 갈까 봐서요. 그래서 일단은 중단하려고요.”그 말에 소영훈의 얼굴이 굳었다.“확실히 임신한 상태로는 더 이상 지금껏 받아왔던 치료법대로 치료받을 수 없어요. 하지만 이대로 치료를 중단하면 상황이 더 악화하고 그때는 주먹을 쥐는 것조차 힘들 수 있어요.”“네? 그게 무슨.”강지혁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어쩌면 양손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요.”소영훈이 말을 덧붙이자 강지혁의 얼굴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강지혁의 다급한 말에 소영훈이 혀를 차며 답했다.“유진 씨가 여기로 와서 치료를 받기 시작할 때 각종 위험한 상황에 대해서 이미 다 알려줬어요.”“선생님 말씀은 1년 뒤에도 치료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임유진이 물었다.“치료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다시 치료할 때 통증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플 거예요. 그리고 만약 치료하기 전에 두 손을 아예 못 쓰게 되면 그때는 치료고 뭐고 없고요.”강지혁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손을 아예 못 쓰게 되는 것도 1년 뒤 더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는 것도 그 어느 것도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당시 그는 임유진이 치료받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었다.아무런 마취도 없이 살을 그대로 파고드는 치료법에 임유진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던가.그런 고통은 절대 익숙해질 수 없다.“걱정하지 마. 여기서 안 되면 그때는 전 세계를 전부 뒤져서라도 네 손을 고쳐줄 의사를 데려올 테니까.”강지혁이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해외는 모르겠지만 일단 국내에서 유진 씨 손을 고쳐줄 수 있는 의사는 나뿐이에요.”소영훈의 말에 강지혁의 얼굴이 또다시 어두워졌다.“알겠어요
차에 오른 후 강지혁은 임유진이 받은 처방전을 가져가며 말했다.“고 비서한테 이 처방전에 문제가 없는지 알아봐달라고 할게.”“설마 선생님이 잘못된 처방전을 적으셨을까.”“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내 말대로 해.”강지혁은 지금 임유진의 일이라면 지금 모든 것이 예민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임유진의 손을 쥐며 그녀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녀의 손은 그녀와 똑같이 너무나도 가녀렸다. 그래서 관절 부분이 삐뚤빼뚤한 것이 더 선명했다.강지혁은 그녀의 두 손을 볼 때마다 후회와 부채감, 심지어는 무력감까지 들었다.제일 꼭대기에 군림해 있는데도, 원하는 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데도 그녀의 손 앞에서는 그 모든 권력과 힘이 다 쓸모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그간 이름 있는 의사들을 다 만나봤지만 하나같이 치료를 할 수 없는 손이라고 하며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통증을 완화해주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강지혁은 1년 뒤 다시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 만약 정말 그녀가 손을 쓸 수 없게 되어버리면 그때는 정말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그는 임유진과 달리 아이보다는 그녀가 더 소중했다.“아니면 치료를 계속 이어가는 게 어때? 만약...”“안 돼!”임유진이 단호하게 거절했다.“선생님도 그 치료는 아이한테 영향이 갈 거라고 했잖아. 어떻게 가진 아인데, 그것도 셋이나! 나는 절대로 아이들을 포기할 생각 없어.”“다시는 글을 쓰지 못해도, 물컵을 드는 것조차 힘들어도, 그래도 괜찮다는 소리야?”강지혁이 초조함을 담아 언성을 조금 높였다.“응. 괜찮아.”임유진은 강지혁의 손을 꼭 말아 제 손으로 감싸며 말을 이어갔다.“혁아, 나 정말 괜찮아. 그때도 손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도 다행히 괜찮았잖아. 그러니 이 이상 바라는 건 욕심이지.”강지혁은 그 말에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녀의 말에 심장이 욱신거리며 더욱더 심한 자책감이 들었다.“아이가... 그렇게나 소중해?”한참이 지난 후 강지혁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강지혁의 어머니가 강지혁을 낳은 건 어디까지나 부잣집 도련님의 아이를 낳아 강씨 가문의 며느리로 들어가기 위해서일 뿐이었다.그런데 그 욕심은 결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강선우와 강지혁은 그때부터 그녀에게 있어 쓸모없는 패가 되었다.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평생 손을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데도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그러겠다고 하고 있다.그녀에게 있어 아이는 물질적인 것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임유진의 두 눈은 언제나 티 없이 맑았고 감옥에게 그렇게 모진 고통을 겪었는데도 여전히 반짝반짝 빛이 났다.아마 그런 그녀라서 강지혁이 이토록 지독하고 깊게 빠져들었을 것이다.강지혁이 별안간 임유진을 꽉 끌어안았다.“네 손 분명히 괜찮을 거야. 내가 절대 망가지게 두지 않아.”그는 임유진의 손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생각이다.임유진은 그 말에 미소를 짓더니 두 손을 올려 강지혁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사실 그녀는 자기 두 손에 대해 크게 미련이 없었다.“혁아, 너무 그러지 않아도 돼. 만약 정말 못쓰게 되면 그때는 네가 내 손이 되어주면 되잖아. 안 그래?”“만약 정말 그렇게 되면 그때는 네가 부탁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야.”강지혁이 임유진의 목에 얼굴을 묻은 채 중얼거렸다.임유진이 원하는 거라면 그게 뭐든 바로 그녀의 눈앞에 대령할 준비는 오래전부터 되어있었다....고이준을 통해 알아본 결과 소영훈의 처방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그래서 강지혁은 한의원으로 가 약재를 받아오고 푹 끓인 후 임유진이 족욕 할 수 있을 정도의 온도로 식혔다.물이 식는 동안 그는 옆에 놓아둔 약재를 임유진의 양손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뜨거워?”“괜찮아. 딱 좋아.”처음에는 뜨거웠지만 금방 손이 뜨끈뜨끈해져 기분이 좋았다.잠시 후 강지혁은 임유진의 바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발을 잡더니 적당한 온도로 식혀진 물 안에 조심스럽게 담갔다.온도가 설정한 대로 유지되는 족욕 통이라 물이 금방 식을 걱정은 없었다.
임유진은 심장이 거세게 뛰는 걸 느끼며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그러자 강지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왜 그래?”“아... 아무것도 아니야...”아까 족욕 할 때보다 몸의 열기가 더 빠르게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강지혁은 고개를 푹 숙인 그녀를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아무 말 없이 침실로 들어와 그녀를 침대에 올려놓았다.“음... 나 먼저 잘게.”임유진은 침대에 올려진 후 심장이 세게 뛰는 것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쓰며 이불을 잡았다.하지만 이불을 끌어 올리기 전에 강지혁이 갑자기 허리를 숙여 몸을 기대오더니 한 손을 그녀의 몸 옆에 올려놓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은 채 자신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게 했다.“왜 갑자기 내 얼굴 안 봐? 나 방금 뭐 말실수 한 거 있어? 아니면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그래서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어?”임유진은 그 말에 두 눈을 깜빡였다.‘무슨...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아... 혹시 뭐 오해한 건가?’“그런 거 아니야.”“그런데 왜 갑자기 내 얼굴 안 봐?”강지혁이 집요하게 물었다.뭔가 단단히 오해한 게 틀림없어 보였다.“나는 그게... 그러니까... 그냥...”임유진이 빨개진 얼굴로 우물쭈물했다.“그냥?”그러자 그 모습이 더 이상해 보였던 건지 강지혁의 얼굴이 더욱더 가까이 다가왔다.“그냥 뭐?”임유진은 바로 코앞에 있는 잘생긴 얼굴을 보며 참을성 테스트라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강지혁의 얼굴은 멀리서 봐도 잘생겼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잘생긴 것에 더해 예쁘기까지 했다. 속눈썹이 길게 뻗은 것도 예뻤고 사람을 홀리는 것 같은 까만 눈동자도 너무 예뻤다.게다가 코는 어찌나 오뚝한지 손이 벨 것 같았고 입술은 그대로 입을 맞춰버리고 싶을 정도로 섹시했다.심지어 조금 긴장한 듯 울렁대는 목젖도 심각하게 관능적이었다.“유진아, 말해줘. 왜 갑자기 내 얼굴을 보지 않아?”중저음의 목소리가 임유진의 귓가를 간지럽혔다.“널... 널 보면 심장이 남아나지 않는데
“너 진짜!”임유진이 터질 것 같은 빨간 얼굴을 한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볼에 찰싹 붙은 것이 오늘따라 더더욱 예뻐 보였다.강지혁은 단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느꼈다.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 게,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게 전부 다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에 기쁜 것을 넘어 희열마저 느꼈다.강지혁은 그녀가 더욱더 그에게 끌리기를 원하고 더욱더 그로 인해 심장이 떨리기를 원하며 그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몸까지 강력하게 원하기를 바라고 있다.그래야만 그는 그녀가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것 같았다.임유진은 알까?강지혁이 그녀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강지혁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사실 그는 임유진과 다시 시작하기로 한 뒤에도 여전히 마음 한편에 불안과 초조함을 품고 있었다.임유진이 그 언젠가 다시 전처럼 그를 사랑할 수 있는지, 노력 때문이 아닌 정말 그를 사랑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날이 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유진아, 사랑해.”강지혁은 마음속 제일 깊은 곳에 묻어뒀던 자기 마음을 그녀에게 꺼냈다....다음날.임유진은 잠에서 깬 후 어젯밤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금세 얼굴을 붉혔다.어제저녁, 강지혁의 ‘사랑해’라는 한마디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입술을 맞췄고 그대로 사랑까지 나눴다.임유진은 어제 지나칠 정도로 그녀를 유혹하는 강지혁 때문에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조선 시대 때 여자한테 미쳐서 정세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왕을 뭐라 할 처지가 아니었네.’임유진은 새삼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누군가에게 미쳐버리면 그때부터는 이성적인 사고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니까.하지만 강지혁과는 사이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더 좋았다. 전과 같은 분위기도 조금씩 감도는 것 같고 함께 있으면 마음이 포근해지며 두 사람 사이에 있던 보이지 않는 벽도 서서히 허물어가는 것 같았으니까.이제야 정말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