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수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했던 선택이 결과적으로 그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말았다.“미안해... 라고?”강현수가 허탈한 듯 웃었다.“내가 너를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나한테 해줄 말이 고작 미안해 한마디뿐이야? 하하... 하하하...”강현수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흘러내렸다.임유진은 그의 눈물에 순간 몸을 움찔 떨었다. 그때 강지혁이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두 눈을 막아버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보지 마. 그리고 할 말 다 했으니까 이만 차로 돌아가자.”임유진은 강지혁에 의해 눈이 가려진 채로 차에 올라탔다.그리고 강지혁까지 차에 탄 후 차량에 시동이 걸리고 천천히 이곳을 벗어났다.옆에 있던 이한은 강지혁이 떠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오늘 그는 충격의 연속이었다.강지혁과 임유진이 혼인 신고했다는 일도 충격이었고 임유진이 바로 강현수가 줄곧 찾아 헤매던 사람이라는 것도 충격이었다.믿기 힘든 일이지만 모두 사실이었다.이한은 눈물을 흘리는 강현수의 모습을 보며 적잖이 당황했다. 강현수는 어릴 때도 이렇게 울지 않았으니까.그런데 임유진이 강현수를 울렸다. 단 몇 마디 말로 말이다.“현수야, 이제 가자.”“가자고?”강현수는 코웃음을 쳤다.창백해진 얼굴에 눈물까지 흐르자 무척이나 처량해 보였다.“그래. 가야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런데 한아, 나 지금 꼭 마음에 구멍이 난 것 같아. 나는 뭣 때문에 그간 그렇게 열심히 찾아다닌 걸까? 내가 먼저 만났는데. 내가 강지혁보다 더 먼저 만났는데, 왜 내가 ‘미안해’라는 말을 들어야 해?”이한은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그저 침묵을 지켰다.사실 이 세상에는 누가 먼저라는 게 없다.사람의 인연이라는 건 먼저 만났다고 다 이어지는 것이 아니니까....강지혁은 임유진과 함께 저택으로 돌아온 후 방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임유진을 향해 말했다.“나랑 잠깐 별채로 가자. 아버지한테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우리 혼인 신고한 거.”“응, 알겠
임유진은 줄곧 강선우가 사랑 때문에 어린 강지혁을 버리고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됐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최소한 살아있을 때만큼은 정말 강지혁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그게 아니라면 강지혁이 몇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았을 테니까.“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게요. 그리고 혁이랑 꼭 잘살아 볼게요.”임유진이 진지한 얼굴로 얘기했다.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강지혁과 결혼하기로 한 이상 후회 없이 잘살아 보고 싶었다. 강지혁과 자신을 잇는 연결고리가 아이가 전부라고 해도, 그래도 아이에게만큼은 칙칙하고 온기 없는 가정이 아닌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주고 싶었다.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리자 마침 강지혁과 두 눈이 마주쳤다.강지혁은 아까 그녀가 두어 걸음 나섰을 때부터 쭉 그녀만 쳐다보고 있었다.“아버님께 한 말 모두 진심이야.”임유진이 적막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맹세할 수 있어?”강지혁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그의 얼굴은 어쩐지 평소보다 한층 더 진지해 보였다.“맹세?”“응. 아버지 앞에서 앞으로 다시는 내 옆을 떠나지 않겠다고, 생이 끝날 때까지 계속 내 옆에 있겠다고 맹세할 수 있어?”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무거운 돌처럼 그녀의 마음에 던져졌다.임유진은 무거운 맹세에 잠시 침묵했다.그러자 강지혁이 갑자기 자조하듯 웃었다.“이만 가자.”어차피 임유진이 맹세를 하든 안 하든 이번 생에는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으니까.다만 그렇게 생각하고 본채로 돌아가려는 찰나 등 뒤에서 임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맹세할게.”이에 강지혁의 발걸음이 뚝 하고 멈추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임유진은 가녀린 몸으로 바로 서서는 강선우를 향해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나 임유진은 강지혁이 먼저 끝을 얘기하지 않는 한 절대 먼저 강지혁의 옆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이번 생이 끝날 때까지 계속 강지혁의 옆에 있겠습니다. 아
강지혁은 입술을 꾹 다문 채 한 걸음 한 걸음 임유진에게로 다가갔다.칠흑같이 검은 눈동자는 임유진만 바라보았다.그리고 임유진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같이 그를 바라보았다.그러다 몇 초 후 강지혁이 서서히 팔을 들어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믿어주는 거야.”임유진이 정말 방금 맹세한 대로 해준다면 그 역시 그녀를 믿어줄 생각이다.아니, 그녀를 믿어주는 게 아니라 그녀를 믿고 싶은 것이다.그녀의 말대로 되기를 말이다.임유진은 강지혁의 품에 기대 익숙한 체취를 들이마셨다.앞으로의 결혼생활이 평탄할 거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강지혁이 자신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뭐가 됐든 그의 입에서 믿겠다는 얘기가 나왔다는 건 좋은 징조임이 틀림없었다....이한은 강현수를 다시 별장에 데려다주었다.하지만 강현수는 별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별장 밖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이에 이한은 어쩔 수 없이 강현수의 옆으로 가 같이 서 있어주었다.강현수가 현재 자신이 서 있는 땅을 빤히 바라보았다.이곳은 그날 임유진이 서 있었던 자리다.강현수는 임유진의 얼굴이 떠오르자 순간 말 못 할 고통이 밀려드는 것이 느껴졌다.그날 차에서 내리지 않은 뒤로 이렇게 큰 변화가 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임유진은 어릴 때 그를 구해줬던 여자애가 맞다.틀림없다.임유진을 막 알게 됐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끌렸는데 그는 느낌보다는 눈에 보이는 증거들을 믿었다.그래서 허무하게 그녀를 놓쳐버렸다.“현수야, 대체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건데?”참다못한 이한이 물었다.“먼저 가. 나는 이곳에서 밤을 지새울 생각이니까.”“뭐? 너 미쳤어? 너 아직 환자야.”이한이 깜짝 놀랐다.“네가 여기 밤새 서 있는다고 해도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이만 들어가자, 응?”강현수는 그의 설득에도 아무런 대답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이한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오늘 일로 강현수가 큰 충격을 받은
“대출...?”“네. 대표님 차량을 막아선 것도 아마 돈을 빌리는 게 목적인 것 같았습니다. 액수는 아마 4억이었을 겁니다.”경비원의 말에 강현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4억이라니?왜 갑자기 4억을 빌리려고 했던 거지?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순간 강현수의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그날 그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절망으로 가득했던 임유진의 얼굴이 말이다.어쩌면 당시의 임유진에게는 그가 돈을 빌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을 지도 모른다.그런데 그는 그녀의 희망을 무참히 짓밟아버렸다.임유진의 성격상 큰일이 아니면 절대 아쉬운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닌 걸 강현수는 잘 알고 있다.그러니, 분명히 그가 모르는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임유진이 밤새 이곳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아침에는 다칠 것을 각오하고 차량 앞으로 뛰어는 건 곽동현 때문이 아니라 돈을 빌리기 위해서였다.그런데 강현수는 배여진의 말에 순간 욱해 임유진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곳까지 찾아왔는지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고 매정하게 떠나버렸다.강현수는 지금 할수만 있다면 과거의 자신을 향해 뺨을 세게 내려치고 싶었다.그날 왜 그렇게 멍청하게 행동했는지, 왜 그녀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는지 미친 듯이 후회됐다.강현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하지만 손에 힘이 다 풀린 건지 휴대폰이 힘없이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이에 강현수는 허리를 숙이고 휴대폰을 주었다.그러나 휴대폰을 잡는 것조차 힘이 들어 몇 번을 시도한 뒤에야 휴대폰을 다시 손에 쥘 수 있었다.비서에게 전화를 걸자 2초도 채 안 돼 비서가 전화를 받았다.“네, 대표님.”“임유진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봐. 돈은 빌릴 만한 일이 뭐가 있었는지.”“네, 알겠습니다.”통화가 끝난 후 강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휴대폰만 손에 꽉 쥐고 있었다.상당히 긴장하고 있는 듯했다.그렇게 반 시간 정도 흐른 후 드디어 휴대폰이 울렸다.강현수가 전화를 받자 비서가 바로 본론을 얘기했다.“알아본 결과
“한아...”강현수는 눈앞에 있는 이한을 바라보며 마치 어린애처럼 울었다.“나 어떡해...? 놓쳐버렸어. 완전히 놓쳐버렸어... 고작 며칠밖에 안 됐는데, 그 며칠 사이에 모든 게 다 바뀌어버렸어...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때 유진이 말을 믿지 않았을까... 왜 얘기도 들어보지 않았을까...? 그날 유진이한테는 내가 유일한 희망이었어. 그런데 내가 내 손으로 유진이의 희망을 없애버린 거야...”강현수는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유진이 이름을 목 놓아 부르기도 하고 나중에는 아주 말없이 울기도 했다.이한은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 없는 친구의 옆을 그저 묵묵히 지켜주기만 했다....강씨 저택.임유진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샤워를 하고 강지혁이 준비해둔 잠옷을 입었다. 그러고는 욕실에서 나와 곧장 강지혁의 침실로 향했다.그녀의 옷이나 물건들은 이제 어느 정도 강지혁의 침실로 옮겨졌다.임유진은 이 방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 잠을 자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강지혁의 방은 온통 회색 계열이라 조금 차가웠다.하지만 오늘 이 방에는 어딘가 이질적이기도 한, 그렇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전통적인 신혼부부들의 이부자리가 침대 위에 놓여있었다.임유진은 그걸 보고는 이제야 정말 강지혁과 부부가 됐다는 실감이 들었다.강지혁은 지금 방안에 없었다.욕실 쪽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거로 보아 씻는 중인 듯했다.그때 임유진의 휴대폰이 울렸다.저장되지 않은 번호에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받아보자 한지영의 아버지인 한종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 유진이니?”“네, 아버님! 저한테 전화를 하셨다는 건... 혹시 지영이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임유진은 순간 자세를 바로 하며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그도 그럴 것이 전에 의사가 한지영은 아직 완전히 위험한 시기를 벗어난 게 아니라고 했으니까.“아니, 아무 일도 없어. 걱정하지 마. 너한테 전화한 건... 고맙다는 말이 하고 싶어서야. 우리 지영이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한종훈은 진심을 다해 그녀에게 감
“왜 울어?”강지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임유진에게로 걸어왔다.임유진은 코를 한번 훌쩍이더니 그를 바라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방금 지영이 부모님한테서 전화가 왔어. 병원을 무사히 옮겼대. 정말 고마워.”“네가 원했던 거니까 차질없이 처리한 것뿐이야. 그리고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 한지영을 살려주는 게 네가 결혼을 약속한 조건이잖아.”강지혁은 담담하게 말하며 수건으로 물기 가득한 머리를 닦았다.임유진은 그걸 보더니 강지혁에게로 한 걸음 다가가 말했다.“내가... 닦아줄게.”강지혁은 전에 임유진이 닦아주는 게 주는 게 좋다며 머리를 씻고 나온 후 항상 그녀에게 물기를 닦아 달라고 했다.그녀의 말에 강지혁의 몸이 살짝 굳더니 시선을 들어 임유진을 빤히 바라보았다.앞머리가 내려져 있어 그런지 눈이 그윽해 보였다.“나한테 잘 보이고 싶기라도 한 거야?”“그렇게 생각해도 돼.”임유진이 말했다.“너랑 결혼하겠다고 이유가 한지영 때문이기는 하지만 나는 우리 결혼 생활을 망쳐버릴 생각같은 거 없어. 너도 이혼 생각이 없는 거면 나랑 앞으로 평생 봐야 할 텐데 기왕이면 쌀쌀맞은 것보다는 화기애애한 게 좋지 않겠어?”강지혁은 잠깐 침묵하더니 이내 수중에 있는 수건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허리 좀 숙여봐.”강지혁은 키가 커서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그녀가 물기를 닦아줄 수 없었다.강지혁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더니 서서히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두 시선이 한 수평 위에 있게 된 뒤에야 몸을 멈췄다.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갑자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서로의 눈동자에 서로의 모습이 담겨있는 걸 볼 수 있을 정도였다.강지혁은 그녀의 미세한 표정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게다가 그 시선은 그녀의 마을을 꿰뚫어 보는 것 같기도 했다.임유진은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에 얼굴에 열감이 오르는 것을 느끼고 서둘러 수건을 그의 시선까지 가릴 수 있을 정도까지 푹 둘렀다.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움직이며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아주었다.이러고
강씨 가문의 재력이라면 출산한 뒤 아이들을 위해 분명히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면 조산아라고 해도 살 수 있는 확률이 대폭 커지게 된다.“너는 네 몸 생각 안 해?!”강지혁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커졌다.“뭘 해도 리스크가 따른다면 차라리 나는 아이들과 함께 리스크를 짊어지고 싶어. 나는 아이들의 엄마니까. 나 혼자 편하자고 어떻게 이제 막 심장이 뛰기 시작한 아이 한 명을 보낼 수 있겠어.”임유진의 입에서 나온 ‘엄마’라는 두 글자에 강지혁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그의 어머니는 그가 많이 다쳤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떠나버렸다.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인간의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겠다고 하고 있다.임유진은 그의 어머니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만약 아이가 태어나면 임유진은 분명히 좋은 엄마가 될 것이다.그리고 그의 아이들은 그처럼 버림받을 일이 영원히 없을 테지...“혁아, 나는 한 명이라도 잃고 싶지 않아. 네 눈에는 내가 감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너는 몰라. 그때 의사 선생님한테서 내가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는 걸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절망스러웠는지. 가족 한 명 없이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어. 그런데, 그런 나한테 지금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왔잖아. 내 핏줄이 이 세상에 세 명이나 더 있게 돼! 그러니까 나는 한 명도 포기할 생각이 없어. 아이들은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야!”임유진은 마음속 깊숙이 묻어뒀던 생각을 가감 없이 뱉어냈다.그녀의 눈은 결연했고 한점의 흔들림도 찾아볼 수 없었다.“아이들을 위해 목숨도 내걸 수 있다, 이 말이야?”강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응!”임유진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너는...!”강지혁의 목소리가 갑자기 멈췄다.하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에서 막혀 내뱉을 수가 없었다.“그럼 뭐?”임유진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사실 한동안 불을 켜지 않아도 잘 수 있었지만 강지혁과 헤어진 뒤로 다시 불을 켜야만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임유진은 눈을 감고 속으로 양을 세며 빨리 잠이 들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야속하게도 오늘따라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역시 바로 옆에 한 사람이 더 누워있어서 그런 걸까?눈을 감아도 코끝에는 강지혁의 체취가 맴돌고 귓가에는 강지혁의 숨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바로 강지혁과 몸이 닿아버리게 된다.분명 킹사이즈 침대이건만 어째서인지 너무나도 쉽게 그에게 닿아버릴 것만 같았다.그렇게 양을 100마리까지 셌을 때 임유진은 결국 눈을 뜨고야 말았다.그런데 자기 전 옆으로 누운 탓에 눈을 뜬 순간 그대로 강지혁의 얼굴과 마주치고 말았다. 다행히 강지혁은 눈을 뜨고 있지 않아 어색한 분위기는 피할 수 있었다.임유진은 자세를 고쳐 누울 생각도 잊은 채 강지혁의 자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강지혁은 속눈썹이 여자 못지않게 길었다. 그래서 이처럼 자고 있을 때면 항상 눈에 그림자가 지고는 했다.오뚝한 콧날과 섹시한 입술은 정말 다시 봐도 신이 정성껏 빚은 조각상 같았다.순간 임유진은 사람들이 잘생긴 조각상에 왜 그렇게 환장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강지혁은 지금 눈을 뜨고 있는 게 아닌데도 여전히 그녀에게 압박감을 줬다.그런데 그 사람들 꼭대기에 있는 남자가 지금은 그녀의 남편이 되었고 지금 그녀의 바로 옆에 누워있다.1년 전이였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내일 병원으로 가면 또다시 아이를 포기하는 일로 다투게 될까?임유진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생각에 빠졌다가 문득 강지혁의 가슴으로 시선이 갔다.잠옷 앞섬이 다른 옷보다 파인 탓에 강지혁의 심장 가까이에 있는 흉터가 여실히 보였다.어릴 때 입은 상처라 많이 옅어졌다고는 하나 당시 강지혁이 얼마나 두려워했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갔다.이건 강지혁의 어머니가 어린 그에게 남긴 상처다.강지혁은 그때... 많이 아팠겠지?그때 임유진의 상념을 깨는 통증이 손으로부터 전해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