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저는 친구 병실에 가봐야 해서 먼저 가볼게요.”“아, 네.”임유진의 말에 곽동현은 서둘러 자리를 비켜주었다.그는 임유진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전보다 더 마른 듯한 느낌이었다.사실 곽동현은 아까 그녀에게 강지혁과 강현수 중에서 누구를 선택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담도 없었고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누구를 선택하든 임유진은 다 행복할 테니까.곽동현은 두 사람과 어깨도 나란히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쓸쓸하게 웃었다.이런 쓸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 그가 아직 임유진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머리는 그녀를 놔줘야 한다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지만 가슴은 누군가를 좋아했던 마음을 쉽게 놓아주지 못했다.임유진은 강현수의 병실로 들어왔다.이번에는 저번이랑 달리 배여진 말고 강현수의 부모도 있었다.“임유진 씨가 여기는 뭐하러 왔죠?”한은정은 임유진을 보더니 바로 얼굴을 찌푸렸다.“현수 씨 병문안 왔어요.”임유진은 손에 든 과일을 들어 보였다.“과일 좀 사 왔어요. 뭘 좋아하는지 몰라 일단은 종류별로 다 샀고요. 음... 그럼 오늘은 과일만 놓고 갈게요.”임유진은 자신이 강현수의 부모에게 있어 얼마나 불청객일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자기 아들을 하마터면 죽일 뻔한 여자를 그 어떤 부모가 반길 수 있을까.“필요 없으니까 도로 가지고 가요.”한은정은 임유진의 것은 하나도 받지 않겠다며 매정한 태도를 보였다.“임유진 씨가 아니었으면 현수가 이렇게 다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어머니!”강현수가 외쳤다.“유진 씨를 구한 건 제 선택이었어요. 누구도 저한테 강요하지 않았다고요. 정말 저를 생각하시면 유진 씨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주세요.”“너...!”한은정이 고개를 돌려 강현수를 노려보았다.“저한테 있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여자는 단 두 명뿐이에요. 한 명은 어머니고 다른 한 명은 바로 유진 씨에요.”강현수가 한은정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너
그 눈빛은 말하자면 일종의 경고였다.만약 이대로 한마디만 더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 말이다.배여진은 이를 꽉 깨문채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너도 이만 집으로 돌아가. 간병인도 있어서 네가 날 보살펴줄 필요 없어.”강현수가 말했다.하지만 그 말에 쉽게 물러설 배여진이 아니었다.“어차피 나는 할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현수 씨 옆에 있을게요.”배여진은 이번 기회에 강현수에게 여성스러운 모습을 한껏 어필하고 싶었다.“아니, 필요 없으니까 돌아가.”하지만 강현수는 그녀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배여진은 강현수에게 완전히 거절당했다. 하지만 아무리 분해도 그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그... 그럼 나는 먼저 가볼게요.”배여진은 결국 가방을 챙겨 병실을 나갔다.그렇게 병실 안에는 강현수와 임유진, 이렇게 둘만 남았다.“아까 어머니한테 그렇게 얘기할 필요까지는 없었어요. 현수 씨 어머니가 나 보기 싫어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나는 충분히 이해해요.”임유진의 말에 강현수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우리 엄마 마음은 그렇게 잘 이해하면서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왜 이해 못 해줘요?”이에 임유진이 흠칫했다.임유진은 이해를 못 하는 게 아니다. 그저...“나랑 현수 씨는 그런 사이가...”임유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현수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날 거절하려는 말을 꺼낼 거라면 그냥 얘기하지 말아줘요. 내가 죽을 만큼 싫고 미친 듯이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면 그런 말은 앞으로 쉽게 꺼내지 말아줘요.”누구한테도 고개를 숙여본 적 없는 강현수가 임유진의 앞에서는 지금 거의 애원하듯 빌고 있다.임유진은 목구멍에 가시 같은 것이 박힌 것처럼 따끔해 났다.강현수의 몸에 감긴 붕대들과 그 붕대를 뚫고 나온 미세한 핏자국들은 모두 그녀를 구하려다 생긴 것이다.“사과... 사과 깎아줄게요.”임유진은 결국 화제를 돌리며 가지고 온 과일 바구니에서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한 알 꺼냈다.“네, 유진 씨가 깎아줘요.”강현수가 미소를
“혹시 방금 지혁이 얼굴 떠올렸어요?”강현수가 물었다.사실 묻지 않아도 됐지만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였다.임유진은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침묵은 그에게 답을 준 것과 마찬가지였다.“유진 씨가 아직 지혁이를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나는 유진 씨 기다릴 거예요. 유진 씨가 완전히 강지혁을 내려놓고 날 사랑하게 되는 날까지 계속해서 기다릴 거예요.”“나는 강지혁한테 아무런 마음도 없어요.”임유진이 부인했다.“그런 거면 다행이고요.”강현수가 씩 웃었다.“어쩌면 내가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더 짧아지겠네요. 유진 씨는 날 싫어하지 않아요, 내 말이 맞죠?”임유진은 그 질문을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그녀는 강현수를 싫어해 본 적이 없다. 당연한 거다. 강현수는 바로 그 현수니까.그때 강현수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전화기 너머 상대의 말을 가만히 듣더니 서서히 표정이 변했다.“알겠어.”강현수는 전화를 끊고는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차 사고 범인 잡았대요.”“네? 벌써요?”임유진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범인을 잡은 건 백연신 씨예요. 내 비서보다 한발 더 빨리 알아냈다고 하네요. 범인은 지금 체포됐고 지금 경찰들이 조사하고 있어요.”“범인은 누군데요?”“고유정이라고 백씨 가문에서 고른 백연신 씨 정략결혼 상대예요. 아마 한지영 씨를 다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나 봐요. 그런데 마침 그날 임유진 씨가 함께 탄 거고요.”임유진은 고유정이라는 이름을 전에 한지영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그때도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한지영에게 되지도 않는 수작을 부리며 백연신의 옆에서 떨어질 것을 요구했다고 했다.그런데 아무리 백연신 씨가 탐이 났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차 사고를 일으킬 수가 있지?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는 게 그렇게도 쉬운 일인가?임유진은 전례 없는 분노를 느끼며 두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어느 경찰서인지 혹시 알아요?”임유진의 질문에 강현수는 바로 주소를 얘기해주었다.“지금 바로 그쪽으로 가 봐야겠어요. 몸조리
다만 이번 일은 고유정 혼자 벌인 일이고 고씨 집안은 아무것도 몰랐다. 만약 고씨 집안에서 나섰다면 더 은밀하고 더 무서운 수법으로 한지영을 처리했을 것이다.한지영은 경찰을 통해 고유정의 얘기를 듣고는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유진아, 미안해. 다 나 때문이야. 내가 널 끌어들였어.”“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리고 이런 일로 죄책감 가질 필요도 없고. 미안한 거로 따지면 내가 너한테 더 미안하니까.”한지영은 그때 임유진의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학업도 포기하고 미래도 포기했다. 그렇게 삼 년을 한지영은 오직 임유진을 위해서만 뛰어다녔다.임유진은 그 일을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다.“이번 일은 내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탓입니다. 설마 고유정이 멋대로 이런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어요. 지영이도 그렇게 유진 씨까지 끌어들여서 정말 미안합니다.”백연신은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렸다.그는 고씨 가문만 예의주시하느라 고유정은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다.하지만 그럴 만도 했던 게 고유정은 고씨 집안에서 버리는 패였고 그렇기에 고유정은 큰 소란은 일으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그건 결과적으로 안일한 생각이었다.“고유정이 절대로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꼭 강력하게 처벌할 겁니다. 배짱 좋게 이런 일을 저질렀으면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니까요.”백연신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차가웠다. 그리고 눈빛은 당장이라도 사람 하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이에 임유진은 순간 한기가 느껴졌다.그녀는 고유정의 인생은 앞으로 죽을 때까지 힘들 거라고 확신했다.백연신에게 있어 한지영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그런데 그렇게 소중해 마지않는 한지영을 건드렸으니 백연신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게다가 백연신은 원래 매정하고 냉혹한 사람이다. 그게 아니면 백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꿰찰 수도 없었을 테니까.경찰서에서 나온 후 한지영은 임유진을 보며 말했다.“유진아, 우리랑 같이 밥 먹으러 가지 않을래?”이에 임유진이 입을 열고 대답을 하려다
행인들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발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강지혁은 여자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고 그대로 앞에 세워진 승용차 쪽으로 걸어갔다.여자는 강지혁이 가버리자 당황하며 주위를 훑다가 임유진을 발견하고 다급하게 임유진 쪽으로 달려갔다.“임유진 씨, 저 좀 도와주세요. 지난번처럼 강 대표님한테 사정 좀 봐달라고 해주세요. 제발요!”갑작스러운 상황에 임유진은 상황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여자가 바로 앞에서 손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빌고 있었다. 여자의 손가락 끝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흰색 붕대가 감겨 있었다.여자의 이마는 퉁퉁 부어올랐고 피도 찔끔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표정은 절망의 늪에 빠진 사람처럼 간절했고 아무거나 빨리 잡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그날 임유진 씨 과거 이용한 거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요. 제가 바보 같았어요. 일부러 손톱 뽑힌 척 강 대표님의 시선을 잡으려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하지만 그날 저는 이미 거짓말한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해요. 손톱이 뽑히는 고통을 직접 느꼈다고요!”여자는 손가락 통증도 잊은 듯 임유진의 손목을 꽉 잡았다.“임유진 씨,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강 대표님한테 제발 저 좀 살려달라고 얘기 한 번 해주세요. 이렇게 부탁할게요!”여자는 정성스럽게 짠 계획이 이득을 가져오지 못한 건 물론이고 자신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날 이후 이 사장은 곧바로 그녀를 찾아와 행패를 부렸고 친척들은 그녀가 강지혁을 건드렸다는 것을 알고는 바로 매정하게 선을 그어버렸다.임유진은 그제야 눈앞에 있는 여자가 그날 밤 골드 클럽에서 강지혁이 손을 잡으며 걱정해줬던 직원이었다는 것을 알아챘다.당시 웨이터들의 말로는 이 사장이라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이 여자와 트러블이 생겨 손톱을 뽑겠다며 난리를 부렸다고 했다.그런데 지금 이 여자의 말을 들어보니 모든 것이 다 이 여자가 꾸민 쇼였다.이 여자는 강지혁에게 접근하기 위해 이 사장과 짜고
오로라 반지가 완성된 후 강지혁은 봉인하듯 반지를 금고에 넣어 두고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았다.반지는 임유진이라는 이름처럼 강지혁에게는 금지어나 마찬가지였다.그런데 지금 임유진에게 빌고 있는 여자는 계속해서 강지혁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만 계속해댔다.“오로라 반지 일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알아봐. 그리고 찾아내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강지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얘기했다.“네, 알겠습니다.”임유진에게 빌고 있던 여자는 그 말에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몸을 덜덜 떨었다.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리고 저 여자가 한 말 틀린 거 없어. 저 여자가 대신 부탁해봤자 달라질 건 없으니까.”강지혁은 이 말을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가 아닌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임유진은 그의 시선을 받고는 순간 가슴에 파도가 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강지혁은 지금 임유진을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시선 속에 더 이상 그녀의 자리는 없었다.한때는 아름답게 반짝였던 두 눈인데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이 모든 것들이 임유진은 더 이상 강지혁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는 듯했다.“고 비서, 저 여자 다시는 내 눈에 띄지 않게 S 시에서 치워.”강지혁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차에 올라탔다.고이준은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와 임유진을 번갈아 보다가 강지혁이 말한 ‘저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만약 강지혁이 임유진을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으면 진작 그렇게 했을 테니까.강지혁의 차량이 떠난 후 한지영은 임유진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임유진의 손목을 계속 붙잡고 있는 여자의 손을 거칠게 떼어냈다.“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알아서 치워야지 이게 어디서 행패야! 유진이를 이용한 것도 모자라 강지혁한테 말 좀 해달라고? 뭐 이런 뻔뻔하고 파렴치한 인간이 다 있어! 야, 너 경고하는데 다시는 우리 유진이 앞에 나타나지 마. 만약 또 나타나면 그때는 머리털을 싹 다 뽑아버릴 거야. 알았어?!”한지영은 말을 마
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옆에서 임유진의 행동을 지켜보던 백연신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그날 저녁, 백연신은 한지영을 향해 물었다.“유진 씨 말이야. 혹시 임신한 건 아닐까?”그 말에 한지영은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음료를 그대로 뿜을 뻔했다.“그럴 리 없어요!”한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백연신은 확신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왜 그렇게 확신해? 유진 씨 강지혁이랑 헤어지고 아직 3개월도 안 됐어. 3개월이면 아직 티도 안 날 거고.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잖아.”한지영은 입술을 깨물며 말을 아꼈다.임유진의 임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제삼자가 떠벌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물론 강지혁의 도움으로 자궁치료를 받은 적이 있지만 치료를 받은 지 얼마 안 가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말았다.그리고 임유진은 헤어진 뒤로 더 이상 자궁치료를 받고 싶지 않아 했다.한지영은 백연신의 시선에 결국 얼버무리기도 했다.“아무튼 유진이가 임신할 리는 없어요. 참, 연신 씨, 나 유진이랑 약속한 게 하나 있어요. 앞으로 나한테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는 유진이 아이이기도 하고 아이의 또 다른 엄마는 유진이기도 하다고요. 이미 약속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연신 씨 의견은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우리 두 사람의 아이니까요.”백연신은 그녀의 말에 부드럽게 웃었다.“응, 괜찮아.”그는 한지영에게 있어 임유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전에는 그런 임유진이 질투 날 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짧은 인생에 그런 친구를 만나게 된 건 축복이었다.한지영은 백연신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고마워요, 연신 씨. 역시 역신 씨밖에 없어!”백연신은 한지영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며 말했다.“이틀 뒤에 다시 본가로 돌아가야 해. 처리해야 할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이번에는 더 이상 너한테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경호원을 붙여둘게.”또다시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건가?한지영은 그와 떨어지기 싫었다.“아니면
“그래요? 어떤 거 좋아했어요?”곽동현은 쇼핑백을 열어 로봇들을 임유진에게 보여주었다.임유진은 쇼핑백 안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곽동현의 로봇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최소 10개는 넘어 보였다.그리고 마침 제일 위에 임유진이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것과 비슷한 로봇이 있었다.“이거요. 범블비.”임유진이 범블비를 손에 들고 과거를 회상하듯 씩 웃었다.“그럼 그건 유진 씨한테 선물로 줄게요.”“네? 하지만 이건 윤이 주려고 가지고 온 거잖아요.”“윤이한테는 아직 이만큼이나 남아 있는걸요? 그러니까 기념으로 하나 가져요.”곽동현이 묵직한 쇼핑백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기념이라...임유진은 수중에 있는 범블비를 보며 어릴 때 외할머니에게 범블비를 사달라고 졸랐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 임유진은 아직 어렸기에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외할머니가 이거 사주려고 평소에 얼마나 돈을 아꼈는지 알지 못했다.임유진은 외할머니를 떠올리자 괜히 마음이 들떴다.“그럼 고맙게 받을게요.”임유진은 곽동현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에 곽동현도 그녀에게 미소도 답했다.임유진과 잘 될 일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임유진이 선물을 받아주자 괜히 기분이 좋았다.임유진과 곽동현은 서로에게 집중하느라 그 시각 누군가가 창문으로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임유진은 곽동현과 헤어진 후 곧바로 강현수의 병실로 찾아왔다.안으로 들어와 보니 예상대로 배여진이 있었다.하지만 오늘의 배여진은 평소와 달리 어딘가 불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유진아, 아까 웬 남자랑 즐겁게 얘기하는 것 같던데 그 사람 누구야? 친구야? 혹시 너 병원까지 데려다줬어?”배여진의 질문에 임유진은 퉁명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힐끔 바라보았다.“전 직장 동료야. 우연히 병원 입구에서 마주친 거고.”“우연히...”배여진은 일부러 말을 길게 늘어트리며 임유진과 곽동현이 꼭 무슨 비밀 사이라도 되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