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들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발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강지혁은 여자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고 그대로 앞에 세워진 승용차 쪽으로 걸어갔다.여자는 강지혁이 가버리자 당황하며 주위를 훑다가 임유진을 발견하고 다급하게 임유진 쪽으로 달려갔다.“임유진 씨, 저 좀 도와주세요. 지난번처럼 강 대표님한테 사정 좀 봐달라고 해주세요. 제발요!”갑작스러운 상황에 임유진은 상황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여자가 바로 앞에서 손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빌고 있었다. 여자의 손가락 끝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흰색 붕대가 감겨 있었다.여자의 이마는 퉁퉁 부어올랐고 피도 찔끔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표정은 절망의 늪에 빠진 사람처럼 간절했고 아무거나 빨리 잡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그날 임유진 씨 과거 이용한 거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요. 제가 바보 같았어요. 일부러 손톱 뽑힌 척 강 대표님의 시선을 잡으려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하지만 그날 저는 이미 거짓말한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해요. 손톱이 뽑히는 고통을 직접 느꼈다고요!”여자는 손가락 통증도 잊은 듯 임유진의 손목을 꽉 잡았다.“임유진 씨,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강 대표님한테 제발 저 좀 살려달라고 얘기 한 번 해주세요. 이렇게 부탁할게요!”여자는 정성스럽게 짠 계획이 이득을 가져오지 못한 건 물론이고 자신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날 이후 이 사장은 곧바로 그녀를 찾아와 행패를 부렸고 친척들은 그녀가 강지혁을 건드렸다는 것을 알고는 바로 매정하게 선을 그어버렸다.임유진은 그제야 눈앞에 있는 여자가 그날 밤 골드 클럽에서 강지혁이 손을 잡으며 걱정해줬던 직원이었다는 것을 알아챘다.당시 웨이터들의 말로는 이 사장이라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이 여자와 트러블이 생겨 손톱을 뽑겠다며 난리를 부렸다고 했다.그런데 지금 이 여자의 말을 들어보니 모든 것이 다 이 여자가 꾸민 쇼였다.이 여자는 강지혁에게 접근하기 위해 이 사장과 짜고
오로라 반지가 완성된 후 강지혁은 봉인하듯 반지를 금고에 넣어 두고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았다.반지는 임유진이라는 이름처럼 강지혁에게는 금지어나 마찬가지였다.그런데 지금 임유진에게 빌고 있는 여자는 계속해서 강지혁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만 계속해댔다.“오로라 반지 일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알아봐. 그리고 찾아내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강지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얘기했다.“네, 알겠습니다.”임유진에게 빌고 있던 여자는 그 말에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몸을 덜덜 떨었다.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리고 저 여자가 한 말 틀린 거 없어. 저 여자가 대신 부탁해봤자 달라질 건 없으니까.”강지혁은 이 말을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가 아닌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임유진은 그의 시선을 받고는 순간 가슴에 파도가 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강지혁은 지금 임유진을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시선 속에 더 이상 그녀의 자리는 없었다.한때는 아름답게 반짝였던 두 눈인데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이 모든 것들이 임유진은 더 이상 강지혁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는 듯했다.“고 비서, 저 여자 다시는 내 눈에 띄지 않게 S 시에서 치워.”강지혁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차에 올라탔다.고이준은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와 임유진을 번갈아 보다가 강지혁이 말한 ‘저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만약 강지혁이 임유진을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으면 진작 그렇게 했을 테니까.강지혁의 차량이 떠난 후 한지영은 임유진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임유진의 손목을 계속 붙잡고 있는 여자의 손을 거칠게 떼어냈다.“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알아서 치워야지 이게 어디서 행패야! 유진이를 이용한 것도 모자라 강지혁한테 말 좀 해달라고? 뭐 이런 뻔뻔하고 파렴치한 인간이 다 있어! 야, 너 경고하는데 다시는 우리 유진이 앞에 나타나지 마. 만약 또 나타나면 그때는 머리털을 싹 다 뽑아버릴 거야. 알았어?!”한지영은 말을 마
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옆에서 임유진의 행동을 지켜보던 백연신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그날 저녁, 백연신은 한지영을 향해 물었다.“유진 씨 말이야. 혹시 임신한 건 아닐까?”그 말에 한지영은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음료를 그대로 뿜을 뻔했다.“그럴 리 없어요!”한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백연신은 확신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왜 그렇게 확신해? 유진 씨 강지혁이랑 헤어지고 아직 3개월도 안 됐어. 3개월이면 아직 티도 안 날 거고.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잖아.”한지영은 입술을 깨물며 말을 아꼈다.임유진의 임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제삼자가 떠벌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물론 강지혁의 도움으로 자궁치료를 받은 적이 있지만 치료를 받은 지 얼마 안 가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말았다.그리고 임유진은 헤어진 뒤로 더 이상 자궁치료를 받고 싶지 않아 했다.한지영은 백연신의 시선에 결국 얼버무리기도 했다.“아무튼 유진이가 임신할 리는 없어요. 참, 연신 씨, 나 유진이랑 약속한 게 하나 있어요. 앞으로 나한테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는 유진이 아이이기도 하고 아이의 또 다른 엄마는 유진이기도 하다고요. 이미 약속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연신 씨 의견은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우리 두 사람의 아이니까요.”백연신은 그녀의 말에 부드럽게 웃었다.“응, 괜찮아.”그는 한지영에게 있어 임유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전에는 그런 임유진이 질투 날 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짧은 인생에 그런 친구를 만나게 된 건 축복이었다.한지영은 백연신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고마워요, 연신 씨. 역시 역신 씨밖에 없어!”백연신은 한지영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며 말했다.“이틀 뒤에 다시 본가로 돌아가야 해. 처리해야 할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이번에는 더 이상 너한테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경호원을 붙여둘게.”또다시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건가?한지영은 그와 떨어지기 싫었다.“아니면
“그래요? 어떤 거 좋아했어요?”곽동현은 쇼핑백을 열어 로봇들을 임유진에게 보여주었다.임유진은 쇼핑백 안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곽동현의 로봇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최소 10개는 넘어 보였다.그리고 마침 제일 위에 임유진이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것과 비슷한 로봇이 있었다.“이거요. 범블비.”임유진이 범블비를 손에 들고 과거를 회상하듯 씩 웃었다.“그럼 그건 유진 씨한테 선물로 줄게요.”“네? 하지만 이건 윤이 주려고 가지고 온 거잖아요.”“윤이한테는 아직 이만큼이나 남아 있는걸요? 그러니까 기념으로 하나 가져요.”곽동현이 묵직한 쇼핑백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기념이라...임유진은 수중에 있는 범블비를 보며 어릴 때 외할머니에게 범블비를 사달라고 졸랐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 임유진은 아직 어렸기에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외할머니가 이거 사주려고 평소에 얼마나 돈을 아꼈는지 알지 못했다.임유진은 외할머니를 떠올리자 괜히 마음이 들떴다.“그럼 고맙게 받을게요.”임유진은 곽동현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에 곽동현도 그녀에게 미소도 답했다.임유진과 잘 될 일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임유진이 선물을 받아주자 괜히 기분이 좋았다.임유진과 곽동현은 서로에게 집중하느라 그 시각 누군가가 창문으로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임유진은 곽동현과 헤어진 후 곧바로 강현수의 병실로 찾아왔다.안으로 들어와 보니 예상대로 배여진이 있었다.하지만 오늘의 배여진은 평소와 달리 어딘가 불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유진아, 아까 웬 남자랑 즐겁게 얘기하는 것 같던데 그 사람 누구야? 친구야? 혹시 너 병원까지 데려다줬어?”배여진의 질문에 임유진은 퉁명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힐끔 바라보았다.“전 직장 동료야. 우연히 병원 입구에서 마주친 거고.”“우연히...”배여진은 일부러 말을 길게 늘어트리며 임유진과 곽동현이 꼭 무슨 비밀 사이라도 되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지난번에도 그랬으면서 이번에도 또 내쫓았다.배여진은 조금 분한 얼굴로 병실을 나섰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녀를 신경 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임유진은 사과와 과도를 가지고 또다시 강현수 옆 의자에 앉아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아까 바로 아래에서 전 직장 동료를 만났어요?”강현수가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네, 현수 씨도 만난 적 있는 사람이에요. 전에 촬영장에서 나 없어졌을 때 나 찾겠다고 들어갔다가 현수 씨랑 만난 곽동현이라는 남자요.”강현수의 질문에 그녀 역시 지나가는 말투로 대답했다.곽동현이라는 이름에 강현수가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았다.임유진이 갑자기 사라진 그 날 곽동현은 누가 봐도 초조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은 단순히 아는 지인이 사라졌다고 나올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 표정은... 좋아하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불안해하는 표정이었다.“기억나요. 그때 유진 씨 걱정 엄청 많이 하던데.”“동현 씨는 미련할 정도로 착하고 좋은 사람이에요.”임유진은 아까 곽동현이 윤이에게 줄 로봇을 한 아름 들고 온 모습을 떠올리고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설마 옛날 물건을 그렇게까지 잘 보관하고 있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물론 지금도 트랜스포머 로봇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곽동현의 로봇은 아주 옛날 거라 지금은 아마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한정판 같은 느낌일 것이다.윤이가 보면 좋아하며 방방 뛸 게 분명했다.“미련할 정도로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요?”그 말에 강현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질투의 감정이 스멀스멀 그의 가슴에 퍼져갔다.방금 미소를 지은 건 곽동현이라는 사람 때문인 건가?“네, 정말 좋은 사람이거든요. 착하고 성실하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정말 친구로서 완벽한 사람이에요. 솔직히 지금 세상에 그런 사람 몇 없을걸요?”임유진은 진심으로 곽동현이라는 사람을 좋아했다.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인류애적인 면에서 말이다.감방 갔다 온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다른 사람은 다 피하는데 곽
이 범블비는 외할머니가 그때 사준 것과 완전히 똑같은 로봇은 아니었다. 하지만 둘 다 똑같은 범블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외할머니와의 추억들이 생각났다.외할머니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도 여전히 임유진의 마음의 안식처였다.강현수는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는 듯한 임유진의 미소를 보고는 질투의 감정이 점점 더 거세졌다.머리로는 임유진이 곽동현에게 마음이 없다는 걸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자꾸 곽동현이 임유진의 마음에 중요한 자리를 꿰차면 어쩌지라는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쳐들었다.한편 병실 밖에서 몰래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배여진은 이거다 싶어 눈을 반짝였다....임유진은 강현수의 병실에서 나온 후 곧바로 윤이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안으로 들어가 보니 곽동현이 한창 윤이와 놀아주고 있었다.예상대로 윤이는 트랜스포머를 무척이나 좋아했다.“참, 윤이 정확히 언제 퇴원한다고 했죠?”임유진이 옆에 있는 탁유미를 향해 물었다.“내일모레요. 별다른 상황 없으면 점심쯤 퇴원할 수 있을 거예요.”“그럼 모레 점심에 나도 병원으로 올게요.”임유진이 말했다.“번거롭게 뭐하러 그래요. 점심시간도 별로 없을 텐데.”“2시간 정도 여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그리고 버스 타고 오면 금방이에요. 옷가지들이랑 이것저것 챙기려면 아마 사람이 많아야 할 거예요.”“그러면 저도 올게요.”그때 곽동현이 손을 들며 말했다.“차 가지고 오면 물건 싣기 편할 거예요. 내일모레 유진 씨 태우고 병원으로 올게요. 그러면 유미 씨도 마음이 조금 편하지 않겠어요?”두 사람의 말에 탁유미는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두 사람 다 정말 고마워요. 그러면 그날 신세 좀 질게요.”윤이와 실컷 놀아준 후 임유진은 슬슬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그러자 곽동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데려다줄게요.”그러고는 행여 임유진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뒷말도 덧붙였다.“어차피 가는 길이거든요.”“그럼... 사양하지 않을게요.”곽동현은 차에 시동을 걸고 임유진의 집으
곽동현은 멀어져가는 임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그러고는 빠른 걸음으로 임유진에게로 다가갔다.“유진 씨, 나는... 나는 유진 씨가 꼭 행복했으면 좋겠어요!”곽동현의 얼굴은 어느새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큰 용기를 내서 한 말 같았다.“그 행복을 주는 사람이 내가 아니어도 그래도 나는 좋아했던 여자가 꼭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임유진은 곽동현의 말에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게 느껴졌다.“고마워요. 동현 씨는 정말...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곽동현의 따뜻함과 선의는 언제나 임유진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주고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곽동현은 좋은 사람이라는 그녀의 말에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좋은 사람이지만 그녀가 좋아하거나 사랑하게 될 사람은 아니었다.“나...”곽동현은 잠깐 멈칫하더니 좀처럼 말을 내뱉지 못했다. “동현 씨?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유진 씨, 나... 유진 씨 한번 안아봐도 돼요? 잠깐이면 돼요. 유진 씨를 향한 마음에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고 싶어요.”곽동현은 자기가 말하고도 변명 같은지 머쓱하게 웃었다.“아니다... 그냥 못 들은 거로 해요. 멋지게 떠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마침표라는 건 서로 쌍방이어야만 가능한 얘기인데, 우리 둘은 항상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했잖아요. 그게 유진 씨를 곤란하게 만드는 건 줄도 모르고... 아무튼 그러니까 내 말은...”곽동현이 횡설수설하던 그때 임유진이 먼저 다가가 그를 끌어안았다.이에 곽동현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이제는 얼굴뿐만이 아니라 목까지 다 빨개졌다.“동현 씨, 동현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아마 동현 씨를 좋아하지 않은 건 내가 그만큼 복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 걸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나 같은 사람 말고 동현 씨를 사랑해주고 진심으로 아껴주는 그런 멋진 여성분을 만나길 바라요. 동현 씨 아까 나한테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죠? 나도 마찬가지예요. 나도 동현 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강현수가 숨을 한번 크게 들이켜고 배여진을 향해 물었다.“그래서 너는 이걸 건네준 사람이 누군지 정말 모른다고?”그 말에 배여진의 몸이 움찔 떨렸다.강현수의 눈동자가 꼭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려워 났다.“네, 정말 몰라요. 만약 아는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그 사람을 잡았겠죠. 그리고 왜 이런 걸 주냐고 따졌겠죠.”배여진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현수 씨 혹시... 이 사진을 내가 준비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현수 씨도 나한테 그랬잖아요. 현수 씨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유진이라고, 그리고 나는 어릴 때 현수 씨 목숨을 구해준 은인뿐이라고. 그런데 내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이런 짓을 하겠어요. 나는 현수 씨가 모르는 사람이랑 잘 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아는 사람이랑 잘 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현수 씨가 결혼해도 나도 마음 편히 현수 씨 곁에 있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나는 현수 씨랑 헤어지기 싫은 사람이에요!”배여진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처럼 간절하게 호소했다.강현수는 입을 꾹 닫은 채 한참을 배여진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사진 보내줄 테니까 곽동현이라는 남자에 대해 조사 좀 해 봐.”배여진은 강현수의 말을 듣고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몰래 이겼다 하는 표정을 지었다.일은 임유라가 계획한 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 만약 여기서 뭔가 더 결정적인 계기가 있으면 임유진과 강현수의 사이는 완전히 깨져버리게 될 것이다.그렇게 되면 그때는 배여진의 세상이었다....저녁, 한지영은 임유진과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이런 말을 꺼냈다.[유진아, 나 이틀 뒤에 연신 씨 찾으러 갈 거야.]그 말에 임유진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뭐? 갔다가 언제쯤 돌아올 건데?][휴가를 아예 다 써버리기로 했으니까 열흘 정도 될 거야. 유진아, 나 그날 거의 죽을 뻔한 뒤로 자꾸 연신 씨랑 붙어있고 싶어져. 떨어진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또 보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