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강현수에게로 찾아가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임유진이 계속 감추기로 한 이상 멋대로 나설 수는 없었다.그때 한지영의 카톡 알림이 울렸다.이에 한지영이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백연신이었다.[언제 올 거야?]임유진은 무심결에 그 메시지 내용을 보고는 한지영을 향해 말했다.“연신 씨 기다리는 것 같은데 이만 가봐. 우리는 다음에 밖에서 봐.”“그래, 이만 가야겠다. 너,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나한테 연락해. 혼자 다 짊어지려 하지 말고. 알겠어?”한지영은 아직 걱정을 내려놓지 못한 듯했다.“그래, 알았어.”임유진은 편한 미소를 지었다.그녀가 진정 마음속으로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오직 한지영뿐이라 그런지 한지영 앞에서는 언제나 진실한 표정만 지었다.한지영은 임유진의 집에서 나오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강지혁과 완전히 끝난 지금 상황에 강현수가 갑자기 배턴터치 하듯 열렬한 구애를 하는 게 과연 임유진에게 좋은 일일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임유진은 강현수를 좋아할 마음도 그를 받아줄 마음도 전혀 없어 보였으니까.한지영은 오늘따라 일방적 사랑이 아닌 쌍방의 사랑이 얼마나 큰 행운이고 복인지 다시금 깨달았다.그리고 백연신과 처음에는 조금 삐걱거렸지만 그래도 지금은 서로를 많이 믿고 사랑하게 된 것에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한지영은 빠르게 백연신의 별장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려 별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백연신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통화하는 표정이 무척이나 무서웠다. 평소 한지영이 봐왔던 표정이 아니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백연신은 한지영이 들어온 것을 보더니 금방 무서운 표정을 지우고 그녀가 잘 알고 있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돌아왔다.한지영은 그걸 보고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그녀는 가방을 내려놓은 다음 소파에 앉아 꽃받침을 하고 통화하는 백연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스피커폰은 아니었지만 한지영은 백연신의 통화 상대가 그의 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나랑 그 여자가 유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백씨 가문에서 내 죽음을 제일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이 그 여자니까.”백연신의 말에 한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백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백연신에게 빼앗겼으니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없었다.“네가 오늘 만난 고유정도 그 여자 짓이야. 고씨 가문의 도움을 받아 나를 상대하려는 거지. 그러기 위해서는 결혼이 제일 좋은 수단이었을 테고.”한지영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고씨 집안을 이용해 연신 씨를 상대하려는 거면 고유정 씨를 자기 아들과 결혼시키는 게 더 좋지 않아요?”“고유정은 버리는 패야.”“버리는 패요? 고유정 씨는 고씨 집안의 딸이잖아요.”“고유정은 그 집 딸이 아니야. 어릴 때 아이가 바뀌었어. 고씨 집안은 그걸 알고 난 뒤로 쭉 친딸을 찾아다녔고 수년간 찾은 끝에 드디어 친딸을 찾게 됐지. 이 얘기는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건 물론이고 고유정한테도 얘기하지 않았을 거야.”한지영은 그 말을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건 완전히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고씨 가문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건 친딸이야. 고유정은 피가 섞인 것도 아니니 마침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하려는 거겠지.”백연신은 한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아마 그쪽에서는 고유정을 보내 나한테 고씨 가문은 나와 한패라는 허상을 심어주려고 했을 거야. 그러다 내가 완전히 속아 넘어갔을 때 배신할 생각이었을 거고. 그러면 백씨 가문은 자연스럽게 그 여자 것이 되겠지.”한지영은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부자들의 세계는 생각보다 더 복잡하다며 감탄 아닌 감탄을 했다.“그런데 연신 씨는 고유정이 그 집 친딸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그 정도도 알아내지 못하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백연신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한지영은 자신감 넘치는 그의 얼굴을 보고는 순간 넋을 잃었다. 이 남자는 평소에도 예쁜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더더욱 예뻤다.“오늘 고유정이 찾아온 걸 보면
한지영은 백연신을 째려보았다.“그걸 질문이라고. 연신 씨도 한번 깨물려볼래요?”“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 자.”백연신은 자신의 볼을 그녀에게 들이밀었다.한지영은 진심인 듯한 그를 보고 조금 당황스러웠다.그리고 막상 깨물려고 보니 쉽게 왠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한지영은 눈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백여신은 마초 같은 진한 남성미가 넘치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여성처럼 선이 예쁘게 여린 느낌은 또 아니었다.이렇게 가까이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오늘따라 그의 얼굴이 더 완벽해 보였고 더 섹시해 보였다.한지영은 백연신의 얼굴을 덥석 잡더니 깨무는 것이 아닌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이 예쁜 얼굴을 어떻게 깨물 수가 있을까.백연신은 이에 멈칫하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안 깨물어?”“이렇게 예쁜 얼굴을 어떻게 깨물어요. 뽀뽀만 해도 모자란 데.”한지영은 그의 위에 올라타 이번에는 뽀뽀가 아닌 키스를 해댔다.“지영아...”백연신은 간신히 입술을 떼고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자고 갈래?”“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는데요?”한지영은 팔을 들어 적극적으로 백연신의 목을 휘감으며 말했다.오늘 밤, 그녀는 백연신을 꼭 끌어안고 자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 사랑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지 잔뜩 느끼게 해줄 생각이다.백연신은 그 말에 한지영을 안은 채로 소파에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한지영은 그에게 안겨 침실 침대에 눕혀지고는 그제야 뭔가 생각난 듯 손을 들어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잠깐만요. 우리 콘돔...”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연신이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술을 탐해버렸다.한지영은 그와의 키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간신히 이성을 되찾고 입술을 뗐다.“잠깐... 만약 우리 이대로 하면... 나 임신할지도 몰라요...”“그럼 임신해.”백연신의 말에 한지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전에는 임신하면 백씨 가문에서 수작을 부릴까 봐 그렇게 걱정해놓고는 왜
“그렇긴 한데... 좀 빠르지 않아요?”한지영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백연신의 계획대로 라면 그녀는 3개월 뒤에 미혼여성에서 기혼여성이 된다.이건 아무래도 너무 빨랐다.“그렇게 생각해?”백연신은 한지영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나한테는 아니야. 나는 솔직히 늦은 편이라고 생각해. 나는 우리가 하룻밤을 보냈던 그 날부터 언젠가는 너와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백연신은 절대 한순간의 흥미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지영과 평생을 함께할 생각이 없었다면 애초에 그날 밤을 같이 보내지도 않았을 거고 그녀를 다시 찾아오는 수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니 그에게 있어 결혼은 절대 빠른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야 결혼 얘기를 꺼내는 것이 상당히 늦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한지영은 빨개진 얼굴로 백연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숨을 한번 들이켜고는 뭔가 결심한 듯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좋아요. 우리 3개월 뒤에 결혼해요!”한지영은 말을 마친 후 먼저 그에게 입을 맞췄다.그녀 역시 결혼 상대로 백연신이 아닌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늦은 밤.고이준은 지금 불안한 얼굴로 굳게 닫힌 피의 방 문을 바라보고 있다.강지혁은 저녁을 먹은 후 이 방으로 들어가서는 6시간이나 넘었는데도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무슨 일 생기는 건 아니겠지?’고이준은 문득 이 방에 있는 장검이 생각났다.세월이 오래 지난 터라 장검이 옛날처럼 날카롭지 않았지만 사람 살을 파고들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고이준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불안해졌고 결국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손을 들어 방문을 두드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때,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강지혁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대표님.”고이준은 서둘러 강지혁의 몸부터 훑어보았다. 다행히 아무런 상처도 없는 것으로 보아 별다른 일은 없었던 것 같다.하지만 지금의 강지혁은 마치 하나의 얼음장 같아 보였다. 그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임유진과
강지혁은 저택을 봉쇄함으로써 이 저택에서 있던 일들을 모두 기억 한편에 봉인해 영원히 꺼내지 않을 생각이다.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성큼성큼 저택 밖으로 나왔다.앞으로 그는 두 번 다시 이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그의 희망과 절망이 모두 깃든 이 저택은 그의 금기가 될 것이고 한때 누나라고 불렀던 여자 역시 그의 금기가 될 것이다.....배유진은 오늘 임유진의 로펌으로 찾아왔다.임유진을 만나려고 온 것이 아닌 차정훈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기 위해서 말이다. 그녀는 인터넷에 악의적인 악플을 남기고 있는 악플러들을 고소할 생각이다.차 변호사는 그녀의 의뢰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려운 건도 아니고 배여진의 제시한 금액이 상당히 괜찮았으니까.배여진은 얘기를 마친 후 웃으며 말했다.“제가 차 변호사님한테 의뢰를 한 건 이곳에 유진이가 있어서예요. 사촌 동생이 있는 곳이면 제가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서요.”차 변호사는 웃으며 예의상의 답변을 하고는 배여진이 떠나려고 할 때 임유진을 향해 말했다.“유진 씨, 언니분 모셔다드리고 오세요.”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배여진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섰다.“유진아, 너 괜찮은 거지? 현수 씨한테 너 돌아왔다는 소식 듣고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임유진은 그녀를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았다.배여진이 하는 말이 진심일 리가 없었다. 배여진은 이대로 임유진이 돌아오지 않길 간절히 바랐던 사람일 테니까.“우리 로펌에 의뢰를 맡긴 건 솔직히 의외야.”임유진이 말했다.“뭐가 의외야. 당연히 사촌 동생이 다니는 로펌으로 와야지. 우리 가족이잖아.”배여진은 좋은 언니인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임유진은 이런 그녀가 이해가 가지 않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이미 나한테 다 들킨 마당에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가족? 정말 그렇게 생각해?”임유진은 배여진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그, 그럼 당연하지.”배여진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는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그럼 난
“고작 그거 먹고 떨어지라고? 네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않냐?”장이경은 배여진을 아래위로 훑더니 변태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보다 너 많이 예뻐졌다? 강현수가 너한테 잘해주나 봐?”“됐고, 또 뭣 때문에 온 거야?”배여진은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장이경은 얼마 전 배여진을 찾아와 돈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돈을 주지 않으면 배여진의 사진들을 인터넷에 뿌리겠다고 협박했다.그녀의 사진이라는 건 강현수를 만나기 전 화장기 없이 후줄근한 상태로 찍은 사진과 장이경과 찍었던 스킨십 사진이었다.만약 그 사진들이 인터넷에 떠돌게 되면 바로 강현수의 귀에 들어갈 것이고 톱스타가 되겠다는 그의 꿈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된다.그렇기에 배여진은 어쩔 수 없이 장이경에게 돈을 줌으로써 사진 원본을 사들였다.그렇게 일이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장이경은 그 뒤로도 계속해서 그녀를 찾아왔고 매번 다른 사진들을 가져와 협박해댔다.“뭣 때문에 왔는지 다 알고 있잖아. 돈 내놔.”장이경은 아주 당당하게 돈을 요구했다.이에 배여진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100억 줄 테니까 갖고 있는 사진 다 내놔. 만약 그 뒤로 또 찾아오면 그때는 현수 씨한테 다 말하고 널 처리해 버리라 할 거야. 나는 너한테 평생 돈 뜯기는 것보다 차라리 현수 씨가 그 사진들을 보는 게 나으니까!”장이경은 미간을 찌푸렸다.이 사실이 강현수의 귀에 들어가면 좋은 게 하나 없었다.‘뭐 100억이면 충분하지. 내가 언제 또 100억을 만져보겠어.’“좋아, 그렇게 할게.”“그럼 일단 나한테 일주일만 시간을 줘. 돈 준비해서 바로 연락할게.”장이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일주일 동안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거짓말이면 가만 안 둬.”배여진은 장이경이 떠난 후 씩씩대며 발을 동동 굴렀다.“장이경을 하루빨리 처리해야겠어! 이대로 계속 놔둬서는 안 돼. 저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나한테 해를 끼치고 말 거야! 그리고...”그녀는 손톱을
공수진은 팔짱을 낀 채 탁유미와 윤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그들을 보는 그녀의 시선에 질투심이 가득 어려있었다.공수진은 탁유미가 감방에서 아이까지 낳았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다.그리고 그 탓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공수진은 지금 어쩔 수 없이 탁유미의 아이를 대신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유미 씨, 오랜만이에요.”공수진이 먼저 말을 걸었다.“경빈 씨한테 들었어요. 윤이가 경빈 씨 아들이라면서요? 이렇게 된 거 나도 앞으로 윤이를 내 아이처럼 생각할게요.”공수진은 말을 마치고 등 뒤에 있는 기사에게 손짓을 건넸다.그러자 기사가 차에서 여러 가지 장난감 세트를 들고 걸어왔다.“이건 내가 윤이한테 주는 선물이에요. 사양하지 말고 받아요. 어디 사는지 몰라서 이렇게 직접 유치원으로 찾아왔어요.”공수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탁유미의 눈에 그 미소는 섬뜩하지 그지없었다.그때도 공수진은 이렇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그러고는 탁유미가 잠깐 눈을 돌린 사이 갑자기 계단 아래로 몸을 던졌다.‘여기는 왜 온 거지? 무슨 짓을 하려고?’탁유미는 본능적으로 윤이를 자기 뒤로 숨겼다.“목적이 뭐야?”탁유미는 잔뜩 경계한 채로 물었다.“목적이라뇨. 나는 그저 윤이한테 잘해주고 싶을 뿐이에요. 경빈 씨 아들이면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리고 조만간 정식으로 내 아들이 되기도 할 거고요.”공수진은 생글생글 웃었다.“윤이가 네 아들이 되는 날은 절대 오지 않아!”탁유미가 그녀를 노려보며 외쳤다.윤이를 어떻게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여자의 아들로 살게 할 수 있겠는가!탁유미는 마치 공수진이 아이를 유괴하려는 유괴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윤이의 손을 꼭 잡았다.“엄마, 아파요.”윤이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이는 탁유미가 왜 이렇게까지 긴장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그리고 왜 공수진이 자신을 그녀의 아들이 될 거라고 하는지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탁유미는 윤이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너무 세게 잡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더욱 화가 난 것이다.윤이가 보는 애니메이션에서 감방에 간 사람들은 전부 다 악당들이었다.그러니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예쁜 엄마가 악당들이나 가는 감방에 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공수진은 시선을 내려 윤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빛에는 분노와 경멸이 담겨있었다.특히 탁유미와 닮은 아이의 두 눈은 지금 당장이라도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였다.“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너희 엄마한테 직접 물어봐.”공수진은 다시 시선을 돌려 탁유미를 바라보았다.“설마 아이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죠?”탁유미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공수진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확신하는 윤이의 얼굴을 보면서 탁유미는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공수진 씨는 시간이 남아도나 보네요?”그때 임유진이 끼어들며 탁유미의 옆에 섰다.“전에 유미 언니 장사 망치려고 깡패들을 보냈었죠? 공씨 가문은 그런 세력과도 친분이 있나 봅니다? 요즘 깡패들 소탕한다고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인력을 투입했던데 행여 그 사람들과 친분이 있다는 걸 들키지 않게 조심하셔야겠어요. 안 그러면 공수진 씨뿐만 아니라 공씨 집안사람들 모두 감방에 갈지도 모르니까요.”공수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난 또 누구라고. 또 그쪽이에요? 그러고 보니 그쪽도 감방살이하다 나왔죠? 하하, 끼리끼리라더니 감방 동지들끼리 우애가 아주 깊나 보네요.”지난번 파티에서 임유진과 만난 뒤로 공수진은 바로 사람을 시켜 임유진의 뒷조사를 했다.임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저 감방살이하다 나온 거 맞아요. 하지만 그건 누명을 쓴 거였고 이미 재판부에서는 저한테 결백하다는 판결을 다시 내려 줬어요. 저한테 누명을 씌운 진정한 가해자는 이제라도 법의 심판을 받게 됐고요. 한번 억울하게 당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유미 언니도 누군가의 계략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공수진 씨도 그 사건에는 엮여있죠? 혹시 공수진 씨가 언니를 음해한 건 아니에요?”공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