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그 이모 나쁜 사람이에요?”윤이가 물었다.“그리고 그 이모는 왜 엄마랑 유진이 이모가 다 감방에 갔다고 그래요?”탁유미는 윤이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몰라 입만 달싹거렸다.그때 임유진이 윤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차근차근 얘기해주었다.“윤이야, 감방에 갔다고 해서 다 나쁜 사람인 건 아니야. 이모도 감방에 갔다 왔지만 그건 이모가 나쁜 짓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나쁜 사람이 자기가 한 잘못을 이모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해서 그렇게 된 거야. 하지만 얼마 전에 진짜로 나쁜 사람이 잡혔고 이모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어.”윤이는 그녀의 말을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모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진짜로 나쁜 사람은 결국 잡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기에 이내 배시시 웃었다.“그럼 엄마는요? 엄마도 이모처럼 아무런 죄도 없는데 감방에 들어간 거예요?”윤이는 고개를 돌려 탁유미를 바라보며 물었다.탁유미는 숨을 한번 깊게 들이켰다.그 사건에 관련해서는 줄곧 애써 외면하려고 했었지만 그것도 오늘까지였다.탁유미는 윤이가 언젠가는 알아야 할 일을 그저 좀 더 빨리 알게 될 뿐이라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윤이야, 엄마는 죄를 지은 적이 없어. 이건 맹세할 수 있어. 아까 그 이모가 한 얘기는 전부 다 거짓말이야. 엄마는 그 이모를 다치게 한 적이 없어.”탁유미를 쏙 빼닮은 윤이의 눈이 두어 번 깜빡거렸다.윤이는 탁유미의 말을 곱씹어 보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응, 윤이는 엄마 믿어요!”윤이는 아직 어리기에 탁유미의 입에서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말이 나온 것으로 충분했다.탁유미는 아들의 말에 눈물이 글썽거렸다.그녀는 여태 자신이 감방살이한 것에 대해서 타인이 뭐라고 하든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사실이 아니니 자신만 하늘 우러러 부끄럼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윤이에게는 말해주기 싫었다. 아무리 죄가 없다고는 해도 윤이에게는 말해주기 싫었다. 자격 없는 엄마가 되기 싫었고 윤이에게만큼은 미움받고 싶지 않았으니까.윤이는
“언니도 나 힘들 때 손 내밀어 줬잖아요. 그래서 나도 그 은혜에 보답하는 거예요.”말은 이렇게 했지만 정말 탁유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그녀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특히 탁유미의 사건은 이미 5년도 지난 사건이라 아직도 유력한 증거가 남아있을지 미지수였다.임유진은 사건을 생각하다 문득 강지혁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결백을 돌려준 사람이 바로 강지혁이었으니까.만약 강지혁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어쩌면 아직도 교통사고 가해자라는 죄를 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임유진, 생각하지 마! 너랑 강지혁은 이제 다 끝났어! 그러니까 생각하지 마!’임유진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강지혁의 생각을 털어버렸다.그 시각 윤이는 창가 옆 의자에 올라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시선이 향한 곳은 탁유미 쪽이었다.“윤이 엄마 보는 거야?”옆에 있던 탁유미 엄마가 물었다.“네.”윤이는 임유진과 인사하고 포장마차 거리로 향하는 탁유미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그러다 탁유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엄마, 윤이가 꼭 엄마 지켜줄게요. 엄마가 감방에 갔다고 해도, 엄마가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윤이는 엄마 지켜줄 거예요. 윤이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니까 꼭 지켜줄 거예요!’...임유진은 탁유미와 헤어진 후 바로 로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막 자리에 앉으려는데 차정훈이 다가와 그녀에게 USB를 하나 건넸다.“이거 배여진 씨가 오늘 오전 놓고 간 물건이에요. 급히 이걸 써야 하니 유진 씨한테 지금 바로 가져다 달라고 전화가 왔어요.”“저한테요?”임유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네, 다른 일 없으면 지금 바로 가져다주세요. 주소는 문자로 보내줄게요.”임유진은 차정훈에게서 검은색의 작은 USB를 건네받았다.“오전에 상담할 때 언니가 이걸 썼어요?”임유진이 물었다.“아니요. 필요한 건 배여진 씨가 휴대폰으로 보여줘서 따로 USB를 쓰지는 않았어요.”차정훈을 말을 마친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임유진은
임유진은 현장 스태프 쪽으로 가 배여진에게 USB를 주기 위해 왔다는 소리를 하고 나서야 인파를 뚫고 배우들 대기실 쪽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배여진은 지금 한창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고 아직 옷은 갈아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가 현재 입고 있는 옷들은 전부 다 브랜드 옷이었고 그것도 로고가 크게 박혀 있는 옷들이었다. 자신이 브랜드 옷을 입었다는 것을 남들이 모를 수 없게 하려고 작정한 듯이 말이다.그리고 그녀는 반지와 팔찌도 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가격이 비싼 것들이었다.임유진은 그런 배여진을 보며 새삼 예전의 그녀와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유진아, 왔어?”배여진은 친절한 태도로 그녀를 반겼다.“여기 USB.”임유진은 배여진에게 USB를 건넸다.하지만 배여진은 바로 받는 것이 아닌 시선을 그녀의 뒤로 보내며 말했다.“내가 지금 좀 바빠. 그리고 이따 촬영도 해야 하니까 나 끝날 때까지 저쪽 대기실에서 기다려줄래? 너한테 고소장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거든. 너도 차 변호사님 아래 있으니까 잘 알 거 아니야.”임유진은 USB만 넘겨주고 바로 갈 생각이었기에 그녀의 말을 듣고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다 한숨을 쉬며 우연히 고개를 돌렸다가 엑스트라 무리 중 한 명을 보고 멈칫했다.그리고 그 상대방도 임유진을 보더니 흠칫하고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임유진의 앞으로 다가왔다.“임유진? 네가 왜 여기 있어?”“두 사람 아는 사이에요?”배여진이 물었다.“네, 알고 있어요! 잘 알죠.”여자는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힘 좀 쓸 것 같은 그런 여자였다. 그녀는 배여진을 향해 허리도 숙이고 입꼬리도 올리며 꽤 잘 보이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한낱 엑스트라에 불과했고 배여진은 강현수와 현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예계 쪽에서는 배여진이 강현수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그 소문 때문에 촬영 스태프들은 배여진을 속으로는 깎아내리고 주제를 모른다고 비웃으면서도 앞에서는 여
아니나 다를까, 오영지의 말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두 사람... 감방살이하다 나왔어요? 그런데 어떻게 변호사 밑에서 일할 수가 있죠...?”그 질문의 대상은 임유진이었다.오영지는 질투 한가득한 얼굴로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출소하고 나서 변호사 밑에서 일하는 임유진에 반해 오영지는 감방에 있을 때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까.오영지는 같은 감방 동기들 앞에서나 거들먹거렸지 일반 사람들 앞에서는 한껏 허리를 숙이고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주변인들의 시선에 임유진은 익숙한 듯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때, 배여진이 갑자기 나서며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다.“고작 몇 년 옥살이 한 거 가지고 다들 왜 그래요?”배여진은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유진아, 나는 네가 옥살이했든 안 했든 상관없어. 나는 널 절대 색안경 끼고 보지 않아. 너는 내 사촌 동생이잖아. 혹시 힘든 거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내가 도와줄게.”임유진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금세 그녀가 이런 연기를 해대는 이유를 알아챘다.‘사람들 앞에서 착한 사람인 척하고 싶은 거네.’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하나같이 배여진을 칭찬하기 시작했다.“여진 씨, 정말 착하시다.”“그러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조심은 해요. 혹시 모르잖아요.”“맞아요. 감방살이하다 나온 사람들 그렇게 쉽게 믿는 거 아니에요.”그때 평소 배여진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여배우 한 명이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흥, 감방살이하다 나온 사촌 동생이 있다는 걸 강현수 씨는 아나 몰라.”그러자 배여진의 옹호자들이 반박에 나섰다.“감방살이하다 나온 건 여진 씨 사촌 동생이지 여진 씨가 아닌데 여기서 강현수 씨가 왜 나와요.”“그러니까요. 그리고 강현수 씨가 여진 씨한테 얼마나 잘해주는데요. 고작 친척 동생 일로 여진 씨를 달리 볼 것 같아요?”배여진을 깎아내리려는 사람도 그렇고 배여진을 옹호하려는 사람들도 그렇고 모두 하나같이 임유진이 감방살이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입
뭐가 어떻게 된 거지?!임유진은 서둘러 대기실 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누군가가 밖에서 문을 잠가놓은 것이다.‘설마 배여진이 꾸민 일인 건가?!’그때 장이경이 임유진 쪽으로 달려들었다.대기실 밖.배여진은 지금 평온한 얼굴로 메이크업을 받고 있지만 그녀의 심장은 거세게 두근거리고 있다.‘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야 하는데.’배여진은 임유진이 이곳으로 오기 전 장이경을 이곳으로 불러내 그에게 약을 탄 음료를 건네며 방금 임유진이 들어간 대기실 천막 뒤에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했다.이에 장이경이 굳이 왜 그래야 하냐며 되묻자 배여진은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질 수도 있고 아무래도 이건 돈거래이니 은밀히 하는 것이 좋다는 핑계를 댔다.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닌 걸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인데 장이경은 돈에 눈이 멀어 별다른 생각 없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배여진의 먼저 약을 먹은 장이경을 대기실 안으로 보낸 후 약이 돌 때쯤 임유진을 들여보내 둘이 몸을 섞게 만들고 그 현장을 강현수에게 보여주려는 심산이었다.그렇게 되면 강현수는 가장 먼저 장이경을 처리해버릴 것이고 임유진은 그 일로 개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잘만 하면 임유진을 향한 강현수의 마음을 완전히 접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라도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 모습을 직관하게 되면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니까.게다가 그런 추악한 경력을 달고 있으면 강현수의 부모님이 나서서 임유진을 반대하게 될 게 뻔했다.배여진은 기가 막힌 자신의 계획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그때, 촬영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고 기다란 기럭지의 남자가 배여진 쪽으로 걸어왔다.배여진은 그를 보고는 드디어 때가 왔다는 듯 씩 웃었다.‘임유진, 넌 오늘부로 끝이야!’메이크업을 다 받은 배여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강현수를 맞이했다.“현수 씨, 왔어요?”“오늘 촬영에 굳이 내가 있
배여진은 짜증이 가득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당, 당연히 그래야죠. 참, 오늘 여기 유진이도 왔어요. 지금 저쪽 대기실에서 나 기다리고 있고요. 조금 있으면 촬영도 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먼저 유진이 만나고 와야겠어요.”배여진은 옆 대기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유진 씨가 여기 있다고?”강현수는 깜짝 놀라며 배여진을 따라갔다.“같이 가.”강현수는 임유진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활짝 폈다.사실 그는 임유진의 월세방에서 나온 뒤로 매일 같이 그녀를 찾아가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건 임유진이 부담스러워할까 봐서였다.그래서 강현수는 요즘 최대한 자중하며 임유진이 마음 정리를 하고 괜찮아질 때까지 그녀를 보러 가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배여진은 강현수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는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그녀는 대기실 문을 열고 나면 크게 비명을 지를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강현수를 포함한 촬영장 스태프들 모두 이쪽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임유진은 개망신을 당하게 될 테니까!그렇게 두 사람이 거의 대기실 앞에 도착할 무렵, 백화점 밖에서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서더니 이내 들것을 든 구급대원들이 다급하게 촬영장 안으로 들어왔다.“비켜주세요! 비켜주세요!”구급대원들은 소리를 지르며 이쪽으로 빠르게 달려왔다.“약물 환자 어디 있습니까?!”그 말에 배여진은 어리둥절했다.‘뭐야? 누가 구급차를 부른 거야?’그녀가 상황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경찰이 인파를 뚫고 들어오며 물었다.“약물 환자가 있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왔습니다. 임유진 신고자분은 어디 계시죠?”‘임유진이 경찰에 신고했다고?!’배여진은 몸이 굳어버렸다.그녀 옆에 있던 강현수는 임유진이라는 이름에 얼굴이 무섭게 변해서는 배여진을 향해 물었다.“유진 씨가 들어간 대기실이 어디야?!”“여... 여기요.”배여진은 다급한 얼굴의 강현수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손을
‘왜 임유진이 이렇게 멀쩡하게 있는 거지? 지금쯤 장이경한테 덮쳐져야 하는데?!’임유진은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얼굴이 강현수라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현수 씨가 여기 왜 있어요?”강현수는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임유진 곁으로 다가왔다.“괜찮아요? 별일 없었어요?”“네, 괜찮아요. 그냥...”임유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현수가 그녀의 셔츠 소매 쪽이 살짝 찢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이건 왜 이래요?”“아까 손목 잡혔을 때 저 사람 손톱에 살짝 긁혔나 봐요.”임유진은 셔츠 소매가 찢어진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강현수는 어두워진 얼굴로 임유진의 셔츠 소매를 위로 살짝 걷어 올렸다. 그러자 장이경에 의해 생긴 붉은색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피가 나거나 멍이 든 것은 아니었지만 강현수의 눈에는 그 흔적이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그때, 바닥에 있던 장이경이 갑자기 몸을 뒤집더니 임유진을 향해 기어 왔다.그는 지금 약물에 취해 있어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강현수는 그 모습을 보더니 붕대가 감겨 있는 오른손으로 장이경의 멱살을 잡고 왼손 주먹으로 힘껏 장이경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이성을 잃은 듯한 그의 행동에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떡하고 벌렸다.평소 늘 냉정한 얼굴을 하고 흥분이라고는 하지 않던 강현수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때리고 있으니 놀랄 만도 했다.‘정말 강현수 맞아...?’‘사람을 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직접 주먹을 휘두른다고? 그것도 이렇게 잔뜩 흥분해서?’“그만 해요!”임유진은 강현수의 옆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그녀는 이미 지난번 파티장 입구에서 강지혁에게 끌려갔을 당시 고개를 돌려 강현수가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봤었다. 그러니 강현수가 사람을 패는 모습을 본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이 사람 약물에 취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지금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를 거예요.”강현수는 고개를 돌려 임유진을 바라보았다.“하지
그 말에 강현수는 이상함을 느꼈다. 그가 문을 열었을 때는 문은 잠겨있지 않았으니까.“경찰서로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경찰이 말했다.“네, 알겠습니다.”“같이 가줄게요.”강현수는 대기실을 나서는 임유진의 손을 잡았다.“괜찮아요. 나 혼자 가도 돼요.”임유진은 괜찮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강현수는 그녀의 손을 더 단단히 잡으며 말했다.“나도 목격자라 같이 가는 게 좋을 거예요.”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단호했다. 임유진은 거절 따위 듣지 않겠다는 듯한 그를 보며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그녀가 동의하든 말든 강현수는 경찰서로 가야만 했다. 그의 말처럼 그는 현장을 목격한 목격자였으니까.강현수는 대기실 밖 인파를 확인하더니 임유진을 자신의 뒤에 세우며 말했다.“내 등 뒤에 딱 붙어서 따라와요. 알겠죠?”“네?”임유진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강현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현장 스태프들과 백화점 고객들 그리고 주인공 배우들의 팬까지, 전부 다 강현수와 임유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경호원이 바로 강현수와 임유진을 보호해주기는 했지만 극성인 팬들은 그 경호를 뚫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심지어 누군가는 임유진의 얼굴 가까이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했다.그리고 강현수는 임유진을 뒤로 숨긴 채 그들이 그녀의 얼굴을 찍지 못하게 막았다.“고개 들지 말고 나만 따라서 와요.”강현수의 말이 들려오자 임유진은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그리고 이 느낌은 어릴 때 산속에서 헤맸을 당시와 똑같았다.날이 어두워지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당시 강현수는 일단 쉬는 게 좋겠다며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어느 동굴 안으로 들어가 이렇게 말했다.“괜찮아. 내 옆에 딱 붙어 있어. 그리고 졸리면 나한테 기대고 자. 나는 자지 않아도 되니까 네가 자면 내가 망을 볼게. 나는 너보다 담이 커서 안 무서워.”하지만 무섭지 않다고 얘기한 것 치고 그의 두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임유진은 인파 속을 뚫고 가며 그때의 기억이 떠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