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긴 한데... 좀 빠르지 않아요?”한지영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백연신의 계획대로 라면 그녀는 3개월 뒤에 미혼여성에서 기혼여성이 된다.이건 아무래도 너무 빨랐다.“그렇게 생각해?”백연신은 한지영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나한테는 아니야. 나는 솔직히 늦은 편이라고 생각해. 나는 우리가 하룻밤을 보냈던 그 날부터 언젠가는 너와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백연신은 절대 한순간의 흥미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지영과 평생을 함께할 생각이 없었다면 애초에 그날 밤을 같이 보내지도 않았을 거고 그녀를 다시 찾아오는 수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니 그에게 있어 결혼은 절대 빠른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야 결혼 얘기를 꺼내는 것이 상당히 늦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한지영은 빨개진 얼굴로 백연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숨을 한번 들이켜고는 뭔가 결심한 듯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좋아요. 우리 3개월 뒤에 결혼해요!”한지영은 말을 마친 후 먼저 그에게 입을 맞췄다.그녀 역시 결혼 상대로 백연신이 아닌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늦은 밤.고이준은 지금 불안한 얼굴로 굳게 닫힌 피의 방 문을 바라보고 있다.강지혁은 저녁을 먹은 후 이 방으로 들어가서는 6시간이나 넘었는데도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무슨 일 생기는 건 아니겠지?’고이준은 문득 이 방에 있는 장검이 생각났다.세월이 오래 지난 터라 장검이 옛날처럼 날카롭지 않았지만 사람 살을 파고들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고이준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불안해졌고 결국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손을 들어 방문을 두드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때,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강지혁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대표님.”고이준은 서둘러 강지혁의 몸부터 훑어보았다. 다행히 아무런 상처도 없는 것으로 보아 별다른 일은 없었던 것 같다.하지만 지금의 강지혁은 마치 하나의 얼음장 같아 보였다. 그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임유진과
강지혁은 저택을 봉쇄함으로써 이 저택에서 있던 일들을 모두 기억 한편에 봉인해 영원히 꺼내지 않을 생각이다.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성큼성큼 저택 밖으로 나왔다.앞으로 그는 두 번 다시 이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그의 희망과 절망이 모두 깃든 이 저택은 그의 금기가 될 것이고 한때 누나라고 불렀던 여자 역시 그의 금기가 될 것이다.....배유진은 오늘 임유진의 로펌으로 찾아왔다.임유진을 만나려고 온 것이 아닌 차정훈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기 위해서 말이다. 그녀는 인터넷에 악의적인 악플을 남기고 있는 악플러들을 고소할 생각이다.차 변호사는 그녀의 의뢰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려운 건도 아니고 배여진의 제시한 금액이 상당히 괜찮았으니까.배여진은 얘기를 마친 후 웃으며 말했다.“제가 차 변호사님한테 의뢰를 한 건 이곳에 유진이가 있어서예요. 사촌 동생이 있는 곳이면 제가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서요.”차 변호사는 웃으며 예의상의 답변을 하고는 배여진이 떠나려고 할 때 임유진을 향해 말했다.“유진 씨, 언니분 모셔다드리고 오세요.”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배여진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섰다.“유진아, 너 괜찮은 거지? 현수 씨한테 너 돌아왔다는 소식 듣고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임유진은 그녀를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았다.배여진이 하는 말이 진심일 리가 없었다. 배여진은 이대로 임유진이 돌아오지 않길 간절히 바랐던 사람일 테니까.“우리 로펌에 의뢰를 맡긴 건 솔직히 의외야.”임유진이 말했다.“뭐가 의외야. 당연히 사촌 동생이 다니는 로펌으로 와야지. 우리 가족이잖아.”배여진은 좋은 언니인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임유진은 이런 그녀가 이해가 가지 않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이미 나한테 다 들킨 마당에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가족? 정말 그렇게 생각해?”임유진은 배여진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그, 그럼 당연하지.”배여진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는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그럼 난
“고작 그거 먹고 떨어지라고? 네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않냐?”장이경은 배여진을 아래위로 훑더니 변태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보다 너 많이 예뻐졌다? 강현수가 너한테 잘해주나 봐?”“됐고, 또 뭣 때문에 온 거야?”배여진은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장이경은 얼마 전 배여진을 찾아와 돈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돈을 주지 않으면 배여진의 사진들을 인터넷에 뿌리겠다고 협박했다.그녀의 사진이라는 건 강현수를 만나기 전 화장기 없이 후줄근한 상태로 찍은 사진과 장이경과 찍었던 스킨십 사진이었다.만약 그 사진들이 인터넷에 떠돌게 되면 바로 강현수의 귀에 들어갈 것이고 톱스타가 되겠다는 그의 꿈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된다.그렇기에 배여진은 어쩔 수 없이 장이경에게 돈을 줌으로써 사진 원본을 사들였다.그렇게 일이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장이경은 그 뒤로도 계속해서 그녀를 찾아왔고 매번 다른 사진들을 가져와 협박해댔다.“뭣 때문에 왔는지 다 알고 있잖아. 돈 내놔.”장이경은 아주 당당하게 돈을 요구했다.이에 배여진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100억 줄 테니까 갖고 있는 사진 다 내놔. 만약 그 뒤로 또 찾아오면 그때는 현수 씨한테 다 말하고 널 처리해 버리라 할 거야. 나는 너한테 평생 돈 뜯기는 것보다 차라리 현수 씨가 그 사진들을 보는 게 나으니까!”장이경은 미간을 찌푸렸다.이 사실이 강현수의 귀에 들어가면 좋은 게 하나 없었다.‘뭐 100억이면 충분하지. 내가 언제 또 100억을 만져보겠어.’“좋아, 그렇게 할게.”“그럼 일단 나한테 일주일만 시간을 줘. 돈 준비해서 바로 연락할게.”장이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일주일 동안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거짓말이면 가만 안 둬.”배여진은 장이경이 떠난 후 씩씩대며 발을 동동 굴렀다.“장이경을 하루빨리 처리해야겠어! 이대로 계속 놔둬서는 안 돼. 저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나한테 해를 끼치고 말 거야! 그리고...”그녀는 손톱을
공수진은 팔짱을 낀 채 탁유미와 윤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그들을 보는 그녀의 시선에 질투심이 가득 어려있었다.공수진은 탁유미가 감방에서 아이까지 낳았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다.그리고 그 탓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공수진은 지금 어쩔 수 없이 탁유미의 아이를 대신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유미 씨, 오랜만이에요.”공수진이 먼저 말을 걸었다.“경빈 씨한테 들었어요. 윤이가 경빈 씨 아들이라면서요? 이렇게 된 거 나도 앞으로 윤이를 내 아이처럼 생각할게요.”공수진은 말을 마치고 등 뒤에 있는 기사에게 손짓을 건넸다.그러자 기사가 차에서 여러 가지 장난감 세트를 들고 걸어왔다.“이건 내가 윤이한테 주는 선물이에요. 사양하지 말고 받아요. 어디 사는지 몰라서 이렇게 직접 유치원으로 찾아왔어요.”공수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탁유미의 눈에 그 미소는 섬뜩하지 그지없었다.그때도 공수진은 이렇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그러고는 탁유미가 잠깐 눈을 돌린 사이 갑자기 계단 아래로 몸을 던졌다.‘여기는 왜 온 거지? 무슨 짓을 하려고?’탁유미는 본능적으로 윤이를 자기 뒤로 숨겼다.“목적이 뭐야?”탁유미는 잔뜩 경계한 채로 물었다.“목적이라뇨. 나는 그저 윤이한테 잘해주고 싶을 뿐이에요. 경빈 씨 아들이면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리고 조만간 정식으로 내 아들이 되기도 할 거고요.”공수진은 생글생글 웃었다.“윤이가 네 아들이 되는 날은 절대 오지 않아!”탁유미가 그녀를 노려보며 외쳤다.윤이를 어떻게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여자의 아들로 살게 할 수 있겠는가!탁유미는 마치 공수진이 아이를 유괴하려는 유괴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윤이의 손을 꼭 잡았다.“엄마, 아파요.”윤이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이는 탁유미가 왜 이렇게까지 긴장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그리고 왜 공수진이 자신을 그녀의 아들이 될 거라고 하는지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탁유미는 윤이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너무 세게 잡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더욱 화가 난 것이다.윤이가 보는 애니메이션에서 감방에 간 사람들은 전부 다 악당들이었다.그러니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예쁜 엄마가 악당들이나 가는 감방에 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공수진은 시선을 내려 윤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빛에는 분노와 경멸이 담겨있었다.특히 탁유미와 닮은 아이의 두 눈은 지금 당장이라도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였다.“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너희 엄마한테 직접 물어봐.”공수진은 다시 시선을 돌려 탁유미를 바라보았다.“설마 아이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죠?”탁유미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공수진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확신하는 윤이의 얼굴을 보면서 탁유미는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공수진 씨는 시간이 남아도나 보네요?”그때 임유진이 끼어들며 탁유미의 옆에 섰다.“전에 유미 언니 장사 망치려고 깡패들을 보냈었죠? 공씨 가문은 그런 세력과도 친분이 있나 봅니다? 요즘 깡패들 소탕한다고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인력을 투입했던데 행여 그 사람들과 친분이 있다는 걸 들키지 않게 조심하셔야겠어요. 안 그러면 공수진 씨뿐만 아니라 공씨 집안사람들 모두 감방에 갈지도 모르니까요.”공수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난 또 누구라고. 또 그쪽이에요? 그러고 보니 그쪽도 감방살이하다 나왔죠? 하하, 끼리끼리라더니 감방 동지들끼리 우애가 아주 깊나 보네요.”지난번 파티에서 임유진과 만난 뒤로 공수진은 바로 사람을 시켜 임유진의 뒷조사를 했다.임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저 감방살이하다 나온 거 맞아요. 하지만 그건 누명을 쓴 거였고 이미 재판부에서는 저한테 결백하다는 판결을 다시 내려 줬어요. 저한테 누명을 씌운 진정한 가해자는 이제라도 법의 심판을 받게 됐고요. 한번 억울하게 당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유미 언니도 누군가의 계략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공수진 씨도 그 사건에는 엮여있죠? 혹시 공수진 씨가 언니를 음해한 건 아니에요?”공수
“아까 그 이모 나쁜 사람이에요?”윤이가 물었다.“그리고 그 이모는 왜 엄마랑 유진이 이모가 다 감방에 갔다고 그래요?”탁유미는 윤이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몰라 입만 달싹거렸다.그때 임유진이 윤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차근차근 얘기해주었다.“윤이야, 감방에 갔다고 해서 다 나쁜 사람인 건 아니야. 이모도 감방에 갔다 왔지만 그건 이모가 나쁜 짓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나쁜 사람이 자기가 한 잘못을 이모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해서 그렇게 된 거야. 하지만 얼마 전에 진짜로 나쁜 사람이 잡혔고 이모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어.”윤이는 그녀의 말을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모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진짜로 나쁜 사람은 결국 잡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기에 이내 배시시 웃었다.“그럼 엄마는요? 엄마도 이모처럼 아무런 죄도 없는데 감방에 들어간 거예요?”윤이는 고개를 돌려 탁유미를 바라보며 물었다.탁유미는 숨을 한번 깊게 들이켰다.그 사건에 관련해서는 줄곧 애써 외면하려고 했었지만 그것도 오늘까지였다.탁유미는 윤이가 언젠가는 알아야 할 일을 그저 좀 더 빨리 알게 될 뿐이라고 머릿속으로 되뇌었다.“윤이야, 엄마는 죄를 지은 적이 없어. 이건 맹세할 수 있어. 아까 그 이모가 한 얘기는 전부 다 거짓말이야. 엄마는 그 이모를 다치게 한 적이 없어.”탁유미를 쏙 빼닮은 윤이의 눈이 두어 번 깜빡거렸다.윤이는 탁유미의 말을 곱씹어 보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응, 윤이는 엄마 믿어요!”윤이는 아직 어리기에 탁유미의 입에서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말이 나온 것으로 충분했다.탁유미는 아들의 말에 눈물이 글썽거렸다.그녀는 여태 자신이 감방살이한 것에 대해서 타인이 뭐라고 하든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사실이 아니니 자신만 하늘 우러러 부끄럼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윤이에게는 말해주기 싫었다. 아무리 죄가 없다고는 해도 윤이에게는 말해주기 싫었다. 자격 없는 엄마가 되기 싫었고 윤이에게만큼은 미움받고 싶지 않았으니까.윤이는
“언니도 나 힘들 때 손 내밀어 줬잖아요. 그래서 나도 그 은혜에 보답하는 거예요.”말은 이렇게 했지만 정말 탁유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그녀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특히 탁유미의 사건은 이미 5년도 지난 사건이라 아직도 유력한 증거가 남아있을지 미지수였다.임유진은 사건을 생각하다 문득 강지혁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결백을 돌려준 사람이 바로 강지혁이었으니까.만약 강지혁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어쩌면 아직도 교통사고 가해자라는 죄를 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임유진, 생각하지 마! 너랑 강지혁은 이제 다 끝났어! 그러니까 생각하지 마!’임유진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강지혁의 생각을 털어버렸다.그 시각 윤이는 창가 옆 의자에 올라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시선이 향한 곳은 탁유미 쪽이었다.“윤이 엄마 보는 거야?”옆에 있던 탁유미 엄마가 물었다.“네.”윤이는 임유진과 인사하고 포장마차 거리로 향하는 탁유미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그러다 탁유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엄마, 윤이가 꼭 엄마 지켜줄게요. 엄마가 감방에 갔다고 해도, 엄마가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윤이는 엄마 지켜줄 거예요. 윤이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니까 꼭 지켜줄 거예요!’...임유진은 탁유미와 헤어진 후 바로 로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막 자리에 앉으려는데 차정훈이 다가와 그녀에게 USB를 하나 건넸다.“이거 배여진 씨가 오늘 오전 놓고 간 물건이에요. 급히 이걸 써야 하니 유진 씨한테 지금 바로 가져다 달라고 전화가 왔어요.”“저한테요?”임유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네, 다른 일 없으면 지금 바로 가져다주세요. 주소는 문자로 보내줄게요.”임유진은 차정훈에게서 검은색의 작은 USB를 건네받았다.“오전에 상담할 때 언니가 이걸 썼어요?”임유진이 물었다.“아니요. 필요한 건 배여진 씨가 휴대폰으로 보여줘서 따로 USB를 쓰지는 않았어요.”차정훈을 말을 마친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임유진은
임유진은 현장 스태프 쪽으로 가 배여진에게 USB를 주기 위해 왔다는 소리를 하고 나서야 인파를 뚫고 배우들 대기실 쪽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배여진은 지금 한창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고 아직 옷은 갈아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가 현재 입고 있는 옷들은 전부 다 브랜드 옷이었고 그것도 로고가 크게 박혀 있는 옷들이었다. 자신이 브랜드 옷을 입었다는 것을 남들이 모를 수 없게 하려고 작정한 듯이 말이다.그리고 그녀는 반지와 팔찌도 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가격이 비싼 것들이었다.임유진은 그런 배여진을 보며 새삼 예전의 그녀와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유진아, 왔어?”배여진은 친절한 태도로 그녀를 반겼다.“여기 USB.”임유진은 배여진에게 USB를 건넸다.하지만 배여진은 바로 받는 것이 아닌 시선을 그녀의 뒤로 보내며 말했다.“내가 지금 좀 바빠. 그리고 이따 촬영도 해야 하니까 나 끝날 때까지 저쪽 대기실에서 기다려줄래? 너한테 고소장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거든. 너도 차 변호사님 아래 있으니까 잘 알 거 아니야.”임유진은 USB만 넘겨주고 바로 갈 생각이었기에 그녀의 말을 듣고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다 한숨을 쉬며 우연히 고개를 돌렸다가 엑스트라 무리 중 한 명을 보고 멈칫했다.그리고 그 상대방도 임유진을 보더니 흠칫하고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임유진의 앞으로 다가왔다.“임유진? 네가 왜 여기 있어?”“두 사람 아는 사이에요?”배여진이 물었다.“네, 알고 있어요! 잘 알죠.”여자는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힘 좀 쓸 것 같은 그런 여자였다. 그녀는 배여진을 향해 허리도 숙이고 입꼬리도 올리며 꽤 잘 보이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한낱 엑스트라에 불과했고 배여진은 강현수와 현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예계 쪽에서는 배여진이 강현수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그 소문 때문에 촬영 스태프들은 배여진을 속으로는 깎아내리고 주제를 모른다고 비웃으면서도 앞에서는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