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할 건 없지.”강현수는 물러서지 않았다.S 시의 꼭대기에 있는 두 남자가 지금 서로를 원수 보듯 노려보고 있다.“만약 유진 씨가 이곳에서 떠나기를 원하면 나는 오늘 무슨 수를 써서든 이곳에서 유진 씨를 데리고 떠날 거야.”강현수가 말했다.“이번에는 아예 손을 부러트려야겠네.”강지혁은 말을 마치고는 강현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강현수는 이런 상황이 생길 줄 이미 예상했기에 가볍게 옆으로 피했다. 두 남자는 서로 주먹을 휘두르며 싸우기 시작했다.언뜻 비등해 보였지만 강현수는 오른손에 상처를 입고 있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다.강지혁은 강현수를 빠르게 제압하더니 그의 왼손을 잡고 금방이라도 부러트릴 것처럼 뒤로 꺾었다.하지만 그때 임유진이 다가와 강지혁의 손을 꽉 잡았다.“그만해! 강지혁, 그만해!”강지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만약 내가 기어이 오늘 이 손을 부러트려야겠다면?”“사람 손 하나 부러트리는 게 너한테는 그렇게 쉬운 일이야?”임유진이 물었다.그녀는 순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손을 이렇게 만들어놨던 진세령과 소민준이 떠올랐다.그들의 한낱 가벼운 행동이 그녀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강현수를 지켜주고 싶어?”강지혁이 물었다.“그래.”임유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강현수는 이미 자신 때문에 손가락을 다쳤다. 그러니 또다시 자신 때문에 그를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강현수에게는 더 이상 빚지고 싶지 않았다.강지혁은 임유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그렇게도 강현수가 신경 쓰여?”임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약 강현수가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강현수는 어릴 적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겼던,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던 친구니까.물론 결과적으로 임유진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기억이 돌아왔음에도 그가 계속 착각하게 내버려 두었다.하지만 지난번 그 절벽에서 다시 강현수와 만났을 때, 강현수는 그녀를 구해줬다. 만약 그때 그대로 떨어졌다면 어쩌면 지금쯤 영원히 눈을 감
“꼭 약속 지킬 거니까 너도 날 잊으면 안 돼, 알겠지?”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하지만 임유진은 그 약속한 게 무색하게 너무나도 쉽게 그를 잊어버렸고 그와의 약속을 져버렸다.털썩.임유진은 강지혁에게 무릎을 꿇었다.그녀의 돌발 행동에 두 남자 모두 깜짝 놀랐다.“너...!”강지혁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강현수 때문에 무릎을 꿇어? 네가 이러면 내가 강현수를 봐줄 것 같아?!”“강현수 씨 때문이 아니야.”임유진은 깊게 숨을 한번 들이켰다.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줄곧 마음속을 헤집었던 혼란이 점차 옅어져 갔다.“너랑 나 사이의 일에 다른 사람을 끼워 넣지 마. 날 사랑한다고 했지? 하지만 나는 네 사랑이 감당이 안 돼. 그러니까 강지혁... 이제 그만 날 놓아줘.”“널... 놓아달라고?”강지혁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이제까지 중에서 제일 어둡게 변했다.그는 그녀가 무릎을 꿇는 게 그녀를 놓아달라는 이유가 아닌 차라리 강현수 때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건지 알아?”강지혁은 강현수를 풀어주고 고개를 돌려 임유진을 내려다보았다.“알아.”임유진의 짤막한 두 글자에 강지혁은 순간 누군가가 총이라도 맞은 것만 같았다.그녀에게 모든 걸 다 주겠다고 했는데, 발등에 맹세까지 하며 충성을 바치겠다고 했는데 임유진은 지금 무릎을 꿇고 자신을 놓아달라고 말하고 있다.“임유진, 너한테 나는 대체 뭐였어? 대체 뭐였냐고!”강지혁은 그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수가 울부짖듯 원망과 분노가 가득 섞인 채로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그녀는 어떻게 이렇게도 쉽게 놓아달라고 할 수 있는 거지? 또 어떻게 이렇게도 쉽게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거지?임유진은 고개를 들어 아무런 감정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너랑 나는 애초부터 만나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 너는 그때 나를 구해주지 말았어야 했고 나도 너를 집에
하지만 임유진은 아니었다.그녀에게는 그와 만난 것이, 그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그저 단순히 일어나서는 안 될 ‘착오’에 불과했다.모든 걸 다 내줄 정도로 사랑한 여자가 지금은 무릎을 꿇고 놓아달라고 하고 있다.세상에 이것보다 더 잔인한 일이 또 있을까?“그래. 놓아줄게.”강지혁의 입에서 해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이 순간부터 너랑 나는 철저하게 모르는 남인 거야.”두 사람은 이제 연인도 아니고, 누나 동생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그런 사이다.두 사람은 결국 얼마나 길게 뻗어도 결코 만날 수 없는 그런 평행선 같은 사이었다....강현수는 임유진을 데리고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집 안은 먼지가 조금 쌓인 것 외에 큰 변화는 없었다.“강지혁한테 무릎까지 꿇을 필요는 없었어요.”강현수가 말했다.“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 상황을 벗어나게 할 수 있었어요.”임유진은 쓰게 웃었다.어제 강지혁은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오늘은 도리어 그녀가 강지혁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물론 두 사람이 원하는 건 정반대였다.한 사람이 원하는 건 사랑이었고 다른 한 사람이 원하는 건 자유였으니까.“오늘 고마웠어요. 하지만...”임유진은 복잡한 얼굴로 그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다행히 강지혁은 강현수의 왼손을 부러트리지 않았다.만약 정말 부러트렸으면 임유진은 강현수를 향한 죄책감이 더 커졌을 것이다.“나 때문에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어요.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현수 씨를...”“좋아하지 않는다고요?”강현수가 대신 대답했다.“물론 오늘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내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1년 뒤에도, 2년 뒤에도, 심지어 10년, 20년 뒤에도 그럴까요?”임유진은 흠칫했다.“나는 유진 씨를 기다릴 수 있어요. 유진 씨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이상 나는 계속 이렇게 기다릴 거예요.”“만약 내 마음이 평생 바뀌지 않는다면요?”임유진의 질문에 강현수는 미소를 지었다.“그럼 평생 서로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강현수가 떠난 후 임유진은 그제야 자신의 휴대폰이 아직 강지혁에게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저택에 갇혔을 때 강지혁은 제일 먼저 그녀의 휴대폰부터 가져갔고 그 뒤로 임유진은 휴대폰을 볼 수가 없었다.휴대폰 때문에 다시 강지혁을 찾을 수는 없으니 내일 새로운 휴대폰을 사고 유심도 바꿔야 했다.하지만 새로운 휴대폰으로 바꾸게 되면 그만큼 돈이 들었다.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임유진은 강현수가 다시 온 건가 싶어 별다른 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그러나 거기에는 강현수가 아닌 고이준이 서 있었다.“임유진 씨 휴대폰입니다. 대표님께서 돌려주시라고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고이준은 임유진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그리고 임유진이 휴대폰을 건네받은 다음 고이준은 별다른 말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임유진은 문을 닫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휴대폰 전원을 켜보니 아직 배터리가 조금 남아있었다. 그리고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와 있었다.제일 많게는 한지영이었고 일부는 로펌에서 온 것이었다.임유진은 무사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 한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지영은 드디어 걸려온 임유진의 전화에 흥분해서 물었다.“너 나왔어? 괜찮은 거야? 강지혁은 대체 널 어디로 데려갔던 건데? 너한테 이상한 짓은 안 했고? 너 지금 어디야?!”쏟아지는 질문에 임유진은 그녀의 걱정이 느껴져 미소를 지었다.“응, 나 괜찮아. 그리고 강지혁은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야.”“그게 무슨 뜻이야?”한지영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강지혁이랑 나랑 이제 더는 볼 일 없다고.”“너...”임유진의 목소리는 분명 평온하기 그지없었지만 한지영은 왠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만 같았다.“너 정말 괜찮은 거야...?”“응, 정말 괜찮아. 나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고 얘기해주려고 전화 한 거야. 앞으로 이런 일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 배터리가 된 것 같아. 그럼 이만 끊을게.”임유진은 전화를 끊은 후 휴대폰을 다시 확인했다.휴대폰은 강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다시 헤어지게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난번은 강지혁이 헤어지길 원했고 이번에는 임유진이 헤어짐을 원했다는 것이다.두 사람은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 지도 모른다.“이제는 정말 너를 잊을 때가 된 거야.”임유진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다음날.한지영은 퇴근하자마자 임유진을 찾아갈 생각으로 서둘러 가방과 외투를 챙겼다.어제 임유진에게서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한지영이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타려고 하던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한지영 씨죠?”말을 걸어온 사람은 웬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였다. 그 여자는 가을 신상 컬렉션을 몸에 두른 채 시선을 조금 아래로 하고 한지영을 내려보았다.“누구세요?”“고유정이에요. 백연신 씨 결혼 상대이기도 하고요. 연신 씨랑 만나신다면서요? 그래서 얼굴이나 볼까 하고 왔어요.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분명히 의견을 묻고 있었지만 말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한지영은 정략결혼이라는 말에 눈썹을 치켜세웠다.‘결혼? 연신 씨한테 그런 말 못 들었는데? 흠... 뭐가 됐든 지금 이 상황은 그러니까 연적이 날 찾아온 거네? 잠깐, 이 여자를 연적이라고 할 수나 있나?’한지영은 머릿속은 지금 많은 생각들로 넘쳐났고 한순간에 그녀에게 무시당한 고유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앞으로의 계획이 아니었으면 고유정은 이런 곳에서 한지영에게 시간을 쏟지도 않았을 것이다.‘이렇게 평범한 여자가 뭐가 좋다고, 쯧.’“이봐요. 얘기할 수 있냐고요.”고유정이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좋아요. 근처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는데 거기로 가요. 아, 커피값은 그쪽이 계산하세요.”한지영은 이런 여자와 얘기하는 것에 굳이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볼 일이 있어 찾아온 건 고유정 쪽이니 말이다.그리고 고유정은 한지영이 커피 한잔 마시는 것에도 돈을 아까워하는, 별 볼 일 없는 여자라고 생각해 더욱더 그녀를 얕잡아 보았다.“앞
한지영은 눈을 깜빡이더니 휴대폰을 들어 해진 그룹을 검색하기 시작했다.이에 고유정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해진 그룹을 모른다고? 진심으로?’고유정은 이런 상황이 전개될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해진 그룹이라고 얘기하면 당연히 화들짝 놀라며 그녀의 눈치를 볼 줄 알았는데 한지영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놓고 검색까지 해댔다.한지영은 인터넷으로 해진 그룹에 관해 한번 쓱 훑어보더니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고 웃음을 지었다.“고유정 씨가 누군지 이제 잘 알겠네요. 방금 조만간 연신 씨랑 약혼식을 올릴 거라고 했나요? 그렇다는 건 아직 약혼을 한 건 아니라는 소리네요? 그리고 백씨 가문에서 점 찍어둔 연신 씨 미래 와이프라는 건 백씨 가문의 뜻이지 연신 씨 뜻은 아니라는 소리고요. 그러니까 종합해 보면 고유정 씨는 연신 씨랑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는 뜻이 되네요?”한지영은 백연신에게 미리 정해진 짝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분명 아직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녀는 아주 당연하게 백연신을 믿고 있었다.어쩌면 이런 게 사랑의 힘일지도 모르겠다.고유정은 틀린 거 하나 없는 한지영의 말에 이를 바득바득 갈며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확실히 한지영의 말처럼 결혼은 단지 고씨 가문과 백씨 가문의 어른들 사이에서 얘기가 오고 간 것일 뿐 백연신은 이에 동의한 적이 없다.“참, 제 소개를 안 했죠?”한지영은 목을 가다듬고는 어깨를 쭉 편 채 고유정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안녕하세요. 저는 한지영이에요. 연신 씨의 공식 여자친구죠! 아까 공식 여자친구인 저한테 조용히 사라지라고 했었나요? 아무것도 아닌 그쪽이 그런 말 하는 거, 솔직히 웃긴 거 아시죠?”고유정은 당돌한 자기소개에 코웃음을 치고는 한지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됐고, 액수 불러요. 얼마면 연신 씨 옆에서 떨어질래요?”그 말에 한지영의 두 눈이 반짝였다.드라마 속에서나 봤던 장면을 자신이 직접 겪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드라마에서는
한지영의 말대로 고유정은 애초부터 10억을 줄 생각 따위 없었고 그저 한지영과의 대화가 필요했을 뿐이다. 백연신에게서 한지영을 떨어트려 놔야 했으니까.하지만 한지영은 생각보다 똑똑한 여자였고 그녀의 의도를 금세 알아챘다.그때, 한지영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한지영이 휴대폰을 집어 들어 화면을 보니 발신자는 백연신이었다.“어디야?”통화버튼을 누르자 백연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카페요. 연신 씨 집안이 점 찍어둔 연신 씨 미래 와이프랑 얘기 나누고 있어요. 해진 그룹 딸이라는데요?”한지영이 태연한 목소리로 답했다.“뭐?”백연신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그 여자가 널 찾아갔어? 너한테 이상한 짓은 안 했고?!”“돈을 줄 테니 연신 씨 옆에서 사라져달라는데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거짓말 같아요. 돈을 줄 생각이 없어 보이거든요.”고유정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오늘 그녀의 계획은 하나도 제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러니 이대로 계속 여기 있어봤자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고유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오늘 일 반드시 후회해줄 거야!’라는 눈빛으로 한지영을 쏘아보고는 씩씩대며 자리를 벗어났다.한지영은 계속 통화하다가 고유정이 걸어가는 걸 보고는 큰소리로 외쳤다.“아, 커피 잘 마셨어요!”이에 고유정은 자리에 우뚝 멈춰서더니 고개를 돌려 한 번 더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완전히 카페를 나가버렸다.“무슨 소리야?”전화기 너머로 그 소리를 들은 백연신이 물었다.“별거 아니에요. 커피값을 고유정 씨가 냈거든요. 그래서 보내기 전에 잘 마셨다고 인사했어요.”백연신은 그 말에 순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역시 한지영은 한지영이었다.사실 아까 고유정이 그녀를 찾아왔다는 걸 들었을 때는 한지영이 괜한 오해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불안했었다.하지만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듯했다.“데리러 갈까?”“아니요. 사실 퇴근하고 바로 유진이한테 가기로 했었거든요. 유진이 집에서 나오면 다
“강지혁이 그냥 널 거기에 가두고만 있었다고? 너한테... 이상한 짓은 안 했고?”한지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응, 안 했어.”임유진의 답에 한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완전히 미친놈은 아니네.”한지영은 곧바로 뭔가 떠오른 듯 또다시 물었다.“참, 어제 강지혁이랑 더는 볼 일 없다고 했던 건 무슨 말이야? 너희 둘...”“말 그대로야. 앞으로 더 이상 강지혁이랑 볼 일 없어. 전에 말했던 누나 동생 놀이도 완전히 끝났고. 이제는 정말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남이 된 거지.”임유진은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그 평온한 표정이 한지영에게는 전혀 평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한지영은 강지혁이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임유진에게 큰 상처를 줬으니까.하지만... 강지혁과 임유진이 이제는 완전히 남이 됐다고 하니 어쩐지 가슴이 욱신거렸다.어쩌면 한지영은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임유진이 강지혁과 다시 잘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모른다.“세상에 남자가 강지혁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뭐. 잘됐어. 너는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을 거야!”한지영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임유진은 그 말에 그저 담담하게 웃어 보이기만 했다.한지영은 강지혁과 완전히 끝난 지금 임유진이 이대로 연애를 포기하고 혼자 살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그리고 임유진은 그런 그녀의 걱정을 정확히 눈치채고 있었다.솔직히 임유진은 혼자 살게 되는 것에 큰 두려움은 없었다. 심지어 이대로 죽을 때까지 혼자여도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감정에 휘둘려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는 기분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으니까.“맞다. 너 강현수랑은 어떻게 된 거야?”한지영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파티장에서 손가락이 골절된 채로 임유진을 찾으려고 하는 그 모습이 아직 눈에 훤했다.한지영은 강현수가 임유진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임유진은 그간 강현수와의 일들을 한지영에게 전부 다 얘기해주었다.한지영에게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