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이를 향한 박윤찬의 마음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미 실제 행동으로 주도권을 행사하지 않았는가?게다가 친한 친구와 고작 이런 이유로 얼굴을 붉힐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선물을 빙자하여 자신의 흑심을 드러내는 행위는 한 남자의 마지노선을 건드리기 충분했다.다행히 지난번에 송재이와 한번 헤어지고 나서 그는 좀 더 이성적으로 변했다.결국 날뛰는 감정을 억누르려고 애를 썼다.“혹시 옥 펜던트의 유래에 관해 들은 게 있어?”설영준은 대수롭지 않은 척 송재이에게 물었다.송재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옥 펜던트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정말 몰랐다.설영준은 침묵을 지키더니 당분간은 비밀로 하기로 했다. 굳이 이런 일로 재결합한 지 얼마 안 된 두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주기 싫었다.다음 날, 그는 결국 박윤찬에게 전화를 걸었다.박윤찬도 이미 퇴원했는지라 밖에서 만나기로 했다.두 남자가 송재이 때문에 직접적으로 대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설영준도 본론부터 꺼냈다....카페 한구석, 앞에 놓인 커피가 이미 싸늘하게 식어갔다.설영준은 박윤찬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옥 펜던트를 왜 재이한테 선물한 거죠?”커피잔으로 향하던 박윤찬의 손이 멈칫하더니 다시 내려놓고 싱긋 미소를 지었고, 상대방의 직설적인 말에도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고작 펜던트일 뿐인데, 단지 평범한 선물에 불과하죠.”“선물?”이내 싸늘한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윤찬 씨도 알다시피 어머님께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옥 펜던트일 텐데?”박윤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하지만 딱히 의미를 부여해서 재이 씨에게 선물한 건 아니에요. 단지 재이 씨 취향일 것 같아서...”설영준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재이를 향한 윤찬 씨의 마음은 나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송재이는 이제 내 여자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네요.”박윤찬이 착잡한 눈빛으로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영준 씨, 인정합니다. 비록 재이 씨를 좋
성수연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설영준의 의도와 당혹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송재이를 단숨에 눈치를 챘다.이내 속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무엇보다 아들을 떠올리면 울화통이 터졌다.그렇게 똑똑하다는 사람이 송재이와 설영준이 만나는 걸 뻔히 아는 상황에서 옥 펜던트를 선물할 줄이야! 심지어 설영준에게 꼬리까지 잡히다니.설영준이 마련한 저녁 식사 자리는 본인을 제외하고 다들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식사를 마치고 나서 성수연은 모셔다드리겠다는 설영준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했다.두 사람과 작별 인사하고 차에 타자마자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박윤찬에게 전화를 걸었다.“이 자식아, 이제 눈에 뵈는 것도 없어? 사고 치려고 작정한 거야?”이내 대뜸 야단부터 쳤다.박윤찬이 전화를 받자마자 입을 열기도 전에 어머니의 호통 소리부터 들려왔다.그는 마치 이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미소를 살짝 지었다.“엄마, 우선 진정하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박윤찬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머니를 다독였다.성수연이 연신 심호흡하며 화를 애써 가라앉혔다.“듣고 있으니까 말해!”“옥 펜던트를 송재이한테 선물한 건 사실이에요.”그가 솔직하게 말했다.“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송재이는 설영준의 여자야! 화를 자초하고 싶어 환장했어?”성수연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잠깐의 침묵을 끝으로 박윤찬이 느긋하게 말했다.“엄마, 송재이와 설영준이 무슨 사이인지 저도 알아요. 하지만 진짜 단순한 친구로서 옥 펜던트를 선물한 거라 전혀 다른 뜻이 없었어요.”“친구? 그게 무슨 친구지? 그냥 깽판 치는 거면 몰라도!”성수연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이내 휴대폰 너머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엄마, 걱정해 주셔서 고맙지만 제가 송재이를 좋아하는 걸 알고 계시잖아요. 단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내 마음을 보여줬을 뿐이에요.”성수연은 한숨을 내쉬더니 머리끝까지 차오른 화가 서서히 가라앉았다.“윤찬아, 넌 똑똑한 아이잖아. 엄마가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밤이 되었다.아까 레스토랑에서 성수연과 옥 펜던트 사건 때문에 송재이는 딴생각에 정신이 팔려 입맛이 별로 없었다.두 사람 모두 배불리 먹은 건 아닌지라 이제 슬슬 허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 한 시라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설영준은 뒤돌아서 계단으로 올라가는 송재이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기분이 울적한 탓에 그녀가 말을 섞기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강제로 돌려세웠다.송재이는 계단에 선 덕분에 설영준과 키가 비슷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이때,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야식 만들어줄까?”“아니...”“같이 도와줘.”그리고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1층 주방으로 끌고 갔다.방금 외출했다가 돌아온 설도영은 집안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다.이내 침실로 가서 샤워하고 다시 내려왔는데, 그제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비록 평소에도 설영준과 송재이는 과묵한 편에 속하지만 지금처럼은 아니었다.그는 거실에 앉아 아까 사 온 과자를 먹으며 두 사람을 힐끔힐끔 관찰하기 바빴다.결국 참지 못해 먼저 입을 열었다.“형! 선생님, 혹시 싸우셨어요?”옆에 앉아 책을 보던 송재이는 그의 말에 고개를 들었고, 곧바로 호기심 어린 눈동자와 마주쳤다.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시원한 답변보다 침묵이 더 무서운 법이다.설도영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걸어갔다.설영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국수를 삶고 있었다.저기압이 따로 없는 분위기에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다가갔다.“형, 선생님이랑 무슨 일이 있었어요?”설영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힐긋 쳐다보자 설도영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이내 억지로 미소를 쥐어 짜냈다.“알았어요. 입 다물고 있으라면 조용히 해야죠, 뭐. 난 먼저 올라가서 쉴 테니까 야식은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돼요. 그럼 안녕!”말을 마치고 나서 눈치 빠르게 뒤돌아서 쏜
어떤 감정은 마음속에 묻어둘 뿐 결실을 보기 어려웠다.물론 박윤찬도 잘 알고 있다. 송재이는 설영준의 여자이며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사실 처음부터 그에게 송재이를 좋아할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다.박윤찬은 카페에 앉아 이따금 창밖을 내다보았다.화창한 날씨에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지만 기분은 괜스레 씁쓸하고 울적했다.그러다 송재이를 발견하는 순간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택시에서 내린 그녀의 주변으로 강한 바람이 불자 하얀 원피스가 펄럭거렸고, 서둘러 치맛자락을 부여잡으면서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고작 단순한 동작에도 침울했던 마음이 단번에 힐링 되는 듯싶었지만 어디까지나 한순간에 불과했다.송재이는 회전문을 통과해 카페로 들어섰고, 구석에 앉아 있는 박윤찬을 한눈에 발견했다.옥 펜던트의 의미를 파악하기 전까지만 해도 줄곧 박윤찬을 친구로 여기고 상대방도 같은 마음일 거로 생각했다.그녀는 뻔히 알면서 모른 척할 수 없는지라 비로소 허심탄회하게 터놓는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정교한 선물 상자는 다시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고, 송재이는 박윤찬의 앞에 천천히 내밀었다.“물건이 너무 귀해서 다시 돌려줄게요.”어차피 예상했던 일이라 박윤찬은 놀라울 정도로 무덤덤했다. 그리고 잔에 담긴 커피를 휘저으며 나지막이 물었다.“왜요?”“알잖아요.”송재이가 대답했다.“워낙 귀한 옥 펜던트이다 보니 저보다 더 어울리는 분한테 줬으면 좋겠어요.”물론 가격이 비싸서 귀하다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제 그의 마음까지 거절하겠다는 사실을 공식 선언한 셈과 다름없었다.박윤찬은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미소를 지으며 선물 상자를 받아들이고 무심하게 말했다.“그래요.”송재이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박윤찬의 표정을 발견했지만 마음을 받아줄 상황이 아니었다.“변호사님이랑 류지안 씨가 다시...”“우린 이미 끝난 사이죠.”박윤찬이 불쑥 끼어들었다.착한 사람끼리 만난다고 해서 끝까지 행복할 거라는 보장은 없
“윤찬 씨 생각해?”휴대폰 너머로 설영준은 송재이의 생각을 훤히 꿰뚫어 본 듯싶었다.그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갑작스러운 질문에 송재이는 제 자리에서 넋을 잃고 말았다.“응?”사실 미처 반응하지 못해 무의식중으로 되물은 거였지만 설영준에게는 제 발 저린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이내 이를 꽉 악물었다.그는 전화를 걸기 전까지만 해도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독였다.어쨌거나 따지고 보면 이건 송재이의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박윤찬이 그녀를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받은 옥 펜던트이지 않은가?게다가 옥 펜던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이제 물건을 다시 돌려줬으니 사실 그녀의 마음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그러나 설령 그를 좋아한다고 해도 친구의 고백은 쉽게 잊히는 게 아니었다.송재이를 향한 박윤찬의 마음은 일찌감치 눈치챘지만 여태껏 까밝히지 않은 이유도 바로 후환이 두려워서였다.만약 그녀가 알게 된다면 무의식중이라도 상대방을 신경 쓰기 마련일 테니까.“오늘 몇 시 퇴근이야? 데리러 갈게.”설영준이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차분한 말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송재이는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퇴근 시간을 알려주고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했다. 둘 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지라 어차피 길게 얘기해봤자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컸다.저녁 6시쯤 건물 밖으로 나오자 길 건너편에 멈춰 있는 설영준의 차가 보였다.송재이를 발견한 그는 차 문을 열고 내려와 손을 흔들었다.그녀는 무의식중으로 주변을 살피고 나서야 길을 건너 설영준의 앞으로 재빨리 걸어갔다.설영준의 눈살이 잔뜩 찌푸려졌다.“다른 선생님의 눈에 띌까 봐 걱정돼?”그가 이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일 줄 몰랐던 송재이는 즉시 부인했다.“아니야.”설영준은 콧방귀를 뀌더니 돌아서서 차 문을 열었다.그리고 둘 다 차에 타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이제 우리가 무슨 관계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설령 숨기려고 해도 이미 늦었어.”지난번에 설영
산에 오르니 역시나 쌀쌀했다. 두꺼운 외투를 입었음에도 송재이는 두 손으로 옷을 단단히 여미었다.설영준은 그녀가 추워한다는 것을 눈치챈 듯 손을 뻗어 자연스럽게 품에 끌어안았다.두 사람을 제외하고 산에 다른 커플도 군데군데 보였다. 송재이는 그들을 훑어보다가 다시 설영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순간, 이루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왔다. 그동안 좋아하는 사람과 여느 커플처럼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가장 대중적이고 무난한 생활이야말로 영원한 사치일 줄 알았지만 지금은...그녀는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무슨 생각해?”설영준은 송재이의 감정 변화를 알아차리고 넌지시 물었다.이내 코를 훌쩍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대답이 들려왔다.“응? 아니야.”설영준이 피식 웃었다.“설마 별을 처음 보는 건 아니겠지?”이번에 송재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당연하지. 어렸을 때 자주 봤어.”어린 시절을 언급하는 송재이의 말에 설영준은 흠칫 놀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옛날 일을 자주 얘기하는 편은 아니잖아.”뜻인즉슨 알려 줬으면 한다는 건가?송재이는 그동안 설영준이 자신의 과거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먼저 언급하지 않았고, 지금처럼 흥미진진한 반응을 보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송재이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그제야 대답했다.“어렸을 때 엄마가 살아계실 적...”단 한 마디로 설영준은 그녀가 왜 말을 아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왜냐하면 어머니와 관련된 일이었고, 어머니라는 존재는 곧 송재이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엄마는 날 데리고 시골로 가서 피서했는데 단순한 일상이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졌어. 낮에는 엄마를 따라 강에 가서 물고기를 잡았고, 밤에는 지붕에 앉아 별을 봤는데 시골은 공기가 워낙 맑아서 미세먼지 따위 없었기에 별이 엄청 잘 보였어. 엄마는 성격이 좋을뿐더러 박학다식한 편이라 별을 보면서 이
송재이가 이원희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녀는 여전히 학교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우선 그녀가 가장 조심해야 할 건 무엇일까?송재이와 문예슬은 이미 완전히 사이가 틀어진 사이였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접점이 생길지는 송재이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송재이는 이원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네, 조심할게요.”이원희는 진심으로 송재이가 걱정돼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영준을 갖고 싶어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던 문예슬이 완전히 본모습을 드러냈으니 말이다.설영준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원희의 호기심이 다시 발동했다.“지금 설 대표님이랑은 잘 지내고 계시죠?”며칠 전, 설영준과 함께 언덕 위에서 별구경을 했던 그 밤이 송재이에게는 아주 특별했다. 잠시 입술을 깨물던 송재이가 입을 열었다.“저랑 영준 씨... 정말 잘 지내죠.”설영준이 송재이에게 얼마나 마음을 쓰는지 이원희는 다 알아볼 수 있었다.특히 송재이가 구치소에 갇혔을 때, 설영준은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다녔지만 뒤에서는 송재이를 빼 내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그와 박윤찬이 아니었다면 송재이가 그렇게 이른 시일 안에 구치소를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다.송재이는 이미 문예슬이 다시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것에 대해 각오를 하고 있었다. 역시나 하루가 지나자 문예슬이 점심 무렵에 건물 아래에 와 있었다.“재이야, 시간 괜찮아? 같이 점심이라도 먹으러 갈까?”지금 송재이는 문예슬을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이제 송재이는 억지웃음을 지으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문예슬의 말을 듣는 순간, 표정을 굳힌 송재이가 그 자리에서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 싫어. 약속이 있어서.”송재이가 자신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뻔히 보아낼 수 있었지만 문예슬은 여전히 얼굴에 철팔을 깔고 뻔뻔하게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송재이는 자동반사적으로 문예슬의 손을 뿌리쳤다.“이미 약속이 있어서, 미안해.”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는 송재이의 말투와 표정
송재이 역시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그녀가 건물 1층으로 내려온 이유도 식사를 위해서였다. 다만 중간에 문예나라는 방해물이 등장해 불쾌한 일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금방 잊어버렸다.근처 식당으로 가 밥을 먹던 중 우연히 동료 두 명을 만났다.평소에 그다지 친하게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함께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며 꽤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송재이의 기분은 문예슬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송재이와 헤어진 후, 문예슬은 직접 차를 몰고 남도 시내를 쭉 돌아다녔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는 못 돌아갈 것 같았다.지난번에도 설영준의 지사에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후로 다시 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문예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민효연....민효연에게서 온 메시지를 받은 설영준은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아직 그 둘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건 아니었지만 설영준에게서 민효연은 이미 믿음을 잃은 지 오래였다.민효연이 또 무슨 일로 자신을 찾는지 설영준은 알 수 없었다.역시나 민효연에게서 온 메시지가 심상치 않았다.“설 대표, 재이 씨랑 헤어졌어? 남도로 출장 왔는데 재이 씨가 박윤찬 차에 타는 걸 봐서. 두 사람이 막 웃고 떠드는 게 엄청 친해 보이더라. 재이 씨는 남녀관계에 엄청 개방적인 편이신가 봐. 대표님이랑 박윤찬이 절친이라는 걸 뻔히 아는 사람이 두 사람 사이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왔다 갔다 하잖아. 내가 재이 씨를 너무 과소평가했나?”이 말은 마치 송재이에게 “줏대 없는 여자”라는 꼬리표를 직접 단 것과 다름없었다.설영준이 빠른 속도로 답장했다.“안 헤어졌습니다. 재이가 윤찬이 차에 탔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고요.”이 말의 숨겨진 뜻을 해석해 보자면 송재이는 아직 내 사람이니 민효연이 자신의 앞에서 그녀의 험담을 더 늘어놓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고 경고 중이었다.민효연은 지금 설영준이 송재이를 감싸주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설영준은 자신의 소유물을 항상 지나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