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리의 마지막 그 한마디는 팩트이긴 하지만 그녀의 사심을 담고 있기도 했다.송재이가 사고를 당한 후 설영준이 얼마나 애타게 걱정했는지는 지나가는 멍청이도 다 알아볼 지경이었다.그가 이토록 초조하게 송재이를 걱정하는 걸 봐서 서유리는 측은지심이 발동해 몰래 그를 도와줬다.서유리의 말을 들은 송재이는 고개를 돌리고 설영준을 쳐다봤다.이때 경찰이 다가와 현장 상황을 기록하려 했다.송재이가 이제 막 협조하려 하는데 설영준이 덥석 가로챘다.“재이 지금 상처가 심해서 병원부터 가봐야 해요...”“잠시만요.”차 문을 닫으려 할 때 방금 팀을 이끌고 돌진해오던 형사팀 팀장이 앞으로 다가와 납치범한테서 수색한 휴대폰을 꺼내 두 사람에게 보여줬다.“두 분 이 사람 알아요?”“주현아??”“주현아...”설영준과 송재이는 거의 동시에 그녀의 이름을 말했다.송재이는 좀 전에 납치됐을 때 납치범들이 고용주와 연락했던 일이 떠올랐다.그러니까 그들이 연락한 사람이 바로 주현아였단 말인가?송재이는 설영준을 힐긋 쳐다봤다.설영준은 사색이 된 채 이를 악물었다.어쨌거나 그의 전 약혼녀였으니 지금 과연 무슨 느낌일까?‘근데 주현아 씨 해외 나간 거 아니었어?’‘언제 돌아왔대?’‘왜 오자마자 나한테 이런 짓을 벌이는 거냐고?’송재이가 묵묵히 생각했다. 옆에 있던 설영준은 안색이 섬뜩하리만큼 짙어지고 지나가는 파리 새끼도 그가 내뿜는 한기에 얼어 죽일 기세였다.지금 이 순간, 그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송재이는 납치를 당한 피해자로서 경찰에게 자신의 납치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다른 사람들은 전부 옆에서 기다리며 그녀가 진술하는 섬뜩한 납치 과정을 듣고 있었다.진술을 마치고는 곧장 병원으로 실려 갔다.다행히 전부 외상이라 붕대를 감고 찰과상에 바르는 약과 소염제를 챙겨서 병원을 떠났다.“일단 경주에서 몸 회복해.”돌아가는 길에서 설영준이 갑자기 한 마디 내던졌다.“아니, 괜...”송재이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의 따가운
송재이는 단순히 1층 거실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아서 2층으로 올라갔을 뿐이다.그녀는 지금 기분이 별로였다.좀 전에 납치되고 난 이후로 그녀를 납치범의 손에서 구해준 것도 설영준이고, 교장에게 대신 휴가를 신청받은 것도 설영준이니 한순간 어떻게 그를 마주해야 좋을지 몰랐다.두 사람은 분명 헤어진 사이인데 왜 항상 깔끔하게 끝내지 못한 기분이 들까?생각만 해도 우울할 따름이었다.애초에 이곳에서 이사 나갔을 때 이미 모든 물건을 챙겨가서 지금 방 안에는 설영준의 옷밖에 안 남았을 것이다...적어도 송재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하지만 옷장을 대충 열어보았는데 뜻밖에도 안에는 설영준의 셔츠와 정장 바지가 가지런히 놓여있을 뿐만 아니라 여자 옷도 꽤 많이 걸려 있었다.전부 이 시즌에 맞는 최신상 옷들과 치마, 심지어... 속옷까지 들어 있었다.그녀는 살짝 못 믿겠다는 듯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설영준이 만약 정말 집안에 여자라도 숨겼다면 감히 송재이를 데리고 별장에 들어올까?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절대 없다!“뭐해?”이때 뒤에서 불쑥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송재이는 놀라서 몸을 움찔거렸다.그녀는 오늘 설영준이 어떻게 자신이 납치당한 줄 알고 현장까지 찾아왔는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그토록 급박한 순간에 사람들을 거느리고 와주니 마음속으론 너무 고맙고 감동스러울 따름이었다.둘은 지금 아무 사이도 아닌데 설영준이 여전히 위험한 순간마다 나타나 주니 어찌 됐든 그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옷장에 가득 찬 여자 옷들을 본 순간 마음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아니야 아무것도.”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옷장 문을 닫은 후 머리를 푹 숙이고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설영준은 그녀가 기분 상한 걸 바로 알아챘다.직감이 말해주길 오늘 발생한 일 때문은 아닌 듯싶었다.그는 방금 송재이가 닫았던 옷장 문을 힐긋 보더니 가까이 다가가 다시 열었는데 안에 여자 옷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설영준은
이제 막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되살아나려 했는데 순식간에 수포가 되었다.이 남자는 말 그대로 병 주고 약 주는 타입이다.설영준은 어디서 그 많은 힘이 남아도는지 그녀를 번쩍 들어서 어깨에 둘러업었다.송재이는 머리가 아래로 향해서 그가 드디어 놓아주자 머리카락도 잔뜩 헝클어지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왜 이래 정말? 나 집에 갈 거라고!”한편 설영준은 그녀를 떼쓰는 어린애처럼 힐긋 쳐다보며 말했다.“꼼짝 마. 약 바르게.”송재이는 흠칫 놀랐다.방금 2층에 올라간 이유가 그녈 위해 약상자를 가지러 간 거라고?송재이는 다시 고개를 들어 이 남자의 한없이 짙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그는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나한테서 벗어나지 못해 안달이네 아주? 옛 감정이 되살아날까 봐 두려운 거야? 네가 원한대도 내 쪽에서 좀 더 고민해봐야 하거든.”설영준은 느긋하게 말했지만 이걸 들어야만 하는 송재이는 울화가 굴뚝 치밀었다.“설영준 씨, 착각하지 마! 스읍...”‘이 남자가 지금 일부러 나한테 복수하는 거야?’그는 면봉으로 그녀의 팔꿈치에 난 상처를 닦아줄 때 힘을 좀 더 가했다.송재이는 너무 아파서 이를 꼭 깨물었다.“진짜 이러기야?”“그래. 아파봐야 정신 차리지.”송재이는 본능적으로 손을 빼내려고 했다.하지만 그가 워낙 세게 잡고 있다 보니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설영준은 그녀의 두 눈을 빤히 쳐다보며 잔뜩 정색한 표정을 지었지만 입을 여는 순간 한없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살살할게.”“...”그의 변덕스러움에 송재이는 입이 쩍 벌어졌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계속 말했다.“약 다 바르면 진짜 갈 거야. 여기 안 있어.”“위층에 있는 여자 옷 때문에 그래?”설영준이 약을 발라주며 머리도 안 든 채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아니.”송재이가 고집을 피우며 대답했다.설영준은 또다시 그녀를 힐긋 보더니 은은하게 경멸의 미소를 지으며 야유했다.“고집 피우긴!”“이 손 놔. 너 필요 없어...”“그 옷들 입
한편 송재이는 그날 밤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남도로 돌아갔다.그녀는 설영준에게도 안 알렸고 다른 그 누구에게도 안 알렸다.이번에 경주에 돌아와서 발생한 일들은 마음을 차분하게 식힌 다음 다시 되새겨보면 그리 무서울 일도 아니다.설영준은 낯선 사람 대하듯 그녀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꽤 신경을 많이 써주고 있었다.수년간의 고달픈 짝사랑인 줄 알았는데 결코 그녀만의 원맨쇼가 아니었다. 송재이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한편 배후에서 모든 걸 조종하는 사람은 바로 주현아였다.주현하는 늘 위험한 캐릭터였다. 심지어 송재이의 아이를 떼어내려는 잔인하고 섬뜩한 짓도 벌였었다.그런 그녀가 다시 돌아왔는데 송재이는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하지만은 않았다.지난번에 주현아를 법의 제재를 받게 하지 못했다.하지만 이번엔 과연 다시 벗어날 수 있을까?경찰 진술 과정에서도 그녀는 이미 말했다시피 무조건 고소하고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다.별다른 예외가 없다면 주현아는 이번에 썩 그리 행운스럽지는 못할 것이다....경주에서 남도까지 비행기로 고작 두 시간 정도 걸린다.송재이는 좌석에 허리를 기대고 두 눈을 감은 채 편히 잠을 잤다.그녀는 꿈을 하나 꾸었는데 꿈속에서 설영준이 딴 여자랑 꼭 껴안고 있었다.그는 한없이 애틋하고 부드러운 눈길로 그 여자를 바라봤다.두 사람의 실루엣은 송재이와 그리 멀지 않았다.근데 왜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걸까...송재이가 한참 몸부림친 끝에 그 둘도 마침내 그녀의 외침을 듣고 머리를 돌렸다.설영준의 눈가에 짜증과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한편 그의 품에 안긴 여자는 몸매가 가녀린 것 말고는 얼굴이 좀처럼 잘 안 보였다.정아현일 수도 있고 또 혹은...송재이는 심장을 후벼 파듯 아프고 괴로웠다.그녀는 드디어 벌떡 눈을 떴다.이때 마침 비행기가 착륙했다.송재이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나서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다만 머릿속엔 온통 좀전의 꿈으로 차
주말, 두 사람은 카센터를 종일 돌아보다 나중에 송재이는 천만을 주고 산타나 한 대를 사서 오후에 바로 운전해 돌아왔다.기분이 좋은지 송재이는 운전하면서 카 오디오로 음악도 틀었다.경주에 있을 때 복잡하던 기분이 어느새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밥 먹으려고 장소를 정하는 도중에 이원희가 윤수아의 전화를 받았다.학교에 일이 있어 이원희보고 학교 “학부모” 역을 해달라고 요청했다.윤수아는 여전히 이원희에게 많이 의지했고 무슨 일만 생기면 맨 처음으로 이원희에게 연락했다.이원희가 송재이에게 말했다.“유턴.”두 사람이 통화할 때 차 안이 조용해 송재이는 통화 내용을 대충 알아들었다.이원희가 말을 꺼내기 전에 송재이는 이미 윤수아 학교 방향으로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이원희를 학교 맞은편 길옆에 내려 주고 송재이는 집으로 출발했다.그때 문뜩 하늘을 보니 언제 생겼는지 먹장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바람도 불기 시작했다.불현듯 며칠 전에 봤던 최근 폭풍우가 닥칠 것이라는 뉴스가 생각났다.설마...송재이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송재이는 발에 힘을 줘 액셀을 밟으며 속도를 올려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그런데 중도에서 도로 정체가 발생했다. 차창을 반 내리고 머리를 내밀어 보니 전방에 차량이 물 샐 틈 없이 꽉 막혀있었다.머리 위에서 번개가 번쩍이던 바로 그때 마침 휴대전화가 울렸다.이럴 때 울려오는 벨 소리는 사람을 초조하게 했다.송재이는 아예 전화벨을 무시해 버리고 온몸의 신경을 집중해 운전했다.바람이 점점 거세지더니 길옆의 나무에서 나뭇잎이 우수수 날리면서 차창으로 떨어졌다.송재이가 코너를 돌려고 할 때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너무 갑작스레 발생한 일이라 송재이는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송재이의 차가 앞 차에 부딪혔다. 오늘 새로 산 차인데...접촉 사고는 큰일이 아니지만 송재이의 이마가 핸들에 부딪히면서 지끈거렸다.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머릿속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손을 내밀어 이마를 만져
박윤찬이 걸어온 전화인 것을 보고 송재이는 바로 수신 버튼을 눌렀다.“재이 씨 혹시 이원희 씨와 연락되나요? 방금 이원희 씨 이혼 사건에 관한 서류를 보다 사인을 안 한 게 있어서요. 전화해도 연락이 안 돼요.”“지금 수아네 학교에 있어요. 애들 때문에 바쁜가 봐요. 나중에 제가 알려줄게요.”송재이가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하는 중 간호사가 링거병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어디 불편한 데 없으세요?”간호사는 문을 여는 동시에 송재이에게 물으며 들어오다 송재이가 통화 중인 걸 보았다.간호사의 목소리가 높지는 않았지만 박윤찬이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박윤찬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지금 어디예요? 어디 아파요?”송재이는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가벼운 찰과상이고 뇌진탕도 그리 엄중하지 않기에 내일이면 퇴원할 수 있었다.“네. 작은 접촉 사고가 났어요.”송재이는 이마를 만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설한 그룹 사무실.설영준이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이 자세로 앉아 넋을 잃은 지 한 시간이 되었다.전에 설영준은 근무 시간에 땡땡이치는 직원이 제일 보기 싫었지만 요즘 들어 자신도 정신이 분산된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손끝에 쥔 담배가 타들어 가면서 손가락이 뜨거워지자 설영준은 화들짝 놀라면서 분산된 정신을 끌어모았다.박윤찬의 전화가 그때 걸려 왔다.“송재이 씨가 접촉 사고가 났어요...”설영준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더니 물었다.“어쩌다가?”“그렇게 긴장할 건 없고. 오늘 남도에 폭우가 내렸고 그때 마침 도로 위에 있다 사고가 났대요. 말로는 심하지 않다고 하던데...”박윤찬이 잠깐 머뭇거리더니 말했다.“제일병원에 있어요.”박윤찬은 마지막에 특별히 주소를 알려주었다.설영준이 만일 가 볼 생각이 있다면 직접 가면 그만이다....전화를 끊고 설영준은 여진에게 제일 가까운 시간대에 있는 항공권을 예약하라고 지시했다.사람들로 북적북적한 공항에 익숙한 그림자가 있었다.설영준은 시간이 급
좀 지나 설영준이 휠체어를 밀고 들어왔다.설영준과 함께 있는 동안 이런 대우를 받아보긴 처음이다.설영준은 송재이를 밀고 1층으로 내려갔다.두 사람은 병원 마당에 있는 공원에서 천천히 산책했다.햇살이 따스했고 버드나무가지가 늘어져 있었으며 가벼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불어왔다.어제까지만 해도 비바람이 사납게 불어치던 도시 같지 않았다.송재이는 설영준이 와서 갑자기 날씨가 개이고 폭풍우가 사라진 게 아닌가 하는 천진난만한 생각이 들었다.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키득거리면서 자신의 로맨틱한 생각을 비웃었다.이때 송재이는 휠체어가 멈춘 것을 느꼈다.고개를 들어보니 설영준이 길옆의 벤치에 앉아 얼굴에 웃음기가 아직 남아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왜 웃어?”이 말을 하는 설영준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져 있었지만 자신은 느끼지 못했다.햇살이 좋아 주변에 산책하는 사람이 많았다.어떤 사람은 송재이처럼 환자복을 입고 병문안을 온 사람들과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송재이가 시선을 돌리니 어떤 여자아이가 공을 차며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양 갈래 머리를 한 얼굴이 아주 귀여운 아이였다.공이 설영준의 발밑으로 굴러오자 그는 공을 힐끗 보고 달려오는 여자아이를 보더니 공을 주워 아이에게 건네줬다.“아저씨 고마워요.”여자아이는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여자아이의 등 뒤에는 환자복을 입은 여인과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따르고 있었다.“천천히 가.”여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남자는 여인의 어깨를 감싸안고 있었고 두 사람은 아주 다정해 보였다.세 식구는 평범했지만 행복해 보였다.세 사람이 지나 간 뒤에도 송재이는 세 식구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얼굴을 들고 남자와 이야기하는 여인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넘쳐흘렀다.설영준은 송재이의 시선을 느끼고 그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다.좀 지나 설영준이 말했다.“민 대표님이 나를 찾아와서 주현아를 봐달라고 했어. 하지만 내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송재이는 설영준이 이미 잊은 줄 알았는데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그 아기는 송재이가 임신한 첫 번째 아이였다.만일 태어났으면 아마 여자아이였을 것이고 방금 그 여자아이와 비슷했을 것이다.“만약에... 만약이라고 했어. 만약에 그때 내가 임신한 걸 알았다면 나보고 애 지우라고 할 거야?”송재이가 물었다.“... 모르겠어.”설영준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설영준은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고 송재이와 아이를 낳을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만일 그때 송재이가 임신한 걸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했을지 설영준 자신도 잘 모른다.송재이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설영준이 이번에 남도를 온 이유는 송재이를 만나기 위해서이다.지금 송재이를 마주하고 있지만 별다른 특별한 느낌이 없었고 도리어 말 못 할 공허감이 가슴속을 차지하고 있었다.설영준이 눈을 끔벅이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호주머니에 넣은 휴대폰이 울렸다.여 비서에게서 걸려 온 전화이다.전화를 받으면서 설영준은 송재이를 피하지 않았다.대충 짐작해도 회사 일 때문에 전화했을 것이다.설영준은 회사 대표이기에 날마다 정신없이 바빴고 계약했다하면 몇천억짜리였다.비록 송재이는 이런 설영준에게 습관이 됐지만 가끔 자기와는 다른 세상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송재이는 씁쓸하게 웃었다.설영준이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 송재이를 밀고 병실로 돌아왔다.이날 밤 설영준은 경주로 돌아가지 않고 병실에서 송재이와 함께 있었다.설영준이 옆에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송재이는 이날 밤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잤다....설영준은 자기 전에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해 놓았다.벨 소리에 자기가 깨는 건 괜찮지만 송재이의 수면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아침에 일어나보니 휴대폰을 보니 십여 개의 부재중 전화가 있었고 전부 민효연이 걸어온 것이다.그리고 몇 개는 엄마 오서희의 번호였다.설영준이 눈살을 찌푸렸고 이때 침대에 누워있던 송재이가 몸을 뒤척였다.설영준은 휴대폰을 호주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