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 시선이 떨어진 육시준은 손이 가는 대로 외투를 집어 강유리에게 건네주었다.“좋은 일도 아니고 얘기하기 싫을 수도 있잖아.”이에 강유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긴 하지만 친 아버지는 아니잖아.”그러자 육시준은 멈칫거리더니 강유리의 두 눈을 바라보며 몇 초 동안 망설였다.“그래도 그런 말 자주 하지는 마. 서운하실 수도 있어.”어찌 됐든 강유리에 대한 육시준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진심이다.게다가 육시준은 강유리 아버지의 처지를 직접 본 적이 있어 더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강유리는 옷을 건네받으며 말했다.“그래그래, 네 말이 맞아. 인제 함부로 얘기해서도 안 돼. 지금 그럭저럭 사이가 좋거든.”육시준은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전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나 봐?”그러자 강유리는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좋지 않다고 할 수도 없어.”강유리는 예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아버지에 대한 자기의 인상도 꺼냈다.한 마디로 두 사람은 그다지 가깝지 않고 늘 몇 마디 말에 의견이 맞지 않아 어색해 진다고 했다.이에 육시준은 의외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그날 밤에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두 사람 성격 많이 비슷해.”강유리는 제자리 서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으며 손에 들고 있는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조금 전 육시준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한편, 고정남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이튿날 걸려 오는 전화를 받고 급히 물었다.“어떻게 됐어? 알아 냈어?”그러자 수화기 너머 무척이나 난감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대표님, 그 차에 관한 정보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은 어젯밤 모든 감시 카메라를 피해 다녔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 쪽에서 알아낸 건 하나도 없습니다.”“병신! 병신들! 서울 전체에 감시 카메라 없는 곳이 어디 있어? 어떻게 하나도 걸리지 않고 다 피해 다녀?”고정남은 분노한 나머지 욕설을 퍼부었다.“고 대표님, 죄송
순간 애교 섞인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당황해 마지 못한 목소리만 울렸다.“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고정남은 무거운 소리로 타일러 주었다.“다른 뜻은 없다. 강씨 가문에서 너를 키워주셨잖아. 결혼하고 나서 첫 새해를 맞이하는데, 당연히 그 댁 어르신부터 찾아봬야지 않겠냐. 내일 내가 직접 데리러 갈 테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이에 성신영은 말 문이 막혔다.강미영은 강학도 따라 서재로 들어간 뒤로 이틀 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강유리가 옆에서 뭐라고 하던 뒤늦게 반응하며 대답하곤 했다.바론 공작은 정신이 다른 곳으로 가 있는 강미영을 바라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새해 이튿날 오후의 햇살은 더없이 푸근했다.육시준은 강학도와 정원에서 바둑을 두고 있으며 릴리는 강유리를 붙잡고 2층 베란다에서 웨딩 사진을 보고 있다.웨딩 사진을 보면서 릴리는 역시 멋진 신랑을 찾아야 한다면 연신 감탄했다.그리고 강미영은 소파에 앉아 손에 잡지 한 권을 들고 있는데, 10여 분이 지나도록 한 페이지도 넘기지 않았다.바론 공작은 본래 정원으로 가서 바둑 구경을 하려고 했으나, 거실을 지날 때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강미영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그 페이지가 그렇게 재미있어?”“......”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강미영은 화들짝 놀라며 어깨까지 떨었다.그러더니 순간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숙여 잡지를 보았다.“그럭저럭 괜찮네. 당신 딸 디자인 실력도 점점 느는 것 같아. 특히 신부 머리 장식품 세트에는 재기가 어려 있어.”“지난번에도 예쁘다고 했었어.”바론 공작의 목소리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그러자 강미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그때는 머리 장식품만 봤었잖아. 참, 이거 좀 봐봐. 구원의 웨딩드레스인데, 레드브라이드하고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요즘 두 회사에서 합작하고 있다던데, 아마 이 웨딩드레스가 그들의 첫 번째 작품인 것 같아......”“미영아, 여러 해 동안 합작해 오면서 난 너처럼
바론 공작이 걱정해하는 모습을 보고 강미영은 한숨을 살짝 내쉬며 덧붙였다.“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들이고 이미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어.”서울로 돌아오고 강유리의 결혼식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을 때부터 강미영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단지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뿐이고 하물며 잘못한 것도 없는 강미영이라 두려울 것도 없었다.그전까지 숨으면서 지낸 것은 전반적인 정세에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안 돼.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바론 공작은 갑자기 나지막이 말하고 난 뒤, 자리에서 일어서서 밖으로 걸어갔다.“......”이에 강미영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준비? 뭘 준비한다는 거지?’바론 공작은 고씨 가문 사람들을 싫어하고 가식적인 그 인간쓰레기를 만나서 본때를 보여줄 것이라며 수도 없이 상상했었다.하지만 단 한번도 이런 상황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본때를 보여주기는커녕 자신의 신분도 제대로 밝힐 수 없는 노릇이니 너무 분하기만 했다.하여 바론 공작은 지금, 이 상황에서 만나는 것을 싫어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정원 안의 햇살은 더없이 푸근하고 아름답다.바론 공작은 불쾌한 기분으로 한창 바둑을 두고 있는 두 사람 곁에 이르렀다.정신을 가다듬고 바둑에 집중하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도 기분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아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밖으로 나갔다.본래 신체도 우람한 편이라 나타나기만 하면 카리스마가 넘치는데, 성을 내고 있을 때 그 분위기는 더더욱 장난이 아니다.육시준과 강학도는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바론 공작이 먼저 입을 열지 않자 선뜻 물어보지 않았다.바론 공작이 전화하며 밖으로 나가자, 강학도는 그제야 육시준과 눈을 마주치며 나지막이 물었다.“쟤 왜 저래?”그러자 육시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저도 잘 모르겠는데, 이제 막 이모님과 얘기를 끝낸 것 같습니다.”이에 강학도는 손동작을 멈추더니 안색도 살짝 변했다.“......”육시준은 고개를 들어 조용히 강학도를 훑어보며
‘그래. 뭔 일 당하고 싶지 않으면 도망가는 것도 좋은 생각이야.’고정남은 오늘 갑자기 성신영과 함께 뜬금없이 강씨 가문으로 가자고 했는데, 아마 강유리를 위해 온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성신영은 예전의 성신영이 아니기에 더 이상 강유리의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왜 그래?”육경원은 고개를 돌려 성신영에게 물었다.그러자 성신여은 고개를 저으며 이와 함께 시선도 도로 거두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얼른 들어가자. 외할아버지께서 기다리시겠어.”이에 육경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JL빌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그러더니 주위를 살펴보면서 있는 듯 없는 듯 물었다.“근데 네 이 빌라 말이야, 듣기로는 성홍주가 돈을 냈다며?”“......”성신영은 순간 멈칫거리더니 육경원의 뜻을 헤아리며 조심스레 대답했다.“맞아. 나한테 선물로 준 빌라야. 내 이름으로 되어 있고 난 인제 고씨 가문 사람이라 이 빌라는 성홍주 자산 동결 범위에 속하지 않았어.”“네 이름으로 되어 있으면 너 스스로 처리할 권리도 있다는 말이네.”성신영은 그 말의 뜻을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우린 부부니깐 함께 의논하고 결정해야지. 만약 무슨 생각이라도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네 생각부터 존중해줄게.”이러한 성신영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육경원은 성신영의 손을 잡았다.“신영아, 넌 늘 이렇게 배려심이 깊어.”그러자 성신영은 안절부절못하며 웃었다.“당연한 걸 그래.”앞을 바라보며 육경원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왕소영은 너를 키워준 어머니이기에 앞으로 연락을 유지해도 상관없어. 근데 왕씨 가문 사람들은 네가 돌봐줘야 할 의무 따위는 없어.”지난번 고성 그룹 주년 행사에서 육경원은 이미 성신영에게 경고하였었다.될 수 있는 한 빠른 시일 내에 “애물단지”를 해결하라고 했다.성신영의 손에는 성홍주의 약점이 있었기에 손쉽게 성홍주를 해결했었다.그리고 왕송영 측은 그나마 말도 잘 듣고 자기를 위해 생각도 많이 해준 이유로 지금까지 손을 대지 않았다.“아직 결혼식
한편, 검은색 승용차는 JL빌라에서 천천히 나가고 있다.뒷좌석에 앉은 고정남은 등을 지그시 기댄 채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오랫동안 참아 왔던 감정으로 오는 내내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이내 컸다.마치 천국에서 지옥으로 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하지만 진정하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이런 것이 오히려 더욱 합리적인 듯싶었다.만약 정말로 강미영을 만나게 된다면 사실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할 것만 같았다.지금껏 여러 해 동안 찾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소식도 알아내지 못했으며 강미영은 응당 자기를 피해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혹은 포기하지 않고 강미영을 찾아다닌 것처럼 강미영도 그만큼 자기를 쉽게 용서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이 순간이 오기를 여러 해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며칠 늦어진다고 해서 조급하지는 않았다.강미영이 서울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지금 같은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차 세워.”고정남은 차가운 목소리로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이곳은 별장 구역이라 대문을 나서더라도 내부 도로와 거리가 있다.그들은 지금 별장 구역과 주간 도로 중간에 차를 세운 채 절대 그만두지 않겠다는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운전기사는 잠시 망설이더니 나지막이 일깨워주었다.“고 대표님, 오늘 저녁에 댁으로 돌아가셔서 사모님 곁을 지켜줘야 합니다.”그러자 고정남은 보지도 않고 말했다.“밀어.”“……”이에 운전기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고정남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고정남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냥 귀찮아한 채로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한 번 보고는 전화를 받았다.“고 대표님, 정철 어르신께서 조금 전에 나가셨습니다. 아마 박철순 씨와 약속을 잡은 것 같습니다.”그 소리를 듣고 고정남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펴고 물었다.“두 사람은 어쩌다가 약속까지 잡게 된 것이냐?”“박철순 씨께서 먼저 어르신께 연락을 드린 것으로 보입니다
바론 공작이 잠시 멍해져 있다가 물었다. “어른들을 어떻게 대하는데?”강유리가 정색하며 대답했다. “그냥 친구처럼요!”바론 공작의 얼굴에 당혹감이 가득했다. “아빠가 저보다 어른인 걸 누가 모른다고 매번 그걸 강조하시는 거 지겹지도 않으세요? 심지어 오늘은 사적인 자리라고요. 잘난 척은 넣어두시죠? 이런 식으로 저한테 간섭하시는 게 제 천성을 얼마나 구속하는데요!”“......”바론 공작은 강유리가 말한 앞의 두 문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강조하든 말든 자신이 어른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으며, 이게 사적인 만남이라는 이유 하나로딸이 이렇게 버릇없이 굴어도 된다는 말인가? 딸의 버릇없는 말에 기분이 나빠지려던 찰나에 들은 강유리의 마지막 말은 바론 공작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에 충분했다. “네 천성?”강유리가 눈을 크게 뜨고 양손을 턱 아래로 받쳐 얼굴을 치켜들더니 귀여운 모습을 했다. “네! 제 활발하고! 귀엽고! 장난꾸러기 같은 천진난만한 천성이요!”“…” 바론 공작이 잠시 침묵했다. 침묵이 길어지자 룸 안에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강유리 역시 바론 공작의 태도에 이상함을 느꼈다. 강유리에게 익숙한 장소인 데다가, 위계질서가 딱딱하게 잡혀 있는 영국 황실을 벗어났으니 아무래도 평소보다 자신을 많이 풀어버렸고 그 결과, 강유리는 눈앞에 있는 남자도 두려워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해 버린 것이다. 그게 평소였다면 괜찮았겠지만, 바론 공작의 눈빛을 계속 받고 있자니 강유리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강유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다시 제자리로 하더니 의자에 단정하게 앉았다. “장난 한 번 쳐본 건데, 안 웃기면 됐어요.”바론 공작이 낮은 목소리로 무뚝뚝하게 말했다. “너한테 이런 성향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구나.”“…” 강유리가 침묵했다. ‘이게 무슨 의미지? 지금 날 비웃는 건가?’“구속하지 않을 테니, 계속 이렇게 있어주렴. 어린아이는 이래야지.” 바론 공작이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강유리가 믿을 수 없다는
바론 공작은 육시준의 질문이 당황스러웠는지 육시준의 시선이 어디에 가 있는 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내 사업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야.”“그 말씀은 좋아하는 사람을 포기하시겠다는 겁니까?”“당연히 아니지!”바론 공작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부정했다. “어떤 사람은 사랑 말고도 등에 지고 있는 것들이 많아. 책임이나 집안의 흥망성쇠 같은 것들 말이지. 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가 신경 쓰고 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네.”“......”육시준이 눈을 치켜뜨며 바론 공작을 바라봤다. 바론 공작의 대답은 의외이면서도 어느정도 예상했던 대로였다. 하지만 그의 대답으로 인해 마음속에서 어느 정도 확신을 얻게 됐다. 강유리가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버지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동의해요.”높은 지위에 앉게 되면,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여자를 물건 취급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바론 공작은 친절한 편이었다.두 딸을 입양해 키운 것도 역시 환경과 상황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바론 공작이 고개를 돌려 깊어진 갈색 눈동자로 상기된 채 물었다. “내 의견에 동의한다고?”강유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상기된 바론 공작의 모습에 잠시 멍해졌다가 대답했다. “당연하죠! 사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그리고 아버지의 이런 생각은 정말 성숙한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인 것 같아요, 정말 대단해요!” 강유리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려 보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언니가 동의하면 나도 동의해! 성숙한 남자는 최고지!” 릴리가 옆에서 거들었다. “......”두 딸의 지지를 얻은 바론 공작의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강유리가 이렇게 이성적인 생각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육시준이 놀라 그 질문을 했던 진짜 목적도 잠시 잊었다. 옆에서 대화를 들으며 웃고만 있던 강학도가
강미영의 안목은 틀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그녀가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는 틀린 적이 없다는 것을 이제껏 과연 누가 알았을까?아래층 테이블 옆쪽. 고정남이 우연을 가장해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던 테이블의 대화를 끊었다. “도 선생님,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정말 우연이네요! 여기서 뭘 하고 계셨습니까?” “......”테이블에 앉아있던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고정남을 본 고정철이 잠시 미간을 찌푸렸지만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도 선생은 고정남을 보고 잠시 의아한 표정을 했지만 이내 웃으며 말했다. “고 사장님, 안 그래도 방금 사장님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는군요.”고정남이 신이 나서 말했다. “아? 제 이야기를요?”고정철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님이 그 땅에 관심이 참 많으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정남이 침묵했다. 도 선생과 고정철이 만나서 그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니 고정남은 자신이 마음을 바꿔 이곳에 온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정철 역시 프로젝트를 위해서 급하게 이곳으로 온 게 분명했다. “서울의 특징을 알아보고 싶어서 일부러 서울을 방문한 거라 자문을 구할 겸 담소나 나누고 있었습니다.”도 선생이 담담한 말투로 설명했지만 고정남이 듣기엔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자문이라, 자문을 구하다 프로젝트 얘기까지 나온 건가?’고정철에게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꽤 예리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고정남이 테이블 옆에 서서 자기 어필을 시작했다. “서울이라면 저도 잘 알고 있기도 하고, 저희 고성 그룹에서도 특색있는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는데 도 선생님께서 흥미가 있으시면 설명해 드려도 될까요?” 도 선생은 딱히 사람을 가리지도 않았고 오는 사람을 막을 이유도 없었다. “좋습니다, 고 사장님이랑도 자리가 있었으면 했는데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니 굉장히 영광입니다.”그렇게 말하며 직원을 불러 한 사람분의 수저를 추가로 세팅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