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표는... 받지 않을래요. 물론 새 작품도 어머님을 위해 남겨둘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단순하지만 강유리의 좌우명 같은 말이었다.게다가 시어머니라는 애매한 사이에서 괜히 신세를 지는 것도 마음에 걸렸고 행여나 이것이 LK그룹의 돈을 보고 육시준에게 접근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테스트가 아니라고 100% 확신할 수도 없었기에 덥썩 받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에서였다.‘그리고... 내가 원하는 건 내 힘으로 얻어야 제맛이지.’한편, 2층 서재의 분위기는 훨씬 더 무거운 모습이다.워낙 보수적인 육지원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효심이었으므로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했다.“할아버지 화 많이 나신 거 뻔히 알면서 달래드릴 생각은 안 하고 불난 데 기름을 부어? 우리 가문에 불효자는 필요없다. 계속 네 멋대로 하고 살 거면 나도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가만히 안 있으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너야 뭐...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강유리, 그 정도는 이 아비가 건드려 볼만 하지 않겠니?”육지원의 입에서 강유리의 이름이 나오자 육시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육지원, 육시준.살가운 부자사이라고는 절대 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언성을 높이는 일도 드물었다.보통은 효도네 뭐네 하는 레파토리가 나올 때쯤이면, 육시준이 먼저 타협하곤 했었지만, 강유리까지 건드린 이상, 그도 절대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괜히 나 때문에 유리가 더 위험해지는 건 싫어.’“사실 저한테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요.”“무슨 방법?”육지원이 미간을 찌푸렸다.“유리가 사고를 쳐서 할아버지 심기를 건드린 것도 삼촌과 아버지 사이가 껄끄러워진 것도 사실이니... 차라리 이혼하겠습니다.”이에 차분한 육시준과 달리 육지원이 발끈했다.“내가 제대로 사과하라고 했지 언제 너더러 이혼까지 하랬어?”“이혼이 더 쉽고 깔끔하죠. 그리고 제 성격 아시잖아요? 잘못한 게 없는 상황에서 마음에도 없는 사과까지 할 만큼 멍청하지
약 30분 뒤, 육시준 부자가 차례로 서재에서 나왔다.여유로운 얼굴의 육시준과 달리 육지원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 이었지만 말이다.한미연은 어떻게든 두 사람을 하룻밤이라도 집에서 재우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육지원은 중요한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2층으로 불렀다.그렇게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아들 부부를 떠나 보낸 한미연이 안방에 들어오자마자 남편을 향해 눈을 흘겼다.“아니, 당신 도대체 왜 그래요? 아들 부부가 처음 집에 온 거잖아요. 살가운 시아버지까진 아니어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할 거 아니에요! 표정은 다 썩어서는!”아내의 말에 육지원이 흠칫했다.“내 표정이 그렇게 안 좋았나?”뻔뻔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는지 한미연이 코웃음을 쳤다.“당신의 그 복잡한 집안 사정, 난 이해하길 포기한 지 오래예요. 그리고 난 유리가 마음에 드니까 괜히 반대할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당신 아들한테 화를 내세요! 괜히 시댁까지 와서 잔뜩 기죽어 있는 애한테 화풀이 하지 말고.”수십 년간 부부로 살다보니 이제 척하면 척.한미연은 딱 봐도 아들과의 말싸움에서 한방 먹은 게 분명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남편을 향해 쏘아붙였다.‘하여간 나이를 먹어도 철이 안 들어.’“그래.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나도 마음에 드는 것 같아.”육지원이 어딘가 다급해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결혼식... 최대한 빨리 올리라고 해. 당신이 애들 준비 좀 도와줘.”남편이 갑자기 이 결혼에 이렇게 적극적인 데는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 한미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따져물었다. “아니, 식사 내내 뚱해 있던 사람이 왜 갑자기 변덕이에요? 솔직히 말해 봐요. 아까 시준이랑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한 거예요?”“...”의심 가득한 아내의 질문에 육지원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 아들이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아니, 나도 유리 마음에 든다니까. 그러니까 얼른 결혼식 올리라고 해. 최대한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야. 너한테 꼭 전해다달라고 하시더라.”어리둥절한 표정의 강유리를 위해 육시준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설마...’역시나 봉투를 열어보니 방금 전 그녀가 거절했던 백지수표와 ZJ에스테틱 회원카드가 들어있었다.ZJ에스테틱, 재벌가 사모님들이 가장 애용하는 곳, 철저하게 회원제로 운영되고, 새로운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기존 회원의 추천까지 받아야 하는 곳으로 이 카드는 단순히 VIP 카드가 아닌 그녀를 상류층의 일원으로 인정함을 의미했다.나름 부잣집 딸로 자랐지만, 이곳의 VIP 카드는 들어만 봤을 뿐,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강유리도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우리 어머니 생각보다 화끈하시지? 그리고 언젠가 너도 부자가 되면 나랑 결혼한 거 공개하겠다고 했던 말 기억하지? 그럼 이제 부자 됐으니까 공개해도 되겠네?”“꼭 돈 때문이 아니라...”“그럼 뭐가 문제인데?”봉투를 꼭 쥔 강유리의 손이 살짝 떨려왔다.방금 전 그녀를 바라보던 친절한 눈빛과 말투, 그리고 진심으로 그녀를 위한 것처럼 들리던 조언들이 다시 떠오르고...시어머니 한미연의 진심이 느껴짐과 동시에 혹시나 이 모든 게 단순히 테스트가 아닐까 속물적으로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 누구라도 기뻐할 만한 일 이다.게다가 그 상대가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배우자의 부모님이라면, 더 기쁠 터이니.진짜 가족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가족의 사랑과 정을 시댁에서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넘실거렸다.“결혼식에는 양가 부모님 모두 참석해야 하잖아. 하지만... 아버지도... 성신영도 모두 내가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이야.”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린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마침 신호등에 걸리고 차량을 멈춘 육시준이 고개를 돌렸다.강유리의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할아버지 깨어나실 때까지 기다리자.”한편 병원.오후 내내 수술에 시달려 저녁도 챙겨먹지 못
“그런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요.”순진한 얼굴로 대답한 조보희는 평소와 달리 훨씬 더 어두운 표정의 송이혁의 눈치를 살피다 한 마디 덧붙였다.“아, 이제 알았으니까 볼일 봐요. 어차피 나도 별로 배 안 고팠어요. 더 기다릴 수 있어요, 나.”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에 송이혁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조보희 씨, 여긴 조보희 씨 집도 아니고 호텔도 아니고 병원입니다. 지금 조보희 씨가 별로라고 하는 이 병실, 수많은 환자들이 몇 달을 웨이팅해도 못 들어오는 곳이에요. 조보희 씨야 부잣집에서 태어나 평생 고생이라곤 못 해보고 자랐을 테니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겠죠. 이해해요.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병원에서 이런 장난은 치지 마십시오. 조보희 씨 이기심 때문에 진짜 절실한 환자들이 치료를 못 받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아니, 그게 아니라...”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게 흘러가자 조보희의 얼굴이 살짝 창백하게 질렸다.“화상 정도로 1주일을 입원해 있지 않나. 지금 강유리 씨가 퇴원한 틈을 타 바로 그 뒤를 이어받질 않나. 이기적인 거 맞잖아요?”평소 껄렁대는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한 얼굴, 그 모습에 겁을 먹은 조보희는 낯빛도 머릿속도 새하얘지고 말았다.“그, 그게 아니라... 유리가...”“강유리 씨가 하는 말이면 다 들을 겁니까? 강유리 씨, 그쪽 길가에 버리고 간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아직도 거기 붙어있어요?”“송이혁 씨, 그쪽이 날 무시하는 건 잘 알겠는데 내 친구한테는 뭐라고 하지 말죠?”하지만, 마지막 말에 조보희도 발끈했다.“그래요! 가끔씩 유리가 짓궂게 구는 건 맞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상처주지 않게 지켜준다고요. 나 한 번 도와줬다고 내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아요. 내가 그쪽 일하는 데 방해된다고 했죠? 그래요! 갈게요. 가면 되잖아요. 누군 병원에 있는 게 좋아서 여기 있는 줄 알아? 누군 배고파 죽겠는데 좋아서 여태까지 기다리고 있는 줄 아냐고!”침대에서 벌떡
조보희가 강유리의 지갑까지 야무지게 챙겨 자리를 뜨고...이 모습을 바라보던 육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뭐야, 강유리... 대외적으론 고고하고 차가운 컨셉 아니었나? 왜 다른 사람한테도 저렇게 부드럽게 말하는 거야...!’놀랍게도 조보희의 동성친구 질투 유발 작전이 이상한 쪽으로 통한 모양이었다.하지만 육시준의 불편한 심경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강유리가 물었다.“이혁 씨,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이혁 씨가 보희 화나게 한 거 맞죠?”하지만 송이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누가 감히 우리 보희 아가씨를 건드리겠어요. 두 사람 강 회장님 상태에 대해 물으러 온 거 맞죠? 잘됐네요.”“아, 사실 퇴원하려고 했는데 병원 쪽에서 검사 몇 개만 더 하라고 해서요. 아, 물론 할아버지 상태가 궁금하기도 했고요.”강유리의 대답에 송이혁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워낙 바쁜 스케줄 탓에 퇴원 오더를 내리지 못했으니 병원 측에서는 강유리의 퇴원 절차를 밟아줄 수가 없었고 결국... 그가 정말 조보희를 오해한 게 맞았으므로.“조보희 씨가 유리가 이미 퇴원한 병실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거야? 물론 심한 말도 했겠네?”송이혁, 평소에는 깐족대다가도 환자 문제에 있어선 그 누구보다도 진지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 육시준이 물었다.송이혁은 침묵으로 긍정의 뜻을 대신하고 강유리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내가 잠깐 여기 있으라고 한 거예요. 아니,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대뜸 화부터 내면 어떡해요!”어찌 됐든 지금은 송이혁이 잘못한 게 맞으니 강유리의 질타에 송이혁은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저번에도 화상 입었을 때도! 보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고생이라뇨?”일주일 내내 잘 먹고 잘 놀다 간 줄 알았는데 고생이라니.“병원 측이 바보도 아니고 그깟 화상으로 입원을 시켜줄 리가 없잖아요? 병실에 잠깐 자리 나면 거기서 머물고 그랬던 거예요. 이혁 씨랑 같이 퇴근하고 같이 밥도 먹고 싶어
그제야 강유리가 자리를 비켜주고 송이혁은 이때다 싶어 부랴부랴 병실을 나섰다.하지만 강유리의 예상과 달리 그는 조보희를 붙잡기 위해 그곳에서 벗어나려 했던 건 아니었다.이미 화가 난 상태에서 붙잡아봤자 괜히 감정만 격해질 거란 생각에 따로 기회를 잡아 제대로 사과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부부가 동시에 질타가 담긴 눈빛을 쏘아대니 도저히 버틸 수 없어 화장실이라는 유치한 핑계를 대면서까지 현장을 벗어났던 것이다.한편, 강유리는 그제야 웃음을 터트렸다.“여보, 여보는 참...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어. 게다가 친구한테도 가차없네.”“그러는 넌 여자한테도 그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말할 줄은 몰랐네.”‘하, 뭐야. 이제 하다하다 친구한테까지 질투하니...?’잠시 후, 강유리, 육시준 부부가 진료실로 향했을 때 송이혁은 어느새 감정을 추스르고 진지한 의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병원 쪽에서 보내준 차트를 확인해 보면 유전병, 노환으로 인한 질병이라고 적었을 뿐, 정확한 병인은 찾아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러 수치들을 확인해 본 결과 확실히 뭔가 이상해요.”모든 검사 데이터를 확인하여 얻어낸 결론, 이미 90% 이상 확신이 들었지만 직접 입 밖으로 내뱉자니 여전히 조심스러웠다.“이혁 씨 말씀은... 아버지가 할아버지한테 사용한 약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건가요?”그리고 눈치 빠른 강유리는 바로 포인트를 캐치했다.“네.”‘역시... 워낙 똑똑한 여자라 얘기가 빠르겠어.’송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심장쪽 기능만 급격하게 떨어졌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안 됩니다. 누군가 일부러 손을 썼을 가능성이 커요.”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강유리가 비틀거리고 육시준이 그녀를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애초에 이런 의심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전문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니 충격이 배로 다가왔다.‘엄마도... 엄마도 할아버지와 비슷한 증상이였어. 설마... 엄마도?’“지금까지 사용했던 치료 방안을 훑어봤는데 겉보기엔 아무
“보희가 방금 전에 예약한 레스토랑이에요.”송이혁이 강유리의 말에 반응했을 땐 두 사람이 이미 진료실을 나간 뒤.혼자 남은 그가 구시렁댔다.“비싼 시계 사준다고 했으면서... 이게 다야?”말은 그렇게 해도 그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하지만 두 사람이 사라진 복도를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의미심장한 빛을 내뿜었다.‘강유리, 보통내기가 아니야...’실제로 만난 건 몇 번이 다지만 그때마다 강유리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똑똑한 데다 대담하고 일의 실행력도 빠른 것이 남자라면 사죽을 못 쓰고 남편의 힘과 명예 뒤에 숨어 모든 걸 조종한다는 소문과는 아예 딴판이었다.‘조보희 그 여자, 딱 봐도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부잣집 아가씨인데... 유리 씨 같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다간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지도 몰라. 내가... 말려야겠어.’뭔가 다짐한 듯한 송이혁은 바로 레스토랑으로 걸음을 옮겼다......한편, 집으로 돌아가는 길.창문에 기댄 채 빠르게 사라지는 길가의 풍경들을 바라보는 강유리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내가 해외로 나가있는 3년 동안 할아버지한테 그딴 짓을...’조금이라도 늦게 귀국했다면, 병원을 옮기는 걸 조금이라도 지체했다면 할아버지가 정말 세상을 떴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이때 육시준이 불안에 떠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자책하지 마. 넌 최선을 다했으니까.”위로가 담긴 부드러운 목소리와 따뜻한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상처받은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손가락을 움직여 깍지를 켠 강유리는 언제 우울했었냐는 듯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여보, 요즘 우리 사이 너무 좋은 것 같아. 여보가 날 좋아해 준 덕분에 우리가 같이 하는 일도 잘 되고 있고...”“내가 널 좋아하는 게 우리 사업에 도움이 되긴 해?”“당연하지! 난 날 좋아하는 남자한테는 굉장히 후한 스타일이거든.”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육시준을 향해 강유리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산 프로젝트가 곧 시작될 거야. 제약회사 서산에 있다면서. 뭐 겸사겸사.”하지만 이어지는 육시준의 말은 강유리의 감동을 와장창 깨트리고 말았다.“그... 그래.”‘참나, 전에는 아내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데는 아무 이유가 없다는둥 느끼한 말도 잘도 하더니. 뭐야? 이제 다 잡은 물고기다 이거야?’하지만 섭섭한 티를 내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강유리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그래. 지금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인수인계도 필요하고 며칠 뒤에나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응, 괜찮아.”...깊은 밤, vip 병동 중환자실.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육경민을 바라보는 육청수의 얼굴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그 곁을 지키고 있는 육경원 역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형이 괜히 시준이 형을 건드려서... 할아버지, 시준이 형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내가 지금 화 안 내게 생겼어? 그 자식 이제 좀 잘 나간다고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잖아!”육청수는 지팡이로 바닥을 쾅 내리치는 것으로 노여움을 표했다.“형이 회사 일로 워낙 바쁘긴 하죠. 강유리, 아니 형수님도 오늘 밤 처음 가족들한테 소개해 줬다고 하던데요. 얼마나 바쁘면 이런 일까지 미뤘겠어요.”“시준이 자식이 그 애를 집까지 데리고 왔다고?”이에 육경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오늘 퇴원했다고 하고 집에서 같이 저녁 식사 했다더라고요. 분위기도 좋았다던데요? 큰어머니는 물론이고 큰아버지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셨다고...”육경원이 말끝을 흐리며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역시나, 방금 전까지 분노로 일그러졌던 얼굴이 차갑게 굳더니 지팡이를 잡은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육청수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바로 자식들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육시준은 뭐 워낙 망나니 같은 손주니 그렇다 치더라도 평소 효심이 깊었던 육지원까지 그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다니.‘이 정도면 할아버지가 폭발하실만도 한데...’“파주 리조트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