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희가 방금 전에 예약한 레스토랑이에요.”송이혁이 강유리의 말에 반응했을 땐 두 사람이 이미 진료실을 나간 뒤.혼자 남은 그가 구시렁댔다.“비싼 시계 사준다고 했으면서... 이게 다야?”말은 그렇게 해도 그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하지만 두 사람이 사라진 복도를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의미심장한 빛을 내뿜었다.‘강유리, 보통내기가 아니야...’실제로 만난 건 몇 번이 다지만 그때마다 강유리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똑똑한 데다 대담하고 일의 실행력도 빠른 것이 남자라면 사죽을 못 쓰고 남편의 힘과 명예 뒤에 숨어 모든 걸 조종한다는 소문과는 아예 딴판이었다.‘조보희 그 여자, 딱 봐도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부잣집 아가씨인데... 유리 씨 같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다간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지도 몰라. 내가... 말려야겠어.’뭔가 다짐한 듯한 송이혁은 바로 레스토랑으로 걸음을 옮겼다......한편, 집으로 돌아가는 길.창문에 기댄 채 빠르게 사라지는 길가의 풍경들을 바라보는 강유리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내가 해외로 나가있는 3년 동안 할아버지한테 그딴 짓을...’조금이라도 늦게 귀국했다면, 병원을 옮기는 걸 조금이라도 지체했다면 할아버지가 정말 세상을 떴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이때 육시준이 불안에 떠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자책하지 마. 넌 최선을 다했으니까.”위로가 담긴 부드러운 목소리와 따뜻한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상처받은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손가락을 움직여 깍지를 켠 강유리는 언제 우울했었냐는 듯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여보, 요즘 우리 사이 너무 좋은 것 같아. 여보가 날 좋아해 준 덕분에 우리가 같이 하는 일도 잘 되고 있고...”“내가 널 좋아하는 게 우리 사업에 도움이 되긴 해?”“당연하지! 난 날 좋아하는 남자한테는 굉장히 후한 스타일이거든.”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육시준을 향해 강유리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산 프로젝트가 곧 시작될 거야. 제약회사 서산에 있다면서. 뭐 겸사겸사.”하지만 이어지는 육시준의 말은 강유리의 감동을 와장창 깨트리고 말았다.“그... 그래.”‘참나, 전에는 아내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데는 아무 이유가 없다는둥 느끼한 말도 잘도 하더니. 뭐야? 이제 다 잡은 물고기다 이거야?’하지만 섭섭한 티를 내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강유리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그래. 지금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인수인계도 필요하고 며칠 뒤에나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응, 괜찮아.”...깊은 밤, vip 병동 중환자실.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육경민을 바라보는 육청수의 얼굴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그 곁을 지키고 있는 육경원 역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형이 괜히 시준이 형을 건드려서... 할아버지, 시준이 형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내가 지금 화 안 내게 생겼어? 그 자식 이제 좀 잘 나간다고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잖아!”육청수는 지팡이로 바닥을 쾅 내리치는 것으로 노여움을 표했다.“형이 회사 일로 워낙 바쁘긴 하죠. 강유리, 아니 형수님도 오늘 밤 처음 가족들한테 소개해 줬다고 하던데요. 얼마나 바쁘면 이런 일까지 미뤘겠어요.”“시준이 자식이 그 애를 집까지 데리고 왔다고?”이에 육경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오늘 퇴원했다고 하고 집에서 같이 저녁 식사 했다더라고요. 분위기도 좋았다던데요? 큰어머니는 물론이고 큰아버지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셨다고...”육경원이 말끝을 흐리며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역시나, 방금 전까지 분노로 일그러졌던 얼굴이 차갑게 굳더니 지팡이를 잡은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육청수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바로 자식들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육시준은 뭐 워낙 망나니 같은 손주니 그렇다 치더라도 평소 효심이 깊었던 육지원까지 그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다니.‘이 정도면 할아버지가 폭발하실만도 한데...’“파주 리조트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어?
옷방 문에 기대 여전히 그에게 삐진 듯 토라진 얼굴로 짐을 싸고 있는 강유리를 바라보고 있다가 맞은 날벼락이었다.“대표님, 회장님께서 이번엔 정말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습니다. 대표님이 맡고 계신 프로젝트를 육 실장님께 넘기는 건 거의 선전포고 아닙니까?”심각한 상황에 임강준의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잔뜩 담겨있었다.“하, 내가 그렇게 쉽게 내 걸 뺏길 것 같아?”하지만 육시준은 어느새 여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프로젝트에 관한 자료 다 경원이한테 넘겨줘. 인수인계도 제대로 해주라고 하고.”의아함이 가득 든 임강준의 질문에 그는 대답 대신 명령을 남긴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한편, 강유리는 사각팬티 하나를 들곤 무슨 연구라도 하듯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었다.남자 속옷을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라 꽤 신기한 모양이었다.‘여자 거랑은 다르네. 앞에 주머니 같은 것도 들어있고. 아, 설마...’뭔가 떠오른 건지 혼자서 얼굴을 붉히는 강유리를 지켜보던 육시준이 참다 못해 한 마디 던졌다.“뭐가 그렇게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어.”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잘못을 저지른 학생처럼 후다닥 팬티를 집어넣던 강유리가 육시준을 발견하곤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처음 봐서 신기하다. 왜! 뭐, 그게 창피한 일인가?”“솔직히 그 나이 먹고 남자 속옷 처음 보는 게 자랑은 아니지.”강유리가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노려보자 괜히 장난기가 발동한 육시준은 놀림을 이어갔다.“우리가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 보려면 충분히 기회가 있었을 텐데 왜 못 보셨을까? 너무 긴장했었나? 아니면 마음이 너무 급했었나?”‘윽, 저 성스러운 얼굴로 음담패설을 내뱉다니. 진짜 안 어울려.’강유리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러는 당신은? 할 때마다 마음이 급했나 보지? 그렇게 빨리 끝나는 걸 보면?”강유리의 반격에 육시준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말없이 터벅터벅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육시준을 향해 강유리는 턱을 치켜들었다.
며칠 전까지 그녀의 제멋대로인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던 남자가 방금 전 프로젝트를 빌미로 출장 짐을 싸달라고 하니 잔뜩 골이 나있었던 건 사실이었다.아내가 직접 싸주는 짐으로 출장을 가는 게 뭐 로망이었다나? 하지만 이미 후끈 달아오른 육시준은 이제 다른 것을 탐하기 시작했다.“짐은 아주머니한테 부탁하고. 우린... 다른 거 하자, 응?”강유리의 온몸을 장난스레 훑던 육시준이 뇌쇄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내일 일찍 일어나야 한단 말이야.”그의 집요한 키스를 피하며 강유리는 마지막 남은 이성을 잡으려 애썼다.하지만 주문이라도 걸린 듯 섹시한 육시준의 목소리가 그녀의 정신을 아득해지게 만들었다.“이번 출장 꽤 오래 걸릴 텐데. 나 안 보고 싶겠어?”“...”떨리는 눈동자로 육시준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보... 보고 싶긴...”그리고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열폭풍 같은 뜨거운 키스가 시작되었다.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자유의 몸이 된 강유리는 축 늘어진 채 소리없이 몸을 태우는 캔들을 바라보았다.마침 샤워를 마친 육시준이 욕실을 나오고, 영혼까지 다 빼앗긴 것 같은 그녀와 달리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억울함이 밀려왔다.“짐 정리는 당신이 직접 해. 그리고 내 짐도 당신이 싸줘.”머리를 닦던 손길이 잠깐 멈칫하고 입이 닷발은 나온 강유리를 바라보던 육시준이 픽 웃었다.“맡겨준다면야 영광이지. 아, 샤워도 내가 도와줄까?”평소라면 이 무슨 헛소리냐며 펄쩍 뛰었겠지만 정말 너무 피곤했던 강유리는 이미 이성적인 사고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부부끼리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진짜 손가락 하나 까닥 하기 싫단 말이야... 그런데...’“나 씻겨주다가 헛짓거리만 안 하겠다고 맹세하면.”하지만 그녀의 대답에 꿈쩍도 하지 않는 육시준을 반응을 살피던 강유리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침대에서 일어섰다.“됐어! 내가 알아서 씻을게. 대신 당신은 짐 정리 깔끔하게 해둬. 내가 나
순간, 운전기사가 잡은 핸들이 살짝 흔들리고...흠칫 놀란 강유리가 고개를 든 순간, 임강준이 재빠르게 한 마디 건넸다.“대표님, 사모님. 호텔 도착했습니다.”“아, 네. 고맙습니다.”한편, 수화기 저편의 여자가 말을 이어갔다.“어쨌든 그래서 내 도움 필요해, 안 해?”“네가 보고 싶은 건 너희 남편인 것 같은데? 난 그냥 핑계고.”“하여간. 언니는 참 솔직하지가 못해.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바로 가줄 텐데 그 한마디를 못하네? 뭐, 어쩌겠어. 내가 속는 셈 치고 가준다. 난 역시 너무 착하다니까. 모레 도착이니까 공항으로 나와, 알겠지?”그녀의 말을 듣고 있긴 한 건지 막무가내인 여자를 향해 강유리가 한숨을 쉬었다.“나 모레면 출장 중일지도 몰라. 마중은 남편더러 가라고 하세요?”통화를 하며 차에서 내린 강유리는 트렁크에서 자신의 짐을 챙긴 채 육시준을 향해 손까지 흔든 뒤 호텔로 들어섰다.당연하게도 그 뒤를 따라가려다 쓸쓸하게 남겨진 육시준을 바라보던 임강준이 어색하게 웃었다.“아, 사모님이... 대표님도 이 호텔로 잡으신 걸 모르셨나 봅니다.”한편, 어느새 호텔 로비로 들어선 강유리는 체크인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이번에 귀국하면 너 영입하려는 제안들 다 받아들여.”얼마 전, 신아람이 귀국한 뒤, 로열엔터와 전속 계약을 맺은 덕분에 연예계에서 성신영의 입지가 다시 밀리는 상황. 이 와중에 육경원 옆에 더 붙어있고 싶다면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더 증명해야 할 테고 딸 바보인 성홍주는 그녀를 위해 유강그룹 전체를 베팅할지도 모른다.‘어쩌면 내가 원하는 유강 주얼리도...’“유강그룹에서 뭔가 벌어질 것 같다는 말이야?”방금 전까지 상당히 오버스럽던 여자의 목소리가 드디어 차분해졌다.“그래. 그러니까 그쪽에서 만나자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받아들여.”“오케이, 맡겨줘.”통화를 마친 강유리가 방키를 받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려던 그때, 왠지 익숙한 그림자에 고개를 돌린다.육시준, 임강준 그리고 트렁크를 번갈아
순간 당황한 육시준이 몸을 움찔거렸다.평소 누구보다 강하고 도도한 그녀지만 모든 가면을 집어던지고 그를 마주할 때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으로 마음이 간질거리고 온몸이 힘이 풀리는 듯한 기분이 휩싸이곤 했다.점심 때의 따뜻한 햇살이 강유리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반짝이게 비추고...맑은 눈에 가득 담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뭔가 울컥하는 기분과 함께 육시준의 손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갔다.하지만 다음 순간, 민첩하게 그의 품에서 벗어난 강유리가 소파에 몸을 던졌다.“미팅 있다면서. 얼른 일하러 가시죠? 육시준 대표님? 그리고 나도 곧 외출해야 해.”텅 빈 품을 멍하니 바라보던 육시준이 픽 웃었다.“문 팀장이랑 같이 나가.”문기준 팀장은 육경민 사건 이후 육시준이 그녀를 위해 고용한 보디가드였다.출퇴근 길에도 함께 하라는 육시준의 명령에 따르고 있긴 했지만 24시간 내내 웃음기 하나 없는 포커페이스인 데다 괜히 말을 붙여봐도 단답으로 일관하는 것이 마치 인간이 아닌 시리나 지니 같은 AI 비서와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게다가 자신의 행적을 그대로 육시준에게 보고할 것을 생각하니 왠지 감시받는 듯한 기분에 찜찜하달까?“여긴 내 회사야. 뭐, 정 걱정되면 차라리 임 비서님이랑 같이 다닐게.”적어도 임강준은 친절하고 무엇보다 살아있는 사람 같달까?“임 비서는 안 돼. 이번 미팅에 꼭 필요한 사람이거든.”시간을 확이하던 육시준이 대답했다.“눼에눼에. 하여간 다들 더럽게 바쁘지. 됐어. 귀찮게 안 하고 내가 알아서 나갈게.”“문 팀장은 경찰 특공대 출신이야. 널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경찰 특공대?’순간 흥미가 인 강유리가 눈동자를 반짝였다.“오, 대단한 사람이었잖아? 다른 건 없어? 싸움 잘하는 거 말고 다른 특기 같은 건?”“미행, 조사, 감시 등등? 네가 하려는 일에 큰 도움이 될 거야.”육시준의 대답을 들은 강유리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솔직히 이번 사건 파면 팔 수록 그녀가
도로를 달리고 있는 차 안에서 무현은 운전하고 있었고 강유리는 뒷좌석이 앉아 보고서를 보고 있었다.무현이 만든 보고서이기에 이해가 안 되는 곳이 있으면 강유리는 가끔 무현한테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계속 한결같았다.“ 뒤쪽을 보시면 해석이 있을 겁니다.”“ 이 보고서를 자세히 보긴 했어?”강유리는 보고서를 옆좌석에 놓고는 갑자기 물었다.무현은 멈칫하더니 ‘네’하고 짤막하게 대답했다.강유리는 눈을 감고 뒤로 몸을 기댔다.“ 잘됐네. 그럼 내용을 간략해서 말해봐. 윤시준은 네가 정보분석이랑 총괄을 잘한다고 했었는데.”이 말인즉, 네 말 안 믿으니까 한번 보여줘 봐. 라는 것이였다.무현은 이 말에 기분이 안 좋은 듯했다. 차 안의 온도마저 차가워진 것만 같았다.지금까지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심지어 육 회장마저도.경호원이라서 그런지 말없이 있을 때는 존재감이 하나도 없다가도 화를 내니 갑자기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네. 썩은 표정으로 기계처럼 공손한 태도로 대답하는 모습보다는 낫다.“ 왜? 어려워? 그럼 넌 할 줄 아는 게 뭐야? 길옆에 차 세우고 내려.”강유리는 그의 불만을 눈치채지 못한 듯이 차가운 태도로 그를 명령했다.전엔 낯을 가려서 웃는 얼굴로 예의 바르게 그를 대한 강유리라서 무현은 그녀가 얼굴이 반반한 것 빼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줄 알았었다.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눈치를 주면서 명령하니 무현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백미러로 뒤를 보니 차분한 얼굴로 위압을 풍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육시준이랑 비슷했다.그는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결국은 자기가 졌다는 듯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몇 년 전까지만해도 영업 상황이 괜찮았었는데 근 2, 3년간 갑자기 수익이 떨어지면서 유강그룹의 주문을 빼고는 다른 주문이 별로 들어오지 않습니다.”회사가 팔리고 난 후에는 더욱더 업무가 없었다.새로 온 회장이 소식을 막고 회사 내부를 정비하는 듯했지만 그런건 또 아니였다. 할 일은
요즘 강유리를 경호하며 제일 많이 드나들었던 장소가 유강엔터였다.그가 하는 일이라곤 그녀를 위해 가방 들어주고 운전하고 감시카메라처럼 제자리에서 꼼짝도 없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후 육시준한테 보고하는 것이다.솔직히 말하면 아주 지루하다.이래 봬도 예전엔 육시준의 보안팀 팀장으로 육시준의 신변 보호뿐만 아니라 상업 기밀 파일도 지키던 사람이었는데.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업계에서도 최고들 밖에 없었다.지금은 고작 이 여자의 개인비서처럼 이런 잡일들을 하고 있다니. 재능 낭비인 것이 분명하다.이 며칠간 순간마다 육시준이 명령을 취소하여 다시 원래 자리로 복귀시키길 꿈꾸고 있었는데 이 말을 강유리한테서 들으니 솔깃하면서도 이상하기도 했다.지금 날 떠보는 건가?“ 괜찮습니다. 육 회장님의 명령을 모두 따르겠습니다.” 차가운 목소리로 물음에 대답했다.강유리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래? 하지만 자네 요즘 일하는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진 않네.”“…”“네가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명령을 받았으면 해야 할 일을 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아니면 육 회장이 자네한테 명을 내릴 때마다 이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하나 말해줘야겠어?”“…”육 회장이 맡겼던 일들은 확실히 모두 중요한 일들이었다. 그리하여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육 회장이 이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잘 완수하려고 노력했었다.육 회장의 명령에 의문을 가졌던 건 처음이였다.문제점을 인지하고 나니 무현의 태도는 많이 공손해졌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향후 명령에 잘 따르겠습니다.”강유리는 눈치백단인 무현에 아주 만족하듯이 웃었다.“그래. 그러면 내가 내리는 첫 번째 명령은 바로, 육 회장한테 내 스케줄 일체로 보고하지 않는 거야.”그는 잘 알고 있다. 이건 분명 육 회장의 명령이 아닐 거라는걸.그가 알고 있는 육시준은 소유욕은 심하지만, 그녀의 결정을 더욱 존중하는 편이다.자기한테 많이 의지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고나서 육시준은 더이상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