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까지 그녀의 제멋대로인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던 남자가 방금 전 프로젝트를 빌미로 출장 짐을 싸달라고 하니 잔뜩 골이 나있었던 건 사실이었다.아내가 직접 싸주는 짐으로 출장을 가는 게 뭐 로망이었다나? 하지만 이미 후끈 달아오른 육시준은 이제 다른 것을 탐하기 시작했다.“짐은 아주머니한테 부탁하고. 우린... 다른 거 하자, 응?”강유리의 온몸을 장난스레 훑던 육시준이 뇌쇄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내일 일찍 일어나야 한단 말이야.”그의 집요한 키스를 피하며 강유리는 마지막 남은 이성을 잡으려 애썼다.하지만 주문이라도 걸린 듯 섹시한 육시준의 목소리가 그녀의 정신을 아득해지게 만들었다.“이번 출장 꽤 오래 걸릴 텐데. 나 안 보고 싶겠어?”“...”떨리는 눈동자로 육시준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보... 보고 싶긴...”그리고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열폭풍 같은 뜨거운 키스가 시작되었다.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자유의 몸이 된 강유리는 축 늘어진 채 소리없이 몸을 태우는 캔들을 바라보았다.마침 샤워를 마친 육시준이 욕실을 나오고, 영혼까지 다 빼앗긴 것 같은 그녀와 달리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억울함이 밀려왔다.“짐 정리는 당신이 직접 해. 그리고 내 짐도 당신이 싸줘.”머리를 닦던 손길이 잠깐 멈칫하고 입이 닷발은 나온 강유리를 바라보던 육시준이 픽 웃었다.“맡겨준다면야 영광이지. 아, 샤워도 내가 도와줄까?”평소라면 이 무슨 헛소리냐며 펄쩍 뛰었겠지만 정말 너무 피곤했던 강유리는 이미 이성적인 사고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부부끼리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진짜 손가락 하나 까닥 하기 싫단 말이야... 그런데...’“나 씻겨주다가 헛짓거리만 안 하겠다고 맹세하면.”하지만 그녀의 대답에 꿈쩍도 하지 않는 육시준을 반응을 살피던 강유리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침대에서 일어섰다.“됐어! 내가 알아서 씻을게. 대신 당신은 짐 정리 깔끔하게 해둬. 내가 나
순간, 운전기사가 잡은 핸들이 살짝 흔들리고...흠칫 놀란 강유리가 고개를 든 순간, 임강준이 재빠르게 한 마디 건넸다.“대표님, 사모님. 호텔 도착했습니다.”“아, 네. 고맙습니다.”한편, 수화기 저편의 여자가 말을 이어갔다.“어쨌든 그래서 내 도움 필요해, 안 해?”“네가 보고 싶은 건 너희 남편인 것 같은데? 난 그냥 핑계고.”“하여간. 언니는 참 솔직하지가 못해.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바로 가줄 텐데 그 한마디를 못하네? 뭐, 어쩌겠어. 내가 속는 셈 치고 가준다. 난 역시 너무 착하다니까. 모레 도착이니까 공항으로 나와, 알겠지?”그녀의 말을 듣고 있긴 한 건지 막무가내인 여자를 향해 강유리가 한숨을 쉬었다.“나 모레면 출장 중일지도 몰라. 마중은 남편더러 가라고 하세요?”통화를 하며 차에서 내린 강유리는 트렁크에서 자신의 짐을 챙긴 채 육시준을 향해 손까지 흔든 뒤 호텔로 들어섰다.당연하게도 그 뒤를 따라가려다 쓸쓸하게 남겨진 육시준을 바라보던 임강준이 어색하게 웃었다.“아, 사모님이... 대표님도 이 호텔로 잡으신 걸 모르셨나 봅니다.”한편, 어느새 호텔 로비로 들어선 강유리는 체크인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이번에 귀국하면 너 영입하려는 제안들 다 받아들여.”얼마 전, 신아람이 귀국한 뒤, 로열엔터와 전속 계약을 맺은 덕분에 연예계에서 성신영의 입지가 다시 밀리는 상황. 이 와중에 육경원 옆에 더 붙어있고 싶다면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더 증명해야 할 테고 딸 바보인 성홍주는 그녀를 위해 유강그룹 전체를 베팅할지도 모른다.‘어쩌면 내가 원하는 유강 주얼리도...’“유강그룹에서 뭔가 벌어질 것 같다는 말이야?”방금 전까지 상당히 오버스럽던 여자의 목소리가 드디어 차분해졌다.“그래. 그러니까 그쪽에서 만나자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받아들여.”“오케이, 맡겨줘.”통화를 마친 강유리가 방키를 받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려던 그때, 왠지 익숙한 그림자에 고개를 돌린다.육시준, 임강준 그리고 트렁크를 번갈아
순간 당황한 육시준이 몸을 움찔거렸다.평소 누구보다 강하고 도도한 그녀지만 모든 가면을 집어던지고 그를 마주할 때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으로 마음이 간질거리고 온몸이 힘이 풀리는 듯한 기분이 휩싸이곤 했다.점심 때의 따뜻한 햇살이 강유리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반짝이게 비추고...맑은 눈에 가득 담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뭔가 울컥하는 기분과 함께 육시준의 손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갔다.하지만 다음 순간, 민첩하게 그의 품에서 벗어난 강유리가 소파에 몸을 던졌다.“미팅 있다면서. 얼른 일하러 가시죠? 육시준 대표님? 그리고 나도 곧 외출해야 해.”텅 빈 품을 멍하니 바라보던 육시준이 픽 웃었다.“문 팀장이랑 같이 나가.”문기준 팀장은 육경민 사건 이후 육시준이 그녀를 위해 고용한 보디가드였다.출퇴근 길에도 함께 하라는 육시준의 명령에 따르고 있긴 했지만 24시간 내내 웃음기 하나 없는 포커페이스인 데다 괜히 말을 붙여봐도 단답으로 일관하는 것이 마치 인간이 아닌 시리나 지니 같은 AI 비서와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게다가 자신의 행적을 그대로 육시준에게 보고할 것을 생각하니 왠지 감시받는 듯한 기분에 찜찜하달까?“여긴 내 회사야. 뭐, 정 걱정되면 차라리 임 비서님이랑 같이 다닐게.”적어도 임강준은 친절하고 무엇보다 살아있는 사람 같달까?“임 비서는 안 돼. 이번 미팅에 꼭 필요한 사람이거든.”시간을 확이하던 육시준이 대답했다.“눼에눼에. 하여간 다들 더럽게 바쁘지. 됐어. 귀찮게 안 하고 내가 알아서 나갈게.”“문 팀장은 경찰 특공대 출신이야. 널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경찰 특공대?’순간 흥미가 인 강유리가 눈동자를 반짝였다.“오, 대단한 사람이었잖아? 다른 건 없어? 싸움 잘하는 거 말고 다른 특기 같은 건?”“미행, 조사, 감시 등등? 네가 하려는 일에 큰 도움이 될 거야.”육시준의 대답을 들은 강유리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솔직히 이번 사건 파면 팔 수록 그녀가
도로를 달리고 있는 차 안에서 무현은 운전하고 있었고 강유리는 뒷좌석이 앉아 보고서를 보고 있었다.무현이 만든 보고서이기에 이해가 안 되는 곳이 있으면 강유리는 가끔 무현한테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계속 한결같았다.“ 뒤쪽을 보시면 해석이 있을 겁니다.”“ 이 보고서를 자세히 보긴 했어?”강유리는 보고서를 옆좌석에 놓고는 갑자기 물었다.무현은 멈칫하더니 ‘네’하고 짤막하게 대답했다.강유리는 눈을 감고 뒤로 몸을 기댔다.“ 잘됐네. 그럼 내용을 간략해서 말해봐. 윤시준은 네가 정보분석이랑 총괄을 잘한다고 했었는데.”이 말인즉, 네 말 안 믿으니까 한번 보여줘 봐. 라는 것이였다.무현은 이 말에 기분이 안 좋은 듯했다. 차 안의 온도마저 차가워진 것만 같았다.지금까지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심지어 육 회장마저도.경호원이라서 그런지 말없이 있을 때는 존재감이 하나도 없다가도 화를 내니 갑자기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네. 썩은 표정으로 기계처럼 공손한 태도로 대답하는 모습보다는 낫다.“ 왜? 어려워? 그럼 넌 할 줄 아는 게 뭐야? 길옆에 차 세우고 내려.”강유리는 그의 불만을 눈치채지 못한 듯이 차가운 태도로 그를 명령했다.전엔 낯을 가려서 웃는 얼굴로 예의 바르게 그를 대한 강유리라서 무현은 그녀가 얼굴이 반반한 것 빼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줄 알았었다.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눈치를 주면서 명령하니 무현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백미러로 뒤를 보니 차분한 얼굴로 위압을 풍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육시준이랑 비슷했다.그는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결국은 자기가 졌다는 듯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몇 년 전까지만해도 영업 상황이 괜찮았었는데 근 2, 3년간 갑자기 수익이 떨어지면서 유강그룹의 주문을 빼고는 다른 주문이 별로 들어오지 않습니다.”회사가 팔리고 난 후에는 더욱더 업무가 없었다.새로 온 회장이 소식을 막고 회사 내부를 정비하는 듯했지만 그런건 또 아니였다. 할 일은
요즘 강유리를 경호하며 제일 많이 드나들었던 장소가 유강엔터였다.그가 하는 일이라곤 그녀를 위해 가방 들어주고 운전하고 감시카메라처럼 제자리에서 꼼짝도 없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후 육시준한테 보고하는 것이다.솔직히 말하면 아주 지루하다.이래 봬도 예전엔 육시준의 보안팀 팀장으로 육시준의 신변 보호뿐만 아니라 상업 기밀 파일도 지키던 사람이었는데.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업계에서도 최고들 밖에 없었다.지금은 고작 이 여자의 개인비서처럼 이런 잡일들을 하고 있다니. 재능 낭비인 것이 분명하다.이 며칠간 순간마다 육시준이 명령을 취소하여 다시 원래 자리로 복귀시키길 꿈꾸고 있었는데 이 말을 강유리한테서 들으니 솔깃하면서도 이상하기도 했다.지금 날 떠보는 건가?“ 괜찮습니다. 육 회장님의 명령을 모두 따르겠습니다.” 차가운 목소리로 물음에 대답했다.강유리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래? 하지만 자네 요즘 일하는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진 않네.”“…”“네가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명령을 받았으면 해야 할 일을 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아니면 육 회장이 자네한테 명을 내릴 때마다 이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하나 말해줘야겠어?”“…”육 회장이 맡겼던 일들은 확실히 모두 중요한 일들이었다. 그리하여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육 회장이 이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잘 완수하려고 노력했었다.육 회장의 명령에 의문을 가졌던 건 처음이였다.문제점을 인지하고 나니 무현의 태도는 많이 공손해졌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향후 명령에 잘 따르겠습니다.”강유리는 눈치백단인 무현에 아주 만족하듯이 웃었다.“그래. 그러면 내가 내리는 첫 번째 명령은 바로, 육 회장한테 내 스케줄 일체로 보고하지 않는 거야.”그는 잘 알고 있다. 이건 분명 육 회장의 명령이 아닐 거라는걸.그가 알고 있는 육시준은 소유욕은 심하지만, 그녀의 결정을 더욱 존중하는 편이다.자기한테 많이 의지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고나서 육시준은 더이상 그녀
그저 업무 태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은 강유리의 상상을 훨씬 더 초월했다.“대표님, 오늘 운 터지셨는데요? 저 월급 다 날리게 생겼습니다!”“이 대리, 지금 쥐꼬리만한 월급이 아까워? 우리 대표님이 알아서 회장님 라인 태워주실 텐데 뭐가 걱정이야.”“그러니까. 우리 양 대표님 덕분에 투자금도 쑥쑥 들어오고. 뭐가 걱정이야?”“아,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대표님, 죄송합니다!”문을 등진 채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던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계속해. 다음 달부터 다들 월급 200만원 씩 인상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노는 거야, 오늘!”“감사합니다, 대표님!”이 모습을 바라보는 강유리는 기가 막혀 헛웃음이 터져나올 지경이었다.‘알짜배기 계열사니 믿음직한 사람을 대표로 뒀을 줄 알았는데. 겨우 이거예요, 아버지? 업무 시간에 그것도 회사에서 도박이라니... 게다가 직원들은 회사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것도 모르는 눈치고...’“양건휘 대표님? 저도 끼어주시죠?”맑은 목소리가 사무실의 어수선함을 깨트리고 모두의 시선이 문쪽으로 쏠렸다.누구나 돌아볼 법한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캐주얼하고 수수한 옷으로도 가릴 수 없는 완벽한 몸매에 남자들의 눈동자에는 묘한 욕망이 사무실의 홍일점인 이하정 대리의 얼굴에는 질투가 스쳤다.“뭐예요? 대표 사무실에 이렇게 함부로 들어와도 되는 거예요?”이하정의 질타에 양건휘가 다급하게 일어섰다.“여, 여긴 무슨 일로...”양건휘를 따라 일어선 직원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고 유일하게 이하정만은 여전히 탐탁치 않다는 눈빛으로 강유리를 훑어보고 있었다.“대표님과 아는 사이에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함부로 쳐들어오는 건 예의가 아니죠. 경비는 어떻게 뚫고 들어온 거예요?”“하, 이 회사에 경비원도 있었나요?”이하정의 날카로운 질문에 강유리는 헛웃음을 터트렸다.이때 직원들 중 한 명이 잔뜩 굳은 양건휘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대표님, 요즘 만나는 애인분이십니까? 저런 스타일 좋아하시는 줄 몰랐네요
강유리는 입꼬리를 치켜올리더니, 그 두 사람을 보고는 갑자기 눈빛이 차가워졌다. 양건휘는 마음속으로 한없이 괴로웠다. 방금 출근 시간에 도박한 것이 들켰다면 이런 오해가 또다시 되풀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호통이 나오기도 전에 강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유강그룹 계열사에서 이런 분위기로 일하는지는 꿈에도 몰랐네요. 양 대표님께서 말씀해 주시죠. 제가 누군지.”강유리의 말투는 한없이 차가웠고, 누가 봐도 화가 난 상태였다. 양건휘는 강유리의 말을 듣고 심장이 입 밖에 나올 듯 긴장해서는 재빨리 그녀를 소개했다.“이분이 바로 성 회장님의 따님이시고, 유강그룹 큰 아가씨셔. 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거야? 함부로 농담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장내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했고, 그저 그곳에 멍하니 서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강유리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볼 기분이 아니어서 몇 걸음 걸어가더니 명령을 내렸다.“양 대표 빼고 다른 사람은 다 나가요. 나갈 때 문 닫고요.”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금 도박했거나 구경하는 사람들은 일제히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양 대표만이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그는 크게 심호흡하고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유리 아가씨, 오늘 큰 프로젝트 하나를 따내서 기분이 좋았어요. 그저 모여서 축하하려는 것뿐이었습니다.”강유리는 의자에 앉아 책상에 있던 서류들을 뒤적이더니 입을 열었다.“아까 그 네 명은 어느 부문이죠? 월급도 엄청 많던데요?”양건휘는 당황한 말투로 버벅대며 대답했다.“다 이번 프로젝트를 성사한 일등 공신들입니다. 월급을 올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강유리는 그의 말을 믿는지 안 믿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서류들을 뒤적일 뿐이었다. 사무실 안은 어찌나 조용한지 종이 넘기는 소리만이 사각사각 들렸다.강유리는 또 사무실 컴퓨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무엇인가 찾아보려 했다. 양건휘가 다가가 보려고 해도 그녀 옆의 건장한 경호원 때문에 감히 근처에 갈 수도 없
모든 약 명칭을 기록한 자료는 그대로 있었다. 그녀가 찾고 싶은 그 두 가지만 빼고. 강유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이게 다예요?”양건휘는 강유리의 표정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또 신속하게 대답했다.“그럼요! 다 여기 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강유리는 모니터를 보다가 시선을 양건휘의 얼굴로 옮겼고,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강유리는 오늘 들이닥친 것이 상대방이 미처 손쓸 새도 없이 뒤통수를 때릴 작정이었는데, 역시 한발 늦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성홍주가 안심하고 양건휘를 남겨두었다는 것은 그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뜻이고, 그저 짊어진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양건휘는 지금 또 그녀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는 눈치였다.‘대체 뭘 알고 있는 거지? 회장님이 자료를 옮긴 걸까? 아니면 양 대표가? 양 대표 머리로는 못 할 일인 것 같은데? 누구랑 한통속이 되어서 작당 모의를 하는 건가……’그녀는 마우스를 내려놓고 사무실 의자에 기대어 앉아 그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양 대표, 상업 기밀을 팔아넘기는 죄를 지으면 몇 년 감옥에서 썩는지 알고 계세요?”양건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얼굴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의 야심이 큰 데 비해 걸맞은 능력이 없었다.얼마 전 누군가 그를 찾아와 이 회사는 이미 성홍주가 버린 카드기에 앞으로 그의 생활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는 처음에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본사와 연락이 되지 않자 점점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바로 이때, 상대방이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이었다……“아가씨, 방금 하신 말씀 무슨 뜻입니까?”“알아들으셨을 거라고 믿어요.” 강유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고, 두 눈동자는 그를 응시하는 것이 그에게 소리 없는 억압을 가하는 듯했다.“내가 여기 온 이상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오지 않았겠습니까? 미리 상황을 알고 온 것인데 시치미를 떼는 겁니까? 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