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요.”순진한 얼굴로 대답한 조보희는 평소와 달리 훨씬 더 어두운 표정의 송이혁의 눈치를 살피다 한 마디 덧붙였다.“아, 이제 알았으니까 볼일 봐요. 어차피 나도 별로 배 안 고팠어요. 더 기다릴 수 있어요, 나.”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에 송이혁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조보희 씨, 여긴 조보희 씨 집도 아니고 호텔도 아니고 병원입니다. 지금 조보희 씨가 별로라고 하는 이 병실, 수많은 환자들이 몇 달을 웨이팅해도 못 들어오는 곳이에요. 조보희 씨야 부잣집에서 태어나 평생 고생이라곤 못 해보고 자랐을 테니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겠죠. 이해해요.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병원에서 이런 장난은 치지 마십시오. 조보희 씨 이기심 때문에 진짜 절실한 환자들이 치료를 못 받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아니, 그게 아니라...”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게 흘러가자 조보희의 얼굴이 살짝 창백하게 질렸다.“화상 정도로 1주일을 입원해 있지 않나. 지금 강유리 씨가 퇴원한 틈을 타 바로 그 뒤를 이어받질 않나. 이기적인 거 맞잖아요?”평소 껄렁대는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한 얼굴, 그 모습에 겁을 먹은 조보희는 낯빛도 머릿속도 새하얘지고 말았다.“그, 그게 아니라... 유리가...”“강유리 씨가 하는 말이면 다 들을 겁니까? 강유리 씨, 그쪽 길가에 버리고 간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아직도 거기 붙어있어요?”“송이혁 씨, 그쪽이 날 무시하는 건 잘 알겠는데 내 친구한테는 뭐라고 하지 말죠?”하지만, 마지막 말에 조보희도 발끈했다.“그래요! 가끔씩 유리가 짓궂게 구는 건 맞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상처주지 않게 지켜준다고요. 나 한 번 도와줬다고 내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아요. 내가 그쪽 일하는 데 방해된다고 했죠? 그래요! 갈게요. 가면 되잖아요. 누군 병원에 있는 게 좋아서 여기 있는 줄 알아? 누군 배고파 죽겠는데 좋아서 여태까지 기다리고 있는 줄 아냐고!”침대에서 벌떡
조보희가 강유리의 지갑까지 야무지게 챙겨 자리를 뜨고...이 모습을 바라보던 육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뭐야, 강유리... 대외적으론 고고하고 차가운 컨셉 아니었나? 왜 다른 사람한테도 저렇게 부드럽게 말하는 거야...!’놀랍게도 조보희의 동성친구 질투 유발 작전이 이상한 쪽으로 통한 모양이었다.하지만 육시준의 불편한 심경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강유리가 물었다.“이혁 씨,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이혁 씨가 보희 화나게 한 거 맞죠?”하지만 송이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누가 감히 우리 보희 아가씨를 건드리겠어요. 두 사람 강 회장님 상태에 대해 물으러 온 거 맞죠? 잘됐네요.”“아, 사실 퇴원하려고 했는데 병원 쪽에서 검사 몇 개만 더 하라고 해서요. 아, 물론 할아버지 상태가 궁금하기도 했고요.”강유리의 대답에 송이혁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워낙 바쁜 스케줄 탓에 퇴원 오더를 내리지 못했으니 병원 측에서는 강유리의 퇴원 절차를 밟아줄 수가 없었고 결국... 그가 정말 조보희를 오해한 게 맞았으므로.“조보희 씨가 유리가 이미 퇴원한 병실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거야? 물론 심한 말도 했겠네?”송이혁, 평소에는 깐족대다가도 환자 문제에 있어선 그 누구보다도 진지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 육시준이 물었다.송이혁은 침묵으로 긍정의 뜻을 대신하고 강유리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내가 잠깐 여기 있으라고 한 거예요. 아니,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대뜸 화부터 내면 어떡해요!”어찌 됐든 지금은 송이혁이 잘못한 게 맞으니 강유리의 질타에 송이혁은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저번에도 화상 입었을 때도! 보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고생이라뇨?”일주일 내내 잘 먹고 잘 놀다 간 줄 알았는데 고생이라니.“병원 측이 바보도 아니고 그깟 화상으로 입원을 시켜줄 리가 없잖아요? 병실에 잠깐 자리 나면 거기서 머물고 그랬던 거예요. 이혁 씨랑 같이 퇴근하고 같이 밥도 먹고 싶어
그제야 강유리가 자리를 비켜주고 송이혁은 이때다 싶어 부랴부랴 병실을 나섰다.하지만 강유리의 예상과 달리 그는 조보희를 붙잡기 위해 그곳에서 벗어나려 했던 건 아니었다.이미 화가 난 상태에서 붙잡아봤자 괜히 감정만 격해질 거란 생각에 따로 기회를 잡아 제대로 사과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부부가 동시에 질타가 담긴 눈빛을 쏘아대니 도저히 버틸 수 없어 화장실이라는 유치한 핑계를 대면서까지 현장을 벗어났던 것이다.한편, 강유리는 그제야 웃음을 터트렸다.“여보, 여보는 참...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어. 게다가 친구한테도 가차없네.”“그러는 넌 여자한테도 그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말할 줄은 몰랐네.”‘하, 뭐야. 이제 하다하다 친구한테까지 질투하니...?’잠시 후, 강유리, 육시준 부부가 진료실로 향했을 때 송이혁은 어느새 감정을 추스르고 진지한 의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병원 쪽에서 보내준 차트를 확인해 보면 유전병, 노환으로 인한 질병이라고 적었을 뿐, 정확한 병인은 찾아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러 수치들을 확인해 본 결과 확실히 뭔가 이상해요.”모든 검사 데이터를 확인하여 얻어낸 결론, 이미 90% 이상 확신이 들었지만 직접 입 밖으로 내뱉자니 여전히 조심스러웠다.“이혁 씨 말씀은... 아버지가 할아버지한테 사용한 약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건가요?”그리고 눈치 빠른 강유리는 바로 포인트를 캐치했다.“네.”‘역시... 워낙 똑똑한 여자라 얘기가 빠르겠어.’송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심장쪽 기능만 급격하게 떨어졌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안 됩니다. 누군가 일부러 손을 썼을 가능성이 커요.”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강유리가 비틀거리고 육시준이 그녀를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애초에 이런 의심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전문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니 충격이 배로 다가왔다.‘엄마도... 엄마도 할아버지와 비슷한 증상이였어. 설마... 엄마도?’“지금까지 사용했던 치료 방안을 훑어봤는데 겉보기엔 아무
“보희가 방금 전에 예약한 레스토랑이에요.”송이혁이 강유리의 말에 반응했을 땐 두 사람이 이미 진료실을 나간 뒤.혼자 남은 그가 구시렁댔다.“비싼 시계 사준다고 했으면서... 이게 다야?”말은 그렇게 해도 그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하지만 두 사람이 사라진 복도를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의미심장한 빛을 내뿜었다.‘강유리, 보통내기가 아니야...’실제로 만난 건 몇 번이 다지만 그때마다 강유리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똑똑한 데다 대담하고 일의 실행력도 빠른 것이 남자라면 사죽을 못 쓰고 남편의 힘과 명예 뒤에 숨어 모든 걸 조종한다는 소문과는 아예 딴판이었다.‘조보희 그 여자, 딱 봐도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부잣집 아가씨인데... 유리 씨 같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다간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지도 몰라. 내가... 말려야겠어.’뭔가 다짐한 듯한 송이혁은 바로 레스토랑으로 걸음을 옮겼다......한편, 집으로 돌아가는 길.창문에 기댄 채 빠르게 사라지는 길가의 풍경들을 바라보는 강유리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내가 해외로 나가있는 3년 동안 할아버지한테 그딴 짓을...’조금이라도 늦게 귀국했다면, 병원을 옮기는 걸 조금이라도 지체했다면 할아버지가 정말 세상을 떴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이때 육시준이 불안에 떠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자책하지 마. 넌 최선을 다했으니까.”위로가 담긴 부드러운 목소리와 따뜻한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상처받은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손가락을 움직여 깍지를 켠 강유리는 언제 우울했었냐는 듯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여보, 요즘 우리 사이 너무 좋은 것 같아. 여보가 날 좋아해 준 덕분에 우리가 같이 하는 일도 잘 되고 있고...”“내가 널 좋아하는 게 우리 사업에 도움이 되긴 해?”“당연하지! 난 날 좋아하는 남자한테는 굉장히 후한 스타일이거든.”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육시준을 향해 강유리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산 프로젝트가 곧 시작될 거야. 제약회사 서산에 있다면서. 뭐 겸사겸사.”하지만 이어지는 육시준의 말은 강유리의 감동을 와장창 깨트리고 말았다.“그... 그래.”‘참나, 전에는 아내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데는 아무 이유가 없다는둥 느끼한 말도 잘도 하더니. 뭐야? 이제 다 잡은 물고기다 이거야?’하지만 섭섭한 티를 내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강유리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그래. 지금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인수인계도 필요하고 며칠 뒤에나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응, 괜찮아.”...깊은 밤, vip 병동 중환자실.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육경민을 바라보는 육청수의 얼굴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그 곁을 지키고 있는 육경원 역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형이 괜히 시준이 형을 건드려서... 할아버지, 시준이 형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내가 지금 화 안 내게 생겼어? 그 자식 이제 좀 잘 나간다고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잖아!”육청수는 지팡이로 바닥을 쾅 내리치는 것으로 노여움을 표했다.“형이 회사 일로 워낙 바쁘긴 하죠. 강유리, 아니 형수님도 오늘 밤 처음 가족들한테 소개해 줬다고 하던데요. 얼마나 바쁘면 이런 일까지 미뤘겠어요.”“시준이 자식이 그 애를 집까지 데리고 왔다고?”이에 육경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오늘 퇴원했다고 하고 집에서 같이 저녁 식사 했다더라고요. 분위기도 좋았다던데요? 큰어머니는 물론이고 큰아버지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셨다고...”육경원이 말끝을 흐리며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역시나, 방금 전까지 분노로 일그러졌던 얼굴이 차갑게 굳더니 지팡이를 잡은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육청수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바로 자식들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육시준은 뭐 워낙 망나니 같은 손주니 그렇다 치더라도 평소 효심이 깊었던 육지원까지 그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다니.‘이 정도면 할아버지가 폭발하실만도 한데...’“파주 리조트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어?
옷방 문에 기대 여전히 그에게 삐진 듯 토라진 얼굴로 짐을 싸고 있는 강유리를 바라보고 있다가 맞은 날벼락이었다.“대표님, 회장님께서 이번엔 정말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습니다. 대표님이 맡고 계신 프로젝트를 육 실장님께 넘기는 건 거의 선전포고 아닙니까?”심각한 상황에 임강준의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잔뜩 담겨있었다.“하, 내가 그렇게 쉽게 내 걸 뺏길 것 같아?”하지만 육시준은 어느새 여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프로젝트에 관한 자료 다 경원이한테 넘겨줘. 인수인계도 제대로 해주라고 하고.”의아함이 가득 든 임강준의 질문에 그는 대답 대신 명령을 남긴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한편, 강유리는 사각팬티 하나를 들곤 무슨 연구라도 하듯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었다.남자 속옷을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라 꽤 신기한 모양이었다.‘여자 거랑은 다르네. 앞에 주머니 같은 것도 들어있고. 아, 설마...’뭔가 떠오른 건지 혼자서 얼굴을 붉히는 강유리를 지켜보던 육시준이 참다 못해 한 마디 던졌다.“뭐가 그렇게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어.”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잘못을 저지른 학생처럼 후다닥 팬티를 집어넣던 강유리가 육시준을 발견하곤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처음 봐서 신기하다. 왜! 뭐, 그게 창피한 일인가?”“솔직히 그 나이 먹고 남자 속옷 처음 보는 게 자랑은 아니지.”강유리가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노려보자 괜히 장난기가 발동한 육시준은 놀림을 이어갔다.“우리가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 보려면 충분히 기회가 있었을 텐데 왜 못 보셨을까? 너무 긴장했었나? 아니면 마음이 너무 급했었나?”‘윽, 저 성스러운 얼굴로 음담패설을 내뱉다니. 진짜 안 어울려.’강유리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러는 당신은? 할 때마다 마음이 급했나 보지? 그렇게 빨리 끝나는 걸 보면?”강유리의 반격에 육시준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말없이 터벅터벅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육시준을 향해 강유리는 턱을 치켜들었다.
며칠 전까지 그녀의 제멋대로인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던 남자가 방금 전 프로젝트를 빌미로 출장 짐을 싸달라고 하니 잔뜩 골이 나있었던 건 사실이었다.아내가 직접 싸주는 짐으로 출장을 가는 게 뭐 로망이었다나? 하지만 이미 후끈 달아오른 육시준은 이제 다른 것을 탐하기 시작했다.“짐은 아주머니한테 부탁하고. 우린... 다른 거 하자, 응?”강유리의 온몸을 장난스레 훑던 육시준이 뇌쇄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내일 일찍 일어나야 한단 말이야.”그의 집요한 키스를 피하며 강유리는 마지막 남은 이성을 잡으려 애썼다.하지만 주문이라도 걸린 듯 섹시한 육시준의 목소리가 그녀의 정신을 아득해지게 만들었다.“이번 출장 꽤 오래 걸릴 텐데. 나 안 보고 싶겠어?”“...”떨리는 눈동자로 육시준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보... 보고 싶긴...”그리고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열폭풍 같은 뜨거운 키스가 시작되었다.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자유의 몸이 된 강유리는 축 늘어진 채 소리없이 몸을 태우는 캔들을 바라보았다.마침 샤워를 마친 육시준이 욕실을 나오고, 영혼까지 다 빼앗긴 것 같은 그녀와 달리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억울함이 밀려왔다.“짐 정리는 당신이 직접 해. 그리고 내 짐도 당신이 싸줘.”머리를 닦던 손길이 잠깐 멈칫하고 입이 닷발은 나온 강유리를 바라보던 육시준이 픽 웃었다.“맡겨준다면야 영광이지. 아, 샤워도 내가 도와줄까?”평소라면 이 무슨 헛소리냐며 펄쩍 뛰었겠지만 정말 너무 피곤했던 강유리는 이미 이성적인 사고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부부끼리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진짜 손가락 하나 까닥 하기 싫단 말이야... 그런데...’“나 씻겨주다가 헛짓거리만 안 하겠다고 맹세하면.”하지만 그녀의 대답에 꿈쩍도 하지 않는 육시준을 반응을 살피던 강유리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침대에서 일어섰다.“됐어! 내가 알아서 씻을게. 대신 당신은 짐 정리 깔끔하게 해둬. 내가 나
순간, 운전기사가 잡은 핸들이 살짝 흔들리고...흠칫 놀란 강유리가 고개를 든 순간, 임강준이 재빠르게 한 마디 건넸다.“대표님, 사모님. 호텔 도착했습니다.”“아, 네. 고맙습니다.”한편, 수화기 저편의 여자가 말을 이어갔다.“어쨌든 그래서 내 도움 필요해, 안 해?”“네가 보고 싶은 건 너희 남편인 것 같은데? 난 그냥 핑계고.”“하여간. 언니는 참 솔직하지가 못해.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바로 가줄 텐데 그 한마디를 못하네? 뭐, 어쩌겠어. 내가 속는 셈 치고 가준다. 난 역시 너무 착하다니까. 모레 도착이니까 공항으로 나와, 알겠지?”그녀의 말을 듣고 있긴 한 건지 막무가내인 여자를 향해 강유리가 한숨을 쉬었다.“나 모레면 출장 중일지도 몰라. 마중은 남편더러 가라고 하세요?”통화를 하며 차에서 내린 강유리는 트렁크에서 자신의 짐을 챙긴 채 육시준을 향해 손까지 흔든 뒤 호텔로 들어섰다.당연하게도 그 뒤를 따라가려다 쓸쓸하게 남겨진 육시준을 바라보던 임강준이 어색하게 웃었다.“아, 사모님이... 대표님도 이 호텔로 잡으신 걸 모르셨나 봅니다.”한편, 어느새 호텔 로비로 들어선 강유리는 체크인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이번에 귀국하면 너 영입하려는 제안들 다 받아들여.”얼마 전, 신아람이 귀국한 뒤, 로열엔터와 전속 계약을 맺은 덕분에 연예계에서 성신영의 입지가 다시 밀리는 상황. 이 와중에 육경원 옆에 더 붙어있고 싶다면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더 증명해야 할 테고 딸 바보인 성홍주는 그녀를 위해 유강그룹 전체를 베팅할지도 모른다.‘어쩌면 내가 원하는 유강 주얼리도...’“유강그룹에서 뭔가 벌어질 것 같다는 말이야?”방금 전까지 상당히 오버스럽던 여자의 목소리가 드디어 차분해졌다.“그래. 그러니까 그쪽에서 만나자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받아들여.”“오케이, 맡겨줘.”통화를 마친 강유리가 방키를 받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려던 그때, 왠지 익숙한 그림자에 고개를 돌린다.육시준, 임강준 그리고 트렁크를 번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