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경찰 아저씨 대박!’‘고성그룹이 이십여 년을 가르쳐도 실패한 사람 될 도리를 며칠 만에 깨닫게 하다니...’“동생?”전화기 너머로 다정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릴리는 자기도 모르게 똑바로 앉았다. “제발 평소처럼 굴래요?”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냥 평범한 남매처럼 지내고 싶을 뿐이야. 지금 주소가 어디야? 아버지와 함께 보러 갈게.”“그럴 필요 없어요. 어느 정상적인 남매가 서로를 죽일 생각을 하나요? 저희는 그냥 이대로 지내는 편이 가장 좋겠어요.”“...”고우신은 릴리의 경계하는 태도에 어쩔 수가 없었다.주소조차 알 수가 없다.고정남은 그날 밤 이후로 다시는 릴리로부터 답장을 받지 못했다. 릴리는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게다가 이 아파트 단지는 LK그룹의 것이다. 육시준이라는 보호막이 있어서 그들은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다...고우신은 결국 포기했다. “그럼 언제 집에 올 거야? 가족끼리 식사라도 할까?”릴리는 아무렇게나 대답했다.“시간 나면요.”“그게 언젠데? 주말은 괜찮아? 주말에는 주영이도 오니까 우리 네 식구끼리 앉아서 얘기라도 나누자.”고우신은 식사 자리에 집착했다.고우신은 이렇게 침착하게 말한 적이 거의 없었던지라 릴리는 조금 놀라웠다.‘얘기를 나누자고?’‘좋아.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나 보자고!’“그래요. 그럼 토요일 저녁에 봐요.”“그래. 토요일 저녁에 오빠가 월계만으로 데리러 올까?”“...”릴리는 눈썹을 찡그리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릴리는 이제야 그녀가 화가 나서 미친 짓을 할 때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서워했는지 알게 되었다.행동 스타일이 평소와 이렇게나 다른데 누구라도 귀신이 들린 건 아닌지 의심할 것이다. 다른 쪽, 차 안.고정남은 끊긴 전화를 보고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 망할 계집이! 갈수록 제멋대로구나! 다시 전화를 걸어서‘좋아요’를 취소하라고 해! 그리고 계정에 도대체 뭘 올린 거야? 정말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어서 말
고우신과 성신영이 협력한 것을 고정남은 모르고 있었다.하지만 고정남은 고우신의 의도를 알고 있다.그는 자기 아들이 능력은 별로지만 가문에 대한 명예감은 매우 강하고 시종일관 고성그룹을 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우신이 릴리를 납치한 것도 고성그룹을 위해서라는 걸 고정남은 알고 있다...그래서 경찰서에서 나온 이후로 두 사람은 이 주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정남은 아직도 자기 아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는 릴리가 그룹을 이어받는 것만이 그룹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내가 설득하기도 전에 이 녀석이 스스로 깨닫고 릴리에게 화해를 요청하는 건가?’‘왠지 이상하다!’“아버지, 저를 못 믿으세요?”“이번 일은 제가 너무 충동적이었어요. 저는 릴리에게 상처를 입혔는데 릴리는 저를 구해줬고요. 정말 부끄럽습니다...”고우신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성신영은 정말 그들을 죽이려고 했다.경찰의 말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두 경호원은 신원이 불분명하다. 아마 외국에서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일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릴리는 자기 살 궁리만 한 것이 아니라 고우신에게도 밧줄을 풀 수 있는 도구를 건네주었다...“그런 경우에서는 같이 도망칠 동료가 늘어나는 게 승산이 더 높아서 그런 거 아닐까?”고정남은 사업하는 사람이라서 바로 이 행동의 의도를 간파했다.하지만 바로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고우신은 이번 일로 릴리와 관계가 완화되거나 더욱 가까워질 수도 있다.그리고 고우신의 진심은 릴리를 감동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래서 릴리가 기꺼이 자신이 고성그룹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지도 모른다...고우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어요. 릴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직업 용병과도 비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걸요!”고정남은 경악하는 표정을 짓고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릴리가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너희들이 마땅히 우세일 텐데 왜 구조만 기다리고 있었지?”“
“이번 일 덕분에 팬 됐어요. 구경하다가 뜻밖의 보석 발견!”“레이싱 동영상을 봤는데 고우신 앞에서 짓는 불쌍한 표정이 지금 보니 왜 이리 어색할까요.”“겉으로는‘오빠가 나 무시하면 울 거야, 힝’하지만 속으로는‘이 불효자야, 너는 동생을 잃게 될 거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니.”“웃겨 죽겠네. Y국 귀족들은 당신이 그 많은 일들을 폭로한 것을 아나요?”“...”마지막 댓글에 릴리는 눈동자가 순식간에 커졌다.이건 개인 계정이다.릴리가 올린 내용을 만약 그들이 본다면 캐번디시 가문과의 동맹은 즉시 결렬될 것이다...릴리는 신속하게 제일 처음 올렸던 내용을 찾았다. 삭제.삭제.삭제.가장 충격적인 3가지 사건을 빨리 삭제하고 나머지 영향력이 작은 사건들도 하나씩 삭제하기 시작했다.삭제하느라 눈이 어지러워 날 때 전화가 왔다.강유리다.릴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수신 버튼을 눌렀다.고막을 뚫고 나올 듯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ㅋㅋㅋ이제 네가 고우신을 무시한다는 걸 온 세상이 다 알게 됐네. 아, 웃겨! 그 자식이 배신하자마자 불효자라고 욕하고! 그가 마땅히 감수해야지. 그럴만한 짓을 했으니까...”릴리는 입을 삐죽 내밀고 말이 없었다.강유리가 말을 멈춘 틈을 타 릴리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다 웃었어요? 실컷 웃었으면 컴퓨터로 제 계정에 로그인해서 일전의 내용들 좀 지워주세요.”강유리는 잠시 말이 없더니 대답했다. “그렇게까지 번거로울 필요가 있나? 너는 고성그룹 최고 이사라는 걸 잊었어? 고성그룹 홍보팀에게 해달라고 하면 되지!”“어머나, 제가 사장으로서의 자각이 부족했네요! 이 방법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비서의 연락처를 찾아 수십 통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계정과 비밀번호를 그에게 바로 넘겼다.【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들을 삭제하세요.】그리고 그들이 이 기회를 노리고 다른 짓을 할까봐 한마디 보충했다.【다른 내용은 건드리지 마시고요.】보내는 김에 위에 온 메시지들도 훑어봤다. 계정 비밀번호를 물어보는 메시지였다
“뭐가 없어졌어요?”강유리가 대답했다. “네 계정에 내용들 말이야. 전부 삭제됐는데? 너무 아쉽다. 꽤 재밌었는데!”“...”릴리가 계정을 열어보니 역시나 전부 삭제된 상태였다.‘이 자식들이, 내 말은 귓등으로 듣는 건가?’바로 이때 회장 비서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죄송합니다, 둘째 아가씨. 후에 온 메시지를 못 봐서 전부 삭제해 버렸습니다.】공사 구분 철저하게 할 것 같은 무뚝뚝하고 당당한 말투에서는 일말의 미안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릴리가 문자를 보내서 예의상 답장을 보내온 것뿐일 테다. 【홍보팀에서 상의한 결과 이 계정은 공식 계정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바로 인증을 취소하고 공식 계정을 다시 신청해 드리겠습니다.】‘제기랄, 계정은 이미 텅텅 비었는데 인증을 취소하겠다고?’‘그럼 이 계정은 완전히 폐기된 거 아니야?’왜인지 모르게 릴리는 이 행동이 복수처럼 느껴졌다.이 오래된 홍보팀과 회장 비서는 강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우리가 당신을 위해 일해주는 걸 영광으로 알아. 함부로 하면 우리는 즉시 당신 계정을 삭제하고 인증을 취소할 수 있어.”라고 하는 듯한 느낌을 릴리는 받았다. “언니, 고성그룹 사람들이 지금 저한테 도발하는 것 같은데요?”릴리는 텅 빈 계정을 보며 말했다.전화기 너머의 강유리가 대답했다. “자신감을 가져. 이건 도발이 맞아.”“고우신이 주말에 저녁 식사를 하자고 초대해서 식사 후에 그룹에 언제 돌아갈지 결정하려고 했는데... 방금 생각을 바꿨어요.”“도와줄까?”“능력 있고 믿음직한 비서 한 명 보내줄 수 있어요?”릴리는 그동안 고성그룹의 고위층을 위주로 믿을 만한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그래서 이제는 서서히 고성그룹의 실권을 장악하게 됐다.그런데 고위층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비서 같은 주위 사람은 잊어버렸다.고정남의 옛 비서는 줄곧 릴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늘 말투가 괴팍하거나 싸늘했다.심지어 릴리의 편을 들지 않기도 했었다.릴리는 그에게
하지만 릴리의 현재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만능 인재는 몇 명 되지 않는다...한참 생각하더니 강유리는 하석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전 비서였던 하석훈은 지금 지사에서 대표 자리를 맡고 있다. 그는 강유리와 함께 홀몸으로 귀국하여 많은 사람들의 반대 속에서 유강그룹의 주식을 되찾아 주었었다. 강유리는 하석훈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하석훈은 강유리의 계획을 듣고는 잠시 침묵했다. “저는 지금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고 있어서 가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 고성그룹의 상황은 과거 유강그룹 때보다 백배는 더 어렵습니다. 매우 전문적인 사람이 필요합니다.”강유리는 입술을 오므리고 침묵을 지켰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회사 경영에 관해서는 강유리도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저한테 두 명의 후보가 있습니다.”하석훈이 귀띔했다.“예를 들자면?”“고성그룹의 현재 상황은 둘째 아가씨가 명분만 있고 실권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자기 사람을 많이 만드는 것은 맞지만 그 자리가 비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홍보팀에도 빈자리가 있으니 함께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지금 고성그룹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일이 언론 통제인데 이 방면으로는 여한영 본부장을 따라갈 사람이 없죠.”“물론 사장님보다는 못하지만요.”“...”‘정말 고맙네요. 이런 상황에서도 제 칭찬을 빠뜨리지 않으시고.’“게다가 여한영 본부장은 의리가 있습니다. 일단 이 자리를 꿰차게 한 후 릴리 아가씨와 협조하여 여론몰이를 하면 고성그룹의 물갈이도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강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한 명은요?”하석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분은 확실히 만능 인재기는 하지만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사장님한테는 식은 죽 먹기일 거에요.”“???”...릴리는 전화를 끊고 즉시 비서에게 문자를 보냈다.【인증 취소하지 마세요. 재신청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하지만 비서는 못 본 척 답장을하지 않
인터넷상의 언론은 두 갈래로 엇갈렸다.대부분 사람은 릴리를 지지하고 고성그룹을 비난했다.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릴리의 행동은 분풀이만 할 수 있을 뿐이지 어떤 이익도 얻을 수 없다고 객관적으로 분석했다.그리고 어떤 네티즌들은 이 문장도 삭제될 것이라고 추측했다...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태는 점점 더 커져갔고 구경꾼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고성그룹도 시도는 해봤다.그들은 문장을 삭제하려고 했지만 비밀번호가 이미 변경되었음을 발견했다.신고해서 없애 보려고도 했지만 플랫폼에서는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의 신고를 기각했다.그들은 이 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네티즌들은 모두 릴리가 피해자인데 목소리를 낼 권리도 없냐며 그녀를 동정하고 있다. 개인이 그룹과 대항하는 건 틀림없이 어려운 일이다.하지만 릴리의 배후에는 육시준이 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고성그룹은 한때는 빛났을지 모르지만 그동안의 상황으로 보면 내부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제 코가 석 자면서 마지막으로 발버둥 치는 건가?발버둥 치는 건 상관없는데 다른 사람은 끌어들이지 맙시다. 모두들 구경하고 싶을 뿐 총알받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강릴리 고성그룹과 정면 승부#이 검색어는 밤새 실검에 걸려있었다.사람들의 관심은 계속해서 늘어갔다. 이튿날 아침.고정남은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이 사건의 처리 방안을 논의했다.논의한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단 한 가지 방안만 있다. 바로 릴리가 직접 나서서 해명하게 하는 것이다.릴리가 직접 말해야만 그룹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그러게 릴리 심기를 왜 건드려! 누가 릴리 계정을 찾아서 내용을 삭제한 거야?”고정남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어젯밤 그는 밤새 릴리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릴리는 짜증이 났는지 바로 그를 차단해 버렸다.나중에는 고우신마저도 차단해 버렸다.지금 엉망진창이 된 상황을 보면서 고정남은 참지 못하고 불평을 쏟아냈다.홍보팀 본부장이 작게 말했다. “릴리 아가씨께서 직접
릴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기자들은 릴리를 본 순간 벌떼처럼 몰려들었다.“릴리 씨,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들이 사실인가요?”“부상이 낫자마자 바로 그룹에 오셨는데 정의를 되찾으러 온 건가요?”“네티즌들은 릴리 씨가 끝까지 고성그룹과 맞서 싸울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맞습니까?”“...”차 앞에 선 릴리의 눈꼬리가 선글라스 속에서 움찔거렸다.‘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지 그래?’‘이게 인터뷰야 아수라장이야?’이번에 고성그룹이 망한다면 틀림없이 이 기자들 몫도 있을 것이다...옆에 서 있던 키 큰 사람이 다가오더니 손쉽게 기자들에게서 릴리를 보호했다. 그는 몰려오는 기자들을 한 손으로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릴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죄송합니다. 좀 비켜주세요.”어설픈 한국어에 현장은 몇 초 동안 침묵했다.셔터 소리가 찰칵찰칵 들려왔다.눈치 빠른 기자가 그를 알아봤다. “유명 글로벌 기업인 MG그룹의 전 대표 아니야?”몇 년 전 MG그룹 대표 자리를 그만뒀을 때 연수를 갔네 가업을 물려받았네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했었다.몇 달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니 여기에 나타났다고?릴리는 기자들이 조용한 틈을 타서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인터넷상의 소식은 당연히 사실입니다. 어제 화가 나서 추태를 부리고 여러분의 심려를 끼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성그룹이 저를 존중한다고 믿습니다. 어제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은 분명 누군가의 실수겠죠?”“오늘 여기에 온 것은 사실을 확인하는 김에 실수한 사람도 밝혀내려고 온 것입니다.”“구체적인 상황은 실시간으로 공식 블로그에 올릴 테니 제 유일한 계정을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이 몇 마디를 남기고 릴리는 켈슨의 보호를 받으며 회사로 들어갔다.기자들은 잠시 마음이 복잡했다.릴리는 너무 예쁘고 단정했다.대범하고 우아했다.온라인상에서 비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였다.도대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정체가 탄로 나고도 계속 연기할 수 있
릴리가 회의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모두 와있는 상태였다.맨 앞에는 고정남이 앉아 있었다.회장님이 와있으니 사람이 다 모여있지. “제가 발표할 일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시고 모두 여기서 기다리고 계셨어요?”릴리는 천천히 말하며 고정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리고 고정남의 옆에 서서 자연스럽게 소개했다. “새로 영입한 대표를 소개합니다.”회의실은 조용했다.박수치는 사람도 소리를 내는 사람도 없었다.릴리를 바라보는 주주들의 눈빛은 분노와 불만, 비아냥으로 가득했다.좋게 보는 시선은 하나도 없었다. 쥐 죽은 듯한 고요에 릴리는 왠지 민망했다...켈슨이 오기 전에 이미 예상을 했는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기절로 박수를 치고 유창한 영어로 자기소개를 했다.릴리도 그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반응이 없어 릴리는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회장 비서에게 화풀이했다.“지금 자리가 마음에 안 드시나 보네요?”양율은 싸늘하게 릴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불똥이 자기에게 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저는...”“사람이 왔는데 좌석도 추가하지 않나요?”릴리가 그의 말을 끊었다.“...”양율도 한동안 릴리와 함께 일을 했었다. 제일 처음 그의 면전에서 문서를 훑어본 다음 문서를 바닥에 내던지며 상황 파악을 하라고 위협한 이후로는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릴리는 눈감아 주었다.지금까지 그에게 한 번도 눈치를 준 적이 없다.지금처럼 면전에 대고 구박한 적은 더더욱 없다...양율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고정남을 바라봤다.그는 어쨌든 고정남의 사람이다. 그의 체면을 구기면 고정남의 체면을 구기는 것과도 같다. 고정남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다가 문득 릴리의 뜻을 깨달았다.그는 아무 말도 없이 릴리가 트집을 잡도록 내버려두었다.양율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결국 좌석을 추가하러 갔다.그는 고성그룹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면서 고정남 말고 누구의 눈치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