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강성으로 돌아간 거야?”핸드폰 너머로 나태웅이 이를 꽉 깨물고서는 화가 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미 머리가 아픈 상황에서 나태웅의 목소리를 들으니 안지영은 더욱 짜증이 몰려왔다.안지영도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강성으로 돌아가면서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한 거야? 또 장선명하고 같이 있는 거야? 안지영 너 뇌가 없어? 이번 매하리에서도 그렇고.”나태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차 안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정적을 깨고 장선명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나태웅 전화야?”안지영이 말했다.“그냥 무시해요.”‘이 재수 없는 자식은 지금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거야?’안지영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나태웅은 예전에 동영 그룹에 있을 때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달려져 안지영도 알아볼 수 없었다.아마 나태웅의 부모님조차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배준우도 나태웅이 이렇게 변한 것에 대해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그렇게 오랫동안 나태웅에게 일을 가르쳤는데 결국 미친 인간을 만들어 낸 셈이다.한편 고은영은 관련 기사들을 보고 더 혼란스러워졌다.배준우와 량천옥이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모르겠지만 배준우가 돌아왔을 때 그의 얼굴은 어두웠다.고은영은 핸드폰을 들고 앞으로 다가갔다.“준우 씨 이것 좀 봐줘요. 왜 다들 배준우의 와이프를 언급하는 거예요? 혹시 날 말하는 거예요?”기사에 명확하게 나오진 않았지만 댓글 대부분이 고은영과 진씨 가문을 겨냥하고 있었다.‘왜 날 끌어들이는 거야? 그래서 안지영이 아까 전화에서 날 바보라고 한 건가? 나 정말 바보가 맞았네?’안지영이 바보라고 했을 때는 몰랐지만 고은영은 지금 스스로가 정말 바보 같았다.배준우는 혼란스러워하는 고은영의 얼굴을 보고서는 그녀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배준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은영은 더욱 당황했다.“설마 이것 때문에 량천옥이 날
지금 모든 일이 뒤엉켜버린 상황이라 혼란스러웠다.고은영이 량천옥 그리고 진씨 가문과 왜 엮였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배준우는 진청아에게 알아보라고 조사를 맡겼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사건이라 진상을 밝히는 것이 쉽지 않았다.원래는 량천옥의 죽은 전남편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했지만 지금 보니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고은영은 머릿속으로 계속 상황을 정리해 보려 했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아 망연자실하게 배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량천옥은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예요? 아직 모든 게 명확하지 않잖아요?”배준우가 대답했다.“량천옥은 진씨 가문과 너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알고 있어. 그래서 너와 자기 사이에 검사 결과를 믿지 않는 거야.”고은영은 조금 이해가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진씨 가문과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일치하니까 량천옥은 자기와 나의 검사 결과를 믿지 않는군요.”그들 사이의 관계가 특수하므로 량천옥은 그들이 조작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이건.’“그러니까 나와 량천옥의 유전자 검사 결과도 일치한다는 거죠?”“맞아.”고은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머릿속이 또 윙윙 울리면서 생각이 멎는 것 같았다.‘어떻게 일이 이렇게까지 복잡해질 수 있는 거야?’고은영과 량천옥 그리고 진씨 가문은 원래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그런데 지금 상황인 너무 복잡하게 얼기설기 얽혀 있었다.“그럼 난 도대체 어느 집 딸인 거예요?”배준우는 순간 할 말이 없었다.‘어느 집 딸이냐고?’진정훈이 벌인 소동과 이번에는 진정훈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진윤을 생각하며 고민하던 배준우는 입을 열었다.“너와 진씨 가문 외할머니의 유전자가 일치한대. 그러니까 넌 진씨 가문의 딸이야.”이렇게 말하니 확실해졌다.“그럼 나와 량천옥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바로 그게 문제야. 지금 아무도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이유를 몰라.”고은영은 할 말이 없었다.아무도 이유를 모른다니 이 점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다.너
배준우는 고은영의 차가운 작은 손을 잡으며 말했다.“골수 문제는 걱정하지 마. 이미 수소문하고 있어.”“근데 찾기 어렵잖아요.”고은영은 고통스러운 듯 숨을 가쁘게 쉬며 말했다.배준우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찾기 힘든 건 맞지만 그래도 반드시 찾아야 했다.강성 전체가 진씨 가문과 관련된 폭발적인 기사로 인해 충격에 빠졌다.다들 재벌가에는 비밀이 많고 혼란스럽다고 말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사람들은 재벌가의 진정한 혼란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진씨 가문의 혼란에 비하면 세컨드가 혼외 자식을 데려와 책임을 요구하는 일은 그저 사소한 문제처럼 보였다.량천옥의 광기 어린 행동 덕에 지금 고은영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고은지의 골수였다.다음 날 고은영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고은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고은영은 그 모습을 바라보니 순간 목이 메어왔다.“언니.”이 순간 고은영은 사람이 기력을 다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느꼈다.고은지는 고은영의 차가운 손을 잡으며 한숨을 쉬었다.“이런 시기에 날 찾아오면 어떻게 해. 넌 준우 씨 옆에 안전하게 있어야지.”고은영은 그 말을 듣고 숨이 턱 막혔다.고은영은 멍하니 고은지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고은지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분명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괜찮았고 고은지도 량천옥이 그녀에게 골수 기증을 해주겠다는 말을 들었었다.그런데 이 좋은 소식은 하루 만에 사라졌고 고은지는 다시 지옥으로 떨어졌다.“미안해 언니. 나도 일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고은영은 숨을 가쁘게 쉬며 입을 열었다.이에 고은지가 말했다.“그냥 이게 한 사람의 운명인 거야. 이번에는 하늘이 날 살려두지 않으려는 건지도 모르지.”“언니 그런 말 하지 마.”고은영은 고통스러워하며 말했다.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병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니 고은영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은영이 더욱 크게 느끼는 것은 무력함 속에서 오는 슬픔이
하지만 의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량천옥은 바로 말을 끊었다.“2억 더 드릴게요. 선생님의 두 아이가 곧 유학하러 간다고 들었어요. 이번에 선택하신 학교는 제법 비싸다고 하던데.”량천옥은 상대의 약점을 정확하게 짚었다.사무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고은영은 량천옥이 이렇게까지 미친 짓을 버릴 줄은 몰랐다. 량천옥은 고은영을 해치려는 것뿐만 아니라 고은지의 목숨까지 노리고 있었다.사무실 안에서 의사는 떨리는 손으로 콧등에 있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돈을 갖고 온 량천옥을 꾸짖으려 했다.그런데 사무실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고은영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다가가 의사와 량천옥이 반응하기도 전에 책상 위의 돈 상자를 들어 량천옥의 머리 위에 쏟아부었다.현금이 사무실 전체에 흩어지며 아주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이 순간 사무실 안의 분위기는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고은영은 량천옥에게 소리를 질렀다.“량천옥. 당신 어쩌면 이렇게 더럽고 악독한 짓을 해?”“내가 악독해? 넌 날 속이고 천의와 지분을 가져갔어.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날 비난해?”“누가 당신을 속여? 당신이 처음부터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단정 지은 거잖아. 처음부터 끝까지 나한테 뭘 물어본 적이라도 있어? 아니면 나한테 확인이라도 했어? 내가 당신 딸이라고 직접 인정한 적 있어?”량천옥을 속였다는 말을 고은영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량천옥은 위헌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몸을 일으키더니 고은영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는 의사 앞에 놓인 물컵을 들어 고은영에게 바로 뿌렸다.고은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촥하는 소리와 함께 온몸이 차갑게 젖어 들었고 이 순간 고은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고은영은 부드러운 사람이 맞지만 그렇다고 아무 사람에게나 호락호락 당하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량천옥에게서 물세례를 받아 초췌해진 고은영은 바로 분노하며 신발을 벗었다.“이 미친 여자가 정말.”그렇게 말하며 량천옥에게 다가가 싸우기 시작했다.처음에 고은영
그러나 고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경찰을 부른다고요? 좋아요. 경찰한테 와서 잘 보라고 하세요. 당신이 우리 언니 주치의를 매수해 목숨을 앗아가려고 어떤 일을 꾸몄는지.”량천옥은 순간 호흡이 무거워졌다.그녀는 두 손을 꽉 쥐고서는 분노에 온몸을 떨며 이를 악물었다.“네가 날 모함하는 거야. 처음부터 네가 먼저 날 속였잖아.”“여기 뿌려진 돈다발이 증거로 떡하니 있는데 내가 굳이 그쪽을 모함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난 단 한 번도 내 입으로 내가 그쪽 딸이라는 걸 인정한 적이 없어요. 그쪽을 엄마라고 부른 적은 더 없고요.”이 순간 량천옥이 무슨 말을 해도 고은영은 그녀의 입을 막을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량천옥은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 보고 억울한 표정으로 바닥에서 일어났다.그녀는 떠나기 전에 잊지 않고 고은영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돈은 안 챙기세요?”고은영은 량천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롱하듯 말했다.량천옥은 순간 멈칫하더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주치의는 고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모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돈은 제가 가져갈게요. 방금은 실례했습니다.”비록 방금 상황이 화가 나긴 했지만 고은영은 주치의의 태도를 명확히 봤다.이 많은 돈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 그가 아주 훌륭한 의사라는 걸 증명했다.주치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이건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다만 이런 일을 겪을 줄은 몰랐네요.”솔직히 말해서 이건 주치의도 처음 겪어보는 일이어서 방금은 정말 충격과 동시에 분노를 느꼈다.하늘 아래 량천옥 같은 여자가 다 있다니.의사는 여러 해 동안 온갖 일을 겪었지만 권력과 지위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량천옥 같은 여자는 정말 드물었다.그러나 방금 그 순간 주치의도 정말 화가 났었다.“골수 문제는 다른 방법을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도 계속 주의하고 있겠습니다.”주치의도 지금
량천옥은 분노에 휩싸인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량일은 창백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있었고 이마에는 두꺼운 흰 천이 감겨 있었다. 누가 봐도 병이 난 상태였지만 왜 병이 났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량일은 가장 먼저 고은영의 정체를 알아차린 사람이었고 마음속으로도 고은영의 정체를 확신했다.그러나 지금 일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누가 그녀에게 알려줄 수 있을까?“이 죽일 년 정말 날 미치게 하네.”량천옥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심지어 량천옥은 이 순간 량일이 병이 난 것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량일은 숨을 쉬기 힘들어하면서도 량천옥을 한 번 바라보았다.량천옥의 엉망인 모습을 보자 량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은영이를 찾아간 거야?”“그것들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량천옥은 아주 거칠게 대답했다.량일은 량천옥의 말을 듣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말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화가 난 상태라 량일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결국 량일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삼키기로 했다.량일이 생각한 대로 량천옥은 지금 화가 나 전혀 자기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었다.“엄마는 어쩜 그렇게 어리석을 수 있어? 그때는 왜.”량천옥은 고은영 때문에 불타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어 이제는 그 화살을 량일에게 돌렸다.량일이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었지만 제대로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량천옥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량일은 량천옥의 광기 어린 모습을 보고 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도 확신했었잖아.”량일과 량천옥은 당시 죄책감 때문에 제대로 유전자 검사를 받아볼 겨를이 없었다.심지어 유전자 검사 때문에 고은영의 반감을 불러일으킬까 봐 오히려 그냥 확인할 생각을 접었었다.그동안 량일과 량천옥은 고은영에게 모든 것을 다 바쳐 잘해주었다.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아직 다 완성되지 않은 아기 물건을 보니 량일은 가슴이 더욱 답답해졌다.“고은영이 아니라면 그 아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이 말을 할
고은영의 얘기가 나오자 배항준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지금은 고은영이 진씨 가문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일이 이렇게 커졌으니 진씨 가문은 강성에서 가장 큰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거기에 덩달아 배씨 가문까지 엮이게 되었다. 사람들은 배씨 가문이 결국 진씨 가문과 혼인을 맺은 것이라고 떠들었다. 배항준은 진성택이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만약 량천옥이 전에 일을 버리지 않았다면 배항준은 절대로 진씨 가문의 일을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지금 고은영이 진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배항준은 전혀 위안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고은영에 대한 반감만 더 커졌다.“그 아이는 어찌 됐든 준우의 아이를 낳았잖아요. 누구 집 딸이든 상관없이 준우가 좋아하는 사람이에요.”김다정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김다정이 아이 얘기를 꺼내자 배항준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지금까지 배항준은 손주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배준우에게 아이를 데려오라고 했지만 그 망나니는 끝내 데려오지 않았고 뒤에 집사를 보냈는데도 아이를 데려오지 못했다.이 생각이 떠오르자 배항준은 더욱 화가 났다.배항준과 똑같이 좌불안석인 사람이 가든 하우스에 한 사람 더 있었다. 전에 유청은 해외로 떠나려 했지만 배지영에게 문제가 생겨 어쩔 수 없이 출국을 미루게 되었다.원래 유청은 고은영의 아이를 자기가 키우고 싶었지만 배준우가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이렇게 일이 터졌으니 유청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 나하고 란완 리조트에 다녀오자.”배지영은 귤을 까먹던 중에 유청의 말을 듣고 손을 멈추었다.“거기에 가서 뭐 해요?”“아이를 데려와야지.”유청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유청의 말을 들은 배지영은 멈칫했다.“엄마 그 아이를 데려와서 직접 키우려고요?”“당연하지? 너도 봤잖아. 지금 준우와 그 계집애의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지. 이건 아이의 성장 환경에 아주 안 좋아.”유청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배지영도 관련 기사를 봤
고은영은 병원에서 동영 그룹으로 돌아왔을 때 진정훈과 진윤이 배준우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온몸이 얼어붙었다.진윤도 고은영을 바라보았고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 고은영은 진윤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고은영은 이제 진씨 가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배준우는 고은영에게 진씨 가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진씨 가문의 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진정훈과 진윤이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고은영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손을 움켜쥐었다.진정훈이 무의식적으로 고은영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앞으로 다가갔지만 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진정훈 먼저 주차장으로 가서 기다려.”진정훈은 내키지 않았지만 진윤이 고은영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바로 자리를 떠났다.비서실의 사람들은 감히 고은영과 진윤을 쳐다보지 못하고서는 각자 일에 집중하는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그러나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진윤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고은영을 바라보았다.고은영은 키가 컸고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생명력이 강한 풀처럼 강인하게 잘 자란 모습에 진윤은 아주 감격스러웠다.그러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죄책감이 차올라 어렵게 입을 열었다.“휴게실로 갈까?”진윤은 친여동생이라는 소녀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전혀 몰랐다.특히 고은영이 아주 불편해 보이는 상황에서 진윤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랐다.그동안 오랜 세월 진정훈은 진유경을 친여동생처럼 아끼고 챙겼지만 진윤은 그러지 않았다.그래서 진윤은 오빠와 여동생이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하지만 진윤은 지금 진씨 가문의 상황을 고은영에게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네라고 대답하자 진윤은 몸을 돌렸고 고은영도 그의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휴게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그러나 진윤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고 그저 계속 담배만 피웠다.고은영 역시 아무 말도 하지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
안지영과의 대화를 끝낸 후 고은영은 마침내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불안하게 이리저리 쫓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안지영은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고은영을 달래고 나서도 심장이 가라앉을 틈도 없이 나태웅의 전화가 집 전화로 걸려왔다. 그녀는 번호를 볼 수 없어서 그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틀 남았어.” 그 한 마디에 안지영의 화가 폭발했다. “뭐라는 거야?” “주원이에게 사과해!” 안지영은 입을 다물었다. ‘이 미친놈! 끝까지 이러는 거야?’ 만약 예전 같았으면 안지영은 그에게 말도 안 되는 반격을 했겠지만 지금은 화가 나서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안열이 들어왔을 때 안지영은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배씨 부인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안열은 안지영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불안한 이유가 결국 고은영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감정은 조금 달랐다. 안지영은 고은영으로 인해 말문만 막힐 정도였고 다른 사람 때문이라면 분명 엄청 화를 낼 것이다. “아니에요!” 사실 고은영에게 생긴 일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너무나 복잡했고 고은영이 또 울기 시작할지도 몰랐다. 안열은 안지영의 목소리에서 누그러지지 않는 화를 느끼며 궁금해했다. 고은영이 아니라면 또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죠?” “나태웅이 나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했어요. 이틀밖에 안 남았다면서요.” ‘이 사람이...!’ 나태웅에게 욕을 할 만큼 다 했는데도 그를 물리칠 수 없었다. 지금 안지영은 연달아 욕할 힘조차 없었다. 그의 존재를 설명할 만한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친놈? 병신?’ 안열은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요? 사과요?” ‘정말 이 사람 끝까지 그러는 거야?’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하죠?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얼마 전 나태웅의 집착과 하주원
안지영은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큰일이면 분석하는 데 얼마나 큰 두뇌 용량이 필요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고은영이 울려고 할 정도로 급해진 게 이해가 갔다. 자신이라도 정말 울고 싶을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진짜?’ “그럼 나태현은 량천옥이 너희 언니의 친엄마라는 걸 알아?” “그건 나도 몰라.” 상황이 이미 너무 복잡해서 이젠 고은영조차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태현과 고은지가 거래를 했다는 것만 봐도 그의 동기는 좀 의심스럽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이제 지신혜와 결혼을 약속했고 고은지를 천락 그룹에 다시 데려가려 했다. 그동안 고은지가 천락 그룹에서 일했던 전력도 있으니 나태현의 속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안지영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난 네가 차라리 네 언니에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금 말해?” “그럼, 무조건 말해야지! 량천옥이 아무리 미워도 네 언니의 친엄마잖아.” 진실을 알게 된 후 고은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녀의 자유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속 숨기면 만약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고은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태현이 구희주의 아빠라는 사실은?” “그건, 생각 좀 해볼게!” ‘이건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할까?’ 안지영은 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태현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역시 나씨 가문 사람이야. 어쩜 다들 이렇게 나쁜 자식이지?’ 전에는 나태현이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하나같이 나쁜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얘기하는 게 좋겠어!” 이렇게 큰일을 말 안 하면 나중에 얼마나 큰일로 번질지 알 수 없었다. 안지영은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고은영더러 고은지에게 모든 일들을 잘 설명해 주라고 말했다. 어차피 고은지는 지금 모든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고 아무런 일도 모르는 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