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영이 목숨을 버리려 한다고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왕여는 잠시 멍해졌다.나태웅의 말을 들어보면 정말로 장선명의 병실로 가서 안지영을 데려오려는 것 같았다.이건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잠깐만요. 가시면 안 돼요.”“놔.”“큰 도련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반드시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고요. 이렇게 하시면 죽을 수도 있으세요.”왕여는 거의 울 것 같았다.강성을 떠날 때부터 나태현은 계속해서 왕여에게 나태웅의 안전을 보장하라고 당부했다.그 말은 곧 장선명 앞에서 나태웅이 무리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었다.지금 이렇게 나태웅이 장선명의 병실로 가는 건 죽고 싶어서 자기 발로 찾아가는 것이었다.하지만 나태웅은 정말 미친 것 같았다. 이제는 왕여가 아무리 막아도 듣지 않고 바로 장선명의 병실로 돌진했다.장선명과 안지영은 마침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장면은 두 사람의 사이가 정말 친밀해 보였다.그러나 이 장면은 순간 나태웅의 신경을 자극했다.나태웅은 두 사람이 잡은 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나태웅의 눈에서 차가운 분위기가 번뜩였고 마치 칼날처럼 두 사람의 손등을 뚫어버릴 것만 같았다.뒤따라온 왕여는 순간 이 장면을 보고 멍해졌다.안지영과 장선명의 사이가 이미 이 정도까지 발전했을 줄은 몰랐다.“넌 왜 왔어?”나태웅이 병실에 들어온 것을 보고 안지영은 화를 내며 말했다.‘이 인간 이제는 정말 귀신처럼 끈질기게 따라다니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병실로 돌아가자.”나태웅은 차가운운 목소리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안지영이 나태웅을 배신한 것처럼 들릴 정도였다.안진영이 말했다.“꺼져.”‘내가 왜 저 인간하고 병실에 가야 해? 자기가 나한테 뭐라도 되는 줄 알아?’안지영이 또 꺼지라고 말하자 나태웅은 화가 너무 나서 이성의 끈을 놓쳐 버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할 말 있으니까 따로 얘기하자고.”“난 너랑 할 말 없
나태웅의 호흡은 순간 무거워졌다.안지영도 깜짝 놀랐다. 어제 산에서 들은 게 바로 이 소리였던 것 같다.장선명이 이런 물건을 항상 지나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다.안지영은 위험하게 번뜩이는 장선명의 눈빛을 보고 당황하며 말했다.“장선명 씨 제발 그러지 마요.”“지금 봤지? 장선명이 얼마나 위험한 인간인지. 저런 인간하고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거야?”나태웅은 죽음도 두렵지 않은 듯 말했다.왕여와 안지영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서는 바보처럼 나태웅을 바라보며 이 사람은 정말 멍청이가 아닐지 생각했다.이런 순간에 상대를 자극해서 뭐가 좋을 게 있다고 이런 말을 하는 걸까?왕여는 이미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그러나 안지영은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빨리 그쪽 대표 데려가지 않고 뭐 해요? 여기서 나태웅이 죽는 걸 보고 싶어요?”왕여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서는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대표님 저희 먼저 가시죠.”“안지영.”나태웅은 이를 악물었다.말투도 그렇고 눈빛도 모두 안지영을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안지영이 말했다.“닥치고 어른 꺼져.”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아직도 여기서 질척거리는 나태웅을 안지영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나태웅은 여전히 안지영을 병실로 데려가려 했다. ‘지금 장선명 같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거야? 그런데도 버티고 있네. 이 여자가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나태웅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러나 왕여는 더 이상 여기서 나태웅이 소란을 피우지 않도록 다급하게 그를 억지로 끌고 갔다.“이거 놔.”나태웅은 여전히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왕여는 못 들은 척하며 강제로 그를 병원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그렇다 병원 밖으로 끌고 갔다.이제 더 이상 이 병원에 있을 수는 없었다. 이러다 정말 사람 목숨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그렇게 병원을 빠져나왔다.나태웅은 왕여를 세게 밀어내며 말했다.“너도 봤지? 장선명이 감히.”“네 다 봤
“아파요. 너무 아파요.”어찌 됐든 안지영은 부상자인데 나태웅은 정말 너무 심하게 그녀를 마구 끌어당겼다.‘그 개자식은 정말 인간이 아니야.’생각하면 할수록 안지영은 더욱 억울해졌다.장선명은 안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부터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마.”“움직이지도 못하겠어요.”방금 조금 움직였다고 뼛속까지 고통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아까 안지영은 정말 나태웅의 얼굴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그 자식을 아주 죽여버려야 했는데.’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을 만나면 성격이 아무리 좋은 여자라 해도 결국 나태웅 때문에 화가 나 미칠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나태웅 정말 짜증 나는 인간이야. 이건 너무 심하잖아.’의사와 간호사가 모두 나가고 나서야 안지영은 장선명을 바라보며 말했다.“선명 씨 아까 정말 나태웅을 죽이려고 했어요?”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안지영을 말을 꺼낼 때 여전히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조금 전 안지영은 정말로 무서웠다.장선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난 더 이상 그렇게 혈기 넘치는 사람이 아니야. 예전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지금의 장선명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사람들은 흔히 남자든 여자든 마음속에 뭔가 얽매이는 것이 생기면 일을 처리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한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그녀는 방금 장선명이 나태웅에게 총을 겨눴을 때 장선명이 정말로 나태웅을 죽일까 봐 많이 놀랐었다.“나태웅을 걱정하는 거야?”장선명이 물었다.그의 말투는 아주 차분했지만 누구도 그가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낼 수 없었다.그래도 그가 이런 질문을 던진 것 자체가 이미 감정을 겉으로 내비쳤다는 걸 의미했다.안지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내가 걱정한 건 여기서 사람이 죽으면 나는 나씨 가문에서든 장씨 가문에서든 모두 죄인이 되는 거예요.”지금도 안지영은 마음고생하며 살고 있는데 나태웅이 여기서 죽는다면 장선명은 분명 감옥에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지영은 정말
안지영은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저쪽에서는 고은영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영아 너 어디야? 괜찮은 거지?”고은영도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안지영은 걱정이 가득 담긴 고은영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속 깊은 곳이 따듯해지는 느낌이 들었다.‘이 계집애. 그동안 내가 은영이를 아낀 게 헛된 일은 아니었네. 날 이렇게 걱정해 주고.’안지영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나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어떻게 늑대를 만날 수 있어? 늑대가 널 물었어? 많이 다친 거야?”안지영은 대답하지 못했다.“그리고 주사 맞는 것도 잊지 마. 야생 동물은 바이러스를 갖고 있을 수도 있어.”고은영은 연속으로 질문을 쏟아내더니 안지영에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해결 방법까지 말해줬다.그런 고은영의 말에 안지영의 마음은 더욱 따뜻해졌다.“말했잖아. 나 괜찮다고. 걱정하지 마 은영아.”고은영이 며칠 동안 고은지의 일로 마음을 졸였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안지영은 깨어난 뒤에도 고은영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결국 고은영이 알아버릴 줄 누가 알았을까?고은영이 말했다.“너 정말 괜찮은 거지?”“언제부터 날 이렇게 믿지 않은 거야? 내가 널 속이겠어?”“그럼 언제 돌아와? 너 매하리에 있지 마. 거기 너무 위험해.”왜 사람들이 매하리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고은영이 생각하기에는 정말 위험한 곳이었다.전에 고은영이 배씨 가문에 들어가기 전에도 안지영은 고은영을 데리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싶어 했다.그런데 그 결과 안지영이 여행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안태환이 그녀를 불러들였다.그래서 고은영은 지금까지도 여행을 가보지 못했다.“여기서 빨리 돌아갈 거야. 걱정하지 마.”고은영이 걱정할까 봐 안지영은 전화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영은 지금 다급하고 초조한 상태라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고은영은 안지영이 강성으로 곧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그녀는 정말로 안지영이 무슨 사고라
당시 안지영은 정말로 고은영을 걱정했었다.하지만 지금 맞는 골수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고은영이 말했다.“그래. 이제 나도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아. 이번 일은 정말 나도 깜짝 놀랐어.”골수를 기다리는 것은 사람에게 엄청난 고통이었다.고은지의 상태는 항상 불안정해졌고 특히 합병증이 나타난 뒤에는 더 걱정이 많았다.“어찌 됐든 이제 골수를 찾았으니 좋은 일이야.”고은영은 응하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장선명은 안지영을 보며 물었다.“고은영하고 전화한 거야?”안지영이 대답했다.“네. 고은지한테 맞는 골수를 찾았대요. 이제 은영이도 한숨 돌릴 수 있겠어요.”전에 고은영이 그렇게 야윈 모습을 보고 안지영은 고은영이 무너질까 봐 걱정했었다.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장선명이 물었다.“량천옥의 골수와 일치하대?”“맞아요.”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장선명이 말했다.“정말 이런 기막힌 우연이 다 있네?”고은영의 엄마가 고은지의 골수와 일치한다니.안지영이 말했다.“이건 아마 하늘이 량천옥에게 기회를 주는 것 같아요. 전에 은영이를 그렇게 괴롭힌 것에 대해 뭔가 대가를 치러야지. 이렇게 친딸을 인정만 하고 끝낼 수는 없잖아요.”안지영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사실 예전에 량천옥은 고은영을 심하게 괴롭힌 적이 많았다.량천옥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거의 고은영을 죽일 뻔했다.물론 나중에 진실을 알고 난 뒤 고은영에게 잘해주긴 했지만 량천옥은 결코 선한 사람이 아니었다.설사 랴천옥이 고은영에게 보상을 해준다고 해도 실질적인 보상이 필요했다.장성명은 기뻐하는 안지영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감탄했다.‘이 두 여자는 정말 사이가 좋네. 거의 일심동체나 다름없이 어떤 반박도 용납하지 않네.’이 순간 강성의 병원에서 고은영은 골수가 일치한다는 검사 보고서를 보며 매우 기뻐했다.“언니 이제 드디어 살 수 있게 됐어.”의사
두 사람은 의사의 의아한 표정을 전혀 보지 못하고 그의 옆을 지나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걸어갔다.의사는 두 사람이 정말로 떠나려는 모습을 보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이런 부유한 가문의 사모님들은 가장 흔한 것이 바로 차가운 심장과 무정한 마음이었다.그러니 사실은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도 관심 없는 사람은 끝까지 관심이 없을 것이다.고은영은 량천옥을 병원 아래까지 배웅하며 량천옥이 차에 오르는 걸 지켜보았다.량천옥은 차에 오른 뒤 말했다.“먼저 올라 가 봐. 너도 건강을 잘 챙겨야 해. 정 안 되면 요즘 내가 두 사람 도시락을 챙겨줄게.”“그렇게 번거롭게 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건 너무 고생스러우실 거예요.”고은영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젓는 걸 보고 량천옥이 말했다.“힘들지 않아. 그냥 그렇게 결정하자. 밖에서 파는 음식은 건강에도 좋지 않으니까.”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량천옥은 차 문을 닫고 떠났다.지금 량천옥은 고은영의 거절을 듣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은영에게 바치려 했고 모든 것을 고은영에게 주고 싶어 했다.이전에는 기회를 찾지 못했지만 이제는 어렵게 기회를 얻었으니 량천옥은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할 수 없었다.량일은 량천옥의 기분이 아주 좋은 것을 보고 물었다.“결과가 나왔어?”“응 나왔어. 나와 고은지가 일치하대.”“그럼 고은지를 위해 골수를 기증하기로 했어?”“물론이지.”량천옥이 고개를 끄덕이자 량일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기증해야지.”두 사람은 매칭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이미 적합하기만 하면 바로 기증하겠다고 결정했었다.게다가 고은지가 고은영을 그동안 각별히 챙겼었기 때문이다.지금 두 사람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가 주어져 정말 다행이었다.“아참. 내일부터는 점심을 우리가 가져다줘야 해. 은영이가 점심에 분명 병원에 와 있을 거야.”“그래.”량일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런 것에 대해 량일은 당연히 의견이 없었다. 그녀도 외손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오랫동안 우
배준우가 대답했다.“그렇지.”‘그래 일치하기만 하면 되는데 왜 하필 량천옥의 것이지? 이건 정말...’현재 상황을 생각하니 진씨 가문은 쪽은 이미 큰 소란이 벌어지고 있기에 어떤 일들은 잠시 억누르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배준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진윤에게 연락했다.고은영이 고은지의 병실에 들어가 회사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할 때 배준우도 진윤과 전화가 통했다.배준우가 말했다.“진정훈한테 먼저 내 사무실로 오라고 해줘?”“왜?”“여기 일이 좀 있어서.”진정훈의 협조가 필요했다.진윤은 배준우가 진정훈을 만나겠다고 하는 이유를 몰랐다.배준우는 이전에 진정훈의 이름만 들어도 항상 화를 냈었다.두 사람은 한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고 지금 진정훈이 란완리조트로 가면 배준우는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을 것이다.“알겠어. 내가 정훈이 보고 오후에 너한테 가라고 할게.”“바로 회사로 와서 날 찾으면 돼.”“그래.”두 사람이 전화를 끊었을 때 고은영이 병실에서 나와 배준우에게 말했다.“우리 이만 갈까요?”“언니한테 말했어?”“네. 말했어요.”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 정신적인 이유 때문인지 지금 고은지는 기분이 아주 좋았고 안색도 훨씬 좋아 보였다.배준우는 고은영과 함께 병원에서 나왔다. 마음속에 고민이 있으니 점심은 그냥 밖에서 대충 때우려고 했다.점심 식사 동안 고은영만 계속 먹고 배준우는 거의 먹지 않았다.돌아오는 길에 고은영이 말했다.“왜 점심을 그렇게 적게 먹었어요? 입맛에 맞지 않았어요?”“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런 것 같아. 입맛이 없네.”배준우가 말했다.고은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나도 지금 별로 입맛이 없어요.”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입맛이 없다고? 입맛이 없다는 말의 뜻을 오해한 거 아니야? 오늘 점심에 꽤 많이 먹던데?’하지만 고은영이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걸 보고 배준우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회사에 돌아온 뒤 고은영은 아마도 긴장이 풀린 탓인지 졸음이 쏟아져 바로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재 안의 분위기는 이상했고 너무 무거워 숨 막힐 것 같았다.진성택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이제 만족하니?”그 말투는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워 당장이라도 진정훈을 베어버릴 것 같았다.진정훈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만족하죠.”강성 전체가 진성택과 김영희가 어떻게 친자식을 외면하고 첫사랑의 딸인 전혀 혈연관계가 없는 아이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알게 되었다.그 아이의 지위는 친자식을 훨씬 뛰어넘었다.진성택은 화를 냈다“너 이 자식.”그는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얼굴은 더욱 새까맣게 변했다.진성택은 진정훈을 바라보다가 또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는 진윤을 바라보았다.진성택은 큰아들을 보고 마음이 더욱 복잡했다. 자기가 키운 자식들은 왜 다들 그에게 빚을 받으러 온 것처럼 행동하는 것일까?“네가 말해 봐. 지금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어?”“어떻게 처리하고 싶으신데요?”진윤은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진윤은 이미 수년 동안 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이 가문이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는 그와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진성택은 진윤의 태도를 보고 더욱 분노했다.“진윤 여기는 네 집이야.”“내가 인정하면 여기가 내 집이고 인정하지 않으면 여기는 나와 반 푼어치도 관계가 없는 건가요?”지금 진윤의 태도를 보니 분명 인정하지 않을 것 같았다.진성택은 또 날카로운 눈빛으로 무심한 표정을 하는 진정훈을 째려보았다.“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봐.”‘분명 내가 전생에 이 녀석한테 빚을 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이번 생에 이렇게 날 괴롭히겠어?’진정훈이 말했다.“이 결과 아버지는 만족하세요?”“닥쳐.”“내가 말했죠? 진유경을 내보내라고. 내 여동생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막지 말고 할머니와 아버지가 어디로 데려가고 싶으면 어디로 데려가라고 했잖아요.”진성택과 진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두 사람은 동시에 진정훈을 바라보았지만 각자의 마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
안지영과의 대화를 끝낸 후 고은영은 마침내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불안하게 이리저리 쫓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안지영은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고은영을 달래고 나서도 심장이 가라앉을 틈도 없이 나태웅의 전화가 집 전화로 걸려왔다. 그녀는 번호를 볼 수 없어서 그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틀 남았어.” 그 한 마디에 안지영의 화가 폭발했다. “뭐라는 거야?” “주원이에게 사과해!” 안지영은 입을 다물었다. ‘이 미친놈! 끝까지 이러는 거야?’ 만약 예전 같았으면 안지영은 그에게 말도 안 되는 반격을 했겠지만 지금은 화가 나서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안열이 들어왔을 때 안지영은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배씨 부인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안열은 안지영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불안한 이유가 결국 고은영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감정은 조금 달랐다. 안지영은 고은영으로 인해 말문만 막힐 정도였고 다른 사람 때문이라면 분명 엄청 화를 낼 것이다. “아니에요!” 사실 고은영에게 생긴 일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너무나 복잡했고 고은영이 또 울기 시작할지도 몰랐다. 안열은 안지영의 목소리에서 누그러지지 않는 화를 느끼며 궁금해했다. 고은영이 아니라면 또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죠?” “나태웅이 나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했어요. 이틀밖에 안 남았다면서요.” ‘이 사람이...!’ 나태웅에게 욕을 할 만큼 다 했는데도 그를 물리칠 수 없었다. 지금 안지영은 연달아 욕할 힘조차 없었다. 그의 존재를 설명할 만한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친놈? 병신?’ 안열은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요? 사과요?” ‘정말 이 사람 끝까지 그러는 거야?’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하죠?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얼마 전 나태웅의 집착과 하주원
안지영은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큰일이면 분석하는 데 얼마나 큰 두뇌 용량이 필요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고은영이 울려고 할 정도로 급해진 게 이해가 갔다. 자신이라도 정말 울고 싶을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진짜?’ “그럼 나태현은 량천옥이 너희 언니의 친엄마라는 걸 알아?” “그건 나도 몰라.” 상황이 이미 너무 복잡해서 이젠 고은영조차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태현과 고은지가 거래를 했다는 것만 봐도 그의 동기는 좀 의심스럽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이제 지신혜와 결혼을 약속했고 고은지를 천락 그룹에 다시 데려가려 했다. 그동안 고은지가 천락 그룹에서 일했던 전력도 있으니 나태현의 속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안지영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난 네가 차라리 네 언니에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금 말해?” “그럼, 무조건 말해야지! 량천옥이 아무리 미워도 네 언니의 친엄마잖아.” 진실을 알게 된 후 고은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녀의 자유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속 숨기면 만약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고은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태현이 구희주의 아빠라는 사실은?” “그건, 생각 좀 해볼게!” ‘이건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할까?’ 안지영은 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태현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역시 나씨 가문 사람이야. 어쩜 다들 이렇게 나쁜 자식이지?’ 전에는 나태현이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하나같이 나쁜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얘기하는 게 좋겠어!” 이렇게 큰일을 말 안 하면 나중에 얼마나 큰일로 번질지 알 수 없었다. 안지영은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고은영더러 고은지에게 모든 일들을 잘 설명해 주라고 말했다. 어차피 고은지는 지금 모든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고 아무런 일도 모르는 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