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훈은 분노에 찬 채로 계단을 내려왔다. 그의 이마에 흐르는 피는 더욱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들었다.김영희는 계속 진유경을 달래고 있었다.예전에는 이런 장면을 보면 진정훈은 김영희가 워낙 마음씨가 책해서 자기 친손녀도 아닌 아이를 애지중지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이런 장면을 보니 정말 웃겼다. 진유경은 진정훈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놀라서 김영희의 품으로 더 깊이 숨었다.“오빠.”“앞으로 그 호칭을 네 입에서 듣고 싶지 않아.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진정훈의 말을 들은 김영희는 화를 내며 말했다.“이 못된 놈이.”“그리고 여기서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져. 내일 내가 돌아왔을 때는 이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야.”진정훈은 무섭고 차가운 말만 남기고 돌아섰다.진유경은 그의 차가운 말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 덜덜 떨었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김영희에게 물었다.“할머니 오빠가 정말 날 버리는 거예요?”진유경은 자기가 샘플을 건드린 것이 이렇게 큰 후폭풍을 가져올 줄은 몰랐다.그녀는 단지 그 아이가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았을 뿐이다.진유경은 이 집을 잃는 것이 두려웠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가족들을 잃는 것이 두려웠다.“할머니 어떡해요? 오빠가 절 이 집에 두지 않겠대요. 오빠가 정말 날 버렸어요.”진유경은 계속 울면서 이제는 정말 공포에 떨었다‘그 샘플의 주인은 누구야? 대체 누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진유경은 마음속으로 원망하면서 생각했다.비록 아직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진유경은 이미 마음속으로 그 아이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무서워하지 마. 할머니가 있잖아. 그 녀석은 감히 널 어떻게 하지 못해.”“하지만 오빠가.”여기까지 말한 진유경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방울방울 흘렸다.진정훈이 김영희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 보니 전혀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존경하지도 않았다.이런 생각이 들자 진유경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김영희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괜찮아. 넌 걱
진씨 가문은 지금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고은영 쪽도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다. 량천옥의 일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고은지의 건강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일치한 골수를 기다리는 과정은 정말 고통스러웠다.게다가 멀리 매하리에 있는 안지영은 부상을 입었다.“윽 아파.”항상 강인했던 안지영은 이 순간 바닥에 주저앉으며 고통에 떨고 있었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다리가 돌에 베어 피가 나는 것을 보고 바로 자기 셔츠를 벗어 그녀의 허벅지에 꽉 묶어줬다.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일사천리로 상처를 처치했다.하지만 다리를 감싸는 응급 처치 과정에서 안지영은 생명을 잃는 것처럼 힘들어했다.“핸드폰에 신호가 없어.”하필이면 이런 순간에 장선명이 끔찍한 소식을 전했다.장선명은 이번에는 이곳에 관광 프로젝트를 실시하기 위해 왔고 오늘은 팀과 따로 움직였다.안지영과 장선명은 가는 길 내내 지리적 위치를 기록하고 있었다.역시 매하리의 풍경은 정말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안지영은 이런 아름다운 풍경에 정신이 팔려 발밑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그럼 어떻게 해요?”그녀는 정말 아팠고 이제는 걷는 것도 할 수 없었다.장선명이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해가 지기까지 이제 30분 정도 남아 있었다.방금 안지영이 다치지 않았다면 산에서 내려갈 시간은 충분히 맞출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둠 속에서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해가 지기 전에 산에서 내려가야 해.”장선명이 말하자 안지영도 그제야 해가 지기 전에 산에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산속 상황은 그들도 잘 모르지만 밤에는 언제든지 눈이 내릴 수 있는 매하리의 특성상 기온이 현저히 낮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하지만 지금 안지영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일어서는 것도 힘들었다.그녀가 불쌍한 눈빛으로 장선명을 바라바자 장선명은 그녀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업혀.”“근데 선명 씨도 오늘 많이 지쳤잖아요?”안지영은 울먹이며 말했다.오늘 그들은 하루 종일 산을 돌아다
늑대였다.그들은 늑대를 만난 것이다. 그것도 두 마리나 눈앞에 있었다.“장선명 씨.”안지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장선명의 목을 더욱 꽉 껴안았다.‘헉 왜 이런 상황을 마주한 거야? 혹시 내가 부상을 당해서 피 냄새를 맡고 온 거야?’장선명은 고개를 숙여 떨고 있는 안지영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장성명의 말투는 여전히 차분했다.“무서워?”“어떻게 무섭지 않을 수 있어요?”안지영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말했다.“일어설 수 있어?”안지영의 떨리는 목소리와는 달리 장선명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다.안지영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나 일어설 수 있어요.”지금 이 상황에서는 설 수 없어도 서야 했다.장선명이 말했다.“그럼 천천히 일어서 봐.”“알겠어요.”안지영은 무서워 온몸을 떨면서도 최대한 침착하게 천천히 땅에 서려고 했다.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안지영은 상처가 벌어지면서 피가 계속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이에 앞에 있는 두 마리 늑대의 눈빛이 더욱 번쩍였다.공포에 질린 안지영은 무의식적으로 장선명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서로가 짐이 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안지영은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고 두 주먹을 꽉 쥐고서는 최대한 침착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장선명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별일 아니야.”별일 아니라고 말했지만 안지영은 이미 긴장감이 극에 달해 있었다.‘이게 별일이 아니라고? 이건 늑대라고. 개를 만난 게 아니라.’그러나 장선명이 이렇게 말하니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난 선명 씨를 믿어요.”두 마리의 늑대는 천천히 앞발을 굽히며 공격 태세를 취했다.안지영은 그 모습을 보고 급히 몸을 숙여 허겁지겁 땅에서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그러나 그녀가 몸을 숙이자마자 두 마리의 늑대가 그들 쪽으로 뛰어왔다.그 순간 안지영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안지영은 본능적으로 손에 들린
장선명이 늑대가 이미 죽었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큰 충격을 받은 안지영은 여전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안지영은 천천히 장선명의 품에서 벗어났고 그제야 장선명의 팔이 심하게 다친 것을 발견했다.아마 방금 장선명이 그녀를 밀쳐내면서 늑대에게 물린 것 같았다. 상처에서는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만약 장선명이 안지영을 밀쳐내지 않았더라면 늑대가 덮친 것은 분명 그녀였을 것이다.안지영은 눈앞이 더욱 흐려졌다.“피 나요.”‘피가 너무 많이 나.’장선명은 안지영이 흐느끼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지금 울 때가 아니야. 우리 빨리 여길 떠나야 해. 피 냄새가 다른 짐승들을 끌어들일 수 있어. 근처에 또 다른 늑대가 있을 수도 있고. 만약 늑대 무리를 또 만나면 우린 오늘 끝장이야.”늑대 무리라는 말을 듣자 안지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두 마리 늑대만으로도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만약 늑대 무리를 만난다면 정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그럼 우리 빨리 가요.”“업혀.”그렇게 말하며 장선명은 이미 그녀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그녀를 업고 산에서 내려가려 했다.안지영이 말했다.“안 돼요. 선명 씨 지금 팔도 다쳤잖아요.”안지영은 고개를 저었다.비록 그녀의 다리에서는 지금도 피가 흐르며 고통이 느껴졌지만 장선명도 다친 상황이었다.장선명이 말했다.“빨리 업혀. 우린 최대한 빨리 산에서 내려가야 해.”“아니. 나 혼자 갈 수 있어요.”안지영은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걸을 수 있다고는 했지만 살짝만 움직여도 다리에서 고통이 심하게 느껴졌다.하지만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장선명이 다쳤으니 그녀는 스스로 걸어야 했다.“정말로 걸을 수 있어?”“걸을 수 있어요.”안지영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장선명이 그녀를 붙잡았다.“그럼 가자.”“네.”두 사람은 더 이상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이 위험한 곳을 떠나야 했다.그러나 안지영은 고통이 심해 걸음이 너무 느렸다. 장
안지영과 장선명은 모두 피를 많이 흘렸다.안지영은 끝까지 버텨 마지막 전화를 하고서는 결국 힘을 다해 쓰러지고 말았다.두 사람이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매하리의 병원이었다.안지영은 소독약 냄새에 마침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장. 장선명 씨.”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소리치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하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다리의 통증이 그녀의 심장까지 쥐어짜듯 고통스러웠다.안지영의 곁을 지키고 있던 나태웅은 그녀가 장선명의 이름을 부르며 깨어나는 걸 보고 얼굴이 완전히 어두워졌다.너무 아파서 얼굴까지 창백해진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태웅은 화를 내며 말했다.“아픈 걸 알겠지? 그런데도 얌전히 안 있어?”나태웅의 목소리에 안지영은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안지영은 다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억지로 참으며 천천히 목을 돌려 나태웅을 바라보았다.‘정말 나태웅이야. 이 재수 없는 자식은 왜 따라다니는 거야?’“그쪽이 어떻게 여기 있어?”‘이 인간은 왜 떨어지지도 않는 거야?’안지영은 호흡이 너무 가빠서 입 밖으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그녀는 그저 차갑게 물었다.“장선명 씨는?”“장선명이 널 죽일 뻔했는데 아직도 그 자식을 걱정하는 거야? 안지영 넌 정말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장선명의 이름을 부르며 깨어난 것도 모자라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리고서는 처음 묻는 게 장선명에 대한 것이라니. 장선명은 도대체 안지영에게 어떤 존재일까?도대체 언제부터 안지영이 장선명을 이렇게 마음에 둔 걸까?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고 안지영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얼음처럼 차가웠다.안지영은 계속 가쁜 숨을 쉬며 물었다.“무슨 뜻이야?”‘뭐가 장선명이 날 죽일 뻔했다는 거야? 자기가 날 이렇게 만들고 지금 여기서 날 생각이 없다고 욕하는 거야? 난 어쩌다 이렇게 형편없는 녀석을 알게 된 걸까?’“무슨 뜻이냐고? 네가 그 자식하고 매하리에 오지 않았으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거야. 안지영 설마 아직도 장선명을 네 약혼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
나태웅은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안지영은 이미 상처의 통증을 억지로 참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병실 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간호사가 들어왔을 때 두 사람 사이의 날카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안지영 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지금 상처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요. 빨리 침대로 돌아가 누우세요.”간호사는 안지영을 막으며 다시 침대로 돌려보내려 했다.그리고 싸늘한 얼굴로 옆에 서 있는 나태웅을 바라보며 말했다.“보호자 분 왜 그러고 계세요? 환자의 상처가 어떤 상황인지 아시잖아요? 환자를 좀 잘 타이를 순 없으세요?”“잘 타이르라고요? 내가 이 여자를 잘 타이를 수 있을 것 같아요?”나태웅은 순간 화가 폭발했다.안지영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데 누가 그녀를 잘 타이르고 싶을까?안지영도 화를 내며 나태웅을 째려봤다.“나도 저 사람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요. 장선명 씨는 어디 있죠?”“아직도 그 자식을 찾는 거야? 장선명이 널 저승으로 데려가길 원하는 거야? 안지영 너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나태웅은 정말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그는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여자를 처음 봤다.할 말은 다 했는데도 그녀의 태도는 도대체 왜 이럴까?안지영이 말했다.“내 머리가 어떻게 되든 그쪽하고 무슨 상관인데? 그리고 왜 매하리에 온 거야?”“난 널 구하러 왔어.”나태웅은 호흡을 거칠게 쉬었다.안지영이 말했다.“내가 그쪽 도움을 받을 것 같아? 그리고 우리를 어떻게 찾았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나태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연히 구한 게 아니라 내가 경찰에 신고한 정보를 받은 거잖아? 그런데도 나한테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할 거야?”나태웅은 계속 침묵했다.“내가 정말 뻔뻔한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그쪽처럼 역겨운 사람은 처음이야. 도대체 뭐 하자는 건데?”안지영은 말할수록 점점 더 감정이 격해졌다.그녀는 그렇게 나태웅이 자부하던 생명의 은혜를 단번에 찢어버렸다.나태웅의 얼굴은 완전
장선명은 안지영이 들어온 것을 보고 멈칫했다.“너 왜 일어났어?”장서경도 안지영을 발견했다.전에 말로만 듣던 안씨 가문의 딸이었다. 안지영은 안태환의 금지옥엽 외동딸이었지만 안태환은 안지영을 혹독하게 키웠다.안지영이 안씨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였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안태환은 높은 기준을 요구했다.안지영이 동영 그룹에서 일을 배울 때 안태환은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었었다.거의 모든 것을 그녀가 스스로 벌어서 해결해야 했다.안지영 역시 안태환의 기대에 부응했고 안씨 가문으로 돌아온 후 몇 달 만에 그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는 걸 증명했다.물론 이번에 나태웅은 안지영을 많이 괴롭혔다.장선명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하늘 그룹을 진짜 지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번 기회에 안지영도 사업 운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할 수 있었다.안지영이 입을 열었다.“난 그냥.”장서경이 있는 것을 보고 안지영은 조금 민망해했다.그녀는 장서경을 바라보며 예의 바르게 인했다.“안녕하세요.”그 한마디에 장서경도 찌푸렸던 미간을 풀며 몸을 일으켜 장선명에게 말했다.“두 사람 얘기 나눠. 난 강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게.”“그래.”장선명이 고개를 끄덕였다.장서경이 병실을 나가자 장선명은 작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안지영을 바라보며 다치지 않은 손을 내밀었다.“이리 와.”안지영은 장선명에게 다가가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그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느끼자 그녀의 마음도 조금 안정되었다.아까 안지영이 병실에서 나태웅을 봤을 때 마음속으로 장선명을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안지영은 장선명의 팔에 감긴 두꺼운 지혈 붕대를 보고 물었다.“주사는 맞았어요?”야생 늑대에게 물렸기에 어떤 바이러스를 갖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이 감염이라도 됐을까 봐 걱정했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장선명이 말했다.“걱정하지 마. 맞았어.”“큰형님은 어떻게 오셨어요?”“아마 우리가 산에 있을 때
안지영의 높아진 말투를 들은 장선명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만약 굳이 따지자면 그렇기도 하지.”안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정말 그런가? 이건 너무 내 팔자에 마가 낀 거 아니야?”“그래도 내가 먼저 경찰에 신고했어요. 내가 신고하지 않았으면 나태웅이 우릴 무슨 수로 찾았겠어요?”어찌 됐든 안지영은 나태웅에게 생명을 빚졌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평소에 얼마나 나태웅 때문에 화가 많이 났었으면 지금 이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걸까?장선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 네 말이 다 맞아.”“난 나태웅한테 고마워하지 않을 거예요. 보답도 하지 않을 거고요.”안지영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장선명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래. 다 네 말대로 하자.”약혼녀가 이렇게 화가 났을 때는 절대로 반박해서는 안 된다. 그녀가 뭐라고 하든 그냥 맞장구를 쳐 줘야 했다.여자는 원래 그렇다.화를 낼 때는 절대 논리로 설득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까지 따지면 결국 완전히 원수가 될 것이다.하지만 나태웅은 이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안지영이 마음속으로 느낄 반감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녀에게 강압적인 말들을 쏟아냈다.그 결과 이제는 나태웅이 안지영의 목숨을 구해줘도 좋은 소리 하나 듣지 못했다.“그러니까 선명 씨도 나태웅한테 보답하지 말아요.”안지영이 투덜거리며 말하자 장선명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다 네 말대로 할게. 내 일은 다 네가 결정해.”“그래요.”장선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안지영은 그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장선명은 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눈빛이 더욱 부드러워졌다.한편 나태웅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그는 자신이 안지영을 구했다고 생각했지만 안지영이 아까 보인 태도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감히 나하고 말싸움을 해? 게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고마워하지 않을 거라고?’왕여는 나태웅이 담배를 몇 대나 피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