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영은 란완리조트에 돌아왔지만 아직도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었다.이때 안지영에게서 전화가 와서 매하리에서 찍은 많은 사진을 고은영에게 보내주며 같이 오지 못해 너무 아쉽다는 말을 전했다.안지영과 고은영이 전화하는 것을 본 배준우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배준우는 고은영이 안지영의 전화를 받은 뒤 기분이 좋아진 것을 보고 더욱 기분이 나빴다.“그럼 언제 돌아와?”고은영이 안지영에게 물었다.고은영은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안지영은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고은영의 목소리를 듣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너 왜 그래? 오늘 울었어?”“아니.”“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딱 들으면 바로 아는데. 왜 울었어? 은지 언니 상황이 더 악화됐어? 아니면 배준우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안지영은 고은영이 왜 울었는지 순식간에 분석하기 시작했다.고은영은 그녀의 말에 바로 대답했다.“그런 거 아니야.”“그럼 누군데? 진유경이 또 널 찾아와서 괴롭혔어? 그 여자 정말 끝이 없네.”“그것도 아니야.”“그럼 뭔데? 은영아 빨리 알려줘. 안 그럼 나 걱정돼서 미칠 것 같아.”안지영은 진심으로 고은영을 걱정했다.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이 바로 그녀가 강성에 없을 때 고은영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었다. 안지영이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 고은영의 주위에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기에 안지영도 이상한 느낌이 든 것이다.다른 건 제외하더라도 배준우의 엄마가 뒤에서 일을 꾸미고 있는 것도 모자라 배준우의 여동생도 마찬가지였다.그래서 안지영은 더욱 고은영이 걱정되었다.“다른 일 때문에 그래.”고은영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그 말을 듣고 안지영이 물었다.“어? 다른 일?”“응.”고은영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배준우의 눈치를 봤다.배준우는 고은영이 가장 믿는 사람이 안지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또 그녀가 안지영에게 다 털어놓으려는 것을 보고 방을 나갔다.배준우가 나가자 고
“준우 씨도 알아.”“뭐라고 해?”배준우가 알고 있다는 말에 안지영은 긴장한 나머지 심장이 목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이거 정말 큰 일이네.’안지영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 고은영이 이제 겨우 평온한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 절대로 량천옥 같은 여자 때문에 고은영의 행복을 망칠 수는 없었다.비록 량천옥의 손에 사업체가 많은 건 알고 있지만 지금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배씨 가문 사모님의 자리를 버리고 량천옥이라는 악독한 여자를 엄마로 받아들인다면 정말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었다.“준우 씨는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대.”고은영이 말했다.안지영은 배준우가 고은영이 아이를 낳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어찌 됐든 배준우가 그동안 고은영에게 잘해줬기 때문이다.배준우가 알고 있었다는 건 그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안지영이 말했다.“그럼 당분간 그 여자는 신경 쓰지 마. 네 남편하고 아이가 있는데 다른 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나머지는 내가 돌아가면 다시 얘기하자.”고은영이 물었다.“그럼 너 언제 돌아와?”“며칠 안 남았어. 착하지.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안지영은 고은영을 달래며 말했다.그 말에 고은영은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사실 안지영은 이번에 고은영에게 무슨 큰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녀가 떠나자마자 고은영에게 이런 사건이 터졌다.문제는 이제 어디를 가도 고은영을 데리고 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결혼이 이래서 안 좋은 거야. 은영이도 이제 내 것이 아니네.’안지영은 고은영을 조금 더 달랜 뒤 전화를 끊었다. 한편에서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던 장선명은 안지영의 대화 내용을 듣고 그녀를 계속 힐끔거렸다.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고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에요? 량천옥이 우리 은영이 엄마래요.”“내 기억에 넌 이미 이 일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이제 와서 충격을 받는 건 반응이 너무 느
‘그럼 우리 은영이는 도대체 진씨 가문의 딸인 거야 아니면 량천옥의 딸인 거야? 아니면 량천옥과 진씨 가문의 뭔가 관련된 건가? 그것도 아니면 어떻게 똑같은 검사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거지?’안지영이 한창 생각하고 있을 때 장선명이 말했다.“아무튼 이 일은 너무 복잡해.”너무 복잡한 일이라 듣는 사람까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안지영이 말했다.“그럼 우리 은영이는 지금 진씨 가문 일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우리 인영이라는 네 글자에 장선명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에는 골치 아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우리 은영이는 뭐가 우리 은영이야? 고은영은 이제 엄연히 배준우의 아내인데. 이 여자가 전에 배준우한테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네.’장선명은 마른기침을 두 번 하고 나서 말했다.“내가 너한테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알려줘야겠네.”“무슨 문제요?”“네 은영 씨는 지금 배준우의 아내야. 남자가 질투하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아?”안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니 지금 이걸 말할 때야?’안지영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말했다.“선명 씨 뜻은 배준우가 나한테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건 배준우가 틀린 거죠. 여자한테 질투나 하고.”“넌 요즘 양성애자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날 뭐로 보는 거예요?”안지영은 순간 다급하게 말했다.‘뭐? 양성애자? 지금 나의 성향을 의심하는 거야?’고은영이 배준우와 결혼했을 때 사실 안지영은 마음속으로 기쁘면서도 실망했다.배준우의 권력이라면 고은영이 더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마음을 더욱 놓을 수 없었다.동영그룹에 있는 동안 고은영을 가장 괴롭힌 사람이 바로 배준우이기 때문이다.다른 사람이라면 안지영이 고은영을 지켜줄 수 있었겠지만 배준우라면 안지영도 상대할 수 없었다.장선명은 안지영의 화가 난 표정을 보고서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얼른 가서 샤워해.”두 사람 다 오늘 하루 종일 피곤했다.안지
진유경은 마음속으로 이미 한 마디가 떠올랐다.‘끝났다.’검사 센터라는 네 글자가 순간 진유경의 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했다.‘아빠도 알고 있고 둘째 오빠도 알고 있네. 설마 이것 때문에 둘째 오빠가 요즘 날 대하는 태도가 이상했던 거야? 오빠가 갖고 온 샘플에 내가 손을 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진유경은 입술이 창백해질 정도로 깨물고서는 억울한 듯 진성택을 바라보았다.“아빠 제 기사는 왜 부르시는 거예요? 저와 대면이라도 하려는 건가요? 뭐든지 저한테 물어보세요. 전 절대 아빠를 속이지 않아요. 아빠가 이렇게 절 믿지 못하신다니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내가 물으면 네가 솔직하게 말할 거니?”“제가 언제 아빠한테 거짓말한 적 있어요?”진유경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완전히 피해자의 위치에 놓았다.그리고 진성택도 진유경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기 손으로 키운 착하고 말을 잘 듣는 딸이 진정훈의 말처럼 그런 일을 저질렀을 리 없다고 믿고 싶었고 진정훈의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반드시 모든 것을 분명히 밝혀내야겠다고 결심했다.입양한 딸이라는 신분은 때때로 매우 민감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아직도 밖에서 고생하고 있을 텐데 진성택은 진유경이 그 아이에게 어떠한 상처도 주지 않길 바랐다.“나도 널 의심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유경이 네 기사가 이런 중요한 시점에 정훈이가 검사를 맡긴 검사 센터에 따라갔다는 건 반드시 합리적인 해석을 해줘야 할 거야.”진유경은 진성택의 말을 듣고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그러니까 내가 수년 동안 그렇게 노력하고 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잘해줘도 마음속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의 핏줄인 딸 그 아이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 아이가 도대체 뭔데?’진유경은 눈물을 흘렸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찾았다는 그 아이를 원망하고 있었다.‘도대체 그 아이가 누구지?’진유경은 그 아이가 누군지 알았다면 반드시 그 여자를 갈기갈기 찢
진유경은 기사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오빠, 아빠, 저 사람이 하는 말 믿으면 안 돼요.”“빨리 말해요.”진정훈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기사는 다급하게 말했다.“할머니와 작은 아가씨 모두 저를 찾아왔었습니다.”진성택과 진정훈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할머니와 진유경이 모두 기사를 찾아갔다고?’진정훈과 진성택은 서로를 바라봤고 진성택의 가슴은 심하게 요동쳤다.진성택은 자기 엄마 김영희의 사람이 기사를 만난 것은 진유경이 할머니의 옆에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진유경과 김영희가 각자 기사를 찾아간 것이었다. 그 말은 진유경과 김영희 모두 그 아이를 찾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진유경이 그 아이를 찾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건 진성택과 진정훈 모두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김영희는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일까?“아빠.”진성택이 힘없이 테이블을 붙잡는 순간 진유경은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진성택이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다.“가까이 오지 마라.”진유경은 순간 온몸이 얼어붙으며 불쌍한 눈빛으로 진정훈을 바라보았다.“오빠.”지금 이 순간 진정훈의 표정도 매우 차가웠다.“정말 두 분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왜 제 말은 들어주지 않으세요?”진유경은 울면서 말했다.그녀는 여전히 변명하고 있었지만 지금 진정훈과 진성택은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진정훈은 진성택을 부축하며 뒤에 서 있는 기사에게 말했다.“나가보세요.”기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처량해 보이는 진유경을 한 번 쳐다보고서는 몸을 돌려 서재를 나갔다.진유경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샘플만 바꿔서 그 아이가 진씨 가문과 관계가 없다는 걸 증명하면 그걸로 끝날 줄 알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기사와 대질 신문까지 받게 된 거야? 어디서부터 잘못돼서 의심받게 된 거지?’진성택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마음을 진정시킨 뒤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진유경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넌 짐을 정리해라. 우리
진정훈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김영희는 계속 냉혹한 말을 뱉어냈다.“어디서 누구와 몰래 낳았을 지도 모르는 아이를 너희는 왜 몇 년 동안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찾는 거니.”“그만하세요.”김영희의 말은 진성택의 신경을 심하게 자극했다. 그는 잔인한 표정을 지으며 김영희를 향해 말했다.“정훈이 엄마는 이미 죽었어요.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말씀하셔야겠어요?”“죽었다고? 그건 그 여자가 벌을 받은 거야. 죽었다고 해서 그 죄가 다 사라져?”“제가 말했잖아요. 그 아이는 제 딸이에요. 그 아이는 죄가 없다고요.”진성택은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그 일은 그가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고통이었다. 매번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스스로 고통스럽게 자책하며 죄책감을 느꼈지만 이를 해소할 곳이 없었다.진정훈은 온몸에 피가 거꾸로 흐르는 기분으로 진성택을 바라보다가 다시 김영희를 바라보았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완전히 부서지는 걸 느꼈다.김영희가 말하기 전에 진성택이 계속 말을 이었다.“그럼 어머니는 그 아이가 제 딸이 아니라고 확신하셔서 샘플을 바꾸신 거예요?”이 말이 나오자 진정훈은 더욱 어두운 눈빛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그래. 그 아이가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면 왜 샘플을 조작한 거지?’할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눈빛으로 진성택을 바라보았다.진성택이 말했다.“결국 어머니가 정훈이 엄마를 좋아하지 않으셔서 그런 거잖아요. 그동안 어머니가 정훈이 엄마가 낳은 아이들을 얼마나 냉혹하게 대하셨는지 생각해 보세요.”진정훈은 순간 호흡이 거칠어졌다. 아버지의 말에 그는 마침내 무언가를 깨달았다.그동안 김영희는 그들에게 항상 냉담한 태도를 보여 왔다. 그들은 할머니가 원래 손녀를 더 소중히 여기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알고 보니 할머니는 그들의 엄마를 싫어했던 걸까? 그래서 그들까지 좋아하지 않았던 걸까?진정후은 몇 년 동안 해외에 있으면서 전화로 들은 얘기들과 이번에 집에
샘플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진정훈은 가장 먼저 진유경을 의심했다. 할머니가 별로 기뻐 보이지는 않았지만 진정훈은 할머니가 그런 조작을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할머니의 친손녀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오늘 밤 할머니가 한 말은 도대체 다 뭐지?’한 시간 뒤 진정훈은 완도에 도착했다. 윤설은 마침 야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요리 솜씨는 매우 뛰어났기에 진정훈은 들어서자마자 맛있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는 지금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진정훈이 도착한 것을 본 윤설은 우아하게 마중을 나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훈 씨.”진정훈은 윤설을 진윤이 어떤 방식으로 손에 넣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를 아주 요염하고 화려한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아니었다.윤설은 온화한 얼굴을 하고서는 맑은 눈동자에는 아무런 욕망도 담겨 있지 않았다. 진정훈은 윤설을 보자마자 진윤이 왜 윤설과 결혼했는지 이해했다.‘윤설에게는.’“오지 말라고 했잖아.”진정훈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진윤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그제야 진정훈은 정신을 차리고서는 짙은 네이비 잠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온 진윤을 발견했다.윤설은 진윤을 보자마자 눈동자에 진윤만을 담았다.이 순간 진정훈의 머릿속에는 당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도 윤설처럼 온화한 여자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결국.’오늘 밤 김영희가 했던 말을 생각하니 진정훈은 어머니가 당시 그런 비극을 겪은 것이 할머니의 계획은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여동생이 사라진 것도 그렇고 그때 어머니는 왜 그런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던 거지?’비록 이후에 벌어진 모든 일은 진성택의 라이벌이 벌인 일이라고 밝혀졌지만 이제 진정훈은 그 사실을 전혀 믿을 수 없었다.이 순간 진정훈은 진윤을 바라보며 그동안 진윤이 진씨 가문을 싫어하던 모습들이 떠올랐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진정훈은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깊이
진윤은 진정훈의 말을 듣더니 눈을 내리깔며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진정훈은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할머니하고 엄마는.”방금 김영희가 했던 말을 떠올리니 진정훈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이것이 바로 그가 그토록 화목하다고 여겼던 가족이었다.지금 와서 보니 그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진정훈이 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해 얘기할 때 진윤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형은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거지?”진정훈은 진윤이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고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사실 진윤이 대답하지 않아도 진정훈은 이미 진윤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렇지 않고서야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진윤이 왜 집에 거의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 그건 너무나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형 난 엄마와 동생이 그때 당한 불행한 일도 할머니가 꾸민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어.”“맞아.”진정훈은 순간 숨이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형은 다 알고 있었네.”“믿을 수 있어?”‘아니 믿을 수 없어.’진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늘 밤 일이 있기 전에 진윤이 진정훈에게 말했다면 진정훈은 아마도 진윤의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훈은 이제 믿었다.진윤은 할머니와 아버지를 증오했고 그동안 두 사람을 거의 원수처럼 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뭘 할 수 있었을까? 남이었다면 진윤은 바로 제거했겠지만 할머니와 아버지에게는 복수를 한다고 해도 결국 무력한 인생만 남을 것이다.그동안 진윤은 오직 비즈니스에서만 진성택을 방해했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그러데 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 그리고 호영이에게도.”진정훈과 진호영은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할머니는 그동안 두 사람과도 별로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할머니에게 잘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하늘 아래 어떻게 이렇게 독한 할머니가 있을 수 있는 거지? 며느리가 싫어서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다고